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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흑야 ( 黑夜 )
작가 : 은기라
작품등록일 : 2016.9.1
흑야 ( 黑夜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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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의 몰락 귀족 집안에서 태어난 쌍둥이 형제, 하르켈과 유르켈. 아버지는 형인 하르켈을 춥고 가혹한 군사 훈련 기관인 챠티크 섬으로 팔아버린다. 아르스. 다섯 개의 땅으로 이루어진 대륙이자 나라. 흔들리는 왕권 사이 자치를 요구하는 귀족들이 늘어가고, 왕자가 귀족이 아닌 북쪽에서 온 보잘것없는 소녀를 사랑하면서 수도는 혼란과 음모에 잠겨간다. 십일년 후에 하르켈이 섬에서 나왔을 때, 죽은 줄 알았던 동생은 수도의 대귀족이 되어있었는데…… 네이버 챌린지리그에서도 연재 중입니다 :) http://novel.naver.com/challenge/list.nhn?novelId=561082

 
01 화, ' 어쩌면 우리는, 아직까지도 '
작성일 : 16-09-01 00:17     조회 : 1,375     추천 : 4     분량 : 6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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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의 나는 한 번도 어머니를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비단 같은 살결을 갖고 있었다고, 마을 사람들이 알려주었을 뿐.

 

 비단 같은 살결이란 게 뭐지? 그게 어떻게 생겼단 말이야? 북부의 몰락한 귀족, 농부와 무두장이들 틈에서 살아가던, 평민이나 다름없던 우리 집은 너무나도 가난해서 가문에 마지막 남은 후손인 동생과 내가 얼어 죽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그런 내가 비단을 본 적 있을 리 없었다.

 

 유르가 내게 손짓을 하던 기억이 난다. 아이는 나를 데리고 한밤중에 밖으로 나갔다. 차가운 북풍의 어둠이 우리의 뺨을 매만졌고 우리는 잡은 손에 힘을 더했다.

 

 오직 우리의 발자국만이 눈밭에 남게 되자 유르는 걸음을 멈추고,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비단이란 저 하늘같은 거야."

 

 흑야의 밤, 낮에도 해가 없는 나날이었기에 대지는 죽음처럼 차갑게 얼어붙어있었다. 밤하늘, 내 동생의 새하얀 손끝 너머 그 어둠 위로, 별들만이 넘실거렸다. 흔히들 흑야의 나날에는 땅이 죽고 하늘만이 살아있다고 말하는데, 정말 그랬다. 오로지 푸르고 붉은 연기가 거대한 불꽃처럼 일렁이는 그 하늘만이 아름다웠다.

 

 "엄마는 저 하늘처럼 아름다웠던 거야."

 

 나는 그 말을 믿었다.

 

 

 

 

 

 내 이름은 하르켈 라노프. 동생은 유르켈 라노프였다. 내가 '유르'라고 줄여 부르길 좋아하는 그 아이는 나와 같은 날에 태어난 쌍둥이였다. 나이 차이가 날 리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꼬박꼬박 나를 형이라고 불렀다.

 

 그렇다고 그 아이가 나를 존중해줬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나는 멍청하고, 여러 방면에서 맹한 구석이 있었다. 잘하는 게 있다면 싸움박질하고 물어뜯는 것 정도. 집에 엄마가 없다고 놀려대는 아이들과 늘 그 짓을 되풀이했기 때문에 아버지는 나를 경멸했다. 모든 방면에서, 내가 동생과 닮은 건 똑같은 외모밖에 없었다.

 

 유르가 흑야의 밤하늘에서 비단을 보여준 이후, 나는 어머니가 온 마을 사람들의 입에 아직까지 오르내릴 정도로 뛰어난 미인이었다는 사실을 굳게 믿는다. 왜냐면 동생과 나는, 내 입으로 직접 말해도 우습지 않을 정도로 무척 아름다웠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그건 알고 있었고, 귀족의 피는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더니, 혀를 찼다. 그래봤자 우리는 몰락한 가문이었지만. '라노프'라는 이름은 이미 오래 전에 바스라져가고 있었다. 거기에 매달리는 사람은 우리 아버지밖에 없었다.

