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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스네이크맨
작가 : 엄길윤
작품등록일 : 2017.11.8

뱀의 능력을 가진 남자가 성범죄자를 처단한다.

 
딸이라서, 딸 같아서
작성일 : 17-11-30 01:06     조회 : 265     추천 : 0     분량 : 8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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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타는 여자를 본 후유증으로 한동안 집 밖을 나오지 못했다. 잠시였다고 해도 실제 존재한다는 걸 느끼는 건 다른 문제였다. 큰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 후로는 한 번도 여자의 존재를 느껴보지 못했다. 만약 가까이에 있다면 틀림없이 촉이 올 터였다. 그렇지 않다는 건 멀리 떨어졌거나, 적어도 주위에 없다는 이야기였다. 다행이었다. 아직 시간은 있다. 그 사이에 여자를 물리칠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다. 그동안 성범죄자들을 때려잡고, 밤에 돌아다니느라 통 애들 얼굴을 못 봤다. 오죽하면 친구들끼리 모인 단톡방에서 저놈 밤일 뛰러 다닌다는 소문이 돌까. 계속 얼굴을 비치지 않으면 사이가 멀어질 게 틀림없었다.

 

 인간관계란 게 그렇다. 서로 노력하지 않으면 멀어지기 십상이다. 일방적으로 한쪽만 안달 난 관계는 정상적이지 않은 거다. 얼마 전에 두들겨 팼던 스토커 새끼처럼 말이지.

 

 나중에 그 사건에 관한 뉴스를 찾아봤다. 기사 내용을 보니 여자를 위협하고, 위해를 가하려고 한 죄가 충분히 인정되나, 여자가 크게 다치지 않은 점. 실제로 범행이 벌어지지 않았고, 남자 측에서 심신 미약이라고 주장하는 게 받아들여져 벌금 1000만 원이 선고됐다.

 

 고작 1000만 원이라니. 평생 감옥에서 썩어도 시원치 않을 마당에. 내가 없었으면 여자는 살해당했다. 그 자존심도 없는 븅신 새끼는 질질 짜면서 자살했을 테고. 내가 아니라 여자가 나쁜 거야. 이 지랄 떨면서 말이다.

 

 나에 대한 이야기도 기사 막바지에 있었다. 일명 스네이크맨이라 불리는 남자가 실탄 두 발을 맞았다는 것. 스토킹 당하던 여자를 도와준 점은 인정되나, 대한민국 사법제도 위에 서려는 점은 심히 우려된다나.

 

 맨날 인정. 인정. 씨발. 말 나온 김에 범죄자들한테 그놈의 인정 좀 베풀지 마라. 지금이 조선 시대냐? 더불어 살고, 품앗이하는 그런 농경 사회야? 아니잖아. 시대가 바뀌면 법도 바뀌어야지. 옛날에야 일손이 모자라서 좀 봐줬다고 치자. 지금은 그런 새끼 어디에다가 써먹어? 사회를 좀먹는 버러지 같은 놈인데. 오히려 그런 놈들 때문에 사회 질서와 치안을 유지하는 비용이 더 들겠다.

 

 끝으로 경찰들이 전국의 모든 병원을 상대로 총상을 입은 환자를 찾고 있다는 소식도 알렸다. 흘린 피의 양으로 보아 이미 사망했을 가능성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처음 목격된 곳을 중심으로 수색하고 있다고.

 

 그래. 죽었다고 생각해라. 그게 윗대가리들한테는 속 편하겠지. 어떻게 가진 기득권인데. 그치? 이런 사법 체계가 만들어지는데 다 너희들이 일정 부분 기여한 거잖아. 국가란 국민입니다. 이 말이 아직도 개소리로 들릴 텐데 뭘. 상황이야 어찌 됐든 자신들이 가진 기득권이 위협받는 꼴이니 내 존재가 불편했을 거다. 그래서 죽이려고 들었던 거고.

 

 어쨌든, 밤늦게까지 애들과 술 마시고 지하철 막차를 탔다. 아무리 마셔도 술이 안 취하니 술자리에서의 일을 맨정신으로 지켜보게 됐다.

