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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밤의 아이들
작가 : 어설트
작품등록일 : 2017.6.17

이곳은 죽은 자들의 세계, 사자(死者)의 세계다.
동화 같은 세상에서 벌어지는 죽은 자들의 이야기.

 
9. 비취 성의 군주들 (5)
작성일 : 17-11-27 03:11     조회 : 277     추천 : 0     분량 : 4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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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솔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입술에 닿는 입김이 뜨거웠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말이 제대로 전해졌는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침묵이 흘렀다. 혹시 고열에 귀까지 먹어버린 걸까. 차일을 바라보았지만 그는 역시나 아무 말도 없었다.

 

  여기는 비취 성이었다. 그러니까, 더 이상 군주가 없는 비취 성이었다. 솔은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한 때 비취 성의 군주였던 해랑을 바라보니 그는 솔의 시선을 피한 채 팔짱을 꼈다가, 한쪽 발로 바닥을 톡톡 두드렸다가 결국에는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내가 말해도 되죠?”

 

  그는 방 안에 있는 두 사람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창밖만 보고 있는 서란도, 방에 들어온 이후 입 한 번 열지 않은 차일도 그다지 대답할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어느 날.”

 

  해랑도 허락을 기대하지 않았던 듯 곧장 이야기를 시작했다.

 

  “탑은 미쳐 날뛰는 비취 성을 없애버려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이야기의 운을 뗐지만 해랑은 별로 좋은 시작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해랑은 솔이 무슨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전에 납득시켜야 할 이야기가 있었다.

 

  “그때 한 탑의 사자가 우연한 기회에 비취 성의 군주가 되었어요. 그 자는 같은 비취 성 군주 하나와 유난히 사이가 좋았는데, 어느 날 그 군주는 새로 군주가 된 자가 탑의 사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죠. 아니, 다시 말하죠. 그 자는 비취 성의 군주이자 탑의 사자였죠. 비취 성을 쳐부수기 위해 심어진 탑의 첩자였던 겁니다. 고작 첩자 짓일 뿐인데 군주까지 되다니 쓸데없이 거창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정확한 계산이었어요. 비취 성의 뿌리를 뽑으려면 그 정도는 화려해줘야 하거든요. 비취 성은 오래 산 나무처럼 잔뿌리가 많았으니까. 그 자의 계획을 들은 비취 성의 군주는 탑의 사자의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거기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하나는 비취 성의 군주가 된 탑의 사자와 사이좋게 지내고 싶었고, 두 번째는 지극히 개인적인 사정으로 동료이자 같은 비취 성의 군주들이 마음에 안 들어서 갈아 마셔 버리고 싶었기 때문이죠.”

 

  장황한 이야기를 마친 해랑은 짧게 숨을 들이켜며 솔의 안색을 살폈다.

 

  “그 탑의 사자가 서란이고, 거기에 따라 붙은 게 저예요.”

 

  솔은 멀찍이 떨어져 있는 서란을 돌아보았다. 그녀는 솔이 이 방에 없는 것처럼 출곧 창밖만 보고 있었다. 마치 만들어진 조각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이 방에 있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비취 성을 없애려면 뿌리를 쳐내야 하고 씨앗을 뿌렸다면 땅을 갈아엎어야죠. 탑에 적대적이고 비취 성의 뜻에 어울리는 지배자를 한 자리에 모으고 그들을 전부 지하에 보내버리는 게 이번 계획이었어요. 오랫동안 준비해왔고, 한 순간에 끝낼 수 있는 그런 화끈한 파티를 말이죠. 이 모든 일은 당신도 알고 있는 도현이라는 자가 계획했어요. 그리고 현재, 짐작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이 비취 성과 인근의 도시에 더 이상 지배자는 없어요.”

 

  말하자면 솔은 그 난장판 속으로 뛰어든 셈이다. 그 안에서 만난 해랑은 솔이 어딘가 수상스러웠고, 마침내 그녀가 탑의 사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도 이 비밀작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탑의 사자라는 것을.

 

  해랑의 판단은 가혹했다. 사정을 모르고 보면 이번 소탕 작전은 파티 중 비취 성에서 벌어진 하극상이었고, 사명 의식이 투철한 탑의 사자가 본다면 가만있을 수 없을 만큼 악랄해 보이는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해랑은 솔을 위험요소로 판단했다. 어떤 목적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탑의 사자가 이 소란 통으로 뛰어든 건진 알 수 없으나 방해요소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게 탑의 사자건 무엇이건 이야기가 달라진다. 눈에 들어온 방해물은 가급적 그때그때 처리하는 게 해랑의 성격이었다. 그래서 당장에 대처할 수 있던 것이 독이 발린 무기였다. 단지 그뿐이었다.

 

  “비어진 지배자의 자리에는 탑의 사자들이 임시로 맡게 될 겁니다. 도시는 있는데 자리가 비어있다면 또 다시 누군가가 앉고 싶어 할 테니까요.”

 

  지하로 떨어진 지배자들, 그들이 지하로 보내어진 시민들의 입장에선 환영할만한 일이었다. 탑을 공격했던 꼭두각시에 담겨 있던 영혼, 유리병에 갇혀 있던 영혼들이 평범한 길거리와 비취 성에서만 추출되었다고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결국엔 그들 모두 대가를 치른 셈이다. 그리고 주인이 사라진 도시는 탑의 소유가 된 것이나 마찬가지가 됐다.

 

  “탑은 더 이상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거죠. 인간의 영혼을 먹는 것도 모자라 여러 도시들이 나서서 사람들의 영혼까지 뽑아가고 있으니. 그리고 그런 기계들은 모두 하늘 성에서 나온 것들이죠. 탑은 하늘 성과 싸울 준비가 된 거죠. 금방 전쟁이 일어날 겁니다.”