 

 우리 아버지, 그는 이제 죽고 없는데, 나는 그 사실을 다행으로 여긴다. 내 나이와 내 동생의 나이가 열두 살이 되던 무렵 그는 우리 두 형제를 팔아 돈을 챙겼다. 이제부터 그 얘기를 할 것인데, 이야기는 겨울이 다가오던 어느 추운 가을 밤, 마을 사람들이 흑야를 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영주가 자신의 성문을 연 그 날 밤으로부터 시작된다.

 

 

 

 

 

 아르스는 수도를 제외하고 다섯 개의 땅으로 나누어져 있다. 동생과 나는 그 중 가장 북부인 '오르토'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그 오르토에서도 가장 북부에서. 그야말로 아득한 대륙의 끝이었는데, 우리보다 더 북부에 사는 것들은 눈보라와 얼음밖에 없었다.

 

 이토록 아득한 대륙의 북쪽에서는 가을이 끝나갈 때 흑야가 시작된다. 낮이 없는 밤이 찾아오는 것이다.

 

 계속되는 밤, 우리는 그걸 흑야라고 불렀다. 흑야에는 사람이 많이 죽었다. 맹렬한 추위는 태양이 타오르지 않는다면 더욱 심해지니까.

 

 흑야의 밤에 북부 사람들이 모두 죽어나가는 걸 방지하기 위해 영주의 성은 매년 흑야가 끝날 때까지 마을 사람들을 받아들였다. 지하의 포도주 저장고, 그 안에 두꺼운 장막과 짐승의 가죽으로 겹겹이 두른 간이 천막, 혹은 농기구와 건초 더미를 모아놓은 거대한 마굿간. 사람들은 삼삼오오 그 안으로 모여 들었고 함께 겨울을 보냈다. 태양이 없는 하늘, 빛이 없는 그 잔인한 계절을. 그 기간에는 죽음마저 대기를 떠돌아다닌다 하여 자식 가진 어머니들은 아이들의 호흡마저 조심하도록 일렀다.

 

 이토록 잔인하고 끔찍한 계절임에도 불구하고 밤하늘이 가장 아름다운 나날이라고 말한다니 이는 역설이지.

 

 빛나는 별들은 눈보라가 그치고 맑을 때면, 마치 은하수에 흐르는 모든 별들마다 수백 개의 촛불을 밝힌 듯 일렁였다. 태양을 대신하려는 듯 하늘이 타올랐다. 붉고 푸른 갖가지 색으로 타올랐다. 태양이 뚫고 나오려는 거야, 누군가는 말했다. 가둬두는 걸 참을 수 없어 불을 지르는 거지. 하지만 우리의 겨울이 너무나 춥기 때문에 기다리는 것 뿐이야. 봄이 오기까지를.

 

 말하자면 동생과 나는 태양마저 거스를 수 없는 가혹한 추위 속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보다 더 가혹한 곳이 있다면 챠티크 섬 밖엔 없었다.

 

 여기보다 더 높은 곳에 있으며, 바다 건너 서쪽, 아르스 대륙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서북쪽의 바다 위에 일년의 여섯 달은 흑야의 암흑이 뒤덮고, 해가 있는 여섯 달은 얼음보다 싸늘한 비가 내리는 곳. 자식이 죽더라도 상관없는 가혹한 귀족 아버지를 둔 집안의 자제들이나, 돈이 필요한 아비의 손에 팔려가는 아이들이 있는 곳.

 

 대륙 그 어디와 비교를 하더라도 가장 혹독하고 잔인한 군사 훈련을 시키는 곳이었다. 훈련을 마친 사람에게는 수료증과 함께 그 어느 군대를 가더라도 환영을 받는 영광이 주어졌으나 상황이 이렇다보니 지원자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챠티크 섬의 군사 훈련 기관은 돈을 주고 아이들을 사오곤 했었다. 그 챠티크 섬에 열두 살의 내가 팔려갔다.