 

 새끼들이 처음에는 부당한 사회 시스템이나 정치에 관한 얘기를 하더니만, 좀 취하니까 바로 여자 얘기로 넘어간다. 섹무새 새끼들. 결국은 섹스가 제일 중요한 거냐? 하긴, 20대 중반이면 아직 한창일 나이지. 미래에 대한 걱정도 추억에 대한 향수도 아직은 먼 이야기니까.

 

 1차는 삼겹살에 소주를 걸치고, 2차는 입가심으로 호프집을 갔다. 서빙을 하는 아르바이트생이 20대 여자였는데 예뻤다. 술까지 들어간 터라 평소보다 더 예쁘게 보였겠지. 다들 그 아르바이트생에 대해 이야기를 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중 한 놈은 번호 따겠다고 큰소리치더니만. 아르바이트생의 핸드폰 없다는 철벽 방어에 급 시무룩.

 

 그래, 남자로서 충분히 꼴릴 수 있다. 전화번호를 물어보는 건 범죄가 아니니까 괜찮다. 거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면 그땐 문제가 되는 거다. 그냥 단순하게 생각하면 된다. 아르바이트생의 기분이 개 더럽더라도 그게 성적으로 수치심을 느끼는 거냐 아니냐가 문제의 핵심이라는 거다. 막말로 빻아진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은 나쁠 수 있거든. 번호를 물어보는 게 성적 수치심을 유발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나는 뱀의 능력이 생긴 이후로 욕구가 싹 사라졌다. 그렇다고 고자가 된 건 아니고. 성범죄자들을 때려서 어두운 욕망을 해결하고 나면 자연스레 성에 대한 욕구도 없어졌다. 그러니까 반쯤 고자라고 해두지 뭐.

 

 지하철 막차라서 그런지 승객 중 반은 얼큰하게 취한 사람들이었다. 운 좋게 좌석에 앉아 꾸벅꾸벅 조는 사람들에서부터, 손잡이를 잡고 축 늘어진 사람. 아예 열차 바닥에 앉아서 핸드폰을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조는 여자 옆에 앉아 같이 조는 남자도 있다.

 

 내 앞에 앉은 20대 초반의 여자가 그랬다. 고개를 앞으로 숙인 채 졸았다. 열차가 흔들릴 때마다 몸이 앞뒤로 들썩였다. 이미 술에 만취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 상태로 집에 제대로 갈 수 있으려나?

 

 여자 옆에 앉아 같이 조는 남자는 눈을 감고 머리를 여자 쪽으로 기댔다. 여자와 달리 남자의 몸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냥 몸을 꼿꼿이 세운 채 눈을 감고 있을 뿐이었다. 머리가 부자연스럽게 여자 쪽으로 기울었다. 하는 걸 보면 분명 술에 취해서 자는 건데. 남자의 행동이 수상쩍었다. 마치 자는 연기를 하는 것 같았다. 나이는 40대 후반으로 보이는데. 뭐 하는 거지?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척하며 놈을 지켜봤다. 남자가 슬그머니 눈을 떴다. 그러고는 열차 내의 전광판을 보더니 호들갑을 떨며 옆의 여자를 흔들었다.

 

 “수아야! 우리 딸, 왜 이렇게 취했어? 이제 내려야지. 집에 다 왔어.”

 

 행동이 너무 자연스러웠다. 진짜 부녀지간이었나. 다른 승객도 특별히 수상한 점은 느끼지 못했는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긴. 부녀지간이니까 저리 붙어 있던 거겠지. 어깨를 어루만지고, 이마를 쓰다듬어 열을 재는 게 딱 아버지가 딸을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나잇대도 딱 맞다. 20대 초반의 여자와 40대 후반의 아버지. 아무래도 스네이크맨 활동을 하느라 내가 너무 예민해져 있었나 보다.

 

 딸은 아버지가 흔들어 깨우는데도 정신을 못 차렸다. 고개를 뒤로 젖혔다가 다시 앞으로 고개를 숙였다. 이크! 아버지가 앞으로 넘어지려는 딸의 허리를 잡았다. 하마터면 딸이 열차 바닥을 구를 뻔했다.

 

 “그러니까 아빠가 술 좀 작작 마시라고 했잖아. 안 되겠다. 좀 업혀야지. 엄마도 마중 나오기로 했으니까 일단은 내리자.”

