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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고마워 미안해 사랑해
작가 : 지평선
작품등록일 : 2017.10.31

30일 뒤에 지구가 운석에 충돌해 멸망한다.
지구의 멸망을 막으려는 영웅들의 이야기도 아니고,
멸망하는 지구를 분석하는 공상과학물도 아니다.

삶이 30일 남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그 사람들의 버킷리스트.

 
D-26, 사랑은 공통 분모
작성일 : 17-11-28 15:15     조회 : 276     추천 : 0     분량 : 4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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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어쩜 이렇게 좋은 날, 좋은 곳에서 만날 수가 있는지.

 끝날 때가 되어서야 세상은 이렇게 평화롭고 아름답다니.

 

 벤치에 앉아 이런저런 상상, 공상, 망상을 하고 있으니 곧 네가 나타났다.

 너는 멀리서 나를 발견하고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회색 후드집업과 편해 보이는 베이지색 통 넓은 바지. 한 쪽 어깨에는 검은색 백팩을 메고 한 손에는 돗자리 가방을 들고 있었다.

 

 우리는 나란히 공원 주위를 걸었다.

 

 

 "어디 앉지?"

 

 "바람이 잔잔하게 불고 달이 잘 보이는 곳이면 좋겠다."

 

 나는 초저녁부터 떴음에도 불구하고 구름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달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너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바람이 잔잔하게 불고 달이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너는 노트북을 꺼내고 영화를 볼 준비를 했다.

 나는 주위를 살펴보았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하늘은 점점 노란 기운이 가시고 짙은 남색으로 물들어갔다.

 구름은 지나갔고 달은 청명하게 빛났다.

 

 

 "혹시해서 집에 있는 과자도 좀 가져왔어."

 

 너는 가방에서 봉지과자와 비스킷, 쿠키같은 것들을 꺼냈다.

 

 

 "아무튼, 넌 진짜 철저하다니까."

 

 "볼 준비는 다 됐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험도 다가오고 과제도 밀려서 할 일이 산더미 같았던 어느 날이었다.

 계속 집에 있다가는 노트북으로 웃긴 동영상보기, 휴대폰으로 SNS 뒤적거리기로 또 하루를 보낼 것이 뻔했다.

 책이랑 노트북을 가방에 쑤셔넣고 근처 카페로 나섰다.

 

 하지만 공간이 바뀐다고 해서 뭔가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일단 가방을 풀고 노트북과 책을 꺼내서 한 자리 거창하게 잡긴 했는데, 도저히 책을 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개강 첫 주에는 나름 대학생 흉내 내본다고 도서관가서 복습도 하고 했는데,

 딱 그 때 뿐이었다.

 도서관이 아무리 좋아봤자 집보다 좋을 리 없었다.

 수업이 끝나면 바로 집에 와서 라면 끓여 먹으면서 좋아하는 영화를 다운받아 보거나 서점에서 손수 골라온 소설책을 읽었다.

 그게 삶의 낙이었고 세상 제일의 행복이었다.

 그렇게 띵가띵가 논 결과 시험기간이 다가오자 할 일이 갑자기 몇 배로 불어나버렸다.

 

 앞에 놓인 전공책을 폈다. 한 페이지의 면적은 엄청 넓었는데, 그 안의 글씨들은 아주 작았다.

 깨알같은 글씨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나는 진도가 나간 곳 까지 몇 장을 봐야하는 지 세어봤다.

 세고 나니 더욱 까마득했다. 과연 이것을 오늘 안에 끝낼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더욱 하기가 싫어졌다.

 

 영화 딱 한 편만 보고 시작할까?

 

 보고싶은 영화가 있었다.

 왜 재밌는 영화는 꼭 할 일이 많을 때 개봉하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궁시렁궁시렁 결제를 하고 다운을 받았다.

 

 영화는 어떤 세계를 그리고 있었다. 현실에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영화 속 사람들은 무조건 짝이 있어야했다.

 짝이 없으면 어느 외딴 호텔에 감금되고, 주어진 시간 안에 짝을 만들지 못한 사람들은 짐승으로 변했다.

 짝을 만들기 위해서는 서로에게 매력을 어필해야 하는데, 그 매력의 조건은 다름 아닌 '공통점'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억지로라도 비슷한 모습을 연출해 상대의 마음을 얻으려 노력했고,

 호텔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짝으로 인정받은 후 호텔에서 나와 도시의 삶으로 돌아갔다.

