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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트리플 러브
작가 : 이류수
작품등록일 : 2017.11.6

한 번, 두 번, 세 번...... 수년의 세월을 뛰어넘는 완전한 사랑, 트리플 러브가 펼쳐진다.

 
제 15화. 보듬고 싶은 상처 - 2037년, 여경
작성일 : 17-11-30 09:45     조회 : 343     추천 : 0     분량 : 4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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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현아!”

 

 세 달 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대학시절 만나 평생의 단짝이 된 정소현.

 

 “우리 너무 오랜만이지? 한번 내려오기가 쉽지 않네.”

 “그러게. 나도 통 서울 갈 일이 없었어.”

 

 그녀는 모교에서 상담학 교수로 재직 중이었다. 정년을 앞둔 그녀는 마음이 심란하다며 아침 일찍부터 내려왔다.

 

 “정년이 60세란 거 너무하지 않니? 이렇게 팔팔한 데 말이야.”

 

 그녀가 네덜란드로 돌연 유학을 떠났던 게 엊그제처럼 생생했다. 그런 그녀가 벌써 정년퇴임이라니.

 

 “나 아직 연구할 게 너무 많단 말이야.”

 “그래?”

 “너도 알잖아. 내가 왜 가족상담학을 택했는지.”

 

 그녀가 매진해온 오랜 학문적 주제는 ‘트라우마 가족치료’에 관한 것이었다. 국내에 ‘트라우마 가족치료’를 소개하는 데 일조했고, 다양한 임상사례를 연구하는 데 열심이었다.

 

 “이혼하고 나서 다시 결혼하기 두려웠던 것도 아직 치유되지 않은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봐.”

 “그럴까?”

 “나 자신을 치료하려고 공부하게 된 거니까. 아직 치료가 안 끝났는데 벌써 퇴임이라니 말이 돼?”

 “퇴임하더라도 상담실은 계속할 수 있잖아.”

 “안 그래도 고민 중이야.”

 

 그녀의 전공에 대해 태영도 관심을 보인 적이 있었다. 그 역시 마음 깊이 자리한 상처의 대부분이 ‘가족’과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나도 여기 내려와서 살까?”

 “정말?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거야?”

 “응. 퇴임 앞두고 이런저런 생각을 해봤어. 내 인생 2막을 죽마고우 곁에서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더라구.”

 “나야 대찬성이지. 형도 반가워할 거야.”

 “당연히 반가워야지. 태영 선배가 내 선배이기도 한 거 잊지 마라.”

 

 국가의 중심으로서 ‘수도’라는 개념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지방이나 해외에 본사를 두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공공 기관이나 방송국도 각 시도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인구도 전국적으로 평준화되었다. 20나 30대부터 전원생활을 하거나 귀농하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서울의 인구는 전국 평균을 크게 밑돌고 있었다.

 

 “인근에서 상담실 개원하기 적당한 데가 어딘지 알아볼게.”

 “그래, 고맙다. 인생 2막도 혼자 꿋꿋이 버티려면 경제력이 있어야 하니까. 아아, 사람 수명이 왜 이리 쓸데없이 길어진 건지!”

 “혹시 모르지. 인생 2막에 두 번째 반려자를 만날지도.”

 

 그녀가 정색을 하며 눈을 흘겼다.

 

 “결혼은 한번으로 됐어. 내 트라우마가 아직 치료되지 않은 이상 또 다른 가정을 꾸리는 건 불행을 자초하는 일이야.”

 “새로운 가족이 생기면 함께 치료해나갈 수도 있잖아. 태영이 형이랑 나처럼 말이야.”

 “글쎄, 난 아직 자신이 없네. 그리구 너희 같은 커플이 어디 흔하니? 그 모진 풍파를 겪고도 다시 만나 부부가 된 거 보면 정말 대단해.”

 

 그 모진 풍파를 넘지 못할 뻔 했던 마지막 위기가 떠올랐다. 형이 발병한 후 귀국한 정민영. 그녀의 재등장은 확실히 강력한 위기가 되었다.

 

 “여경 씨, 그땐 정말 미안했어요. 거짓말을 하는 게 모두한테 좋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내 욕심도 있었지만요.”