 

 아빠가 혀를 차며 앉은 딸 앞에 섰다. 양 겨드랑이에 손을 끼우고 일으켜 세우는데 아버지의 아랫도리 중심부에 상당한 열이 몰린 게 보였다. 어? 이 새끼 봐라? 뱀의 능력 때문에 안 봐도 될 게 보이는 경우가 있었다. 지금이 딱 그 순간이다. 한마디로 거기가 꼴렸단 거다.

 

 우리 딸? 이 새끼가 미쳤나? 너는 딸이 앞에 있는데도 꼴리냐? 딱 걸렸다. 이 개새끼야. 아버지가 아닌 게 확실했다. 보나 마나 지하철에서 오늘 처음 본 걸 테고. 인사불성이 된 여자를 어떻게 해보려고 연기를 한 거다.

 

 남자는 여자를 거의 질질 끌다시피 등에 업고 열차 문 앞에 섰다. 놈의 거기는 아까보다 더 열이 몰린 상태였다.

 

 생각해 보니 끔찍했다. 평소에 이런 일이 얼마나 자주 일어났을까? 지금은 내가 뱀의 능력이 있으니 알아챌 수 있었던 거지. 아니면 뭣도 모르고, 놈과 여자를 그냥 보낼 뻔했다. 다른 사람들도 그 점에 대해선 마찬가지였다. 누가 아빠 연기를 한다고 상상이나 했을까?

 

 당장 불러 세우려다가 멈췄다. 이 자리에서 놈을 혼내줄 수는 없다. 일단 복면을 쓰지 않았고, 보는 눈도 많다. 아무래도 오늘 집에 일찍 들어가기는 틀린 모양이었다.

 

 이번에 정차할 역은 화정역이었다. 열차가 멈추고 문이 열리자마자 놈이 여자를 업고 밖으로 나갔다. 따라서 나왔다. 일단 주위에 사람이 없어야 한다.

 

 등에 업힌 여자가 웅얼거리며 몸부림을 쳤다. 본능적으로 뭔가 위험을 감지한 거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술이 너무 취한 상태였다.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자꾸 헛소리했다. 더구나 남자는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 듯 아주 능숙하게 연기를 했다.

 

 “딸. 조금만 참아. 집에 다 와가니까. 알았지? 짜증 좀 그만 내고.”

 

 같이 내린 사람들 앞에서 여자의 등을 두들기며 달랬다. 뒤에서 보고 있자니 어이가 없었다. 등을 어루만지는 척하더니 슬며시 엉덩이를 만졌기 때문이었다. 오냐. 좋지? 이따는 별로 안 좋을 거야. 이 상습범 새끼야.

 

 놈이 화정역 2번 출구로 향했다. 내 이럴 줄 알았지. 화정역은 2번 출구 쪽으로 나가야 모텔이 많았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 복면과 장갑을 확인했다. 어딜 나가든 늘 가지고 다니는 거였다. 이제껏 겪은 바로는 성범죄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상황이 발생하고 나서 복면과 장갑을 찾는다면 이미 늦은 거였다. 그렇기 때문에 꼭 가지고 다녀야 한다.

 

 놈이 2번 출구로 나와서 세이브존 방향으로 여자를 업고 걸었다. 놈과 좀 떨어진 채 2번 출구 계단 밑에서 재빨리 복면과 장갑을 꼈다. 그리고 바로 튀어 올라왔다. 이제는 사람들이 보든 말든 상관없었다.

 

 여자를 등에 업은 채 다리를 슬쩍 쓰다듬는 남자의 뒤를 쫓았다. 아직 12시는 넘지 않은 시간이라 지나다니는 행인들이 많았다. 일행끼리 2차나 3차를 가기 위해 거리를 헤매거나, 혹은 쉴 곳을 찾는 연인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여자를 업고 가는 남자나 뒤를 쫓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놈이 사거리를 지나 바로 왼쪽으로 보이는 모텔로 향했다. 어디 한 번 두고 보자. 놈과 일정한 거리를 둔 채 따랐다. 여자가 자꾸 등에서 흘러내리자 자세를 고쳐 잡은 남자는 주위도 살피지 않고, 바로 모텔 쪽으로 걸어갔다. 놈이 휘청거리며 입구 안으로 들어섰다. 이건 빼박이다. 바로 달려가 놈을 불러 세웠다.

