칼과 뉴게이트들은 정치를 시작했다.
칼의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제부터, 노트와 마일에겐 자신들이 아이젠 종족임을
각인 시켜주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마하들에겐 아이젠 종족임을 각인시켜주되
노트와 마일은 태양의 민족처럼, 인간이라는 한 생명체로 받아들이게 만들자.“
뉴게이트들은 고개를 까딱였다.
“도대체 왜 그렇게 해야 돼?
아이젠 종족임을 각인시켜도,
뉴게이트인 우리의 명령을 복종할 수밖에 없을 텐데.“
비기는 남자다운 성격 뒤에 누군가를 밟고 일어서는 것을 유독 좋아했다.
“비기, 그런 식으로 반복되어 갔다간
언젠가 우리도 태양의 민족들과 같은 노선을 건너고 말거야.“
욕심으로 뭉친 아이젠 종족,
자신과 타인의 입장을 바꾸어 본 적은 없었을 것이다.
칼은 마음속에 달린 죄책감이라는 추의 무게를 느끼기에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럼, 정확히 인식을 시키지 않는 다는 것은 무슨 말이야?”
그릴이 묻자,
“마하들은 어차피 우리의 직계자손들이기에, 다루기 쉽지만
노트와 마일들은 인간의 모습을 찾아가면서 아이젠 종족의 자아는
많이 퇴보되어 있었어.
그런 모습들을 보고, 아예 우리와 다른 대우를 해가며
세상에 존재하는 생명의 일부 중 한 자리를 넘겨주고
우리가 그 위에 군림할 예정이야.“
칼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
어차피 노트와 마일은 인간의 모습을 되찾으며
더 이상 아이젠도 태양의 민족도 아니라고 볼 수 있었다.
그것들은 현재 오늘날 인류의 인간들,
현대 인종을 구분 짓지 않고 우리 모두는 그들의 잔상이다.
어느새 뉴게이트 모두는,
칼의 의견에 동의했고 이는 곧바로 시행되어갔다.
칼의 뒤로 늘어선 그림자 속에 묻어가는 뉴게이트들이 생기자,
바이올렛의 시기는 또 커져갔다.
노트와 마일들은 본인들이 아이젠임을 자각하지 못하자,
스스로 태양의 민족들처럼 행동하며 살아갔고,
아이젠 종족에게 다른 모습들이 보였다.
그것은, 아이젠 종족의 성욕이 아닌
태양의 민족의 ‘성욕‘이였다.
아이젠은 성욕을 잘 느끼지 못했다.
본래 플랑크톤 같은 존재이기 때문일지 아닐지,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노트와 마일들은 사람의 모습을 갖추고
그와 동시에 아이젠임을 망각해 태양의 민족처럼 교배하고,
태양의 민족처럼 성행위를 시작했다.
여자들의 몸을 눈으로 더듬고,
사춘기라는 시기 또한 찾아오기를 반복했다.
사춘기,
그것은 태양의 민족의 유전자와 아이젠 종족의 유전자의 충돌이다.
낭만스러운 반항도,
결국 마음속으로만 하는 플라토닉 러브처럼,
아이젠 종족의 유전자는 겉모습까지 차지한 태양의 민족의
유전자를 완벽히 이겨내진 못했던 것이다.
모든 일에 책임이 따르듯,
이들에게 아이젠종족 특유의 촉수와 영원한 생명은 사라졌다.
바이올렛은 입술을 질끈 물었다.
‘왜 다들 칼의 의견을 반영시켜 주는 거야?’
어쩔 수 없었다.
그 당시 칼은 이미,
보이지 않는 왕좌에 앉아있었고
꼭대기에 서 있는 자는
아무리 잘해도 절반에겐 미움을 받기 일쑤이기에.
증오는 지도자가 내는 세금 같은 것이다.
태양의 민족끼리 살아갈 때,
분명 분쟁이 없었지만
노트와 마일이 태양의 민족의 몸을 차지하고,
제 2의 인간들이 세상에 퍼져나갈 때
이미 부추기지 않아도 분쟁은 항상 일어났다.
역시, 바이올렛의 감정동조화가 일으킨 파장이다.
모두 칼의 지도 아래 따라갈 즈음,
바이올렛만큼은 흐름을 역류하는 연어처럼 반대로 갔다.
칼이 아무리 바이올렛에게 선의를 보여도,
바이올렛의 증오는 손 때 탄 공책처럼 남아 지워지지도 않았고,
얄팍한 문자가 전부인 현대인의 우정처럼.
이때 즈음에, 바이올렛에겐 뉴게이트에 대한
‘동족애’ 조차 사라져가기 시작했다.
욕심에 눈이 멀어,
‘부정’ 이라는 이름의 선글라스를 써야만 눈을 뜨는 장님 같았다.
부정적이란 전재가 깔리지 않으면
애초에, 그것을 곧이곧대로 인정하려 들지 않았으니까.
바이올렛은 칼의 존재 자체가 죄 같았다.
욕심이라는 늪에 빠져 무릎이 젖는 느낌이 들어도
불나방처럼 반항하는 바이올렛.
어느덧 서리꽃이 피는 겨울이 찾아오고,
증오에 물든 자신의 모습을 거울로 바라보자,
입김 때문에 뽀얗게 물든 그 사이로
바이올렛 자신의 모습이 비추어진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칼의 선의는 더해져갔지만
화를 잊지 않기 위해 뒤끝은 항상 남겨두었고,
디딤돌을 밟듯 칼의 선의를 지나고 나면
하늘과 땅, 아들과 딸, 아침과 밤처럼
자신의 마음이 너무 달라져 있을까 봐.
지금 바이올렛의 증오는 그랬다.
날이 갈수록 순수함의 정의와는 더욱 멀어져갔고,
증오를 거두려 해도 거둘 수 없었다.
이미 바이올렛에게 증오는 의무와 같았다.
마음속에 있는 증오를 들고,
홀로 어딘가로 떠나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안쓰러워 보여서 일까?
불쌍해 보여서 일까?
그런 바이올렛의 뒷모습은......
마치 사춘기가 지난 나이,
억지로 웃는 얼굴을 그리면
별 다른 일 없이도 웃겼던 그날들이 그립 듯이.
떠나는 바이올렛의 뒷모습 역시, 그래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