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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열아홉, 당신과 나는
작가 : 홍블리
작품등록일 : 2017.11.28

난 선생이고, 넌 학생이야!
어리바리 국어교사 공수은과 그녀를 손바닥 위에서 가지고 노는 능구렁이 남고생 강신.
속을 알 수 없는 영어교사 현수민과 무작정 직진하고 보는 금사빠 여고생 강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들과 약한 어른들의 매우 가벼운 이야기

 
01. 대환장파티
작성일 : 17-11-29 00:24     조회 : 235     추천 : 0     분량 : 9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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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 대환장파티

 

 

 수민은 장을 보며 마치 자신이 새댁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혼자 살 땐 대충 시켜 먹거나 라면만 사다 먹었는데,

 수은은 그런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 뻔했다.

 시식을 한 번 할 때마다

 

 “ 총각, 신혼인가? 각시는 어쩌고 혼자 와~ ”

 

 라는 아주머니들의 질문 공세에 얼굴이 빨개지기 일쑤였다.

 

 수민은 집에 어서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포장을 하고 집으로 가려던 수민은 자신들이 입주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공수은 성격에 그런 걸 챙겼을 리도 없고, 나온 김에 가서 해야지.

 

 -

 

 그 시각, 민은 부동산 아저씨에게 재롱을 떨고 있었다.

 

 “ 요, 뻥튀기튀기, yeah, 맛있지있지, 튀기는 소리는 뻥. 아저씨 인심은 쩔. 처먹은 내 살은 쪄. oh, 뒤룩뒤룩, 뒤룩뒤룩, turn up, 엉덩이 씰룩씰룩, 씰룩씰룩,

 yo 난쟁아 잘 들어봐, This is 뻥튀기튀기, 튀기튀기, rap! yeah! "

 

 연신 박수를 치며 아빠 미소를 짓던 부동산 중개업자는 시선을 문 쪽으로 돌리더니 급히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손님 왔나 보네- 하고 무심코 시선을 돌린 민의 시야에 수민이 맺혔다.

 민은 돌처럼 굳었다.

 

 그녀에 눈에 비친 이 남자는, 지나치게 환상적이었다.

 그의 뒤에서 빛이 쏟아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그 남자가 민과 시선을 마주한 찰나의 시간에도 민의 전신에 소름이 돋아났다.

 그 남자는 금세 시선을 돌려 부동산 중개업자와 무슨 말을 하는 것 같았지만, 민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민에게는 그 남자가 보이는 미소, 손짓, 몸짓 하나하나가 나비의 움직임처럼 황홀하게 보일 뿐이었다.

 민은 그제서야 집을 나설 때 남자 아이가 했던 말을 절실히 깨달았다.

 

 “ 그러게 신아... 나 정말... 금사빠인가봐... ”

 

 -

 

 수민은 매우 당황했다. 마트에선 신혼이냐는 소리를 듣고, 부동산에선 웬 여학생이 보는 사람이 괴로운 흉측한 랩과 망측한 춤을 추질 않나, 집에 돌아가려니까 그를 붙잡고 하는 말이,

 

 “ 번호 좀요! ”

 

 ...?... 왜지? 혹시 부동산 중개업자 딸인가? 입주 신고할 때 번호가 누락됐나?

 아니지, 아무리 봐도 이렇게 예쁘장한 여학생이 저 아저씨의 딸일 리가 없잖아.

 

 "번호? 왜요? “” 그게요... 그... 아... 음... 첫 눈에 반했어요! “

 

 수민은 눈에 띄게 비틀했다. 하도 뜸을 들이길래 덩달아 긴장하며 기다렸더니 하는 말이 첫 눈에 반했다- 라니.

 

 “ ...응? ”

 “ 그... 오빠 들어오실 때 뒤에 막 빛이 생기고... ”

 “ 그거 유리창에 햇빛 비친 걸 텐데. ”

 “ 막 환상적이고... ”

 “ 환상인 게 아닐까요? ”

 “ 막 움직이는 거 하나하나가 나비 같고... ”

 

 수민은 한숨을 내쉬었다. 요즘 애들이란-. 저런 말이 그렇게 쉬운가?

