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음.. 과연 어떨까.."
"그.. 예슬아. 딱히 너가 고민 할 필요는 없는데..?"
"아니야. 이안님하고 앞으로도 함께 지낼 텐데, 이건 충분히 고민해 볼 문제야."
"그, 그래..?"
아름은 아무 의미 없이 던진 자신의 질문에 예슬이 심각히 고민에 빠져 들자, 괜시리 미안한 감정이 들기 시작했다.
매사 진중한 예슬의 앞에서 그런 애매모호한 질문을 던졌으니, 그녀가 고민에 빠져드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잠시 그런 예슬의 성격을 망각한 자신의 잘못이기도 했고 말이었다.
예슬은 그렇게 한참 동안을 고민하더니, 이내 입술을 달싹여 아름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해 왔다.
"음.. 일단 이안님이 돈을 잘 벌 것 같다는 아름이 니 말은 조금 틀린 거 같아. 왜냐면 이안님은 맨날 우리들이랑 게임만 하니까 말이야. 그렇다고 아이템을 파는 것 같지도 않고.."
"그건.. 아마도 그렇겠지?"
"응. 그간 이안님의 스케쥴을 봐서는 이것만큼은 정말 확실해."
"...."
아름은 나름 진지하게 이안을 분석하는 예슬의 모습에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별 생각 없이 던진 질문에 예슬이 이렇듯 진지한 모습을 보이니, 어째 그녀와 오랜 친구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예슬이 조금씩 무서워지는 기분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런 아름의 표정은 보이지도 않는지, 예슬은 계속해서 이안을 분석해 나갔다.
"그리고 이안님이 게임과 관련 없는 사생활 얘기를 하는 건, 나는 한번도 본 적이 없는거 같아. 그러니까 이안님이 따로 돈을 번다는 건 말이 안되는 얘기지. 왜냐면, 다른 수입줄이 있으면 그에 대한 푸념이나 간단한 얘기 정도는 우리한테도 한 번 해 줄 만 했거든. 뭐니 뭐니 해도 우리들은 거의 세 달 동안이나 파티를 맺고 있는 사이니까."
"그러면 이안님이 우리처럼 휴학생 아니면, 백수라는 거야?"
"아니. 단순한 백수라면 이렇게 좋은 집에서 혼자 살리가 없잖아. 아마.. 남들이 다 탐내는 무지 좋은 직업을 가지고 있을 걸?"
"뭐? 다른 수입줄이 없을 거라며.. 그런데 직업이 있다고? 좋은.. 직업? 그게 대체 뭔데?"
아름은 본격적인 이안의 사생활 얘기가 시작되자, 언제 긴장을 하고 있었냐는 듯, 초롱초롱 눈을 빛내기 시작했다.
'에스테반' 을 시작한 이후로, 아름의 가장가는 관심사는 다름아닌 이안이었으니, 이안의 이야기만 나오면 눈빛이 달라지는 것은 아름으로서는 도저히 어쩔수 없는 자연현상이었다.
예슬은 눈을 빛내며 자신을 쳐다 보는 아름을 물끄러미 내려 보고는 천천히 입을 열어 대답했다.
"..당연히 금수저 아닐까?"
"에..? 금수저? 그게 직업이야?"
"그럼! 금수저도 나름 직업이라면 직업이지.."
"에이~ 뭐야 그게.."
아름은 괜히 기대를 했다는 생각에 몸의 힘이 맥없이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예슬이 진지하게 이안을 분석하고 있는 중이라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예슬 역시 반 장난식으로 자신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는 걸 이제서야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아름은 어째 놀림감이 된 듯한 기분이 들어 고개를 푹 수그렸다.
"왜? 금수저 싫어?"
예슬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아름을 향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자기는 꽤나 고민을 하고 던진 농담이었는데, 아름의 반응이 영 시원치 않아 보이자 이외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흐음~ 글쎄? 금수저에 대해서는 딱히 생각해본 적 없는데, 이안님이 금수저라면 나쁘지 않을지도?"
아름은 여전히 자신을 놀릴 생각이 가득해 보이는 예슬을 향해 피식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그리고는 예슬의 손을 덥석 붙잡고는 앞으로 잡아 끌기 시작했다.
