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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달과 미치광이 ( Luna, Lunatic. )
작가 : 홍블리
작품등록일 : 2017.11.26

그 밤, 그 달이 나를 미치광이에게로 이끌었다.
중전을 잃고 미쳐가는 왕과 영문도 모른 채 다른 세계로 이끌려간 여고생의 시공초월 로맨스!

 
03. 함께 지새는 밤
작성일 : 17-11-28 23:08     조회 : 206     추천 : 0     분량 : 9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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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una, Lunatic. ( 달과 미치광이 )

 

 03. 함께 지새는 밤

 

 

 왕과 입술을 떼고 한 숨 돌리자마자 날아든 것은 다시 칼끝이었다.

 아 진짜 저 아저씨 손버릇 좀 고치라니까.

 

 “ 이봐요 칼잡이씨. 그걸로 나 찌를 수 있는 줄 아시나본데, 어림도 없어요~ 왜냐? 나한텐 이 핀이 있거든. 이거 보이죠 이거? 머리에 달려 있는 거! 이게 내 머리에서 떨어지는 순간 나는 바로 내 세계로 뿅! 알아들어요? 아저씨가 나 찌르려고 하는 순간 내가 핀을 딱 빼기만 하면 난 사라진다는 거~ ”

 

 무지하게 깝죽거리며 시범이라도 보여주려고 핀에 손을 댔으나...

 이게 웬걸, 말랑했던 핀이 돌처럼 굳어 있었다.

 난 직감적으로 느꼈다.

 아, 지금은 안 되겠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서처럼 시공간을 초월할 횟수를 넘었나 보다. 내일 다시 해봐야지.

 

 “ 아 근데 일단 오늘은 좀 곤란하고 내일 다시... ”

 “ 야, 계집. ”

 “ 네? ”

 “ 네가 그 머리에 달린 요상한 것을 빼는 거랑 내가 널 칼로 베는 것, 뭐가 더 빠를까? ”

 

 아차, 생각을 못 했다. 그러게, 당연히 저 칼이 빠르겠지!

 그니까 저 남자는 절대, 아무리 핀이 지금 당장 된다 해도 깝치면 안 되는 사람이라는 거지?

 

 “ ...당,당연히 칼잡이님이! 아니, 아니 이런 망할 달님이! 이렇게 건방지게 부르다니! 당연히 원씨가 빠르시죠! 제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한 건지, 왕님이랑 뽀뽀한 게 너무 좋아서 들떴었나 보네요! 하하하! 죄송합니다! ”

 

 원씨는 칼을 조용히 집어넣었다. 아~ 이런 아부 좋아하시는 구나

 가 아니라,

 왕님이 내 어깨를 끌어당겨 자기 품에 넣었다.

 왕 때문에 또 칼 집어넣은 거겠지, 나도 왕 하고 싶네.

 

 “ 원아. ”

 “ 예. 전하. ”

 “ 내가 시키는 대로 하거라. ”

 “ .. 예, 전하. ”

 

 뭘까, 날 안은 것을 보니 옥에 갇히는 건 아니고, 나가지도 않네. 뭘 시킨 거지?

 

 “ 저기요... 왕님, 원 씨한테 뭐 시킨 거예요? ”

 

 왕님은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날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 나의 것에 더는 칼을 대지 말라고. ”

 

 아이쿠... 아이고 왕님... 이런 근접한 거리에서 그런 얼굴로 그런 말을 하면 심장이 매우 위험합니다...

 왕은 나를 놓아주더니 내시를 깨웠다. 아저씨는 분명히 기절해 있었는데도 왕이 손을 대자마자 벌떡 일어서서 머리를 조아리셨다.

 권력이 이렇게 무서운 겁니다 여러분.

 

 “ 김 내관, 여기 중전을... ”

 “ 아 잠시만요 왕님! 저 핵심을 아직 못 말한 것 같은데, 저 중전 아니에요! 저는 그냥 대한민국에 평범한 고3... 달님이에요. ”

 “ 그래, 중전이 아니라 주장하는 지인이를 국사(왕의 스승) 로 삼으라. ”

 

 내 이름 같은 건 하나도 관심 없구나, 완전 제멋대로야... 가 아니라,

 뭐? 스승?