 그 아이는 너무 숨김없이 말해서 오히려 진실 되어 보이지 않았다.

 빨개진 얼굴도 그저 홍조가 있는 아이구나 싶을 뿐이었다.

 수민은 어쨌거나 번호는 줄 수 없다며 딱 잘라 말하고는 제 갈 길을 갔다.

 그러나 코너를 몇 번 돌고 갈림길을 지나도 민이 자꾸 쫓아오자 도저히 무시할 수가 없었다.

 

 “ 언제까지 쫓아올 작정이에요? ”

 “ 네? ”

 “ 이런다고 번호를 주진 않을 거예요 ”

 “ 저 저희 집 가는 건데요. ”

 

 수민은 속으로 코웃음을 치며 응~ 아무렴 그러시겠지~ 라는 생각으로 민에게 먼저 가시라고 말했다.

 민은, 그럼 그러죠 뭐- 하고 앞장서 갔다.

 드디어 편하게 제 갈 길을 가려던 수민은 눈이 동그래졌다.

 다시 몇 번의 갈림길을 걸었는데도 소녀는 여전히 수민의 앞에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의 아파트였다.

 자신의 집 건물까지 들어온 수민이 물었다.

 

 " 여기가 우리 집인 건 어떻게 알았어요? “

 그제야 수민을 돌아본 민은 오히려 왜 아직도 거기 계시냐고 물었다.

 

 “ 네? ”

 “ 집에 안 가셨어요? ”

 “ 뻥튀기 씨가 나 따라온 거 아니에요? ”

 “ 분명히 제가 앞에서 걸었는데요... 아 그리고 뻥튀기 씨라니! ... 설마 다 봤어요? ”

 

 민의 말을 가볍게 무시한 수민은 설마, 설마 했다.

 

 “ 저기, ”

 “ 다 봤냐구요. 제 혼신을 다한 뻥튀기 랩. ”

 “ 집이 몇 호에요? "

 " 네? “

 

 그 남자가 대답을 하지 않자 민은 소심하게 202 호요... 하고 말했다.

 근데 그런 건 왜 물어보지? 우리 집에서 자고 가려고? 어떡하지? 오늘 큰엄마 큰아빠가 안 들어오시긴 하는데... 잡생각을 하며 히죽대던 민은 곧 자신의 뺨을 찰싹 때렸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강민. 저 철벽남이 그럴 리가 없잖아.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는 민을 말없이 바라보던 수민이 말했다.

 

 “ 저도 여기 살아요. ”

 

 민은 그 순간 풍악을 울릴 뻔 했다.

 같은 아파트, 같은 건물이라니. 운명인 게 분명해.

 

 “ 몇 호신데요? ”

 “ ...백... 백이호요. ”

 “ 아~ 백이호 사시는구나~ 그럼 저희 아랫집이시네요... 네?!! ”

 

 민은 눈을 감았다.

 할렐루야.

 바로 아랫집, 아랫집이라니.

 폐소공포증이 심한 민은 엘리베이터에서 기다리고 있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무엇보다 기뻤다.

 그녀의 머릿속엔 벌써부터 상상의 나래가 잔뜩 펼쳐져 있었다.

 바닥에 엎드려 아랫집을 향해 사랑을 속삭이는 그녀와 용케 그 소리를 듣고 대답하는 수민, 집에 도둑이 들어 어쩔 수 없이 수민의 집에서 보내는 하룻밤, 그와 함께 싹트는 사랑 등등... 또 잡생각을 펼치던 민은 자신의 뺨을 두 대 때렸다.

 

 “ 번호 좀요! ”

 “ 네? ”“ 원래 이웃집 간에는 번호 알려주는 거에요! ”

 “ ... 보통은 안 그러지 않나요? ”

 “ 우리 아파트는 원래 그래요! 이사 오실 때 설명 못 들으셨나 보네~ ”

 

 모르는 체 하며 능청을 떠는 민이 왠지 귀엽다고 느낀 수민은 그녀를 놀리고 싶어졌다.