 

 

 

 

 

 팔려가기 며칠 전 나는 영주의 성 안에서 또 싸움질을 하고 말았는데 이유는 앞서 말했던대로, 늘 같았다. 성의 지하 창고에 마련된 우리 집안의 임시 거처로 돌아온 나는 입 안에 뭔가 고여있는 걸 느끼고, 밖으로 뛰어나가 차가운 눈 위에 퉤 뱉었다. 피와 함께 살점이 떨어져나왔다.

 

 나는 깜짝 놀라 혀를 굴러 입안을 훑었는데, 내 것은 아니고 나랑 싸움질한 녀석의 것이었다. 얼마 안 되는 양이었지만 나는 기쁨을 느꼈다.

 

 지하의 계단을 타고 조그맣게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유르의 발소리였다.

 

 "다쳤어?"

 "아니."

 "그러지마, 형."

 "왜? 엄마를 모욕한 저 놈들을 가만 놔두는 게 낫단 거야?"

 

 유르는 내게 다가와 바닥에서 눈뭉치를 들어 나를 닦았다. 내 주먹과, 입가에 묻은 피를. 차갑고 서늘한 감촉이 하나씩 나를 지나갈 때마다, 유르가 버리는 눈들로 내 주위가 붉어졌다.

 

 "그게 아니라, 형에게 나쁜 일이 생길 것 같아서야."

 

 그리고 그게 사실이었다. 그 때 그 아이 말을 들었어야 한다.

 

 밤이 되자 바람이 거세졌고 마지막으로 들어온 마을 사람을 확인한 영주의 병사들이 지하의 출입문을 닫았다. 아침이 될 때까지 이제 아무도, 이 지하를 나갈 수 없는 것이다.

 

 아버지는 영주의 성에서 일을 하고 온 대가로 얼어서 딱딱한 빵과 한 병의 냄새나는 수프를 들고 돌아왔다. 눈치 빠른 유르가 그것을 받아 싸늘한 돌바닥 위에 올려놓고, 짚을 깔아 저녁을 차리려는데 그가 이렇게 말했다.

 

 "챠티크 섬에 한 명을 보내기로 했다."

 

 아버지가 그렇게 말했을 때 나는 기절하는 줄 알았다. 그건 이 작자가 우리 중 한 명을 돈 받고 팔아넘기기로 했다는 말이나 다름이 없었다.

 

 한 명을 보낸다고 했으니 내가 아니면 동생을 보낸다는 말이었고, 그건 첫 번째로 최악인 상황이거나 두 번째로 최악인 상황을 의미했다.

 

 "너 말이다. 하르켈."

 

 맙소사. 이건 첫 번째로 최악인 상황이었다. 내가 어떻게 기절도 하지 않고 버틴 건지.

 

 "제가 더 영리해요."

 

 유르켈은 그렇게 말했다. 아버지가 눈썹을 치켜뜨고 자신을 바라보자, 그저 있는 사실을 그대로 얘기하는 거예요, 아버지. 라고 덧붙이는 유르의 목소리는 웅웅거리며 내 귓가에 맴돌았다.

 

 "그러니까 네 형을 보내는 거야. 영주님은 이 겨울 동안 쓸모있는 마을 아이들 몇을 데리고 신성한 빛의 말씀을 공부하실 계획이니까."

 "신성한 빛의 말씀이라구요?"

 "너는 영리하지. 영주님의 가르침을 받고, 학자가 될 거야."

 

 그리고 그는 나를 보면서 혀를 찼다. 비웃던 그 뒤틀린 입가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저건 늘 싸움이나 하지. 분명 챠티크 섬에 가서도 잘 싸울 거야."

 "아버지. 형도 학자가 될 수 있어요."

 "군인 아들 하나, 학자 아들 하나를 둘 거야. 그러면 쓰러져가는 우리 가문도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거야!"

 

 나는 그가 미쳤다고 생각했는데, 미친 사람의 목소리는 늘 단호하기 마련이었다.

