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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공포물
경성크툴루
작가 : 최믹하
작품등록일 : 2017.11.17

경성에서 일어나는 수상한 일들, 괴력난신 소녀와 유학파 탐정사무소 소장님이 진실을 파헤쳐갑니다.

 
평이한 시체 이야기 (2)
작성일 : 17-11-28 15:45     조회 : 522     추천 : 1     분량 : 7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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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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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분 뒤, 남현보통학교 앞에 서 있던 희고 마르고 창백한 남자는 자전거에서 검은 치맛자락을 휘날리며 신나게 내리는 나를 본 뒤 최선을 다해 ‘아니겠지’ 라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겠지.”

 

 심지어 입 밖으로도 말해버렸다.

 물론 내가 너무 신나고 격렬하게 자전거를 타고 왔다는 점도 문제긴 했다. 언덕배기에서는 살짝 거의 날다시피 했던 것 같다. 이쪽은 밤의 유흥과는 거리가 좀 있는 주거지역이고, 지나다니는 사람은 별로 없었으며… 나는 자전거를 탈 일이 별로 없었다. 소장님은 충동적으로 최신품이라는 자전거를 사와서 심심할 때 연습한 것이 고작이고, 그 후로는 다시 자동차와 인력거의 주 고객층으로 돌아갔고, 우리 사무실의 자전거는 장식품이 된 것이다. 그 바람에 좀 신나게 타버린 감도 있었다.

 

 나는 붉어진 뺨으로 자전거에서 훌쩍 뛰어내리며, 발로는 자전거를 세우고 손으로는 밤바람에 시달린 머리를 슥슥 뒤로 젖히며 남자에게 툭 말했다.

 

 “저기, 맘 속 생각을 입 밖으로 너무 말해버리신 것 같은데유.”

 “죄송합니다, 순간 제가 기다리던 사람인 줄 알고…”

 “최송현 씨 맞으시유?”

 “맞잖아!?”

 “야.”

 

 최송현 씨는 당황스러우면서도 실망한 표정을 도무지 감출 수 없는 것 같았다.

 그 걸어다니는 시체라는 것을 처리하기 위해 열 다섯살, 두꺼운 머리채를 질끈 땋아놓고 엄청 신나게 자전거를 타고 있는 시골 촌년이 올 거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저, 어… 당신… 상담원…?”

 “그렇지유?”

 “잠깐, 전화로는 서울말을 쓰고 있었는데…”

 “뭐 아까도 실수로 몇 번 사투리를 쓰긴 했슈.”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니, 사투리야 그렇다 쳐도… 정말로 탐정사무소에서 온 사람 맞습니까?”

 “야, 뭐가 어떻게 되든 좋으니 빨리 좀 와달라매유.”

 “아니 그렇다고 해도…”

 “빨리 왔으니 된 거 아니유?”

 

 물론 상대는 엄청 안 되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런 표정으로 본다고 내 당당함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 수단으로 상대는 성별과 나이의 위계를 믿고 눈싸움을 시도하려고 했으나,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결국 상대방은 약간 울상이 되어서 우물쭈물 말하기 시작했다.

 

 “아니… 그… 그렇다고 해도 갑자기 이렇게… 너무 어리고… 경성 지리도 잘 모르는데… 형이… 아니, 고인이 생전에 덩치도 좋고 힘 좀 쓰는 사람이었는데…”

 “그렇다면 잘 됐슈. 지가 원래 힘 좀 쓰는 사람 전문이라.”

 

 요즘은 힘 쓰는 일보다는 전문 전화상담원 쪽이 내 길이 된 느낌도 들긴 하지만, 어쨌든 나는 힘이 아주 센 사람인 것이다. 덕분에 그놈의 ‘힘 좀 쓰는 사람’들과는 이래저래 얽힐 일들이 많았다.

 

 꼭 괜히 손목 굵기로 져본 적 없는 사람들이 누가 힘 세다는 이야기만 들으면 어슬렁거리는 법이다. 진짜 센 사람들은 조용히 산다. 귀찮으니까. 나도 누가 시비 걸어오면 많이 져줬다. 괜히 소문내봤자 귀찮은 일만 잔뜩 생기는 것이다. 부모님도 내가 어디 가서 힘 좀 쓸라 치면 난리에 난리였다. 그러다 돌아가신 외할아버지 꼴이 난다나 뭐라나.

 

 “아니, 그 정도 수준이 아니라니까요?”