비록 재미없는 농담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예슬 덕분에 긴장이 풀리고 나니, 한시라도 빨리 이안의 본모습이 보고 싶어졌기 때문이었다.
"자-! 우리도 계속 여기서 이러지말고, 빨리 이안님 보러 올라 가자~!"
"이야~ 진짜 놀랬다니까! 설마 세라님이 그 모델 유세라 였다니! 하긴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처음 만났을 때도 모델포스가 장난 아니긴 했어?"
제 집 마냥 소파에 드러 누워 있던 김성태(칼슈타인) 가 말했다.
그에 우진은 테이블 위로 음식을 차리던 손을 멈추고는 성태를 째릿 노려 보았다.
"이 미X놈아 니 눈깔에는 나는 안 보이냐? 나.도 모.델이에요! 그리고 상 차리는 거 안 도울거면, 빨랑 저리 꺼져! 앞에서 계속 거슬리지 말고."
"네~ 네~ 모델 강우진씨. 당신도 모델 맞아요. 질투심 오지구요~ 관종끼 지리구요~ 그리고 나는 손님인데요? 설마 손님한테 상 차리라고 할 셈?"
"....."
버럭하는 우진을 향해 성태가 한껏 비아냥 거리기 시작했다.
그에 우진은 테이블 위에 놓인 나이프를 떨리는 손을 붙잡았다.
초대하기가 무섭게 아침부터 찾아와서 계속 신경을 긁어대는 성태에게 슬슬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오빠. 그나저나 셀레스틴님은 어떻게 하시게요?"
세라가 타이밍 좋게 우진이 폭발하기 직전 나이프를 집어든 손을 부드럽게 감싸며 물어 왔다.
그에 우진은 힘이 들어가던 손을 멈추고는 슬그머니 세라를 바라 보았다.
그랬다. 가장 중요한 셀레스틴을 우진은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었다.
우진은 몸을 일으켜 세우고는 턱을 감싸쥐며 불안에 몸을 떨기 시작했다.
사실, '그라니아 요새' 의 공방전이 끝난후, 우진은 이리나 영주와 대화를 나눈던 중 셀레스틴과 맞딱뜨렸고, 그때 우진은 셀레스틴의 서빗발 같은 눈빛에 놀라 그대로 로그아웃을 한 채, 현재 현실세계로 도피를 해 있는 상태였다.
일행들과의 이 조촐한 파티도 사실은 갑작스레 로그아웃을 한 우진을 대신해 재진이 마음대로 결정을 한 것이었고 말이다.
"그러게, 너 정말 어떻게 할려고 그러냐? 우리가 대충 얼버무려 놓기는 했는데. 셀레스틴 엄청 열받은 표정이던데?"
"로그인 하면, 백퍼 사망 각."
재진과 성태가 세라의 뒤를 이어 현재의 심각한 상황을 전해 왔다.
아무래도 아무런 설명도 없이 갑작스레 도망을 쳤기 때문에, 셀레스틴의 분노수치가 어마무시하게 올라가 있는 듯 싶었다.
우진은 일행들이 전해주는 셀레스틴의 현 상태에 두통이 밀려옴을 느끼며 성태의 옆으로 털썩 주저 앉았다.
애써 잊고 있었던 셀레스틴의 뒷 수습이 떠오르자, 뒤풀이고 뭐고 의욕이 싸악~ 날아가 버렸다.
"뭐.. 어쩌겠냐. 오늘은 푹 쉬고, 내일 로그인 해서 그때 생각해 봐야지. 안 그냐?"
치익-!
성태가 맥주캔을 하나 쥐어주며 어깨동무를 해왔다.
우진은 성태가 쥐어준 맥주캔을 멍하니 내려 보았다.
어째 마지막 여자친구와 헤어진지 2년만에 바가지가 긁히는 게 어떤건지 몸소 체험하고 있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띵동-! 띵동-!
그렇게 셀레스틴에 대해 이런저런 고민을 하고 있을 무렵, 돌연 초인종이 울려오기 시작했다.
우진은 맥주캔을 테이블 위로 내려 놓으며 인터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이미 한발 빠르게 인터폰 화면을 확인하고 있는 재진이 보였다.