 

 "물론 그 아들이 하나라도 살아남는다면 말이지."

 

 

 

 

 

 밤이 깊어 천막 안이 조용해지는데도 사람들은 곳곳에 켠 등불을 끄지 않았다. 흑야의 눈보라가 몰아치는 저 성 밖보다는 낫겠지만, 그래도 영주의 성 지하는 끔찍하리만큼 차가운 돌바닥이었다.

 

 나는 짚더미 위에 누워, 몸을 웅크리고, 찢어질 듯 날카로운 바람 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해보았지만 잘 수 있을 리 없었다. 동생과는 서로 부둥켜안고 있었다. 딱히 형제애가 넘쳐나서 그랬다기보다는 추위를 견디는데 서로 끌어안는 것만큼 좋은 게 없었다.

 

 나는 죽으러 간다. 나는 죽으러 갈 것이다…… 그 충격으로 빠져, 나는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 같았다. 손발이 몹시 차가웠다.

 

 "나는 형이 그 섬에서 죽을 거라고 생각해."

 

 상심하다 못해 고통스러운 나에게, 동생이 하는 소리가 이 지경이라니. 나는 어이가 없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이 밤이 지나면 내일이 아닌 어제가 찾아오길 바랐으나 아무리 내 소원이 간절하다 한들 그런 게 이루어질 리 없었다.

 

 바람 소리가 거세지는데 유르가 더욱 힘을 줘 나를 끌어안았다. 추운가 보다, 라고 생각하며 나 역시 동생을 힘껏 안아주었다. 죽으면 다시는 만질 수 없다고 생각하니 정말이지 사람이 미쳐가는데 그 때만큼 좋은 시간이 없었다.

 

 귓가에 대고 유르가 무어라 속삭였다. 바람 소리에 섞여 그건 한숨처럼 들렸는데, 너무나도 심란했고 바람이 시끄러워서 나는 그게 무슨 소리였는지 처음엔 알 수가 없었다.

 

 몇 번을 계속 듣는 와중에 그건 하나의 노래처럼 들렸다. 유르의 어깨에 파묻은 고개를 들고, 내가 동생을 보았을 때 근심이 많아 찌그러진 내 눈과는 달리 깨끗하고 선명한 그 아이의 눈동자가 나를 마주했다.

 

 "엄마의 자장가야."

 "우리는…… 한 번도 엄마를 만난 적이 없잖아."

 

 마을 사람들 모두 네가 태어나면서 엄마를 죽였다고 말했어. 하지만 나는 한 순간도 유르에게 그걸 탓한 적은 없었다.

 

 "형은 몰랐겠지만 나는 엄마를 보았어. 그녀는 매일 밤 내 꿈속으로 찾아왔어."

 "찾아왔다고?"

 "와서는, 말했어. 우리는 준비가 된 거라고……"

 

 무슨 준비? 유르는 가끔 수수께끼같은 말을 곧잘 했다.

 

 "엄마는, 어떻게 생겼어?"

 "사람들이 말하는 그대로야. 엄마는 하늘처럼 빛나는 살갗을 가졌어."

 

 차가운 북녘의 땅. 흰 눈이 내린 그 땅 위로 흑야의 별들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내 환상 속에서 그것이 피어올랐다. 푸른 장막, 여명의 숨결. 그것의 진짜 이름이 무엇이든 간에.

 

 "엄마는 저 흑야 속에 있어."

 

 

 

 

 

 북부의 흑야는 일 년에 한 계절 있는 의례적인 일이었지만, 세월이 흘러 사람들이 '그 날 흑야'라고 말할 때는 반드시 특정 흑야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그 해, 내가 챠티크의 섬으로 팔려가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던 해, 북부에 무자비하게 내리친 눈보라가 악마의 화살 같던, 그 흑야의 기간 말이다. 그 흑야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챠티크 섬에 있는 내가 그것을 느낄 정도였다. 왜냐면 우리의 훈련관 중에서도 여럿이 죽어나갔기 때문이고, '그 흑야'를 겪은 우리 기수가 챠티크 섬의 마지막 졸업생이 될 정도였으니까.