 

 “ 302 호 분 번호 알아요? ”

 “네? 그건... 그건... ”

 

 민은 머뭇거리다가 또 금세 얼굴이 빨개졌다.

 

 아깐 마냥 발랑 까진 여자앤 줄 알았는데 이렇게 속이 훤히 보이는 학생이라니, 요즘도 이런 학생이 있구나.

 그 여학생이 다시 입을 열려는 찰나 집 문이 빼꼼히 열렸다.

 안에선 수은이가 나왔고, 눈이 마주친 이 학생은 눈이 엄청 커졌다.

 

 “ 응? 현수민, 벌써 손님을 데려왔어? ”

 

 수은이 뭔가 해명을 하려 했으나, 수민은 그 앞을 막아섰다.

 둘을 혼란스럽게 바라보던 민은 후다닥 2층으로 뛰어올랐다.

 그제서야 떠올랐다. 강신이 말한 아래층으로 이사 온 여자, 예쁘다던 그 여자.

 왜 그걸 까먹고 있었지? 유부남, 유부남이라니...!!

 

 -

 

 “ 왜 그런 거야? ”

 “ 뭘? ”

 “ 그 학생 엄청 놀란 것 같던데, 오해라도 하면 어떡해. ”

 “ 그럼 그러는 거고. ”

 “ 와 진짜 쓰레기. ”

 

 집에 들어오자마자 수은은 왜 그런 것이냐며 수민에게 따져 물었다.

 수민은 생각했다. 어쩔 수 없잖아- 피곤해질 것 같았는데.

 

 “ 그러는 넌 어디 가려고 나왔는데? ”

 “ 어? 그러게. 내가... 아 맞다, 클럽! ”

 

 잠시 골똘히 생각하던 수은은 클럽이라는 말을 입에 담았다.

 클럽? 수민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 안 돼. ”

 “ 왜... ”

 “ 클럽이 대체 어떤 곳인지는 알고 가냐? ”

 “ 아니.. 수리가... 교사 되면 도덕적 책임감 때문에 못 간다고... 살면서 한 번 쯤은 가봐야 한다길래... ”

 “ 이런 젠장할 미수리, 넌 걔가 하는 말을 듣고 있냐? ”

 “ 아니.. 선생 되기 전 마지막이니까... 그리고 수리는 교사 선배니까 더 잘 알 거라고 믿었지... ”

 “ 절대 안 돼. ”

 “ 왜? ”

 “ 거기 남자가 얼마나 많은지는 알아? 걔들이 다 거기 죽치고 있는 이유는 알.. ”

 “ 내가 왜 네 허락을 받아야 되는데? ”

 

 수민은 머리를 망치로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뭐? 라는 대답조차 하지 못했다.

 수은은 나쁜 의도로 한 말이 아니었다, 싸우자고 한 말이 아니었다.

 정말이지, 왜 그가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는 건지 궁금했던 것이다.

 그걸 알기에 수민은 화조차 내지 못 했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왜 수은이 자신의 말만 들어야 하지?

 수민은 휙 돌아서서 말했다.

 

 “ 밤길 조심, 술 조심, 남자 조심. ”

 

 그제서야 수은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 응! 다녀올게!! ”

 

 말은 그렇게 했어도 수은 또한 예전부터 자신의 오빠처럼 굴어대는 수민의 허락을 받지 않으면 마음 한 구석이 켕겼던 것이다.

 수민의 허락을 받아낸 수은은 신나게 웃으며 집을 나섰다.

 

 -

 

 음악 소리가 너무 커서 마치 고막을 스피커 더미 사미에 묻어놓은 것 같았다.

 심장은 비트에 맞춰 쿵쿵댔다. 이런 소란스러움이 싫었다.