 “그럼 어느 정도 수준이유? 형이 그러면…”

 

 형이 생전에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는지 말하고 싶어서 안달이 났던 송현 씨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내 말에 끼어들었고, 나는 상대가 말에 끼어들었다고 해서 말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둘은 동시에 서로의 힘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다.

 

 “돌절구를 반으로 쪼개는…”

 “호두를 맨손으로 깨는…”

 

 …동시에 말한 것 치고는 그 비교라는 것이 돌절구와 호두였다.

 아니 지금, 호두를 맨 손으로 깼다고 힘 좀 쓰는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인가. 나는 그 귀여운 이야기에 대답하는 대신 바닥을 한번 훑어본 뒤, 모나지 않은 자갈을 찾아 집어들고, 꽉 한번 쥔 뒤 천천히 손을 펴서 보여줬다. 자갈은 한 세 조각 정도로 갈라져 있었다.

 나는 나직하게 말했다.

 

 “이걸 호두로 하구 지금 힘 좀 쓴다고 유세를 떤 거유?”

 “아...”

 “서울내기들 허풍은 참말…”

 

 나의 차가운 눈빛 앞에서, 송현 씨는 아주 침착하게 말을 돌렸다.

 

 “여기서 가까우니 얼른 가시죠. 부탁드리겠습니다.”

 “가찹지 않으면 어색해서 큰일날 뻔 했시유. 그치유?”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빠른 태세전환이었다.

 얼른 앞서서 걷기 시작하는 송현 씨의 뒤를 나는 자전거 손잡이를 붙잡고 따라 걷기 시작했다. 혹시나 뒤를 돌아볼까봐 최선을 다해 장군님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 안타깝게도 상대는 뒤를 돌아보지는 않았다. 나는 한 일 분 정도 최선을 다해 표정연기를 하다가 결국 포기하고, 적당히 입을 열었다.

 

 “흠. 고인을 형이라구 부르는 걸 보면, 가족인가봐유.”

 

 이러니 저러니 해도 어쨌든 정보가 필요한 것은 나였다.

 무섭게 어색한 침묵이 깨지자, 송현 씨는 눈에 띄게 안심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며 걸음을 좀 늦춰서 나와 시선을 주고받을 수 있는 거리로 다가왔다.

 

 “아… 아. 그… 최규현이라고… 3년 전에 죽은 형입니다.”

 “원한도 있담서유, 무슨 형제지간에 그런 원한이래유?”

 “그, 그게, 둘이 싸우고 집을 나간 뒤에 얼마 뒤 죽은 것이라…”

 

 흐음. 없을 법한 일은 아니지만…. 확실히 해 두기는 해야 할텐데.

 나는 목소리를 조금 더 낮춰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그, 엄청 대단한 재산 문제가 걸렸거나 징역을 살아야 할 정도의 누명이 있었거나… 그런 수준의 원한은 아니었쥬?”

 “아, 아닙니다…. 다만… 근데 그게…”

 

 뭐여, 이 미심쩍은 반응은.

 

 “뭐유.”

 “여자 문제가… 있었습니다. 사실 대단한 건 아니라 여자 문제라고 할 것도 아니고… 형이 죽기 전에 우리는 둘 다 한 여자한테 연애를 걸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었고… 먼저 접근한 건 형이었습니다만, 그 뒤에는 제가 점수를 더 땄죠.”

 

 흔해빠지고 지지부진한 이야기다. 나는 혀를 찼다.

 

 “하이고, 그 놈의 연애가 뭐라고.”

 “우리 부모님도 그렇게 말씀했지…”

 

 은근슬쩍 말이 짧아지자 나는 다시 남자를 쏘아보았다.

 내 뜨거운 시선을 받고 송현 씨는 급하게 말꼬리를 덧붙였다.

 

 “아니, 하셨죠.”

 “흠.”

 “부모님은 외려 다른 좋은 집 여식 알아봐줄 테니, 그런 일에 신경쓰지 말고 얼른 장가나 가라며 지청구였어요. 그다지 사려깊은 말은 아니었고… 형은 홧김에 집을 뛰쳐나갔습니다.”

 “생전에도 성질이 급하셨구먼.”

 “그 뒤로 며칠 집에 들어오지 않고 친구 집을 전전하는 것 같았지만, 화나지 않았을 때도 간혹 이번처럼 친구네 집에서 지낸 적이 있었으니 우리는 별 걱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친구들이랑 며칠 거나하게 마시면서 저랑 제 안사람 욕이나 할 생각이었던 것 같았고요.”

