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파라다이스TV 김준입니다.”
“안녕하세요. 프리랜서 기자 주진실입니다.”
김준과 주진실은 파라다이스TV를 방송하는 반지하 단칸방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지난번 대선결과를 조작했을지도 모른다는 의혹을 제기했던 방송이 입소문을 타고 알려지면서 WSBC를 비롯한 여러 방송에서 그들의 방송내용을 인용하기도 했다. 그만큼 파라다이스TV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운 화젯거리 중 하나였다. 지금까지의 누적된 시청자수보다 현재 방송을 시청하고 있는 시청자수가 더 많다는 게 그 증거였다. 김준과 진실도 처음 겪어보는 상황에 당황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좀처럼 긴장하거나 떠는 일이 없는 그들도 심장이 두근대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 같았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찾아주신 건 정말 처음이네요.”
김준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네, 저희 서버가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그런 얘기는 하지 않는 걸로 하지요. 불길하니까.”
“제가 좀 불행을 몰고 다니는 경향이 있기는 하죠.”
“알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네요. 하하하.”
가벼운 농담으로 긴장을 덜어낸 둘은 눈빛을 교환했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할 차례였다.
“오늘도 대박입니다.”
“네, 역시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네요.”
“어느 면에서는 그러네요.”
“정말 떡밥도 가끔 줘야 이게 귀한 줄 아는데, 이 정부는 떡밥을 그냥 봉지 째 던져줘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우리한테는 좋은 거 아닌가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하하하. 어쨌든 중요한 건 오늘도 대박사건을 쳤다는 겁니다. 이 정부가.”
“뭐죠?”
“여러분들도 다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대통령이 일본총리와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했습니다. 이건 정말, 와!”
“네, 정말 할 말이 없습니다. 여러분.”
김준과 진실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깊은 탄식을 한차례 더 내뱉었다.
“저희가 왜 이렇게 탄식을 하냐면 여러분, 이게 거의 을사늑약 수준입니다.”
“네, 내용을 자세히 보시면 정말 말이 안 나옵니다. 이건 뭐 그냥 나라를 통째로 일본에게 바치는 거나 다름이 없거든요.”
“물론 정부에서는 더욱 견고한 동맹을 맺는 거라고 주장하죠. 그렇게 주장하는데 사실은 그게 아닙니다. 이건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김준이 화면에 준비해 놓은 판넬을 비추었다.
“이 정도 했으면 알아서 좀 들어주세요.”
김준이 진실에 판넬을 건네면서 말했다. 주제 때문인지 평소와 다르게 신경이 곤두서 있는 것 같았다.
“자, 여기 보시면 가장 먼저, 한일연합사령부를 설치할 수 하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지휘권은 일본이 갖게 되어 있습니다. 이게 야, 진짜 할 말이 없습니다.”
김준은 다시 한 번 한숨을 길게 내뱉었다.
“그리고 또 보십시오. 사전에 알리기만 하면 언제든지, 그리고 어디서나 군사훈련을 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이건 말 그대로 영토나 영해, 그리고 영공을 침범하는 군사행동을 허용해주는 겁니다.”
허공을 쳐다보는 김준을 대신해 진실이 입을 열었다.
“이게 진짜 심각한 거죠.”
김준이 진실의 말에 맞장구를 쳐 주었다.
“그렇죠. 막말로 일본 자위대가 우리나라에 갑자기 밀고 들어와도 우리가 제지할 방법이 하나도 없는 겁니다. 그냥 눈 뜨고 당하는 거예요. 이게.”
말을 하던 진실도 갑자기 울컥한 기분이 들었다.
“거기다가 한일연합사령부를 또 일본에서 발동하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일본 자위대가 갑자기 들어와서 한일연합사령부를 만들자! 이러면 그냥 만드는 거예요. 그리고 일본이 지휘권을 갖고 우리 군대를 자기들 마음대로 움직이는 겁니다. 이게 참.”
김준이 말을 마저 잇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코끝을 찡그렸다. 진실도 뜨거워지는 눈시울을 식히려 눈을 꼭 감았다.
“이건 진짜 이대로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김준이 카메라를 노려보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진실도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김준은 평소 자신의 특기가 허허실실이라며 자랑하곤 했었다.
“이건 반드시 무효로 만들어야 합니다.”
김준과 진실은 채팅창을 확인했다. 아까부터 누군가가 같은 말로 도배를 하는 것 같았다.
“저희도 광화문에 나가겠습니다.”
채팅창을 확인한 김준과 진실은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시청자들에게 약속을 했다. 한 사람이 도배하는 게 아니었다. 저마다 다른 아이디의 사람들이 다시 광화문으로 모이자는 외침을 채팅창에 새겨 넣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