 

 “ 너...ㄴ...쁘....!! ”

 “ 뭐라고? ”

 “ 너 지ㄱ... ㄱ....이....다!! ”

 “ 뭐라고?!!! ”

 가장 싫은 것은, 이 불쾌한 소란 때문에 평범한 대화를 소리를 질러가며 해야 한다는 것이다.

 

 “ 너 지금 개이쁘다고!!!! ”

 

 원래도 예쁘장한 수은의 얼굴과 헐렁한 옷으로 늘 가리고 다니던 몸매가 수리의 손을 거쳐 선이 살아났다.

 그런 수은을 보고 수리는 연신 ‘ 예쁘다 ’를 외쳐댔고, 수은은 어쩔 줄 몰라 했다.

 이 정신 사나운 음악은 정말 싫었지만, 마지막 반항이라 생각하니 그 부분은 또 짜릿했다.

 

 “ 춤추러 나가자!!! ”

 “ 뭐? ”

 “ 춤추자고!!! ”

 “ 뭐라고?!! ”

 

 안 들려서 되물은 것이 아니었다. 그냥, 이런 시끄럽고 비효율적인 곳에서 굳이 춤까지 추는 수고를 해야 하나 싶었다.

 솔직히 춤추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춤엔 영 소질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수민의 경고도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앞 테이블에서 자신에게 눈을 떼지 않는 남자.

 허락도 없이 수은의 토마토를 ‘ 괜히 깎아온 ’ 토마토로 전락시킨, 바로 그 남자.

 그녀가 옷을 벗는 모습을 노출시키고, 동시에 지켜준 윗집 남자.

 그 남자가 너무 신경이 쓰였다.

 봤으면 아는 체를 하던가 쳐다보지를 말던가.

 안 그래도 약점을 여러 개 잡힌 신세에, 괜히 나가서 몸부림에 가까운 춤까지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수은의 마음을 알 리 없는 수리는 그녀의 손을 갑자기 잡아끌었다.

 한 번 반항할 틈도 없이 수은은 그 소란스러운 음악의 목표지, 그 요란한 사람들 틈이었다.

 수리는 그녀를 데려다 놓고는 금방 사람들 틈으로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수은은 처음 겪는 이런 상황을 이끌어주는 사람 없이 잘 적응할 만큼 융통성이 있지 않았다.

 계속 어버버거리다가 주변 사람들과 부딪히기 일쑤였다.

 그녀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지만 사람과 부딪히기 위해 이 곳에 오는 그 사람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했다.

 여기 사람들이 모두 이상하다고 느꼈다.

 이리저리 부딪히고 발 디딜 틈도 없는 이 곳이 그렇게 좋을까?

 수은은 그냥 집에서 수민과 이사 기념, 독립 기념, 취직 기념 파티나 할 걸 그랬다고 후회했다.

 축하할 게 이렇게 많은데, 괜히 이런 데 와서 민망하기만 하고.... 응?

 

 “ 혼자 왔어요? ”

 갑자기 손목을 붙잡힌 당혹스러움이 가시기도 전에 웬 느끼하게 생긴 남자가 그녀의 귀에 대고 큰 소리를 냈다.

 

 “ 아니요.. 저 친구랑, ”

 “ 아, 클럽 처음 오시나 봐요. ”

 

 수은은 손을 빼려 이리저리 비틀었으나, 그 느끼한 남자는 생긴 것만큼 끈적하게 수은의 손을 그러쥐었다.

 

 “ 아... 아 네... 근데 이것 좀 놓고... ”

 “ 내가 노는 것 좀 알려줄까요? ”

 “ 아, 아, 아니요! 어차피 전 끌려온 거고, 춤 같은 거 잘 추지도 못 하구요, 이제 막 자리로 들어가려던 참인데. ”

 “ 에이, 너무 시선을 끌게 예쁘셔서 들어올 때부터 봤는데.

 춤추러 방금 나왔잖아요. 춤은 내가 알려주면 되고, 기왕 끌려온 거 재밌게 놀면 좋잖아요, 응? “

 

 그 더러운 남자는 자꾸 수은의 손을 주물거렸고, 수은은 책에서나 보던 질척한 멘트들이 실제 상황에서 일어나자 자신이 3급 저질영화에 들어와 있는 것만 같았다.

