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쉬는 시간 나온 형진이는 화장실을 향해 걸어간다. 같은 반 반장이 형진이를 보자 말했다.
반장: 형진아. 영어 선생님이 너 보자는데?
형징: 나? 왜?
반장: 몰라 아까 말했는데 내가 깜빡했다. 미안….
형진이는 계단을 내려와 교무실로 향한다. 일본어 선생님은 창가에 자리 잡고 있다. 높은 구두 신고 굳이 창가에 같아 앉아 있다. 형진이에게 오라고 손가락을 까딱인다.
일본어 선생님: 형진? 왜 늦게 와?
형진: 반장이 지금 말해 줬습니다. 바로 내려 온 거예요.
일본어 선생님: 너 내가 교생이라 우습지?
형진: 무슨 말씀이세요
형진이는 눈을 부릅뜨며 대답했다. 선생님은 웃으며 답했다.
영어 선생님: 형진이는 이럴 때가 가장 귀여워. 학생이 학생답지 않고 말이야.
영어 선생님은 형진이의 어깨를 긴 손톱으로 누르며 말했다. 선생님은 윙크를 하는 듯 지그시 눈을 감으며 말했다. 형진이는 손가락을 치우며 말했다.
형진: 용건이 뭐예요?
영어 선생님: 출석했나 확인한 거야.
당황을 기색이 영역하다.
형진: 담임선생님도 아닌데 뭔 출석체크를 해요. 제대로 된 용건도 없으면 따로 부르지 마세요.
영어 선생님은 몹시 당황한듯한 표정을 지었다. 얼굴이 일그러졌다. 손톱을 보며 말을 이어 나갔다.
영어 선생님: 그래. 나가봐.
형진이는 교무실을 나왔다. 영어 선생님에 당황스러운 호출에 기분이 상해 있다. 이렇게 사이가 나빠지면 성적에도 영향을 미칠 거란 생각에 몹시 예민해졌다. 학교가 끝날 때까지 형진이는 기분이 썩 좋아지지 않는다. 마지막 수업을 마치는 벨 소리가 울렸다. 형진이는 책가방을 정리한다.
여학생: 선배님.
형진이 뒤에서 들릴들 말듯한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건다. 형진이는 뒤돌아 보지 않는다. 쌓고 있던 책가방을 마저 쌓는다.
여학생: 저기...형진 선배님…. 형진이는 그제야 돌아본다. 조그만 애가 서 있다. 손에는 초콜릿 우유와 사탕을 들고 있다.
여학생: 선배님…. 이거 선배님이 좋아하는…. 형진이는 중간에 말을 끊으며 대답한다. 안 그래도 저기압이던 형진이는 평소보다 조금 더 예민한 말투로 말한다.
형진: 이런 거 앞으로 하지 마.
책상 서랍을 뒤적인다. 서랍 안에 들어 있는 사탕과 과자를 다 꺼낸 뒤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형진: 네가 줬던 거 다 들고 가. 너나 많이 먹어.
형진이는 이름도 모를 학생에게 차갑게 말을 한다. 그리고 돌아서서 나간다. 여학생은 혼자 남겨졌다. 반에 남아 있던 학생들은 쳐다본다.
형진이는 운동장에 나와 서성인다.멀리서 형진이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민훈: 형진아.
형진이는 뛰어가 형한테 안긴다.
형진: 형아. 나보러 학교 왔어?
민훈: 응 너보러 왔지. 덕분에 선생님들도 만났어.
형진: 어 진짜? 형아 선생님들이 아직 기억하나?
민훈: 그럼.형이 전교권이었잖아. 오랜만에 인사하고 너무 좋아서.
민훈이는 학교 주위를 둘러보며 말을 이어 나간다.
민훈: 와 교복 입은 애들 보니까 예전 생각난다.
형진: 형 늙었다 진짜. 왜 이렇게 말투가 할아버지 같냐.
민훈: 야 나 너보다 5살밖에 안 늙었거든? 어쭈. 할아버지랑 한번 싸울까?
민훈이는 싸우려는 자세를 장난스럽게 취한다.
형진: 아 형아 창피하다. 나 먼저 갈래
형진이는 장난치는 민훈이가 웃기다. 빠른 발걸음으로 민훈이를 제쳐 걷는다.
민훈: 어쭈 형보다 먼저 걸어?
형진이랑 민훈이는 누가 빨리 걷나 시합이라도 한 듯 서로 빠른 걸음으로 걷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뛰기 시작했다.
민훈: (아직 헥헥 거리며 말한다) 야 선생님이 그러던데 너 학교에서 인기 많다며?
형진: 몰라. 왜 그러는지.
민훈: 잘난척 하기는
형진: 나 그런거 신경 안써.
민훈: 그래서 성적에도 씨크한거냐? 너 성적표 보니까 진짜 안 되겠더라.
형진: 아 뭐야 부모님도 아닌데 내 성적표를 왜 보여줘.
민훈: 야 내가 너 아빠지. 어릴 때부터 내가 너 키웠잖아.
형진: 뭐 그래 봤자 형이지. 이젠 키도 비슷 비슷 한데
민훈: 야 내가 지금껏 너한테 준 용돈 다 내놔.
민훈이는 형진이한테 장난스레 헤드락을 건다. 천천히 집으로 걸어간다.