 

 재밌는 영화였다.

 나는 영화를 보고 나서 생각에 잠겼다. 포털사이트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장노을?"

 

 

 턱을 괴고 멍하게 노트북을 바라보고 있는 나를 누군가 불렀다.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임혜성이 서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반말하라고 했잖아."

 

 

 임혜성은 자연스럽게 내 맞은 편에 앉으며 가방을 내려놓았다.

 한 손에는 나와 똑같은 전공책이 있었다. 시험 공부를 하러 온 모양이었다.

 

 "오빠도 시험 공부 하러 오셨어요?"

 

 "응. 이제 슬슬 시작해야하니까. 너도 공부하러 온 거야?"

 

 

 쉽게 '네'라는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카페에 온 지 2시간하고도 몇 분이나 지났지만 그 중에 공부를 한 시간은 1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저도 해야죠, 이제."

 

 "아까까지는 뭐 보고 있었어?"

 

 "아, 그게…."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그는 별로 상관 없다는 듯이 가방을 열고 필통을 꺼냈다.

 착착, 공부할 준비를 해갔다. 내 맞은 편에서.

 

 "영화보고 있었어요."

 

 "영화?"

 

 "네. 얼마 전에 개봉한 건데. 사람들이 호텔에 갇히는…. 좀 섬뜩한 영화에요."

 

 "아, 그 영화? 나도 그 영화 봤어. 개봉하고 얼마 안 됐을 때."

 

 "어? 오빠도 보셨어요?"

 

 "응. 난 재밌게 봤는데. 넌 어땠어?"

 

 

 오빠도 이런 영화 재밌다고 하는구나.

 자극적이고 좀 난해할 수 있는 내용이라 보면서 '이 영화는 호불호가 많이 갈리겠구나.', 생각했다.

 그런 영화를 둘 다 '호'라고 말할 수 있다니.

 운명일까? 잠깐 '운명'이라는 단어가 가슴을 스치고 지나갔다.

 

 

 "저도 재밌게 봤어요. 주인공이 쫓길 때는 저도 모르게 손에 땀을 쥐고 봤다니까요?"

 

 "나도 그랬는데. 그 미친 여자가 막 쫓아 올 때 말하는 거지?"

 

 "네네. 그리고 마지막 장면도 진짜 인상 깊었어요."

 

 "어떤 면이?"

 

 "주인공은 공통점을 만들어야 커플이 될 수 있다는 의미없는 강박증 때문에 많은 걸 잃었잖아요. 그런데 마지막에 호텔을 벗어난 이후에도 실명한 여자와 공통점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눈을 찌르려 하잖아요."

 

 "그렇지."

 

 "꼭 비슷한 사람끼리 사겨야하는 건 아니잖아요. 주인공이 바보 같았어요."

 

 "주인공이 바보 같아서 인상적이었던 거야?"

 

 임혜성은 흥미롭다는 듯이 나를 쳐다봤다.

 

 

 "그렇다기 보다는…. 그 바보같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감독이 우리 모습을 비꼬려 한 게 인상적이었어요. 지금은 저도 주인공보고 바보 같다고 하지만 친구 사귈 때 비슷한 느낌이 드는 아이한테 다가가니까요."

 

 "사람은 본능적으로 비슷한 사람한테 끌리는 거 아닐까?"

 

 "본능도 분명 있을 거에요. 하지만 무의식 중에 강박도 있어요. 나랑 맞는 급의 사람과 어울려야 한다. 이런 거?"

 

 "오."

 

 

 임혜성이 내 말을 듣고 알 수 없는 짧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나는 갑자기 말이 없어진 임혜성을 바라보며 너무 내 얘기만 한 것 같아 민망했다. 그것도 굉장히 확신에 찬 강렬한 어조로.

 그런 어조로 말하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의견이 있더라도 쉽게 꺼내기가 힘들겠지.

 영화 얘기로 들떠서 겨우 그런 사람으로 비춰지다니. 한심하다.

 

 

 "그럼 나는 너랑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이야?"

 

 "예?"

 

 

 나는 생각지도 못한 임혜성의 말에 대답 아닌 대답을 했다.

 

 "예,라고 대답한 거야?"

 

 "아니…. 뭐, 같은 영화를 보고 둘 다 재밌다고 느꼈으니까 어느정도 비슷한 면이 있는 거겠죠?"

 

 당황해서 주절주절 말해버렸다.