 수은이 계속 고개를 도리질치기만 하자, 남자의 안색이 조금 변하더니 말했다.

 

 “ 그 쪽 친구 때문에 기회만 엿보다가 그 쪽 친구 가자마자 딴 놈이 채갈까봐 먹던 술도 내팽개치고 왔는데, ”

 “ 아... 저는... 친구랑 놀러 온 거라서요... ”

 “ 친구 필요해요? 저기 룸에 내 친구들 엄청 많은데, 갈까요? ”

 

 수은은 몸서리가 쳐졌다. 저런 빨간 등이 켜진 방에서 입을 벌리고 먹이를 기다리고 있을 남자들은 죄다 이 남자와 같은 부류일 것이 뻔했다.

 이런 곳에서 룸이라는 공간에 발을 들였다간 문이 닫히자마자 어떤 일이 생길지, 아무리 눈치 없고 세상 물정 모르는 그녀라도 알 것 같았다.

 

 “ 아니요, 남의 친구는 좀 부담스러워서요... ”“ 내 친구들 만나기 싫어요? 하긴 나도 그 자식들이 그 쪽한테 눈길 들이는 거 싫어요.

 그럼 나랑 둘이 룸으로 가요. “

 

 어느새 잡은 손에 힘을 준 남자는 더 이상 그녀의 의견을 묻지 않았다.

 수은은, 내가 미쳤어요?- 하고 소리치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다.

 어찌보면 여기도 공공장소고, 이틀 뒤부턴 이것보다 더 철없는 고딩들도 만날 텐데.

 

 “ 아니요, 전 싫어요. ”

 “ 왜요? ”

 “ 낯선 사람이랑 둘만 있는 거, 어색하고 싫어요. ”

 “ 왜? ”

 “ 왜냐니요, 그야 당연히... ”

 

 그 남자의 눈을 당당히 마주보려던 수은은 공포에 질려버렸다.

 더 이상 능글거리고 느끼한 표정으로 그녀를 보고 웃지 않았다.

 그의 얼굴엔 짐승, 괴물, 욕망, 그림자가 뒤섞여 있었다.

 수은은 말을 끝맺지 못하고 뒷걸음질 쳤다.

 남자는 한층 험악해진 얼굴로 다가왔다.

 

 “ 야, 왜냐고. 입이 막혔어? ”

 “ 오, 오지 마세요. ”

 “ 왜? ”

 “ 오지 말아요. ”

 “ 왜냐니까, 대답 안 해? ”

 

 그녀는 뒷걸음질 치다가 정신없이 춤을 추는 여자에게 부딪혔다.

 계속 뒷걸음질 치려다 그 여자에게 여러 번을 부딪혔다.

 그 여자는 신경 쓰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자리를 비켜주지도 않았다.

 잡고 있는 손은 더러울 만큼 뜨거웠고, 땀이 흥건해 축축했다.

 그녀는 육식동물 앞의 양처럼 겁에 질렸다.

 도망가고 싶었다. 그녀의 안전한 울타리, 수민에게로.

 아 제발, 현수민, 미수리, 나 좀 구해봐. 진짜 무서워서 그래.

 나 잡아먹힐 것 같아. 현수민, 현수민, 제발.

 

 그때였다.

 방치된 그녀의 오른손목에 누군가의 찬 손이 느껴졌다.

 그 손은 아무 억압도 없이 그저 수은의 손목을 꼭 잡기만 했지만 그럼에도 수은은 그 손목이 자신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 도망가자- ’

 그와 동시에 그 찬 손은 수은의 손목을 힘껏 당겼고, 수은 또한 최선을 다해 그 손에 잡혔다.

 짐승의 손은 땀이 차서 미끌거렸다. 덕분에 수은은 수월하게 도망칠 수 있었다.

 역겨운 뜨거움으로부터 따듯한 차가움으로.