 

 뭐, 현재까지로는 거절당하는 것에 익숙치 않은 사람이 마음을 거절당한 뒤 벌어지는 전형적인 일이다. 친구들과 함께 자신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은 사람을 욕하는 것. 나야 해본 적은 없지만, 몇 번 주변에서 그런 소란통에 휘말린 적은 있었다. 근거 없는 소문과 욕설에 휘말린 친구 대신 그 못난 녀석을 몇 대 쥐어박아준 적도 있었다. 거, 그 놈의 연애라는 것이 뭔지.

 어쨌든 이 이야기의 끝은 일반적인 그런 구질구질한 이야기와는 다르게, 퍽 비극적인 것이다.

 

 “뭔가 그러다 사고라도 생겼던 모양이유.”

 “네, 집을 나간 지 한 나흘 째였던가요. 그날도 친구들이랑 거나하게 술 마시고 천변 부근을 걷다…”

 

 송현 씨는 잠시 말을 멈췄다.

 

 “낙상사였습니다. 도로가 안 좋은 것도 안 좋았지만, 떨어진 위치가 운이 나빴죠. 바위에 머리가 깨져서… 병원에 갈 것도 없었습니다. 즉사였죠.”

 

 아주 현실적인 일이었다.

 적당히, 개연성도 없이, 훅 치고 들어오는… 비극적이면서도 누군가는 앞뒤 없는 죄책감에 시달리게 되는- 현실적인, 누군가의 죽음.

 

 “그 날도 꿈을 꿨죠.”

 

 송현 씨는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병원에 가 있는 꿈이었습니다. 가족들과 침상 위에 누운, 흰 천으로 덮인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었어요. 누군지는 몰랐어요. 가족들과 함께 보고 있었다고는 해도, 그 가족도 누가 있는지 얼굴을 확인하지는 않았고, 그냥 막연히 가족들과 함께 있구나, 하는 느낌이었어요.

 의사처럼 보이는 사람이 흰 천을 치켜들어 그 시신의 얼굴을 보여주려는 순간 잠에서 깼죠. 늦잠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주 마음이 무거웠는데도 금방 잊었어요. 그냥 그 날 퇴근하고 나서 형을 찾으러 가볼까, 하고 생각한 정도였는데…”

 

 송현 씨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더니 결국 말 끝을 흐렸다. 우리는 잠시 침묵했다.

 하지만 또 꿈 이야기였다. 이건 들어볼 만한 일이었고...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꿈을… 자주 꾸시는 모양입니다.”

 “간혹 이런저런 일들을 꿈으로 꾸죠. 현실 같은 꿈도 있고, 그냥 백일몽 같은 꿈들도 있습니다. 기억이 안 나는 꿈들도 많고요. 하지만 실제로 그 꿈이 현실과 관련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경우는 별로 없어요. 형의 죽음도 그렇게 병원에서 확인하지는 않았습니다. 아예 시신을 보러 들어가지 않았거든요.”

 

 어쩌면 그런 꿈을 꿔서 그렇게 행동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송현 씨는 작게 덧붙였다.

 

 “참, 그러고보니 전화하셨을 때도 꿈자리가 안 좋다고 이야기하셨죠.”

 “아, 예. 며칠 전부터 같은 꿈을 이어서 꾸고 있었습니다.”

 

 제법 불길하다.

 

 “이번 꿈은, 형이었어요.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죽은 형이었죠. 화가 나 보였어요. 입관할 때 입혀주었던 그 희끗한, 썩어가는 수의를 입고 골목길의 어둠을 틈타 거칠게 걷고 있었습니다. 경성 시내였어요. 꿈에서 깨고 난 뒤, 그 동네가 연희동이었다는 것을 희미하게 떠올렸습니다. 형을 묻은 곳은 연희동 공동묘지였거든요.

 처음에는 형의 3주기가 곧 다가와서 그런 꿈을 꾸었다고 생각했죠.”

 

 송현 씨는 평범한 꿈도 자주 꾸시는 모양인 것 같으니, 모든 꿈에 일일히 반응하지는 않겠지. 실제로 죽은 가족에 대한 꿈을 꾸는 것이 유별난 일도 아니고.

 물론 이번 꿈은 ‘특별한’ 꿈이었던 모양이지만.

