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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사명
작가 : 성소은
작품등록일 : 2017.11.24

남들의 죽음을 볼 수 있는 한 여자의 지독한 운명과
그로 인한 삶의 비극을 다룬 판타지 소설.

 
04
작성일 : 17-11-26 09:04     조회 : 210     추천 : 0     분량 : 5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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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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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서가 앞치마를 벗어 주방 적당한 곳에 걸어뒀다. 홀에 그릇 정리를 하고 돌아온 안 여사가 앞치마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주방 한 쪽 벽에는 금연이라는 글자가 아주 크게 적혀 있었지만 이는 무의미했다. 짙은 회색빛의 연기를 입에서 한가득 뿜어낸 안 여사가 힐끔 현서를 바라봤다.

 

 “쉬는 날도 없이 일만 하더니 오늘은 무슨 일로 이렇게 빨리 들어가?”

 

 외투를 챙겨 입던 현서가 괜히 민망한 미소를 지었다.

 

 “저 그냥…. 쇼핑이나 할까 해서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답인 듯 안 여사의 눈이 동그래졌다. 맨날 같은 옷차림에 꾸밀 줄도 모르는 여자라고 생각했는데 쇼핑이라는 단어가 현서의 입에서 나오니 의외였던 모양이다. 그러나 자신이 놀란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이 어쩌면 현서에게 실례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 안 여사가 표정을 고치고 태연하게 되물었다.

 

 “좋네. 그래 돈은 원래 쓰려고 버는 거지.”

 

 현서는 쓸데없는 것에 돈을 함부로 쓰지 않았다. 갚아야 할 빚이 많았기 때문이다. 빚은 돈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과거 환을 돌봐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곧 아들 생일이거든요. 뭐 사줄만한 거 없나 한 번 볼까 싶어서….”

 “아들? 최 씨한테 아들도 있었어? 전혀 몰랐네.”

 

 한 번도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못한 안 여사의 얼굴에 궁금증이 가득 차올랐다. 하지만 질문을 더 하기도 전에 홀에서 손님의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아줌마, 여기 소주 한 병 더 달라니까.”

 

 정신없는 점심시간이 방금 끝났지만 식당은 여전히 바빴다. 안 여사가 다 피우지도 못한 담배를 주방 쓰레기통에 버렸다.

 

 “하여간 늙은이들 낮부터 저렇게 술을 마시고 싶을까. 저렇게 되기 싫으면 일을 해야 되는 거야, 일을.”

 

 안 여사의 푸념에 현서가 안쓰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죄송해요. 하필 오늘 많이 바쁘네요.”

 “좀 있다가 주방 아줌마 온다고 했으니까 괜찮을 거야. 신경 쓰지 말고 어서 들어가 봐. 아들 생일 선물 사야지. 기대하고 있을 텐데.”

 

 안 여사가 현서의 등을 몇 번 토닥이고서 홀로 나갔다. 안 여사가 나가는 것을 보고서 현서가 마지막으로 가방을 챙겼다. 요즘 시대에 보기 드문 2G 휴대폰, 다 낡아 실밥이 너덜거리는 지갑이 전부였다. 얼마나 자신에게 돈 쓰는 것이 인색한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소지품들이었다. 식당을 나와 현서가 향한 곳은 스포츠 가방 판매점이었다. 어떻게 봐야할지 몰라 쭈뼛거리고 있는 현서 곁으로 직원이 다가왔다.

 

 “찾으시는 거라도 있으세요?”

 “아…. 아들이 매고 다닐 가방을 보려고 하는 데요…. 그런 것도 있을까요?”

 “그럼요. 요즘은 학생들 다 등산 가방 들고 다녀요. 아드님이 몇 살이세요?”

 

 현서의 말문이 막혔다. 현서가 마지막으로 환을 봤을 때 환의 나이는 18살 이었다. 지금은 어느 덧 스물 셋 건장한 청년이 되어 있었을 테지만 현서에게는 잘 상상이 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잠시 망설이던 현서가 말했다.

 

 “고등학생이에요.”

 “그럼 이건 어떠세요? 교복이나 일상복 아무 옷에나 매도 다 잘 어울리는 인기 제품이거든요.”