재진은 방문자를 확인하고는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우진아, 아리아님하고 벨라님 오셨다. 문 연다?"
"아아~ 그래."
우진은 마지막 방문자인 아리아와 벨라가 왔다는 말에 느릿느릿 몸을 일으켜 세웠다.
성태의 말대로 벌써부터 걱정을 해봐야 해결될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다면, 뒷풀이는 확실하게 즐기고,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는 것이 차라리 속 편한 일이었다.
그렇게 우진은 아리아와 벨라를 맞이하기 위해 현관문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에에~? 유, 유, 유, 유세라..?"
아름은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멍하니 입을 벌렸다.
그리고는 떨리는 눈동자를 움직여 자신과 예슬을 반기는 일행들의 면면을 하나하나 살펴 보았다.
우선 '에스테반' 의 캐릭터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성태와 재진의 얼굴이 보였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뒤로 방금 전까지만 해도 핸드폰 뉴스기사를 통해 봤던 모델 유세라의 얼굴이 있었다.
아름은 얼른 입가를 가리며 예슬을 돌아 보았다.
지금의 상황이 어떻게 된 일인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안의 초대를 받아, 그의 자택을 방문했더니, 뜬금없이 톱모델이 현관문을 열어준다?
아름은 이 놀라운 상황에 마치 '지금 꿈이라도 꾸고 있나?' 하는 심정이 들었다.
"응? 왜 그래, 아름아?"
예슬이 고개를 갸웃하며 담담히 물어 왔다.
무슨 특별한 일이라도 있냐는 듯, 너무도 자연스러운 표정과 몸짓이었다.
아름은 여전히 벌려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손을 들어 세라를 가리켰다.
그러자 예슬의 눈동자가 뒤늦게 커지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그러더니.
"우와.. 세라님 게임 속보다 실물이 더 이쁘시구나."
하는 어이없는 말을 내뱉었다.
"에~? 예슬아 그게 다야? 모델 유세라야! 톱모델 유세라-!"
아름은 시원찮은 예슬의 반응에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는 거칠게 흔들며 소리쳤다.
예슬이 연애계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 진즉에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기에 아름이 받은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모든 여자들의 워너비. 모델 유세라를 모른다니?
이건 연애계에 관심이 없고 자시고를 떠나서, 완전히 TV 혹은 뉴스기사를 거들더도 안 본다는 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 소리였다.
"유세라? 아.. 나는 그런 거 잘 몰라. 그러니까 이거 좀 놓고 얘기 해."
예슬은 계속 몸을 흔들어대는 아름을 향해 담담히 말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세라를 향한 시선은 여전히 거두지 않은 채였다.
아름을 통해 세라가 유명인이라는 것은 확실히 알았지만, 그와 동시에 새로운 의문이 머리속에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의문은 바로, 아무리 게임 속이라고 해도 유명인인 세라가 어째서 이안에게 친근하게 접근 하는지, 또 집착하는 듯한 행동을 보이는지. 이러한 점들에 대한 것이었다.
보통 유명인이라 한다면,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 성급하게 이성에게 접근하는 그런 가벼운 행동은 절대 보일리 없었으니 말이었다.
그런데 그때, 그런 예슬의 의문을 해결해 주기라도 하듯 세라의 등 뒤로 이안 아니 우진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현관에 멀뚱히 서 있는 일행들을 바라 보며 말했다.
"다들 여기서 뭐 해? 안으로 안 들어 오고..."
"....!?"
세라의 등 뒤, 우진을 바라보는 예슬의 눈동자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예슬의 입에서 새된 발음이 흘러 나왔다.
"강.. 우진?"
"응...?"
아름은 예슬의 새된 발음에 그녀를 흔들던 손을 멈추고는 가만히 예슬을 바라 보았다.
그녀가 한창 잘나가고 있는 현재 진행형 모델 유세라는 모르면서 한물간 퇴물 강우진은 알고 있다는 것에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름은 고개를 갸웃하면서 예슬의 시선이 향한 곳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려 갔다.
"강우진? 뭐야, 너 유세라는 모르면서 강우진은 아나 보네? 근데 여기서 강우진이 왜 나.... 에에에에에에에엑--!"
아름은 다시 한 번 눈을 의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