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국밥집에 앉아있는 해주다.
“혼자 왔어?”
김씨가 슬쩍 물어본다. 아마 설찬을 묻는 것..
“곧 도착 할 거 에요. 아저씨는 별일 없으시죠?”
“나야, 뭐 매일같이 똑같지. 그래도 지금은 일을 하니
맘은 편하지..”
김씨가 희죽 웃으며 주위를 청소한다.
“박씨 아저씨는요?”
“배달..”
“배달도 해요?”
“아니, 사장님은 괜찮다는 데 구지 근처는 배달 할 수
있다고 해서.. 그리고 찾는 사람들이 있더라구. 일부러
왔다가 못 먹고 가면 그렇다고 박씨가 가까운 근처는
배달을 가.. 바쁜 시간은 못해도 좀 한가한 시간은 홀에
나 혼자 있어도 되니까.”
“아.. 그래도 힘드실 텐데.”
“괜찮어. 그 사람은 건강 체질이야. 걱정 할 필요가 없당께.”
때마침 박씨가 들어와 해주를 향해 싱긋 웃어 보인다.
그 뒤를 따라 설찬이 무언가 뒤에 숨기고 들어와 어색하게
마주보고 앉는다.
해주가 기분 좋은 웃음을 보이며 설찬을 바라본다.
“꿀이 뚝뚝 떨어져. 꿀이..”
김씨가 멀찍이 앉아 해주를 놀리듯 말한다.
“한참 좋을 때지...보기 좋구먼.”
박씨가 빈 그릇들을 치우며 해주와 설찬을 바라본다.
“준영이 정말 고마워해. 당신 때문에 준희가 살았다고..
얼마나 놀랬다구. 나한테는 말도 안하고 자기들끼리만
나서고..”
“그 녀석이 그래도 생각이 텄어. 사사건건 다 당신한테
말하면 남자가 너무 쪼잔하 잖아. 그래도 동생이라고 머리
숙이고 들어온 거 보니까 자식이 남자긴 남자다 싶어. 동생은
괜찮은 거야?”
“많이 놀랐는데 지금은 괜찮대. 부모님 계시는 곳으로 갈 것 같아.
당분간은 무서워서 혼자서는 있기 힘들어하니까..”
설찬이 살며시 해주 앞에 꽃다발을 내어 놓는다.
종이에 가지들만 묶여있는 작은 꽃다발은 진한 향기를 뿜으며
해주 입가에 미소를 남긴다.
이름 모를 들꽃들이지만 색색이 어울려진 꽃송이들은 다른
무엇들보다 더욱 아름다워 보이며 창가 햇빛에 비쳐 반짝임을
보인다.
“와, 정말 예쁜데.”
넘쳐나는 감동에 말을 잇지 못하는 해주다.
남들이 보면 별거 아니라 생각하겠지만 해주에게는 세상
그 무슨 선물보다 더 근사한 것이다.
향기를 맡는 해주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맘에 들어?”
“그럼 당연하지.”
“예뻐서.. 꼭 널 닮은 것 같아.”
설찬이 멋쩍어하며 미소를 짓고 해주가 그에 대답이라도
하듯 환하게 웃는다.
“우리, 당신 집에 갈까? 먼데 갈 필요 없겠어.”
“거기는..”
“유란이 며칠 비울거래. 직접 와서 말하던데.. 난 다른 곳 보다
당신 집이 편하고 좋을 것 같아. 아무도 없고 온전히 우리 둘만
있을 수 있잖아.”
해주가 쑥스러운 듯 얼굴이 빨개진다.
설찬이 부드럽게 해주의 얼굴을 매만진다.
“또 빨개졌어.”
김씨와 박씨가 서로 붙어 앉아 해주와 설찬을 보며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쳐다본다.
할멈이 주방에서 나와 그들을 밀치며 구석 안으로 데리고
들어간다.
“뭘 그리 빤히 보고 있어? 짓궂게 시리.”
“해주 학생 얼굴이 활짝 피네요. 사랑을 하면 예뻐진다더니.”
“아이고, 보고만 있어도 심장이 오그라들어.”
김씨가 장난스레 몸을 꼬며 피식 웃는다.
아침부터 또 해주엄마의 잔소리가 시작된다.
한동안 바빠서 딸 얼굴도 제대로 못 봤는데 이제야 시간 좀 난다
싶었더니 불쑥 여행을 떠난다고 말하는 것이다.
아무리 다 큰 자식이지만 뭐든지 지 멋 대로다.