 

 “잠깐만요. 다 큰 처자 끌고 어디 가요?”

 

 놈이 여자를 업은 상태에서 낑낑대며 뒤를 돌아봤다. 복면을 쓴 나를 보고 놀라는가 싶더니 이내 차분히 말했다.

 

 “아, 제 딸입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오늘 회식 있다고 무리 좀 했나 봐요. 보다시피 저도 야근을 하느라 지금 끝났지 뭡니까. 안 그래도 힘든데, 딸 때문에 고생이네요.”

 

 놈은 여자의 등을 두드리며 혀를 찼다. 딸을 걱정하는 아빠의 모습이었다.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왔다. 처음부터 다 지켜봤는데 어디서 개짓거리야?

 

 복면을 보고도 저리 침착히 대응한다는 건 상당한 악질임을 의미했다. 그것도 모텔 입구에서 말이다. 거짓말이 일상생활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동안 대체 구라를 얼마나 많이 쳤길래. 더구나 놈의 거시기는 상당히 열 받은 상태였다. 거기는 거짓말 안 하거든. 일단 저 더러운 흉물부터 치워 버리고.

 

 놈에게 가까이 걸어가자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꼈는지 슬며시 모텔 입구 앞에다 여자를 내려놓았다.

 

 “좀 도와주시겠어요? 아내가 저 앞에 헤어샵을 운영하거든요. 근처에 모텔이 많아서 늘 민망하더라고요. 헤어샵 위층에 사무실 겸 방으로 쓰이는 가정집이 있어요. 거기까지만 좀 도와주면···”

 

 퍽!

 

 “웁!”

 

 발로 놈의 거기를 까버렸다. 살살 찼지만, 알 하나쯤은 터졌을 거다. 놈이 아랫도리를 부여잡고 바닥에 쓰러졌다. 눈물을 흘리며 땅바닥을 기었다. 상당히 아픈 모양이었다. 그러게 누가 이런 짓거리를 하래?

 

 “왜 그래요? 왜 다짜고짜 때리는 건데요?”

 

 놈이 낑낑대면서도 기어코 고개를 들고 말했다. 이놈 보소?

 

 “몰라서 묻냐? 그 여자. 모텔 데리고 가서 뭐 하려고 그랬는데?”

 

 “이 아이는 내 딸이에요! 모텔이라뇨?”

 

 모텔 앞에서 우기는 깡 하나는 대단했다. 그래. 네가 어디까지 거짓말을 하는지 함 보자.

 

 “딸 핸드폰 번호가 뭔데? 지금 전화해봐. 딸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겠지?”

 

 “지금 저한테 핸드폰이 없어요. 하필 회사에 놓고 오는 바람에. 다시 갈 수도 없잖아요? 정 못 믿겠으면 딸한테 직접 전화해 보세요. 010-2342-4851이니까.”

 

 아주 그럴듯했다. 어차피 내 핸드폰으로는 전화를 못 건다. 추적당할 염려가 있으니까. 내가 스네이크맨이란 걸 파악하고 잔대가리를 엄청 굴리는 거다. 그럼 뭐하나? 딸을 바라보는 놈의 거시기를 살폈다. 네 놈의 아랫도리는 다른 말을 하는 걸.

 

 놈의 거시기를 찼다. 남은 한 알도 마저 깨졌을 거다.

 

 “으아아악”

 

 놈이 땅바닥을 뒹굴며 비명을 질렀다. 상관없었다. 경찰이 오기 전에 일을 끝낼 거다. 모텔 계산대에서 사장과 직원이 뛰어나왔다. 입구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고도 워낙 분위기가 험악해 말리지 못했다.

 

 “난 인간 거짓말 탐지기거든. 네가 구라를 치는지 안 치는지 다 보여.”

 

 놈이 한참을 뒹굴뒹굴하다가 눈물을 쏟으며 일어났다. 날 노려보며 끝까지 우겼다.

 

 “진짜 내 딸 맞다고요! 깨워서 확인시켜 줘요?”

