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2016년 12월 31일, 08:41
29. 저마다의 10시간 - ①
본청 지하 1층 실내 배드민턴 연습장.
10여명의 사람들이 제각기 흩어져서 안을 구석구석 뒤지고 있다. 그들의 손에는 저마다 각목이며 쇠파이프 같은 둔기나 칼이 하나씩 들려져 있다. 연습장 입구 부근에 있던 남자는 자꾸만 캐비닛이 있는 라커룸 쪽으로 신경이 쓰인다. 그러다 결국 이끌리듯 라커룸으로 들어간다.
조명 스위치를 켠다. 조명이라고 해봐야 작은 형광등 하나뿐이어서 구석진 곳은 여전히 어둠침침한 채다. 오른쪽에는 10여개의 캐비닛이 나란히 서 있다. 그리고 그 왼쪽에는 그물과 각종도구들이 어지럽게 쌓여 있다.
문득 구석의 캐비닛 한 개만이 유독 굳게 닫혀져 있는 게 남자의 눈에 띈다. 그는 숨을 죽인 채 살금살금 그쪽으로 다가간다. 캐비닛 앞에서 숨을 참고 문짝에 귀를 가만히 가져다 댄다. 특별한 기척이 느껴지진 않는다. 다시 슬며시 한 발짝 뒤로 물러난다. 캐비닛 문손잡이로 조심스레 손을 가져간다. 하지만 잡지는 않고 닿기 직전에 멈춘다.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킨다. 속으로 숫자를 센다.
‘하나, 둘 ……!’
그러다 자신마저 속여야 캐비닛 안에 있을지도 모르는 상대도 속일 수 있다는 생각에, 셋을 세기 전의 반박자 빠른 타이밍에 캐비닛 문을 확 열어젖힌다. 그러나 너무 긴장해서 힘 조절에 실패한 나머지, 활짝 열려버린 문이 옆 캐비닛에 부딪치며 날카로운 쇳소리를 낸다.
캉!
그 소리에 지레 움찔한 남자는 눈이 찔끔 감긴다. 그러다 혹여 눈을 감고 있는 그 짧은 동안에 캐비닛 안에서 불의의 공격이 날아드는 건 아닌지 덜컥 겁이 나 다시 눈을 번쩍 뜬다. 다행히 캐비닛 안에는 빈 옷걸이 몇 개만이 걸려있을 뿐이다. 다른 곳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 라커룸으로 몰려들어온다.
“왜, 뭐가 있어요? 무슨 일이예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남자는 언제 맺혔는지 이마에 배어나온 식은땀을 손등으로 훔쳐내며 어색하게 웃는다. 그때 옆에 쌓여있던 그물망이 슬쩍 움직이는 게 다른 이의 눈에 띈다.
“이봐요, 여기 이상해요!”
남자는 손에 들고 있던 각목을 다시 한 번 다잡으며 그물 쪽을 경계한다. 나머지 사람들도 덩달아 바짝 긴장하며 남자가 가리킨 곳을 에워싼다. 남자가 소리친다.
“누, 누구야! 나와!”
그러나 아무런 반응이 없다. 묘한 침묵이 흐른다. 결국 무리 중 두 명이 앞으로 나오더니 각자 들고 있던 각목과 쇠파이프로 그물을 툭툭 건드려본다. 그러다 한명이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난다.
“여기 이 부분 느낌이 이상해요. 뭐가 있어요.”
그는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옆 사람에게 묻는다.
“어떡하죠? 그물을 걷어내 볼까요?”
하지만 옆 사람도 긴장되긴 마찬가지다.
“그냥 두들겨 팰까요?”
결국 그 옆에서 두 사람의 얘기를 듣고 있던 또 다른 한명이 결단을 내린다.
“일단 패봅시다. 안 나오는 걸 보니 의원이 분명해요. 자, 셋 하면 하는 겁니다? 하나, 두울 …….”
그때 그물 안에서 다급한 외침이 들린다.