 

  마지막은 거의 속삭이듯 말하는 해랑은 어딘가 흥분한 듯한 모습이었다. 마치 재미있는 경기를 눈앞에 두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물론 이 이야기는 해랑의 추측이었다. 그러나 이번 일에 참여한 대다수의 사자들 역시 그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제아는요?”

 

  조용히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솔이 조그만 목소리로 물었다. 그 이름이 나오는 순간 해랑은 뜨끔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아무래도 자칭 저항군이라고 하는 자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다. 줄줄이 떠들어대던 해랑은 답지 않게 잠시 입을 다물었다. 여지없이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그이지만, 제아에 관한 것은 그에게도 썩 좋은 일이 아니었다.

 

  “비취 성의 군주들은 애초부터 제아를 데려오려고 했어. 제아는 비행선을 조종할 수 있었고, 군주도 아니었으니 탑에 잡힌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애에게는 아무 짓도 못할 거라고 생각했지. 비취 성의 군주들은 탑에 대해 잘 알고 있었어. 정확한 예측이었지.”

 

  줄곧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서란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솔을 바라보았다.

 

  “제아는 여기 오고 나서 몇 번이나 도망치려고 했어. 그리고, 그럴 수 없었고. 제아는 너무 어렸어. 그래서 다루기가 쉬웠지. 안타깝게도.”

 

  그럴 수 없었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서란을 시선을 내리깔았다.

 

  “이것만 알아둬요. 제아가 원해서 한 일들이 아니었다는 것.”

 

  해랑이 대답 없는 서란을 대신해서 말했다. 솔은 침대의 이불을 꽉 움켜쥐었다. 저들이 말하는 그 모든 게 제아에 대해 얼렁뚱땅 넘어가고 싶어하는 변명처럼 들렸다.

 

  “왜 도와주지 않은 거예요?”

 

  기침이 터질 것 같아서 솔은 이어질 말을 삼키고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나 마음엔 원망이 맴돌았다. 당신들은 같은 편이라면서.

 

  “소탕이 시작되자마자 나는 비취 성의 군주들을 가장 먼저 처치했어. 그게 우리 한계였지.”

 

  시선을 내리깔았던 서란이 눈을 들어 다시 솔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매끄럽게 올라간 눈매는 사실을 고하듯 담담할 뿐이다.

 

  “우리의 일이 훨씬 중요했으니까.”

 

  “제아를 그렇게 뒀어야 했어요?”

 

  “그럼 일을 전부 망치고 그 애를 감싸야 했을까? 네가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서란은 단 몇 걸음 만에 솔의 앞으로 다가가 침대에 앉아있는 그녀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이번 일에 걸린 도시만 20여 곳이었어. 이 일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하겠니? 그 많은 도시의 지배자들을 한 곳에 몰아넣는 일이 쉬웠을 것 같아? 우린 이 일로 수천의 사람들을 구했어. 어느 쪽이 우선이었을 것 같아? 현실을 똑바로 봐. 머리 좀 식히고 다시 생각해 봐.”

 

  쥐었던 솔의 옷깃을 거의 밀치듯 놓으면서 서란은 방을 나갔다. 솔은 쓰러지지 않기 위해 한손으로 몸을 받쳐야 했다. 해랑은 서란이 나가버린 문을 한 번 돌아본 뒤에 어깨를 으쓱였다.

 

  “틀린 말은 아니에요. 좀 쉬어요. 그런 상태로는 머리도 안 돌아갈 테니까.”

 

  해랑이 나가고 그의 걸음 소리도 멀어졌다. 솔의 몸이 천천히 쓰러졌다. 눈을 감고 베개에 머리를 댔다. 남은 한 사람의 걸음 소리가 들렸다.

 

  “이상해요.”

 

  걸음이 멈췄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여태껏 서 있었던 차일은, 문으로 향하려던 것을 멈추고 솔을 돌아보았다.

 

  “제가 알던 세상이 아닌 것 같아요.”

 

  너무도 많은 일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솔은 파티 장에서 있었던 커다란 싸움에 참여해 본 적이 없었다. 그곳은 흡사 전쟁터 같았다. 난생 처음 겪어보는 고통에 시달렸다. 열이 가시지 않는다. 몽롱한 정신 속에 매섭게 꽂힌 이야기들이 지워지지 않는다. 어느 한 쪽이 무너져야 끝나는 싸움. 그것에 희생되는 것들, 그리고 끊임없는 욕심.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아요. 대체 다들 이곳에서 무엇을 원하는 걸까요.”

 

  고개를 파묻자 안 그래도 갈라진 목소리가 웅얼거렸다.

 

  “믿어지지 않아요.”

 

  “네가 알던 세상 맞아.”

 

  솔은 다시 고개를 바로 했다. 묵묵히 서 있는 차일의 두 다리가 보였다. 솔은 추운 듯 이불을 끌어당겼다. 몸을 움츠렸다.

 

  “사람은 늘 무언가를 탐했고, 그래서 누군가는 빼앗겼고, 누군가는 분에 못 이겨 울었지.”

 

  아, 들은 적 있는 이야기다. 해랑도 비슷한 얘기를 했었다.

 

  “그곳에 살던 사람들이 바로 이곳에 있는 우리다. 살든 죽든 우리는 우리다. 환경과 방식이 바뀌었다고 본질이 바뀌진 않아. 단지 네가 몰랐던 것뿐이지.”

 

  그의 두 다리가 돌아서더니 솔의 시선 밖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걸 깨닫기엔 너는 너무 일찍 죽었어.”

 

  방 안을 밝히던 빛이 사라졌다. 방을 침범하던 문틀의 네모난 빛이 점점 좁아졌다.

 

  “쉬어라.”

 ‘

  이윽고 완전한 어둠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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