 

 당시 매일 태영의 병실에 들르던 그녀가 어느 날엔가 나를 찾아왔다.

 

 “염치없는 부탁이긴 하지만, 여경 씨가 한 번 설득해 주면 어때요?”

 

 민영과 함께 독일로 떠나라고 그를 설득할 수 있을까. 정확히는, 그가 떠나기를 나 역시 바라고 있는 걸까.

 

 “민영 씨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그 사람한테 거짓말을 하란 거군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곧 결혼한다구요. 그러니 홀가분하게 떠나라고 말이죠.”

 “…….”

 

 그녀는 생각에 잠긴 듯 잠시 말이 없었다.

 

 “약혼자도 있다면서요. 영 거짓말은 아니잖아요.”

 “헤어질 생각이에요.”

 “뭐라구요?”

 “약혼자랑 헤어질 거라구요.”

 

 그녀의 얼굴이 미세하게 일그러졌다. 예기치 못한 말을 들었다는 듯 난감한 표정이 역력했다.

 

 “제가 거짓말까지 하면서 그를 설득해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면 그렇게 하죠.”

 “그래줘야 할 이유가 있어요. 충분한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뭔데요?”

 “우리 사이에 아이가 있었어요. 물론 태어나기도 전에 사라졌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턱 치고 올라왔다.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했다. 두 사람 사이에 아이가 생길 수 있었다는 걸.

 

 “남들이라면 비웃을 수 있겠죠. 동거하다 생긴 아이가 태어나지도 못하고 죽었는데 그게 무슨 대수냐고 말이죠. 그치만 나한텐 그렇지 않아요. 평생토록 잊을 수 없는 기억이자 아픔이죠.”

 “일, 일부러 없앤 건가요?”

 “아니요. 3개월 됐을 때 자연유산 됐어요. 그걸 핑계로 태영일 내 곁에 좀 더 붙잡아둘 수 있었죠. 그때나 지금이나 이런 내 모습이 참 안쓰럽네요.”

 

 그녀의 눈가가 이슬을 머금은 듯 촉촉해졌다. 안쓰러움의 대상이 자기 자신인지, 잃어버린 아이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내 몸은 꽁꽁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오래도록 황망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병원 복도를 가로질러 내 방까지 어떻게 걸어왔는지 잘 기억나지 않았다. 오후 7시 20분. 퇴근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그날 나는 불 꺼진 방에 우두커니 앉아 조용히 울먹였다.

 

 “모든 부부에겐 불협화음이 있기 마련이야. 완벽한 부부는 없지. 완벽하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한 거지. 너흰 어때?”

 

 소현이 미심쩍은 얼굴로 물었다.

 

 “글쎄, 딱히 생각나는 건 없는데.”

 “잘 생각해 봐. 서로 터놓지 못하는 얘기들이 있을 거야.”

 

 사실 그와 나 사이에는 공유되지 못하는 것들이 제법 있었다. 부부라고 해서 서로의 모든 것을 나눌 필요는 없다고 여겼기에 외면했을 뿐.

 

 “그러고 보니 꽤 있네.”

 “예를 들면?”

 “전부터 부모님이나 어린 시절에 대한 얘길 거의 들어본 적이 없어. 아이 문제도 길게 대화해본 적 없구.”

 “음.”

 

 그녀가 머그잔을 양손으로 감싸 쥐고 천천히 입으로 가져갔다. 무언가 복잡한 표정이 어렸다.

 

 “왜? 우리 심각한 거야?”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지난한 세월을 견디고 견뎌 위대한 사랑을 이뤘다는 만족감은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

 

 “남원 쪽은 제가 알아볼게요.”

 

 소현의 개원 문제로 해나와 상의를 하던 차에 그녀가 도움을 주기로 했다.

 

 “입사 동기 중에 남원 토박이가 있거든요. 가족 상담실라고 하셨죠?”

 “네. 알아봐 주면 나야 고맙죠.”

 “오랜 친구랑 이웃으로 살게 돼서 좋으시겠어요.”

 “그러게요. 벌써부터 마음이 든든해지네요.”