 

 직원은 반드시 현서에게 가방을 팔겠다는 의지로 자신이 들고 있는 가방의 장점에 대해 쉴 새 없이 늘어놓기 시작했다. 직원이 능숙한 판매 술을 펼치는 동안 가끔씩 고개를 끄덕이는 것 말고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던 현서가 그의 말이 다 끝나고 나서야 대답했다.

 

 “그냥 제일 비싸고 튼튼한 걸로 주세요.”

 

 직원의 낯빛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이것, 저것 비교해가며 한참이나 직원들을 괴롭히다가 끝내 빈손으로 나가는 손님들이 허다한 판매점에 현서 같은 손님은 마른 땅에 단비 같은 존재였다. 가게에 들어간 지 30분도 되지 않아 물건을 구매하고 밖으로 나온 현서의 손에는 쇼핑 봉투가 가득 들려 있었다. 비싼 제품을 산만큼 부가적으로 딸려 오는 사은품이 많았다. 물론 까다롭지 않은 손님에 대한 고마움에 직원이 개인적으로 챙겨준 것이 대부분이었다. 아까와 달리 손에 들려 있는 것이 더 많았지만 현서의 발걸음은 훨씬 가벼웠다. 혹시 먼지라도 묻을까 포장된 봉투를 대하는 자세도 조심스러웠다. 매년 환의 생일마다 이렇게 주지 못할 선물을 산지도 몇 년이나 지났다. 언젠가 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하나, 둘 모으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현서의 집에는 열어보지도 않은 새 상품이 가득했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현서의 옆에는 젊은 엄마와 어린 아들이 서로의 손을 맞잡고 앉아 있었다. 괜히 힐끔거리다 오해를 살까 쳐다보지 않으려 애썼지만 저도 모르게 시선이 자꾸만 그 쪽으로 향했다. 마냥 낯선 그림은 아니었다. 엄마의 손을 꽉 잡고 모든 걸 의지하고 있는 저 아이처럼 환 역시 현서 밖에 모르던 귀여운 아들이었다. 그랬던 환이 제 스스로 집을 박차고 나가며 현서를 떠나버렸을 때 차마 현서는 아들을 잡을 수가 없었다. 현서는 아주 오랫동안 환을 버려뒀었다. 자신의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는 이유로 그 어린 아들이 모든 걸 혼자서 하게끔 내버려 뒀다. 환이 떠난 건 모두 자신 때문이라고 현서는 늘 스스로를 자책하며 살았다.

 

 “아들 나중에 커서 뭐하고 싶어?”

 

 옆에 앉아 있는 젊은 엄마가 자신의 아들에게 물었다. 아이는 아주 잠깐 고민하더니 이내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엄마가 하라고 하는 거!”

 

 아들의 대답에 젊은 엄마가 깔깔 거리며 웃었다. 정류장 주변에 모여 있던 다른 사람들도 그 아이가 귀여운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한 할머니는 기특하다며 손에 사탕을 쥐어주기까지 했다. 그들과 함께 따라 웃지 못하던 현서가 그 곳을 벗어나 걷기 시작했다. 자신을 제외한 이 세상의 엄마들은 다 좋은 엄마들처럼 느껴졌다. 그런 기분이 들 때면 현서는 아들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과 미안함 때문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잡념을 떨치기 위해 뭐라도 해야 했고 일을 시작한 것도 그래서였다. 그렇게 하염없이 걷던 현서가 정신을 차리고 멈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디인지 확인한 현서가 고개를 푹 숙이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여긴 왜 온 거야.”

 

 현서는 한 종합 병원의 입구에 서 있었다. 이곳은 태주가 정신과 의사로 일하고 있는 병원이기도 했다. 현서에게 태주는 환과 연결 될 수 있는 유일한 다리와도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환이 성인이 되던 해에는 태주에게 도움을 받아 환과 재회하기 위해 연락을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태주는 단호했다. 먼저 환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았으며 도와주겠다는 그 어떤 의사도 표현하지 않았다. 그런 태주에게 현서는 그저 고맙다는 말 밖에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현서는 태주에게 여러 번 연락을 해보려 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자신의 미련이 한 때 도련님이었던 태주를 곤란하게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차마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다만 어쩔 수 없었던 우연 정도라면 태주도 괜찮지 않을까 하여 괜히 이 병원 주변을 맴돈 적은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무의식중에 찾아오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가만히 서서 병원 건물을 올려다보던 현서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반대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그 순간이었다. 현서의 눈이 동그래졌다. 병원 입구에 있는 작은 카페에서 동료와 함께 걸어 나오고 있는 태주가 보였다. 야속하게도 몇 십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태주의 모습은 여전했다. 예전부터 남편과 쌍둥이 형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닮아있는 얼굴이었는데 나이가 드니 남편의 모습이 더 짙게 묻어나왔다. 온 몸이 굳어 버린 듯 가만히 서 있는 현서를 태주라고 발견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이내 태주의 얼굴에 서서히 웃음기가 가셨다.