 문 밖에서 엿듣고 있었는지 원씨는 국사 얘기가 나오자마자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 전하!! 아니되옵니다!! ”

 “ 아니 저기, 저한테 배울 게 뭐가 있다고... 저 학교에서 하위 십프로 찍었는데! 저한테 배울 거 완전 없어요! ”

 “ 맞습니다, 전하. 존엄하신 전하께서 이 계집에게 대체 무엇을 배우시겠사옵니까. ”

 

 ... 아니 그래도, 어떻게 저렇게 바로 수긍할 수가 있지?

 몰라, 나 저 칼잡이 싫어...

 

 “ 내 여인에게는 수미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진귀한 물건들이 가득 있지 않느냐. 그렇다면 나는 알지 못 하는 다른 세계들을 내게 가르칠 수 있겠지. ”

 

 아 그러니까, 지금 우리나라 얘기를 해 달라? 그걸 그렇게 거창한 직위까지 내려가면서 들어야 되는 거야?

 

 “ 전하,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출신도 모르는 불길한 계집을 어떻게 나라의 가장 현명한 현인들만이 오를 수 있는 국사의 자리에... ”

 “ 원아. ”

 “ ... 예, 전하. ”

 “ 지나치구나. ”

 “ ... 송구합니다. ”

 “ 국사와의 강연은 오늘부터다. 자리 마련하거라. ”

 “ 예, 전하. ”

 국사 강연... 한국사 같잖아. 듣기 싫어 듣기 싫다고.

 강연 듣기 싫어 강연 듣기 싫어 강연 듣기 싫어

 

 “ 네가 듣는 것이 아니다. 내게 들려주는 것이지. ”

 “ 응? 분명히 속으로 말했는데 들렸어요? ”

 “ 들으라는 듯이 아주 크게 말했다 이 계집아. ”

 

 나에게 계속 함부로 시비를 거는 원 씨를 가만히 보던 왕은 말했다.

 구원. 너 그러다 죽는다- 라고,

 순간 우리 반에서 매일 티격태격 거리는 남자애들이 생각났다.

 뭐야, 왕이 저렇게 품위 없이 말해도 돼?

 그러나 더 기막힌 것은 원 씨의 대답이었다.

 왕의 품위 없는 대답을 들은 원 씨는 자신도 품위를 놓겠다는 듯 굳어있던 자세를 풀고 한숨을 푹 쉬었다.

 

 “ 네 무서워서 아주 죽겠습니다 ”

 

 ... 뭐야 이거, 원래 호위무사랑 왕이 이렇게 막역한 사이가 되는 건가?

 둘이 그렇게 친해요? 라고 물어보려고 했으나 너무 황당해서 질문을 침과 함께 삼켜버렸다.

 그리고 정신 차릴 틈도 없이 우리의 앞엔 어느새 작은 상과 어마어마한 책들이 쌓였다.

 뭐야 이게, 현실 도피로 여기 온 나한테 지금 공부를 하라고?

 내 표정을 읽은 것인지 왕은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 오늘은 공부를 하지 않을 것이다. ”

 “ 그럼 뭐해요? ”

 “ 네가 생각해 보거라. 너의 세계에선 학문을 익히고 싶지 않을 때 보통은 무엇을 하는지. ”

 

 첫 시간... 첫 시간엔 역시!

 

 “ 이름이 뭐에요? ”

 “ 뭐... 뭐라? ”

 

 어디서 튀어나온 건지, 내가 이름이 뭐냐고 묻자 우리 주변 기둥들 뒤에서 사람이 한 명씩 튀어나와 자신들을 죽여 달라며 굽신거렸다. 뭐지? 이름 물어본 게 그렇게 큰 잘못이었나

 호위무사는 지붕에서 훌쩍 뛰어내려 내게 이 나라 그 누구도 전하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전하의 최측근 말고는 전하의 이름을 알아서는 안 된다 라며 종알거린다.

 이렇게 수다스러운 캐릭터가 아닌데.

 

 “ 아니 뭐가 문젠데요. 우리 세계에선 원래 이렇게 첫 시간엔 자기소개 해요. 아니 뭐 이름은 부르라고 지은거지 아무도 모르게 썩혀 놓을 거면 이름을 왜 지어요? 그냥 열 번째 왕의 첫 번째 아들, 일곱 번째 왕의 열한 번째 아들 이렇게 부르지? 진짜 너무한 거 아니야?

 그리고, 이 나라엔 수업권도 없나? 가르치는 걸 이렇게 지켜보고 있으면 응? 긴장 되서 퍽이나 수업이 잘 되겠네. “

 

 -

 

 왕의 이름은 절대 불러선 안 되는 것, 왕의 일거수일투족은 무조건 내관들과 궁녀들이 지킨다, 라고 생각해왔던 수미월의 충성스러운 신하들은 혼란에 빠졌다.