“자, 잠깐! 나갈게! 나간다고!”
중년의 남자 목소리다. 사람들은 모두 한발자국씩 뒤로 물러난다. 그러자 그물들이 몇 번 들썩거리는가 싶더니 고급스럽게 보이는 정장을 입은 남자가 한명 기어 나온다. 오랜 시간 그곳에 웅크리고 있었는지 양복 여기저기엔 깊게 주름이 패여 있고 머리도 엉망으로 헝클어져 있다.
그는 나오면서 주위를 살핀다. 그러다 아는 얼굴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란다. 상대도 마찬가지다. 그는 다름 아닌 가장 처음 라커룸으로 들어왔던 남자다. 의원은 마치 구세주라도 만난 것처럼 금세 얼굴이 환해져서 그의 손을 덥석 붙잡는다.
“아니, 자네? 이 비서!”
그러나 남자는 당황한 표정으로 의원과 주변 사람들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본다. 그러다 이내 의원의 손을 매몰차게 뿌리치며 말한다.
“이, 이거 왜 이래? 난 너 같은 거 몰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원은 거듭 다가서며 아는 척을 한다.
“이 비서, 아니 이광열 비서님. 그게 무슨 소리신가? 나 배주홀세, 배주호! 자네 상관!”
그러나 광열은 여전히 당혹스러워하며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친다. 하지만 배주호는 자신을 자꾸만 외면하려고만 하는 광열에게 다시 필사적으로 매달린다.
“이 비서, 아니 이 보좌관. 날 살려주면 바로 보좌관을 시켜줌세. 내년에 우리 지역 단체장 자리에 공천도 받을 수 있도록 추천해주겠네. 아, 그래! 선거 비용도 내가 다 대주지. 그러니 제발 나 좀 살려주게. 응?”
그러나 다른 이들이 보는 앞에서 하는 회유는 오히려 광열을 위축되게 만들어버린다.
“저, 저리 가!”
광열은 그러면서 들고 있던 칼을 엉겁결에 마구 휘두른다. 그러다 별안간 칼이 배주호의 왼쪽 눈으로 가서 콱 박힌다. 광열은 흠칫 놀라며 칼에서 얼른 손을 뗀다. 배주호는 칼에 찔린 쪽의 눈을 양손으로 부여잡은 채 비틀거리며 고통스러워한다.
“으아악, 내 눈! 으악!”
순간 광열은 배주호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처럼 보여 기겁하며 사람들에게 소리친다.
“뭐, 뭐 해요! 어서 죽여요, 죽여!”
광열의 느닷없는 재촉에 사람들은 엉겁결에 하나 둘 배주호에게 달려들어 몽둥이질을 하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 누군가가 내리친 쇠파이프가 빠각 하고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배주호의 뒤통수를 정통으로 날려버린다.
“억!”
배주호는 짧은 신음소리와 함께 그대로 고꾸라진다. 이후로도 몽둥이질은 그치지 않고 계속된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이 하나 둘 뒤로 빠지기 시작한다. 잠시 후 모든 이들이 뒤로 물러나자, 바닥엔 형체도 알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배주호의 시신만이 덩그러니 남겨진다. 자신이 그리 만든 것이라는 걸 믿을 수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단지 훼손이 심한 시체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불편해진 것인지 사람들은 남일 보듯이 하며 하나둘 자리를 뜬다.
한편 눈 한번 깜짝하지 못한 채 배주호가 죽어가던 전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로 지켜본 광열은 마치 넋 나간 사람처럼 해 가지고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다. 그때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사람이 광열에게 말한다.
“이봐요, 우리도 그만 갑시다.”
“네? 아, 네…….”
그의 말에 비로소 정신이 번쩍 든 광열은 되레 그보다 앞서 허겁지겁 밖으로 나가 버린다. 광열에게 나가자고 말했던 남자도 곧 뒤따라 나간다.