 

 “그런데… 그 날부터 매일 밤마다 형의 꿈을 이어서 꾸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형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어요. 다음 날은 새카만 산기슭을 따라 걷고 있었습니다. 사람의 눈을 피하려는 것 같았어요. 이따금씩 도시의 불빛으로 자신의 위치를 가늠해가며…. 형은 씩씩거리며 뭔가 중얼거리고 있었어요. 저는 형의 입모양을 유심히 보았지만, 잘 보이지 않았어요.

 꿈은 계속 이어졌죠. 형은 계속 산을 따라 걷다가, 산을 내려오고, 골목길에 숨어들고… 그 다음 날에는 어느 새 용산 일대까지 왔더군요. 슬슬 그때쯤 깨달았어요. 형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집에 돌아오려는 걸까.

 

 “어젯밤 꿈에는 지금 여기, 우리가 서 있는 보통학교가 나왔어요. 비척거리는 형의 시체가 이 학교 담장을 따라 걸어오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골목길은 아주 어두웠고, 어린애 하나가 눈을 비비며 대문 밖으로 나왔다가 형과 마주쳤습니다. 형은 때릴 듯 주먹을 치켜들었고, 어린애는 기겁하며 안으로 뛰어들어갔죠. 얼굴을 아는 애였습니다. 이름도… 그래요. 이름도 압니다. 재용이던가.”

 

 송현 씨는 희미하게 웃으며 방금 지나친 옆 집 문을 턱으로 가르켜보였다.

 

 “이 집이었습니다. 이 집 아이고요. 그 때 확신했죠. 제가 꾸고 있는 꿈은 꿈도 아니고, 과거의 일도 아니었어요. 지금, 이 동네의 모습을 보고 있었던 거라고요.”

 

 죽은 형이 다가오는 꿈을 꾸고 있었는데, 그게 현실로 밝혀지는 순간이라니. 너무 섬뜩해. 이런 이야기는 들어도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나는 고개를 몇 번 흔들었다. 송현 씨는 말을 이었다.

 

 “아침에 그런 꿈을 꾸고 일어나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더군요.

 하지만 저조차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아내는 만삭의 몸이었고요. 아이가 나올 날도 얼마 남지 않은 사람에게, 이런 상황을 상담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죠.

 

 결국 아내를 재촉해 친정에 보내고 말았습니다. 아주 의심스러워하더군요. 말도 안 되는 말로 자기를 친정으로 쫓아보냈으니, 뭘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어도 백 번은 눈치챘을 겁니다. 사실 꿈 때문에 친정에 다녀오라고 말하는 저 스스로도 유난스럽고 부끄러워서 참…

 

 그런데 아까, 슬슬 어스름이 내릴 즈음에 2층에서 창문을 내려다보니 저 멀리서 누가 오고 있더군요.

 골목길로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들을 밟으며, 약간 어기적거리는 것 같은, 둔중하고 무거운 걸음걸이로, 익숙한 형체가 다가오고 있었어요. 모를 리가 없죠. 가족이었는데.

 

 형은 삭아버린 수의를 입고, 이글거리는 눈으로, 뭔가 중얼거리며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이제 그 입모양을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최송현,

 최송현.

 나였습니다.

 날 찾아오고 있었던 거였다고요.”

 

 송현 씨는 이마를 짚었다.

 

 “첫 번째로 든 생각은 안사람을 친정에 보내놓기 정말 잘 했다는 거였습니다.

 두 번째로는 혼자서는 절대 이걸 해결할 수 없겠다는 거였죠.

 사실 형의 모습을 보자마자 저는 다리에 힘이 풀려서 그 자리에 주저앉았습니다. 오줌을 지리지 않은 것이 고작이었다고요.”

 “뭐, 사람이 좀 부실할 수도 있쥬.”

 

 헉, 아무 말 해버렸다.

 송현 씨는 나를 노려봤지만, 아까의 눈싸움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별 의미 없었다. 게다가 날 열심히 본다고 해도, 내가 누구 눈에도 튼실해 보인다는 사실밖에는 밝혀낼 수 없을 것이다. 송현 씨도 대충 그렇게 느꼈던 모양이다.

 

 “그래, 뭐 저야 부실하다 치더라도, 그러면 그쪽 튼실하신 분은 이제 일을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십니까?”

 

 내가 판 무덤이었기 때문에, 나는 침착하고 조용하게 업무적으로 이야기했다. 왠지 서울말이 되어버린 것은 덤이다.