형진: 아, 치사해 나도 빨리 돈이나 벌어야지.
민훈: 돈보다 공부가 먼저야. 너 지금 고3이 잖아.
형진: 어휴 알았어 이젠 아주 밤낮으로 잔소리에 시달리겠구먼.
민훈: 너 저기 카페 보이지? 너 오늘 부터 저기서 과외 해야되.
형진: 형아... 오늘부터는 너무한거 아니야?
민훈: 벌써 돈 다 내고 왔어. 까불지 말고 선생님 말씀 잘듣고. 공부 열심히 해
형진: 아 형....
형진이는 민훈이를 데리고 카페에 들어선다. 카페에는 손님이 두명 밖에 없다. 지민이는 카운터에서 나오며 인사한다.
지민: 안녕하세요.
민훈이는 형진이를 가르키며 대답했다.
민훈: 안녕하세요, 저는 아침에 뵀죠? 제 옆에 있는 애는 제 동생 형진입니다. 고3이에요.
형진: 아, 안녕하세요.
지민: 네. 오늘부터 시작하길 원하신다고... 하셨죠?
민훈: 네. 책은 제가 챙겨 왔습니다. 형진이가 예전에 본 시험지도요...
형진이는 도움의 눈빛을 보냈지만 민훈이는 책과 시험지들을 가방에서 꺼내기 시작했다.
지민: 자리는 여기로 앉을까요?
카운터에 가까운 창가 자리를 가르켰다. 민훈이는 자리에 앉으며 대답했다.
민훈: 우선 형진이는 공부를 못하진 않아요. 근데 지금 이 점수로는 진짜 답이 없어요. 영어는 제가 예전부터 도와줬었는데. 제가 미국에 가 있는 동안 완전 놓았더라고요.
지민: 아.. 잘 알겠습니다.
민훈: 그럼 부탁드릴께요. 저는 먼저 가보겠습니다. 형진아 조금 있다 집에서 보자. 열심히 하고 와.
형진: 으응...
민훈이는 카페를 나갔다. 지민이는 자리에 앉아서 필통에서 필기도구를 꺼낸다. 형진이한텐 관심도 없다는듯 시험지만 계속 훑어본다.
형진: 나한테 질문 안해요?
형진이는 당돌하게 쳐다보며 물었다. 지민이는 지지 않고 질문한다.
지민: 그래 질문부터 하자, 너 문과? 이과?
형진: 예체능인데? 나 예술할 건데? 난 딱 떨어지는 정답 찾는 것도 싫고. 정의 내려진 것만 답으로 외우는 학문도 싫어
지민이는 팔짱을 끼며 고개를 까딱이며 다시 질문했다.
지민: 그래? 원하는 목표가 어딘데?
형진: 글쎄. 그냥 엄마가 원하는 만큼? 나 앞으로 몇점 받을까?
지민이는 손까락으로 돌리던 펜을 탁자위에 탁 하고 내려 놓는다. 안그래도 차가운 얼굴에 더욱더 정색을 하며 말한다.
지민: 지금 그걸 나한테 묻는거야? 너의 점수를? (한숨을 푹 내쉰다) 굳이 답한다면 내가 널 계속 과외 할 수 있게 딱 적당한 점수를 받는 거 그래야 난 학비를 벌 수 있거든. 지금 너 실력에서 적당한 점수 받는 거 가능하겠어?
형진이는 지금껏 다른 스타일에 선생님을 만난 거 같아 흥미롭다. 항상 자기가 까탈스럽게 굵었는데 상황이 바뀐 거 같아 관심이 생긴다
형진: 그래? 그쯤이야 해볼께.
지민: 그리고 학생! 말 놓지 마! 나 여기 선생님으로 온 거야
지민이는 강하게 한마디를 건넨 뒤 바로 책을 펴고 진도를 나가려 한다. 형진이는 그런 지민이를 바라본다.
형진: 왜 이렇게 혼자 심각해…. 요. 그냥 어려 보여서 편하게 말한 거 뿐이야…
지민: (얼굴이 살짝 불그레해졌다. 놓고 있던 펜을 다시 집으며) 난 매 순간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내일이 없는 나이가 됐어.
형진이를 향해 손가락을 뻗으며 말을 이어 나간다.
지민: 넌 그때가 왔을 때 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하는 거야.
형진: 참 인생 심오하게 산다...요
지민: 책 펴. 오늘부터 과외 본격적으로 시작이야. 진도 빨리빨리 나가야 하니까 잘 쫓아와
지민이는 역시 형진이에게도 차갑게 대했다. 형진이는 그런 지민이가 신기했다. 지금껏 대부분의 여자는 자기를 먼저 좋아했는데, 항상 넘치는 관심을 받았는데 지민이는 형진이를 사람 취급도 안 했다. 돈 취급을 하는 게 분명했다. 그러나 그것이 형진이를 기분 나쁘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의 생각을 꾸밈없이 말하는 그런 지민이가 신기했다. 다들 자기한테 잘 보이려고 매일 애쓰고 꾸미고 다가오는 사람들과는 너무 달랐다. 자기를 싫어하는 듯한 표정을 하는 지민이에게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한편으론 그런 지민이를 보고 있노라면 한편으론 안쓰러웠다 이렇게 여유가 없을까? 왜 이렇게 얼어붙어 있을까? 너무 마음이 닫친 사람 같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