그런데 얼마 후, 무슨 생각에서인지 남자가 되돌아온다. 그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슬그머니 배주호가 쓰러져 있는 곳으로 다가간다. 그러고는 그의 양복 재킷에 달려 있는 의원배지를 날름 빼서 신기한 듯 이리저리 살핀다. 남자는 저도 모르게 입맛이 다셔진다.
잠시 후 그는 배지에 묻은 피를 자신의 옷에 쓱쓱 대충 닦아낸 다음 주머니에 집어넣고 도로 나간다. 남자의 발걸음이 마치 대단한 전리품이라도 얻은 양 의기양양하다.
- § -
본청 2층에서 중앙 현관 옆을 지나치던 학현은 문득 3층 로텐더 홀 쪽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기도 소리가 부쩍 귀에 거슬린다. 이에 바로 버럭 짜증을 내며 계단을 단숨에 뛰어 올라간다.
홀 여기저기에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불교, 개신교, 천주교 등 할 것 없이 제각각 모여앉아 자신들이 믿는 구세주를 향해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기도에 열중하고 있다. 학현은 불쑥 부아가 치민다.
‘이 자식들이! 지금 살기 위해 손에 피를 묻히고 있는 게 누군데, 되도 않는 신들한테 기도하고 지랄이야? …… 잠깐, 혹시 이 자식들 지금 이렇게 온갖 깨끗한 척 다 하고 있다가, 나중에 나가면 여기서 있었던 일 다 까발리는 거 아냐?’
생각이 거기에 미친 학현은 붉은 소방용 도끼를 쥐고 있던 손에 불현듯 불끈 힘이 들어간다. 이어 제일 가까이에 있는 천주교도 무리를 노려보며 성큼성큼 다가간다.
그때 기도를 하고 있던 하얀 원피스의 젊은 여자가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든다. 여자와 학현의 눈이 서로 마주친다. 순간 멈칫한 학현의 두 눈이 휘둥그레진다.
‘지인?’
학현은 헛것을 봤나 싶어 허겁지겁 눈을 비비고 다시 본다. 다시 보니 그녀는 지인이 아니다. 본회의장에서 지인이 그랬던 것처럼 하얀 원피스를 입고 꿇어 앉아 기도하던 모습 때문에 그녀의 얼굴 위로 지인의 얼굴이 잠시 겹쳐져 보였던 것뿐이다. 학현은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러다 문득 기도를 하고 있던 나머지 수십 명의 시선들이 어느 새 자기에게 쏠려 있단 걸 깨닫는다. 직전까지 기도에 몰입하고 있었던 때문인지, 학현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그들의 표정은 무미건조해 보일 정도로 착 가라앉아 있다.
학현은 마치 그들을 죽이려던 자신의 속내가 들켜버린 것만 같아 그 자리에 계속 있기가 버거워진다.
‘어떡하지? 죽여야 하는데, 죽여야 하는……! 아, 그래! 식별표! 이 녀석들은 전부 명부에 사인을 하고 식별표를 받아갔잖아? 그럼 배신할 리가 없겠지. 하, 바보같이. 왜 미처 그 생각을 못 했지?’
도망칠 명분을 찾은 학현은 그제야 다시 얼굴이 환해진다. 그리고 이내 멋쩍은 표정을 지으면서 뒷걸음질을 친다.
“방해해서 미안해요. 하던 것들 계속하세요. 방해 안할 테니까. 하하하, 하하하하 …….”
그러다 계단 가까이에 이르자마자 잽싸게 방향을 틀어 무리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다시 부리나케 도망쳐 내려간다. 사람들은 학현이 그러는 영문이 이해가 안 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하지만 곧 다시 눈을 감고 하고 있던 기도를 계속한다.
- § -
학현은 미처 체크하지 못한 생존 기자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람들을 데리고 본청 1층의 기자실로 온다. 그때 마침 3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한 여성이 기자실 문을 닫고 나오다 학현과 눈이 마주친다. 학현이 보기에 그녀는 내심 놀라는 눈치다. 그러나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어 보이며 학현 옆을 태연하게 지나쳐간다.