 

 “형수?”

 

 태주가 고개를 갸웃하고 현서를 바라보고 섰다. 우연히 라도 마주쳤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현서의 바람이 드디어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태주의 사무실은 깔끔했으며 좋은 향기까지 풍겨졌다. 태주가 믹스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현서에게 건네며 물었다.

 

 “커피 드세요?”

 

 현서는 커피를 마시지 않았지만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다급히 종이컵을 받았다. 태주가 현서의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이후 오랜 시간 정적이 흘렀다. 태주는 언젠가 이런 날이 오게 될 거라고 늘 생각해왔으나 그 시기가 생각보다 빨리 일어나 그저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커피를 받은 지 5분도 채 되지 않았지만 현서의 종이컵은 어느새 바닥이 드러났다. 정적을 먼저 깨트린 건 태주였다.

 

 “잘 지내셨어요?”

 

 만나자마자 나왔어야 할 인사가 이제야 튀어나왔다. 현서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잘 지내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오랜만에 만난 도련님에게 잘 못 지냈다는 대답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짧은 대화가 오고 간 후 다시 진료실이 조용해졌다. 태주가 머리를 긁적였다. 뭐라도 말을 꺼내야겠다 싶었는지 태주가 현서의 모습을 찬찬히 훑었다. 자신과 나이차이가 많이 나지도 않는데 현서의 머리에는 흰 머리가 꽤 많았다. 차림새부터 손등에 생긴 잔주름까지 태주가 기억하고 있는 젊은 시절 현서의 모습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순간 이 모습을 환이 봤다면 환이는 어떤 기분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환의 삼촌으로, 현서의 도련님으로서가 아닌 정신과 의사로서 환의 심리가 궁금한 것뿐이었다. 고질적인 직업병 같은 것이었다. 그때 현서의 옆에 놓여있는 쇼핑백이 눈에 들어왔다.

 

 “저건 뭐예요?”

 

 간만에 돌아온 질문에 현서가 신이 나 대답하려고 하다가 멈칫했다. 대답을 듣지 않았지만 답을 알 것 같았다. 태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차마 현서는 환의 생일 선물이라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아들이 어떻게 되던 말든 신경도 쓰지 않던 나쁜 엄마가 이제 와서 선물이라니. 염치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더구나 태주는 그랬던 자신 때문에 대신 환을 돌봐준 보호자였다. 더욱 대답할 수 없었다. 태주가 고개를 숙이고 있는 현서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정수리는 다른 쪽보다 더 희끗거리는 머리카락이 많이 보였다. 태주가 남아있는 커피를 다 들이켰다.

 

 “그렇잖아도 어제 환이 만났어요. 월세가 밀렸다고 돈 좀 빌려달라고 하더라고요.”

 

 현서가 고개를 들어 태주를 바라봤다. 마치 금기어라도 되는 것처럼 그 어느 누구도 먼저 꺼내지 못한 이름이었는데 태주는 너무나 덤덤하게 말했다. 현서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태주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혼자 다 잘하고 있을 거 같죠? 근데 월세도 못 내고 일도 못 구하고 군대도 못 가고 그러고 있어요. 철도 없고.”

 

 현서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선물 주면 좋아하겠네요. 아직 애니까.”

 

 환은 분명 엄마의 선물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분명한 사실이었지만 환이 아직 어린 아이라는 것도 맞는 말이었다. 태주는 처음으로 엄마에 대한 환의 증오가 단순한 어리광이길 바랐다. 현서의 흰 머리만 아니었더라도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환이 아니었다면 평생 다시 만날 일도 없을 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야속한 세월에 늙어버린 현서를 보고 이 정도 안타까움도 가지지 않는 건 형에게 미안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한참 태주를 바라보기만 하던 현서가 이내 얼굴을 두 손에 파묻고 소리 없이 울었다.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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