 개중에는 달님의 말이 맞다고 생각이 드는 궁녀들도 더러 있었다.

 물론 그런 사람들은 재빨리 자신의 뺨을 치고, 생각을 고쳤지만.

 

 가만히 달님을 보던 왕은 또 원에게 말했다.

 

 “ 내가 시키는 대로 해라. ”

 

 그러자 원은 도대체 무슨 생각이시냐며 우리에게만 들리게 속삭거리더니 한숨을 푹푹 내쉬며 궁녀와 내관들을 해산시키고 자신 또한 자리를 떴다.

 

 “ 미안. 네 세계에선 부적절한 상황인가 보구나. 이제 해 보자. 너의 세계에서 다들 한다는 그것. ”

 “ 응? 뭐요? 자기소개? ”

 “ 그래, 그거. ”

 “ 음... 이름이 뭐고, 몇 살이고, 하는 일이 뭔지 말하고, 하고 싶은 말 하는 거예요. ”

 “ 이름... 이름이라... ”

 “ 알려주기 싫어도 알려줘야 돼요. 그게 예의에요. ”

 “ 음... ”

 

 큰 결심을 하는 듯 꽤 오래 망설이던 왕은 겨우겨우 입을 뗐다.

 아무래도 자신의 입으로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것이 처음이니, 그럴 만도 했다.

 

 “ 이름은 이 운. 나이는 스물 셋. 이 나라의 국왕이며, 하고 싶은 말은... ”

 

 왕은 상 위에 올라와 있는 달님의 손을 살짝 움켜쥔 뒤 말했다.

 

 “ 연모한다. ”

 

 달님은 또 심장에 무리가 가는 것을 느꼈다.

 아니 무슨 그런 말을 만난 지 세 번 만에 저렇게 진지하게 하지?

 

 “ 사랑? 사랑이요? 나를? ”

 “ 사랑... 그 세계에선 사랑이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느냐. ”

 “ 그러게요. 스스럼없이 하기엔 약간 떨리는 말인데 왕님은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

 “ 여기서 귀족들은, 아니 중인들만 해도 사랑이라는 말은 천박하다며 잘 쓰지 않는다. ”

 “ 연모랑 사랑이랑 뭐가 달라? ”

 “ 뜻이 다른 것은 아니지만 서민들과는 단어 하나하나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높으신 사람들의 허례 때문이지. ”

 “ 서민 같은 소리 하네. 사랑이 얼마나 고귀하고 아름다운 단어인지 알아요? 우리 세계에서는 연모라는 말 한 명도 안 써! 나라에서 제일 높으신 분도 연모한다는 말 안 써! 사랑을 나타내는 단어 중에 천박한 게 어딨어? 그리고, 높으신 분들 중에 왕님이 제일 높잖아요! 앞장서서 바꿔 나갈 생각을 해야지 그걸... 아니, 그것보다 나를 왜 연모해요? ”

 

 아직도 놓지 않은 손을 더욱 꽉 잡고 운은 그저 달님을 바라보았다.

 달님의 숨 쉬는 모습, 눈 깜빡이는 모습 하나하나를 눈에 담다가 말했다.

 

 “ 네가 살아있을 땐 한 번도 말 해주지 못 했지 않느냐. 더는 마음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네가 산 동안 내게 준 마음만큼, 그보다 더 줄 것이야. “

 

 뭐야, 결국 또 다른 여자한테 한 말이었네.

 하긴, 왕씩이나 되시는 분이 어디서 온 지도 모르는 여자애한테 이런 말을 쉽게 할 리가 없지..

 

 “ 나 그 중전이라는 분 아니에요. 제발 이제 이름 좀 불러 주실래요?

 제 이름은 강달님이고 열아홉 살이에요. 학생이고, 하고 싶은 말은... 손 좀 놔 주실래요? “

 

 이름이 달님이라는 말을 들은 왕은, 굳어버렸다.

 이전에도 여러 번 들었지만 모두 한 귀로 흘렸으니 막상 제대로 이름을 듣자 당황하게 되었다.

 이름이 달님이라니, 머리 위에 핀으로 시선이 흐르자 심지어 그것은 달 모양의 핀이 아니던가.

 

 “ 혹시 너는... 달인 것이냐? ”

 

 달님은 정말로, 정말로 이게 뭔 개소리인가- 싶었다.

 그러나 운은 나름대로 진지했다.