 

 그녀가 LP 플레이어를 작동시켰다. 유투의 ‘Stay’.

 

 “어, 이 노래…….”

 “맞아요. 선생님이 지난번에 추천해 주셨잖아요. 그저께 서울로 출장 갔었는데 마침 생각나더라구요. 을지로를 샅샅이 뒤져서 찾아냈죠.”

 “와, 대단하다. 해나씬 LP가 좋은가 봐요?”

 “묘하게 느낌이 좋아요. 멜로디가 손에 잡히는 것처럼 가깝게 느껴져요. 귀가 더 훈훈해지는 것도 같구요.”

 

 디지털 시대가 가속화되던 20여 년 전에도 아날로그에 대한 붐이 일었었다. 해나 같은 디지털 세대에게 아날로그는 ‘향수’가 아니라 ‘새로움’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새로움’은 시간이 갈수록 빛이 바랬다. 더 이상 새로울 게 없는 ‘아날로그’가 2037년엔 어떤 의미일까.

 

 “취향의 문제 아닐까요? 여러 선택사항 중 하나요. 종이책을 선호하는 취향이 있듯이 말이에요.”

 

 독특할 것도, 신선할 것도 없는, 그저 선호도나 취향의 문제. 세월은 이렇게 변해가고 있었다. 우리가 소중히 여겼던 그 무언가들과 함께.

 

 “어머니는 좀 어떠세요?”

 “요즘엔 등산이나 수영도 하세요. 얼마 전부턴 일도 시작하셨어요.”

 

 해나의 어머니는 오래 전부터 앓던 심장병이 악화돼 1년 전 줄기세포 치료를 받았다. 배아줄기세포를 활용한 맞춤형 심장을 이식받은 후 그녀의 심장은 새로 태어난 듯 회생하고 있었다.

 

 “무슨 일요?”

 “엄마가 힌디어랑 회계학을 전공하셨거든요. 요즘 인도에 진출하려는 회사들이 너무 많아서 컨설팅 인력이 부족하다나 봐요. 영어보다 힌디어에 익숙한 현지인들을 공략할 사람도 필요하구요. 저희 엄만 국내 회사랑 인도 현지인을 연결하고 상담해주는 역할을 하신대요.”

 “와, 대단하세요. 힘들진 않으실까요?”

 “시니어 탄력 근무제 덕분에 자유롭게 조정하시나 봐요.”

 

 노인 인구가 20%를 넘는 초고령화 사회가 된 지 이미 오래였다. 노인의 재취업이나 경제활동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된 것이다. 나 역시 고민 중인 문제였다. 인생의 진로를 처음으로 탐색하던 학창시절에 못지않은 고민이었다.

 

 ***

 

 “상담?”

 “네. 소현이가 후배라서 좀 불편할까요?”

 

 소현의 근황을 알리면서 그에게 슬쩍 상담을 권유해 보았다.

 

 “나한테 치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쉽게 터놓을 수 없는 상처가 있다면 상담 치료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작업을 시작하려고 막 옷을 갈아입던 참이었다.

 

 “생각해 볼게.”

 “그래요.”

 “당신이 내 상처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는 줄 몰랐어.”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씨익 웃어보였다. 그의 상처를 어떻게든 보듬어주고 싶었다. 소현의 말처럼 내 힘만으로는 역부족일 거란 자각도 들었다.

 

 “오늘은 무슨 작업이에요?”

 “공간 쌓기. 임 교수 말로는 단열엔 이 방법이 좋대.”

 “어떻게 하는 거예요?”

 

 그가 미리 주문해둔 훈탄과 톱밥 상자를 들어보였다.

 

 “일단 우린 단열재나 스티로폼 대신 이것들을 쓸 거야. 벽돌을 쌓으면서 3단 정도마다 와이어 메시(바둑판 라인 모양처럼 철근을 격자로 용접한 것)를 안쪽과 바깥쪽 벽돌에 걸쳐 깔아주면 돼.”

 

 작업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오전 한 때가 분주히 지나갈 것 같았다.

 

 띠리링, 그의 스마트워치가 형광색 빛을 뿜으며 요란하게 울려댔다. 그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무슨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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