 

 “뭐… 송현 씨가 위험할 수도 있으니, 일단 제가 들어가서 원한이 있는지, 있다면 좋게 풀 수는 없을지 이야기를 해 보고. 이야기가 안 통하면 주먹으로 하는 거죠.”

 

 송현 씨는 눈에 띄게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거, 탐정사무소쯤 되는데 뭔가… 더… 대단한 건 안 합니까?”

 “아뇨, 탐정은 그런 거 하는 사람 아닌데요.”

 

 준 상, 미리 알려줘서 고마워요.

 나는 야무진 표정을 지으며 덧붙였다.

 

 “그리고 초능력자나, 총 가진 사람, 수상한 존재들을 잘 아는 사람 데려오면 추가금 붙어요.”

 “그 쪽 주먹으로 충분하실 것 같으니 기본 요금으로 하죠.”

 “봐서유. 그래서, 댁은 다 오셨시유?”

 “이제 거의 다 왔습니다. 이제 슬슬 목소리를… 쉬…”

 

 마침 적당한 타이밍이었던 것 같다.

 송현 씨는 검지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나와 시선을 맞춘 뒤, 그 검지손가락을 다시 들어 한 쪽을 가리키며 눈에 띄게 작아진 목소리로 설명했다.

 

 “저기, 저 집입니다.”

 

 벽돌로 된 건물에 기왓장을 올린 이층집이 담장 너머로 보이고 있었다. 퍽 신식으로 고친 집이다. 그렇다고 양옥이라고 부르기엔 기존의 조선 집의 흔적도 아주 많이 남아 있었다. 우리는 발소리를 죽여 천천히 송현 씨의 집으로 향했다.

 높은 곳에 위치해서 오가는 것이나 물 긷는 것은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확연히 눈에 들어오는 집이었다. 높은 곳에 위치한 2층 집이라 더 눈에 잘 보이는 것도 있는 것 같다. 송현 씨가 내다보고 있었다는 곳이 어딘지도 알겠군.

 우리는 발걸음도 조심스럽게 대문 쪽으로 향했다. 작지만 아기자기한 정원이 살짝 엿보이는, 열린 대문 안쪽에서는 확연하게 인기척이 있었다.

 

 나는 송현 씨에게 눈짓했다.

 

 ‘저기?’

 ‘저기.’

 

 저 안에 있는 것은, 그의 죽은 형이 맞는 것일까.

 송현 씨를 왜 찾아온 것일까.

 하지만 답을 알 수 있는 사람은 나 뿐이었다.

 그러려고 온 것이고.

 

 덕분에 마음의 준비는 필요 없었다. 나는 송현 씨에게 눈짓으로 들어가겠노라고 말했다.

 송현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몸에 힘을 주며, 천천히 철제 대문에 손을 댔다.

 심장이 뛴다.

 

 힘을 많이 줄 것도 없이, 손을 댄 것 만으로도 문은 길고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앞으로 서서히 밀려나갔다. 이정도면 충분한 인기척이 될 것이다…

 

 문이 열리자마자 훅 하고 역한 냄새가 났다.

 썩어가는 시체의 냄새.

 삼 년 전에 죽은 형.

 삭아가는 수의.

 

 과연 툇마루에는 시체가 앉아있었다. 시체를 자주 본 것은 아니었지만, 저 사람이 명백하게 죽은 사람임을, 원한을 품고 저승에서 돌아온 사람임을 알아보는 것은 아주 쉬웠다.

 시체는 벼락처럼 나를 돌아보며, 분노로 울부짖었다.

 

 “최송현 네 이놈!!!!!!”

 

 분노와 증오로, 저승에서 돌아온 미련으로, 말라붙은 안구에서 안광을 내며 표효한 그는 벌떡 일어나 내 방향으로 다가오려다… 나를 보고 멈칫했다.

 

 “최송…현…?”

 

 망자는 떨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불안하게 주변을 한번 둘러보고,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 와중에 썩은 입술이 살짝 베어나가 덜렁거리기 시작했다. 망자는 오른속으로 입술을 꾹꾹 눌러 붙인 다음, 조심스럽게 날 향해 되물었다.

 

 “저, 최근에… 새로 이사… 오셨나요?”

 

 합당한 의심이었다.

 

 

 
작가의 말
 

 역시 복수도 때가 있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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