그런데 그러고 보니 그녀는 학현이 아는 얼굴이다. 학현이 이전에 문경림 의원실을 그만두었을 때 그곳에 후임으로 온 보좌관이다. 학현은 그녀를 불러 세운다.
“잠깐만요.”
그녀는 움찔하며 그 자리에 멈춰 선다. 학현이 묻는다.
“혹시 기자실에 누가 숨어 있진 않던가요?”
“아, 아니요. 아무도 없던데요?”
그러나 그녀는 허둥대는 기색이 역력하다. 학현은 곁에 있던 두 사람에게 눈짓을 한다. 그러자 둘은 곧바로 그녀의 뒤로 돌아들어가 팔을 붙든다. 그녀는 놀라 어쩔 줄을 몰라 한다.
“왜, 왜 이래요? 이거 놔요!”
하지만 학현은 그녀를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쳐다보며 이야기한다.
“만약을 위해섭니다. 우리가 안을 살펴볼 동안 잠시 여기서 기다려주셔야겠습니다.”
그러고는 나머지 사람들을 데리고 가서 기자실 안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한다. 책상들만 즐비한 곳이어서 숨을 곳이라고 해봐야 책상 밑이 전부다. 1분도 안 돼서 한 쪽 구석을 뒤지던 남자가 소리친다.
“여기 누가 있다! …… 이리 나왓!”
잠시 후 4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여자 의원이 끌려나온다. 남자는 그녀를 학현 앞으로 떠민다. 학현은 그녀 바로 코앞에다 얼굴을 들이밀며 사뭇 거만한 태도로 빈정거린다.
“어이구, 이게 누구십니까? 훌륭한 인품으로 소문이 자자한 문경림 의원님 아니십니까?”
문 의원은 겁먹은 기색이 역력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얼굴에 비굴함까지 비치진 않는다. 오히려 두려워하는 기색을 애써 감춰가며 자신을 비아냥거리는 학현을 꾸짖는다.
“남 보좌관, 사람을 깔보는 그 버릇 여전히 못 고쳤군요.”
문 의원의 느닷없는 꾸짖음에, 실실 웃고 있던 학현의 표정이 돌연 싸늘하게 식는다. 주위 사람들도 의외로 의연한 문 의원의 태도에 제법 놀란 눈치다. 우월함을 만끽하고 있다 예기치 못한 면박을 당해버린 학현은 사람들 보기가 부끄러워져 귀까지 빨개진다. 이에 다시 분위기를 만회하고자 문 의원을 쏘아 붙인다.
“전 사람들을 깔본 적 없습니다! 그들이 못나서 얕보인 것뿐이라고요!”
그러나 문 의원은 전혀 주눅이 들지 않는다.
“상대에게 얕보일까 두려워서 일부러 먼저 얕보는 척 하는 건 아니고요?”
학현은 말문이 막힌다. 문 의원은 계속 몰아세운다.
“남 보좌관은 사람들이 자신을 깔보고 무시할까봐 항상 두려워하죠. 그래서 항상 만사를 공격적으로 대하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 자연 외부와의 갈등도 갈수록 심해지고 타인에 대한 두려움도 더 커지는 거예요. 내 말이 틀리나요?”
학현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치부가 완전히 까발려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문 의원의 입에서 또 무슨 말이 나올지 이젠 두렵기까지 하다. 그래서 속마음은 초조할 대로 초조했지만, 겉으론 애써 여유 있는 척을 하며 대화를 서둘러 매듭지으려 한다.
“그런 말씀은 의원님 밑에서 일할 때 지겹도록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방에서 나가드리지 않았습니까? 뭐, 옛정을 생각해서 다시 한 번 들어 드리긴 했지만 더 이상은 곤란합니다. 마지막으로 남기실 말은 없으십니까?”
학현은 그러면서 도끼를 들고 있는 손아귀에 힘을 준다. 그러나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 문 의원은 오히려 표정이 결연해진다.