도무지 부모랑 같이 있으려 하지 않으니 갈수록 섭섭해지는
마음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아 해주엄마는 짜증만 늘어간다.
하나밖에 없는 딸년이 전보다 더하다.
하나밖에 없는 남편은 그저 오냐오냐 해주 편만 든다.
툴툴대며 밥상을 차리는 엄마를 보며 해주가 미안한 듯 엄마를
끌어안는다.
“이번만, 이번만 다녀와서 계속 쭉 엄마랑 있을게. 그동안 너무
바빴더니 좀 쉬고 싶어. 바람도 쐬고 정리 좀 할 것도 있구.”
“바람났니? 너 남자친구 있어? 아님 차인거야?”
해주엄마가 이때다 싶은지 호기심 발동이 시작됐다.
“아니, 엄마는 꼭 내가 차인 것 마냥 말해. 누가 들으면 오해 생겨.”
말없이 빤히 쳐다보는 해주엄마다.
“나중에.. 나중에 소개 시켜줄게.”
“어머? 진짜? 남자친구 있는 거야? 진작 말하지. 난 또..
뭐하는 남잔데? 기자? 아님 전문직? 너 그래서 준영이
싫다 한거야?”
“엄마, 좀... 나중에, 나중에 다 말해줄게..”
“그래, 그래라. 엄마는 괜히 걱정 했잖아.. 울 딸이 시련이라도
당했나 싶어서.. 아니면 됐지. 근데 누굴까 궁금은하다.”
해주가 그만하라는 듯 입을 삐쭉 내밀고 주방을 벗어난다.
사무실에서 가방을 둘러메고 나가려는 해주를 상사가
불러 앉힌다.
커피를 가져다주며 몇 장의 서류를 건넨다.
“며칠 쉬는 동안 한번 읽어 봐봐.”
“이제 뭔데요?”
해주가 서류를 살피며 상사를 쳐다본다.
“나도 들은 얘기야. 누구라곤 말 못하겠어. 근데 내가
취재하기엔 좀 불편한 감이있어서.. 괜찮으면 해주씨가
해보라고.”
“정말이라면 사건이 꽤 큰데요. 불법 장기매매가 남몰래
이뤄진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병원에서 직접 나선다는 건
증거가 있지 않는 한 잡기 힘들잖아요.”
상사가 잠시 멈칫하다 난가만 표정을 짓는다.
“확실하게 집고 넘어갈 문제에요. 저도 뭔가 확인을 해야 밀고
들어가죠? 저한테 비밀이 있으면 저도 도와드리지 못해요..”
해주가 슬쩍 상상 눈치를 살피며 커피를 마신다.
“그게, 내 동생이야. 그 병원 간호사였는데 얼마 전에 그만뒀어.
도저히 보고 있을 수만은 없어서 뭐라고 했나본데 바로
잘렸다네. 복수심이 아니라 사람들이 알아야 할 건 알아야
한다고 나한테 이 서류 주고 몸을 숨겼어.. 내가 나선다면
뻔하잖아.. 내 동생 짓이라는 걸 알면 그들이 가만있겠어?
당연히 해주씨도 위험해지겠지만 그냥 묵혀두기도 그렇고..
쉬는 동안 읽어 봐. 내키지 않으면 안 해도 되니까.”
해주가 커피를 마시며 생각에 잠기다 서류를 들고 일어난다.
“네. 확인 해볼게요. 만약 의심쩍은 게 있다면 제가 알아서
할게요. 연락 드리겠습니다.”
“어, 고마워.”
해주가 인사를 하고 사무실을 나간다.
내내 상사의 표정이 편치 않아 보이더니 결론은 이 거다.
자신이 맡기에는 위험이 따르고 그냥 넘기자니 양심이 찔리고..
만만한 게 해주였다.
어차피 기자라는 게 숨겨진 것을 파헤치는 일이지만 가끔
해주도 두려울 때가 있다.
지금처럼 이렇게 큰일이라면 자신이 감당하기가 벅차기 때문에
한 번씩 그만둘까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건 이놈의 궁금증
때문에 자신도 알아야 속이 시원하기 때문에 뒤끝이 없어야
그 놈의 양심이라는 게 그나마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아서다.
근데 정말 그 큰 병원에서 보호자 없는 환자들의 장기를
이용한다면 이건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세상이 알아야 한다.
사무실을 나서는 해주의 마음이 편치만은 안다.
아니 길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