 나타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밤에는 늘 사라졌었다.

 혹시 달이 되어 세상을 비추느라 그런 것이었는지 생각했다. 심지어 머리에 달린 초승달 모양 핀까지.

 달이 아니라 해도 혹시 달에 사는 월궁선녀라던지, 그런 것은 아닌지.

 내가 하늘의 분을 잘못 대한 것은 아닌지.

 

 “ 무슨 소리에요. 저 사람이라니까요? 이 나라에도 널린 사람. ”

 “ 혹, 혹시나 네가 월궁선녀라던지... 하늘 분이라면 지금 말하거라 내가 지금 당장 너의 침소를 이 나라에서 제일 큰 주막으로 준비하고... ”

 “ 아 아니라니까! 아니 진짜 여기는 과학이 이 정도로 열악한가? 달이 사람이라고 생각할 만큼? ”

 

 달님의 말은 귓등으로 흘린 운은 달님이 사람인지 달인지 한참동안 그녀와 말씨름을 하고, 그녀가 진짜 사람이라는 것을 약 스무 번은 말하고 나서야 안심이 되어 활짝 웃으며 물었다.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그 어떤 것이든 네가 좋아하는 것은 다 해주겠노라고.

 

 “ 좋아하는 거? 음... 그림 그리는 거랑 옷 만드는 거랑 쇼핑하는 거. 아 쇼핑이 뭐냐면... 필요한 물건 사는 거예요. 시장, 아니지 시장이 아닌가? 아 그거 뭐라고 하더라, 사극에서 들었는데.... 그... 저잣거리! 맞다. 저잣거리 같은 데 가서 막 사는 거예요. ”

 

 좋아하는 것들을 손에 꼽고 있는 달님을 바라보던 운은 턱을 괴었다.

 달님이 살아 있을 때의 중전보다 꽤 귀엽다고 느꼈다.

 그러다가 저잣거리 얘기를 듣고는 잡은 손을 끌어 달님을 일으켰다.

 

 “ 가자. ”

 “ 어디를요? ”

 “ 저잣거리. ”

 “ 지금요? 저 여기서 쓸 수 있는 돈도 없고... ”

 “ 뭐? ”

 

 아 맞다, 당신 왕이었지.

 남자한테 얻어먹는 거 찝찝한데-

 

 “ 그러면 호위무사 씨도 데려가야 되는 거 아니에요? 이렇게 혼자 나가면 위험... ”

 

 그러나 오랜만의 외출 생각에 신이 난 운은 그녀의 손을 잡고 원과 자신만 아는 비밀통로로 달려갔다.

 진짜 이 인간 남의 말 안 듣는 거 세계 최강일거야.

 

 그러나 어느 새 달님도 처음 가보는 남의 세계 저잣거리 구경에 신이 나 뛰게 되었고, 그 비밀통로의 중간쯤 갔을 때,

 

 “ 으악!! ”

 

 어디서인지 원이 튀어나왔다.

 

 “ 어디서 나왔어요? ”

 “ 난 어딘가에서 원이 네가 나올 것을 알고 있었다. ”

 운은 자랑하듯 말했다.

 아.. 네... 좋으시겠네요.

 

 “ 전하. 도대체 어쩌시려고 전에 없던 일탈 행동을 하십니까. 대체 어딜 가시려고. ”

 “ 보면 몰라? 저잣거리 가지! ”“ 알고 있습니다. ”

 “ 아는데 왜 물어봐? ”

 

 한숨을 푹푹 내쉬던 원 씨는 우리에게 앞장을 서라고 했다.

 

 “ 앞장서라니? 같이 가시게요? ”

 “ 너와 전하를 단 둘이 궐 밖으로 보낼 수는 없다. ”

 “ 원아. ”

 “ 안 됩니다. ”“ 한 번만... ”

 “ 안 됩니다. ”

 “ 내 부탁인데도? ”

 “ 안 됩니다. ”

 

 _

 

 수십 번의 안 됩니다 끝에 결국 세 사람은 저잣거리로 나왔다.

 달님은 처음 보는 구경거리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느라 바빴고,

 운은 사람들에게 치이는 것이 불쾌해 여기저기에 대고 감히 이놈이- 라는 말을 꺼냈다가 정체가 드러날까 다시 집어넣기를 여러 번,

 원은 천방지축인 계집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찾는 일과 운을 지키는 일, 둘을 하느라 아주 진을 뺐다.

 

 “ 전하. 다시는, 다시는 저잣거리로 나오지 마십시오. 다시는. ”

 “ 싫다. ”

 

 원은 속으로 아 짜증나- 라고 생각했다.