“나를 죽일 생각엔 변함이 없나보군요. …… 알았어요. 하지만 밖에 있는 정 보좌관은 건들지 말아줘요. 성격이 모질지 못해서 도와달라는 내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 죄 밖에 없으니까. 이 정도 부탁쯤은 들어줄 수 있겠죠?”
학현은 끝까지 당당한 문 의원의 태도가 심히 못마땅하다. 하지만 내색하거나 망설이면 지는 것이란 생각에 애써 태연함을 유지한다.
“그리 해 드리지요. 그럼 존경의 의미로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고 제가 직접 보내드리겠습니다. 자!…….”
그러더니 양 손으로 도끼를 다잡고 번쩍 들어 올린다. 그런 다음 곧바로 문 의원의 목을 뎅겅 잘라버린다.
“이야앗!”
“…….”
목이 달아난 문 의원의 몸통이 목구멍에서 피를 분수같이 뿜어내며 힘을 잃은 채 픽 쓰러진다. 잘려진 문 의원의 머리는 바닥에서 데굴데굴 구르다가 가까이에 있던 책상 다리에 부딪힌 뒤 멈춘다.
망설임 없이 도끼를 휘두른 학현이지만, 잔뜩 찌푸린 미간엔 언제 스며 나왔는지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다. 숨까지 갑자기 차오른 탓에 호흡도 약간 거칠어져 있다. 학현은 태연한척 웃음을 지으려고 애쓴다. 하지만 얼굴 근육이 마음먹은 대로 움직이지 않아 스스로도 어색하다.
그때 불현듯 다 굴러간 것 같던 문 의원의 머리가 다시 학현 쪽으로 반 바퀴 더 구른 뒤에야 완전히 멈춘다. 순간 두 사람의 시선이 정면으로 마주친다. 그녀의 두 눈은 마치 죽어서도 학현의 내면을 속속들이 다 들여다보고 있는 듯하다.
학현은 움찔한다. 문 의원의 눈초리가 여전히 자신을 꾸짖는 것처럼 보여 버겁게 느껴진다. 그리하여 결국 애써 그 시선을 외면하며 밖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밖으로 나온 학현은 곧장 정 보좌관을 쏘아보며 돌진하듯 성큼성큼 다가간다. 안에서의 대화를 고스란히 다 듣고 있었던 정 보좌관에게 피 묻은 도끼를 들고 두 눈을 이글거리며 다가오고 있는 학현의 모습은 야차나 다름이 없다.
뚜벅 …… 뚜벅 …… 뚜벅! …… 뚜벅! …… 뚜벅! 뚜벅! 뚜벅! 뚜벅!
학현의 구둣발 소리가 점점 가까워져 온다. 그 때마다 정 보좌관은 마치 심장을 해머로 얻어맞는 것처럼 숨이 목구멍을 타고 턱 턱 턱 턱 막히면서 차오른다. 공포에 질려 살려달란 말조차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다. 벌벌 떨기만 하던 그녀는 결국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만다. 정 보좌관의 뒤에서 그녀의 양쪽 팔을 붙들고 있던 사람들마저 겁을 집어 먹고 그녀를 내버려 둔 채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친다.
학현은 마침내 정 보좌관과의 거리가 지척으로 좁혀지자, 기합도 없이 곧장 도끼를 그녀의 정수리에다 휘두른다.
“……!”
정 보좌관은 비명 한 번 제대로 질러보지 못한 채 그대로 뒤로 넘어간다. 깨진 두개골에서 피와 뇌수가 쏟아져 나온다.
학현은 망설임 없이 그녀의 목에서 붉은 식별표를 벗겨 내고는 뒤도 안돌아보고 자리를 뜬다. 이전보다 한층 더 과격해진 학현의 모습에 어안이 벙벙해져 있던 사람들은 곧 우르르 그 뒤를 따라 자리를 떠난다. 학현은 이제 피가, 피비린내가 더 이상 접하기 버겁거나 두렵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