 이렇게 쉽게 놓아질 손을 뭐가 두려워 잡고만 있었을까.

 그렇게 클럽을 나오는 동안 그녀는 단 1초도 이 사람이 더 나쁜 사람이면 어쩌지- 같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냥, 그냥 왠지 그랬다.

 

 -

 

 “ 그만 울어, 기껏 구해줬더니 왜 우냐, 내가 울린 것 같잖아. ”

 

 수은을 구한 찬 손은 윗집 남자였다.

 밀려드는 안도감에 도저히 눈물을 참을 수가, 다리를 지탱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손은 꽉 잡고 놓질 않으니, 윗집 남자는 결국 한 쪽 무릎을 바닥에 대고 앉아 우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농담이랍시고 말했다.

 

 "난 안전한 것 같아서 지금 설마 긴장 풀려서 우는 건가,

 와... 난 남자도 아니야? 너무하네. 내가 그 남자보다 더 위험한 데 데려가면 어쩌려고. ”

 

 그러자 수은은 고개를 들었다. 그 우는 와중에도 한 마디를 뱉었다.

 

 “ 안 그럴 거잖아요. ”

 

 그 말의 의미를 한참이나 생각하던 윗집 남자는 이내 폭소를 터뜨렸다.

 진짜, 이상한 여자야-

 

 “ 이봐, 사람 그렇게 믿으면 안 돼. 특히나 이런 불빛 번쩍거리는 쓰레기 더미에서 하는 말은 99.9% 허언이야. 이래서 예쁘고 멍청한 여자는 클럽 오면 안 돼. ”

 “ 예쁘고 멍청한... 설마 저요? ”“ 그럼 나겠어요? 아니 진짜로 내가 생색내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오늘 진짜 나 없었으면 어쩔 뻔 했어? 다신 클럽 오지 마. ”

 

 자신을 못 올 데 온 애 취급을 하는 윗집 남자에게 수은은 토라진 표정으로 말했다.

 

 “ 네, 저 갈게요. ”

 

 하고 몸을 일으켜 집으로 가려던 수은은 왜인지 제 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그제야 수은은 자신이 여태 놔주지 않은 그의 손이 보였다.

 

 “ 이렇게 잡고 어딜 가려고, ”

 “ 아, 죄, 죄송합니다. ”

 

 하고 황급히 수은이 손을 빼려 하자 오히려 그 손을 꽉 쥔 윗집 남자는 말없이 걸었다. 그의 걸음을 황급히 따라가며 수은이 물었다.

 

 “ 뭐해요. 어디 가요? ”

 “ 아파트. ”

 “ 누구네 아파트? ”

 “ 우리. ”

 

 그러자 수은은 더 없이 눈이 커졌다.

 

 “ 미쳤어요? 내가 윗집 남자분 아파트를 왜 가요? 이거 안 놔요? 이거 안 놔? ”

 “ 거 참 되게 시끄럽게 하네. 아랫집 여자분? 윗집 아랫집 개념을 모르시나 봐요. ”

 

 그래 윗집 남자. 윗집 남자네 아파트면, 우리 윗집의 아파트지.

 그럼... 아 우리 집...

 

 ‘ 괜히 깎아온 ’ 토마토만큼 빨개진 얼굴을 한 박자 늦게 푹 숙이고 고개를 들지 못 하는 수은을 보며 킥킥대던 윗집 남자는 수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 뒤에, 아까 그 남자. ”

 

 크게 움찔한 수은은 옆집 남자에게 바싹 달라붙었다.

 그러자, 목소리를 더 낮춘 그 남자는 말했다.

 

 “ ...가, 안 와. ”

 

 후-. 그 말이 끝난 뒤 가장 먼저 들린 소리였다.

 고딩들이나 치는 장난을 지금... 나이가 몇인데,

 최대한 한심하다는 의도를 담았음에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걸었다.

 그렇게 계속 티격태격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집 앞이었다.

 수리랑 올 땐 멀었는데, 금방 왔네...