 

 전형적인 거짓말쟁이의 패턴이었다. 확인하기 어려운 정보를 제시함으로써 그걸 자신이 결백하다는 증거로 삼았다. 어차피 여자를 깨운다 해도 일어나지 못할 확률이 높았으니까. 놈한테도 밑져야 본전이었다.

 

 “요 앞 헤어샵 까지만 같이 가자고요. 아내를 깨워서 확인시키면 될 거 아니에요?”

 

 분명히 여기를 벗어나려는 의도였다. 눈치를 보니 슬슬 경찰도 올 것 같고. 똥줄 타지? 일단 여기만 아니라면 된다. 그럼 딸이 아닌 게 확인되어도, 도와줬다고 우김으로써 법적 처벌을 피할 수 있다. 놈은 지금 그걸 노리는 거였다.

 

 근데 어쩌냐? 그러거나 말거나 나한테는 아무 상관 없는데. 모텔 입구에서 걸린 것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이걸 보면 안다. 열이 잔뜩 몰린 놈의 아랫도리를 보면 말이지.

 

 빡! 다시 한번 놈의 거시기를 찼다. 이번에는 불알에 이어 막대가 똑 부러졌을 거다. 놈이 엉엉 울며 땅바닥을 뒹굴었다.

 

 “내 딸 맞는데 왜 그래요? 그럼 아니라는 증거를 대요! 당신은 뭔데요? 복면이나 쓰고. 당신이야말로 제일 수상하다고, 알아?”

 

 거짓말이 통하지 않자, 이번에는 내 복면을 물고 늘어졌다. 본질을 흐리는 거였다. 중요한 건 놈이 여자를 모텔 입구까지 업고 왔다는 사실이었다. 이거 하나면 모든 게 끝이었다.

 

 “응. 안 통해.”

 

 바닥에서 허우적대는 놈의 거시기를 다시 세차게 걷어찼다. 놈이 앞으로 엎드린 채 온몸을 배배 꼬았다. 공포에 가득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당황한 모습이었다.

 

 하긴, 놈에게는 처음 겪는 상황일 거다. 자기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다짜고짜 사람을 패다니. 의심을 가득 한 사람도 자기 말에 놀아난 게 한두 번이 아닐 테니까. 그들도 자세히 뜯어보면 온통 확인되지 않는 말 뿐에다가, 그마저도 나중에는 교묘히 사실관계가 뒤바뀌었다는 걸 알게 되겠지만. 그걸 확인한 후에는 이미 늦었다. 이 새끼는 진작 그 상황을 빠져나갔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난 아니다. 그렇게 복잡하게 따질 것도 없다. 그냥 단순히 생각하면 된다. 딸을 보고 꼴리는 게 말이 돼? 안 되잖아.

 

 내가 아무런 동요도 보이지 않자 놈이 주위를 서성이는 사장과 직원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렸다.

 

 “살려주세요! 저 사람 강도예요! 날 죽이려 한다고요!”

 

 이번에는 사람이 가진 인정과 감정에의 호소였다. 아유, 새끼. 별짓을 다 하네. 어쩌면 지금 상황에서는 제일 효과적인 방법일지도. 그래도 결과는 딱히 달라지지 않겠지만.

 

 사장이 놈의 울부짖음을 듣고 고민했다. 딱 봐도 여자 끌고 오려다 뒤지게 처맞는 거거든. 끼어들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헷갈릴 거다. 하지만, 놈이 하도 바닥을 기며 애원하자, 직원이 불쌍했는지 경찰에 전화했다. 갖고 노는 건 이쯤 해두고.

 

 땅바닥을 긁으며 허우적대는 놈 앞으로 걸어갔다. 한 손으로 목을 쥐고 들어 올렸다. 나머지 손으로 뒷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놈의 얼굴을 동영상으로 촬영했다.

 

 “하나만 묻자. 왜 그랬냐? 딸 같은 여자한테.”

 

 놈이 침을 질질 흘리며 내 손에 든 핸드폰 카메라를 바라봤다.

 

 “딸 같아서 그랬어요. 진짜 도와주려고 그랬다고요.”

 

 “너는 딸한테 그러니? 응?”

 

 놈의 얼굴을 그대로 땅에 꽂았다. 켁! 놈이 괴상한 소리를 내며 축 늘어졌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 들어주지. 진짜 딸 같았으면 지하철 내의 경찰에 신고해야지. 아니면 다른 승객의 도움을 받거나. 니 혼자 나서는 게 말이 되냐?