 너무 겁이 없는 나머지 입 밖으로 꺼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다 원의 움직임이 급격히 조심스러워졌다.

 원은 달님 못지않게 신난 운의 귓가에 속삭거렸다.

 

 “ 전하. 전하! ”

 “ 간지럽다. 사내놈이 왜 달라붙어서 바람을 넣느냐. ”

 “ 저기, 민숙빈. ”

 

 원이 던진 시선이 향한 곳엔 수미월 전국 곳곳 그 어떤 여자보다도 화려한 장식을 하고도 모자란 지 값비싸 보이는 금붙이들은 모조리 사대는 여인이 있었다.

 

 “ 그러게. 쟤는 저렇게 머리에다 뭘 많이 얹어놓고 다니면 목 안 아플까 ”

 “ 아니 전하. 그게 문제가 아니라 저 계집과 전하가 같이 다니는 것을 민숙빈이 보기라도 한다면... ”

 

 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운의 안색은 창백해졌다.

 운의 머릿속엔 수많은 생각이 스쳤다. 중전이 살았을 적, 저 여인에게 당했던 수모와 수치들.

 운은 머리를 감싸고 말했다.

 

 “ 돌아가자. ”

 “ 전하. 함께 돌아가는 것 또한 위험할 수 있습니다. 그냥 저 계집은 알아서 찾아오라고 하고 전하부터 돌아가시는 게... ”

 “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중전은 지금 다른 세계에서 와서 이 나라 지리를 기억하지 못 한단 말이다. 절대 놓고 갈 수는 없다. ”

 

 원은 저 계집은 중전이 아니다- 라고 반박하려 했으나 점점 가까워지는 여인의 그림자에 황급히 달님을 막아섰다.

 

 “ 아 뭐에요 한참 재밌게 보고 있는데! ”

 “ 돌아가야 한다. ”

 “ 왜요? ”“ 피해야 할 사람이 있어. ”

 “ 에? 이 나라 왕이 도망쳐야 되는 사람도 있어요? 대체 뭐야? 전 대통령과 최읍읍씨 같은 건가? ”

 

 왕이라는 단어를 정확하게 말했다. 망했다.

 원은 달님의 손목을 냅다 잡아끌었다. 운 또한 옷소매로 다급히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그리고 민숙빈이라 불린 여자는 뒤를 돌아 그들을 보았다.

 왕? 저 쪽은 황궁 쪽인데- 설마 전하께서?

 하고 그 일행을 바라보던 민숙빈의 미간엔 주름이 잡혔다.

 

 “ 여인? “

 

 -

 

 “ 어떡하냐 원아, 어쩌면 좋으냐. ”

 “ 그러니까 가지 마시라니까 전하 말 지지리도 안 들으십니다. ”

 “ 민숙빈은 오늘이 가기 전에 분명 찾아올 것이다. ”

 “ 예. 그러시겠죠. 그걸 아시는 분이 그러십니까? ”

 “ 중전은 어디서 재워야 할까 ”

 “ 궐은 절대 안 됩니다. 내일 다시 데려오더라도 오늘은 밖에서 재워야 합니다. ”

 

 잠시 생각을 하던 운은 원을 빤히 바라보았다.

 

 “ 원아. ”

 

 이건 딱 내가 시키는 대로 해라- 라는 말이 나올 타이밍인데, 딱 눈치를 챈 원은 기겁을 했다.

 

 “ 절대 싫습니다 전하. ”

 

 그러자 굳게 결심을 한 듯한 운은 말했다.

 

 “ 어명이다. ”

 

 웬만하면 안 써먹으시는 단어인데,

 운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남들을 누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심지어 원에게 어명이라니,

 원은 할 말을 잃었다.

 곧이어 그의 시선은 운의 뒤편, 달리기를 한 여파인지 숨을 헐떡이는 달님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아직 그들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자신의 숨을 고르는 데에만 집중했다.

 

 그러나,

 

 “ 지인아. 오늘 밤은 원이의 처소에서 보내야겠구나. ”

 

 라는 말이 나왔을 때에는 정말로 헉. 하고 숨을 멈췄다.