 그러나 윗집 남자는 건물 앞에 멈춘 지 한참이 되었음에도 돌아설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 왜 안 가요? ”“ 넌? ”

 “ 네? ”

 “ 넌 왜 안 가냐고. ”

 “ 아 저부터 가요? 네! ”

 

 하지만 왜인지 수은의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이유를 바라보니

 

 “ 아... 하하하... ”

 

 자신이 아직도 그의 손을 놓아주지 않은 것이었다.

 심지어는 아까 봤던 무서운 남자가 따라온다는 장난 때문에 아예 두 손으로 그 남자의 손을 꼭 붙잡고 있던 것이다.

 수은은 멋쩍게 웃으며 윗집 남자의 손을 놓았고, 남자는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 드디어 보내주는 거야? ”

 “ 으아... 죄송해요... ”

 “ 울어서 배고플 텐데 얼른 들어가서 밥 먹고 푹 자. ”

 “ 네... 오늘 감사합니다. ”

 

 하고 그녀가 고개를 꾸벅 숙이자 그 남자가 그녀의 머리에 손을 얹고 약간은 헝클 듯 쓰다듬었다. 기분이 이상해진 그녀가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 내가 뭐라고 했지? ”

 “ 네? ”

 “ 예쁘고 멍청한 여자는, ”

 “ ...클럽에 가지 않는다? ”

 

 그러자 그 남자는 그녀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리고는 뒤를 돌았다.

 이대로 보내는 거 맞나? 그래도 되나?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 저, 저, 저, 저기요! ”

 

 멈칫한 그 남자가 그녀를 돌아봤다.

 그의 표정은 기억나지 않지만, 다만 그녀가 했던 말은-

 

 “ 안녕히 가세요... ”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도 그 남자가 웃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대답 없이 돌아섰다.

 

 “ 저,저기요! ”

 

 이번엔 그 남자가 돌아보기까지 조금 더 시간이 걸렸다.

 

 “ ...그 ... 이름... 뭐에요? ”

 “ 신. ”“ 네? ”

 “ 강 신. 내 이름. ”

 “ 아, 네... ”

 “ 너는? ”

 “ 네? 어, 저는 공수은이요. ”

 “ 뭐? 공순이? ”

 “ 아니요, 공순이가 아니라 공 수 은... ”

 “ 아~... 공순이가 더 귀엽다. ”

 

 수은이 한 동안 말이 없자 신은 다시 돌아섰다.

 

 “ 저기요!! ”

 

 그녀가 계속해서 부르는데도 신은 짜증난 기색이 없었다.

 너무 귀찮게 굴었나, 한 번에 물어볼 걸.

 

 “ ... 강신씨는 집에 안 가요? ”

 “ 뭐? ”

 “ 아니, 지금 시간도 늦었고... ”

 “ 토요일 밤인데? ”

 “ 더러운 남자도 많고... ”

 “ 내가 거기 더러운 남자들 통이야! ”

 “ ...그럼 마세요. 안녕히 가세요... ”

 

 수은은 빨개진 얼굴을 감싸고 뒤돌아섰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한 거야 공수은, 너랑 저 남자랑 무슨 상관이라고.

 

 “ 공순아! ”

 

 수은의 발걸음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그녀는 벌써 집 비밀번호를 누르는 중이었는데.

 

 “ 나 집에 들어갈까? ”

 “ 네? ”

 “ 클럽, 다시 가지 말고 집에 들어갈까? ”

 “ 네. ”

 “ 그래. ”

 

 그녀는 자신이 그렇게 확고히 말할 줄 몰랐고, 그가 그렇게 쉽게 순응할지도 몰랐다.

 그는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그녀를 유유히 지나쳐 계단을 올랐다.

 계단을 반 쯤 올라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안녕. “

 

 수은은 왠지 수줍어져 재빨리 비밀번호를 눌렀고, 그는 그보다 빨리 계단을 올라 들어가 버렸다.

 아파트엔 문이 닫힌 소리만 울렸다.

 

 01. fin.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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