 

 

 "그럼 친해질 수 있는 거지?"

 

 "왜 그런 질문을…?"

 

 "친해지기 싫어서 계속 존댓말 하나 싶어서."

 

 "아, 아니. 아니에요. 그런 거. 절대 아닌데?"

 

 "방금 반말한거야?"

 

 "아…. 으,응."

 

 

 그는 오늘 만난 이래로 가장 해맑게 웃었다.

 

 입학식 날 맨 처음 임혜성을 보았던 것이 떠올랐다.

 싱긋 웃는 눈웃음이 너무나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그리고 동시에 소희의 머리를 쓰다듬는 임혜성도 떠올랐다.

 

 

 "너 이렇게 말 많이 하는 거 처음보는 것 같아."

 

 "아, 내가 낯을 좀 가려서. 불편한 사람들이랑은 말 잘 못 해."

 

 "나는 편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될까?"

 

 "응. 오늘 편해졌어. 내가 좋아하는 영화 재밌게 본 사람 별로 없었거든."

 

 

 "나도 그래."

 

 

 

 그 날 공부는 결국 못했다. 영화 이야기가 끝나고 음악 얘기도 했는데, 임혜성도 인디밴드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인디밴드 얘기를 한참 하다가 좋아하는 시인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좋아하는 시를 임혜성에게 보여줬고, 임혜성이 이 시를 읽어본 적 있다며 인상 깊어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서 최근에 과제에서 나온 현대소설을 어떻게 읽었는지 공유했고, 이야기가 끝없이 흘러갔다.

 카페 마감시간이 다 돼서야 가방을 둘러메고 밖으로 나섰다.

 

 들어올 때는 아직 해가 쨍쨍했었는데, 나오니 밖이 어두컴컴했다.

 

 

 "오늘 재밌었어. 조심해서 들어가."

 

 "나도 재밌었어. 잘 가."

 

 

 공부는 하나도 못했지만, 어쩐지 마음이 가볍고 뿌듯하고 즐거웠다.

 시험공부보다 더 큰 것을 얻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영화 어때?"

 

 영화가 끝나고 노트북을 접는 너에게 내가 물었다.

 너는 정리를 하면서 생각도 함께 정리하고 있는 건지 한참 동안 대답이 없었다.

 

 "영화 어땠어?"

 

 나는 다시 한 번 물었다.

 

 

 "잔인했어."

 

 오래동안 말이 없길래 얼마나 구체적으로 이야기 해주려 그러나,했는데

 예상치도 못하게 단 4글자가 날아와 가슴팍에 꽂혔다.

 

 "별로 재미 없었어?"

 

 "재미있고 없고가 아니라. 말 그대로 잔인했어."

 

 나는 왜 자꾸 그 말이 '별로였어'로 들리는 건지.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 받을 정도니까. 잔인하긴 했지."

 

 "그런 의미가 아니야. 그 영화 속 세계 자체가 잔인하잖아."

 

 너는 사뭇 진지했다.

 

 

 "반드시 누군가를 만나야하고, 만나지 못하면 이상한 취급 당하거나 짐승으로 변해야하고. 그래서 억지로 자신을 망가뜨려가며 누군가를 만나고."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물론 나도 비슷하게 느꼈다. 하지만 너의 생각은 내 생각보다 훨씬 단호한 것 같았다.

 

 

 "그런 건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해."

 

 "그럼 사랑은 뭔데?"

 

 "진실함."

 

 "진실함?"

 

 나는 '진실'이라는 낯설고도 오묘한 단어를 입안에서 굴려보았다.

 

 

 "진실한 눈으로 상대의 있는 그대로를 좋아하는 것. 혹은 그 이상으로 아끼는 것."

 

 그래. 너는 진실함과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 비슷하기만 한 사람은 없어. 그리고 비슷해져야할 필요도 없고. 비슷한 사람을 만나야하는 것도 아니야.

 네가 말했잖아. 사람을 좋아하는 데는 이유가 없다고. 이유를 찾을 필요 없어. 이유없이 마음껏 좋아하면 되는 거지."

 

 나는 진실하게 빛나는 너의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새까만 밤, 어둠. 그 아래서 네 동공은 흔들림이 없이 또렷했다.

 

 

 "좋은 영화였어."

 

 "좋은 감상이야."

 

 

 나를 있는 그대로 봐줄 수 있는 사람.

 보이는 그대로를 믿을 수 있는 사람.

 
작가의 말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작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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