 

 “ 예? 누구랑? 어디서요? ”

 “ 따라와. ”

 “ 아니 어딜 따라가! 지금 외간 남자네 집에서 자라고? ”

 “ 따라오라고. 어명이시라잖아. ”

 “ 아니 칼잡이씨. 그 쪽은 이게 말이 돼? 나를 그 쪽 집에 데려가야 된다니까? ”

 “ 나도 싫은데 어명이야. ”

 

 운이 무슨 생각인 것인지, 달님은 운에게 더 따지고 싶었으나 어둑해진 궐 문 밖에서 웬 여인의 목소리가 들리자 원은 더 듣지 않고 달님을 끌고 달렸다.

 

 -

 

 “ ...이게, 이게 집이야? ”

 

 달려오는 동안 그래도 최소한 다른 방에서 자면 되겠지 라고 애써 위로한 마음이 부서져 버리는 순간이었다.

 방 한 칸이었다. 그것도 딱 두 명 누울 자리밖에 없는.

 

 “ 아니, 왕 최측근 호위무사 집이 왜 이래? 이 집도 궁궐 안에 있는데 왜 이렇게 후지냐고. ”

 “ 내가 큰 집은 필요 없다고 했다. 집에 얼마 붙어 있지도 않고, 청소하기만 거추장스러우니. ”

 “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건... 여기서 우리 둘이 어떻게 자요? ”

 

 완전 딱 붙어 자야 될 것 같은데. 우리 아직 그 정도로 친하진 않잖아?

 

 “ 싫으면 넌 집 뒤에 바닥에서 자던가. ”

 “ 아니 지금 이 겨울에? ”

 “ 그럼 조용히 자. ”

 “ 그... 저기... 원 씨가 나가주면... ”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목 옆으로 칼끝이 날아들었다.

 

 “ 어? 어? 왕님이 내 목에 칼 대지 말라고 했는데? ”

 

 원 씨는 딱 들어도 짜증이 느껴지는 한숨을 내쉬면서 칼을 집어넣고 이부자리를 깔았다.

 와 이불도 작아. 진짜 여기서 둘이 자?

 

 “ 누워. ”

 

 누우라니, 너무 야한 단어잖아.

 아니 진짜 이 나라 남자들은 자고 일어났더니 옆에 여자가 누워있어도 아무렇지 않아 하고, 세 번밖에 안 본 여자랑 이렇게 딱 붙어 자는 것도 아무렇지 않은가?

 여기가 서양인 줄 아나.

 

 그러나 내가 그런 생각을 하며 우물쭈물 이불에 발을 들이는 순간 원 씨가 발을 걸었다.

 그래놓고 내가 바닥에 떨어지기 일보 직전에 허리와 머리를 감싸 내려놔 주었다.

 뭐지 이건? 병 주고 약 주기?

 날 눕혀놓고 원 씨는 좁은 방을 밝힌 촛불을 하나 둘 껐다.

 방에 불마저 꺼지자 정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아까 핀을 빼려고 안간힘을 써 보아도 머리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꼼짝없이 여기서 자야 하는데,

 

 침만 삼키고 있으니 원 씨가 내 옆에 와 누웠다.

 뭐지? 이래도 잠이 올까? 우리 엄마 귀한 딸이 지금 다른 남자랑 누워 있는데?

 

 온 몸이 굳었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만 계속 생각하고 있는데

 

 “ 숨 쉬어. ”

 

 정신 차려보니 내가 숨 쉬는 것을 까먹고 있었다.

 

 “ 자라. ”

 “ 건들지 마요! ”

 “ 그래. ”

 “ 뭐야, 왜 화 안 내요? ”

 “ 이런 데서 사내와 단 둘이 있으면 무서울 만 하지. 안 건들 테니 자라. ”

 

 뭐야 걱정한 내가 민망하게 갑자기 왜 착한 남자 되는 건데?

 

 얼마의 시간이 지난지도 모른 채 숨을 쉬어야 한다는 것을 계속 의식하며 깨어 있었더니 원 씨의 숨소리가 조용히 잦아들었다.

 분명히 닿진 않았는데 너무 가까웠다. 닿은 것보다 더 야하잖아 이건.

 뭔가 닿아 있는 느낌인데, 뭐가 닿아있는 걸까.

 그래, 체온이 닿아 있었다.

 그의 체온과 숨소리가 다 느껴져서 살이 닿는 것보다 더 나를 불편하게 했다.

 나는 닿은 체온이 신경 쓰여 다시 호흡을 멈췄다.

 

 낯선 남자와 함께 보내는 밤,

 내 열기와 원 씨의 온도가 좁은 방에 가득, 섞여들고 있었다.

 
작가의 말
 

 함께 보내는 밤이 아니라 함께 지새는 밤입니다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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