 

 바닥에 얼굴을 처박힌 놈이 눈깔을 하얗게 뒤집었다. 숨소리를 확인해 보니 조그맣게 숨을 쉬었다. 단순히 기절한 모양이었다. 죽은 건 아니니까 괜찮다. 동영상 촬영을 멈추고 주위를 살폈다.

 

 멀리서 경찰차 사이렌이 울렸다. 어디 보자. 여기 지리가 어떻더라? 놈을 버려두고 모텔 입구 밖으로 뛰었다. 여자는 이제 괜찮을 거다.

 

 쭉 뛰다가 오른쪽으로 꺾어 상가 건물 위를 올랐다. 몇 개의 건물을 더 뛰어넘은 후 멈춰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경찰들은 없었다. 이건 이쯤에서 해결된 것 같고. 아직 진행 중인 일이 남았다. 그건.

 

 

 

 한 남자가 손에 회칼을 든 채 야밤에 아파트 정문으로 들어왔다. 시간이 1시가 넘은 터라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맞은편 건물 옥상에서 지켜보는 나 빼고는.

 

 놈은 살금살금 302동 현관으로 향했다. 도중에 자꾸 주변을 살피며 붕대 감은 손으로 회칼을 어루만졌다. 바로 스토커 새끼였다. 302동은 피해자가 사는 동이었고.

 

 사법부는 벌금 1000만 원 가지고 놈의 범행을 완벽히 막았다고 생각한 걸까? 어쩌면 그냥 아무 생각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냥 법과 절차에 따라 처벌한 거고, 그 뒤에 벌어질 일은 자신들과는 아무 상관 없는 일인 거다.

 

 난 달랐다. 놈이 분명히 끝내지 못한 일을 끝내러 다시 올 줄 알았다. 놈에게는 여자를 죽인다는 생각밖에 없었을 테니까. 사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두 손에다가 염산을 뿌린 거로는 부족했다.

 

 놈이 302동 현관 앞에 섰다. 지금이었다. 바로 5층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쿵! 야밤에는 소리가 더 빠르고 크게 전달되는 법이다. 요란한 소리에 놀란 스토커가 뒤를 돌아봤다. 뛰어오는 나를 보고는 소리쳤다.

 

 “너는···!”

 

 “닥쳐! 찌질이 새꺄!”

 

 달려가서 주먹으로 놈의 거시기를 때렸다.

 

 “우웁!”

 

 놈이 아랫도리를 부여잡고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회칼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바닥에 고꾸라진 놈의 양팔과 양다리를 손으로 붙잡아 으스러뜨렸다.

 

 “······!”

 

 놈이 소리도 못 지르고 입을 크게 벌렸다. 온몸을 꿈틀거리다가 끝내 정신을 잃었다. 이제 평생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할 거다. 뭐, 다시는 스토커 짓도 못 하겠지. 놈의 처참한 몰골을 동영상으로 촬영했다.

 

 저번 화정역 사건도 그렇고. 지금 스토커도 그렇고. 이제 확실히 알 거다. 스네이크맨이 살아 있다는 걸. 어디 한 번 잡아 보시지. 쉽지는 않을 거다. 아무리 총을 맞춰도 다시 살아 돌아올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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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뱀은 뱀을 잡아 먹는다(1) 2017 / 11 / 17 281 0 4882   
11 CCTV 조까! 2017 / 11 / 16 264 0 5295   
10 동생 개새끼 2017 / 11 / 15 273 0 6401   
9 페도 새끼는 다 죽어야 해 2017 / 11 / 14 278 0 4488   
8 번외- 몇 달 전 기억에서 쌩까버린 일화 2017 / 11 / 14 278 0 1242   
7 스네이크맨의 탄생 '더 비기닝' 2017 / 11 / 13 281 0 4823   
6 먹잇감은 사방에 널렸다 2017 / 11 / 12 277 0 5086   
5 여기가 강간의 왕국이야? 2017 / 11 / 10 257 0 3634   
4 스파이더맨? 아니, 스네이크맨! 2017 / 11 / 9 253 0 3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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