 

 십일 년 동안 동생에게서는 연락 한 번이 없었다. 한 번도 안 보고 싶었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 해 흑야를 겪으면서 나는 그를 그리워하지 않기로 했다. 연락 한 번 없었던 그 아이에게 분노나 원망을 쏟는 대신, 그저 잊어버리기로 했다.

 

 만약 누가 나에게 그 아이가 북부의 차가운 눈 속에 죽어가는 걸 보았노라 말한다면 더욱.

 

 그러나 유르켈 라노프는 죽은 게 아니었다.

 

 

 

 

 

 십일 년이 지나 내가 아르스 대륙의 본토로 돌아왔을 때, 유르는 살아있었고, 내 앞에 서있었다. 그 날, 하루 동안 너무 많은 일을 겪은 나는, 순간 내가 어디에 서있는지, 왜 서있는지도 잊었다. 멍하니, 그저 앞만 보면서, 내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누구라는 것까지도 선뜻 떠올리지를 못한 채.

 

 "세상에."

 

 수도의 왕성, 드넓은 대관의 홀 안에서, 우리를 둘러싼 귀족들이 모두 그렇게 속삭였다. 비단이 사그락거리고 귀부인들이 입에서 귀로 속삭이느라 잘랑이는 귀고리에서 보석들이 서로 부딪힌다. 모두가 웅성거리고 놀라워했다.

 

 나는 그들이 왜 놀라워하는지를 안다. 그들이 손에 무얼 들고 있었다면 틀림없이 떨어뜨렸겠지. 방금 전, 신의 말씀으로 장식된 저 성스러운 홀을 떨어뜨린 추기경들 중 한 명과 마찬가지로.

 

 나를 바라보는 유르의 눈빛에서 나는 내가 어떻게 생겼을지를 안다. 챠티크 섬에는 거울이 없었고, 지금껏 나는 내가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몰랐다. 입술은 얼마나 얇고, 코는 어느 정도로 곧은지. 눈은 어느 정도로 깊고 무슨 색으로 반짝이는지, 턱의 윤곽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깊은 눈동자는 동굴 속에서라도 빛이 날 수 잇을 것처럼 아름다운 청록색이었다. 새벽 어스름 속에서는 푸른색으로, 한낮의 태양 아래에서는 옅은 녹색으로 빛이 날 그런 눈. 눈매는 깊고 눈은 컸다.

 

 뺨은 창백하고, 어깨는 오만하다. 전체적인 얼굴의 윤곽은 어딘가 창백해보였는데 마법이라도 걸어놓은 것처럼 눈에 꼭 들어왔다. 마치 내 눈을 갈고리로 찍어당기는 것처럼, 나는 그 아이밖에 볼 수 없었다. 유르는 웃고 있었다. 미소짓고 있었는데, 조금만 더 활짝 웃을 수 있다면 엷게 벌어진 두 입술 사이로 구슬꾸러미처럼 새하얀 치아가 후두둑 쏟아질 것 같았다.

 

 그의 어깨를 장엄하게 휘감고있는 화려하고 묵직한 붉은 망토 위로, 왕실의 문양을 따라 박아 넣은 금색과 은색의 실이 마치 그 날 흑야의 불타는 하늘 위에서 별자리를 엮어놓은 듯 반짝였다. 입은 옷은 다르더라도 나는 눈앞에 있는 붉은 옷의 남자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를 바라보는 유르의 눈빛이 말하고 있었다.

 

 '어쩌면 형은 아직까지도 이렇게 나와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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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park 16-09-08 09:25
 
시작부분이 흥미로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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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기라 16-09-21 12:01
 
우와! 감사합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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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gonHorn 16-12-20 02:01
 
저 역시 동감합니다. 시작부분부터 흥미를 이끌어내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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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기라 16-12-23 00:13
 
감사합니다! 이렇게 좋은 칭찬을 주시다니..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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