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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고마워 미안해 사랑해
작가 : 지평선
작품등록일 : 2017.10.31

30일 뒤에 지구가 운석에 충돌해 멸망한다.
지구의 멸망을 막으려는 영웅들의 이야기도 아니고,
멸망하는 지구를 분석하는 공상과학물도 아니다.

삶이 30일 남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그 사람들의 버킷리스트.

 
D-26, 호불호는 종이 한 장 차이
작성일 : 17-11-25 23:24     조회 : 269     추천 : 0     분량 : 4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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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마워."

 

 방 안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혼자 나지막이 읊조려 보았다.

 

 그리곤 좁은 싱글 침대 위를 오른쪽으로 굴렀다 왼쪽으로 굴렀다 오두방정을 떨었다.

 입에선 '캬캬캬', 경박스러운 웃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래도 '꺅꺅꺅'이 아닌 것이 다행이라고나 할까.

 

 부드럽지도 까칠하지도 않았던 너의 표정, 너의 말투, 너의 목소리.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그 모습을 머리 속으로 되뇌었다.

 

 

 그러다가 문득 네가 진지한 얼굴로 '너 김조이 선배랑 뭐 있었어?',라고 묻는 장면도 스쳐지나갔다.

 '김조이'라는 이름 세 글자가 잔잔하게 일렁이던 내 맘 속 물결의 파동 균형을 깨버리는 듯 했다.

 

 생각해 보면, 처음 봤을 때부터 느낌이 별로 좋지 않았다.

 지금 일이 이렇게 돼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 아니냐고? 아니, 아니다.

 

 그 선배를 처음 봤던 날, 그 선배는 내가 화장실에 두고 온 핸드폰을 찾아주었다.

 입학식장에서 시계를 확인하려고 핸드폰을 켰을 때, 첫 화면에 갤러리에 저장되어있던 내 셀카가 나왔다.

 찜찜해서 최근 사용한 앱을 확인해보니 갤러리 뿐만 아니라 전화번호부, 유투브, 각종 SNS에 접속한 흔적들도 보였다.

 물론, 핸드폰을 찾아주려고 주인을 알아보려 했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 때 이후로, 나는 아무래도 그 선배를 향한 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입학 한 지 한 달 정도 지났을 때, 나는 현채와 연우를 통해 동기들끼리 모인 술자리에서 나온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진짜 짜증나."

 

 현채의 말에 따르면, 제일 먼저 김조이 선배의 이야기를 꺼낸 건 내가 모르는 어떤 여자 동기였다고 한다.

 

 

 "어떡해? 진짜 속상하겠다."

 

 "나도 14 선배들 다 마음에 안 들어."

 

 그 자리에 앉아있던 애들은 다 한 마디씩 거들며, 슬퍼하면서 동시에 잔뜩 화가 난 동기를 위로했다.

 그 아이에 따르면, 김조이 선배와 몇몇 다른 14학번 여자 선배들이 우르르 몰려와 립스틱, 틴트, 아이브로우 등 화장품을 빌려 갔다는 것이다.

 다 값이 좀 나가는 고급 화장품들이었고, 몇 번 쓴 지 안 된 것들이었기 때문에 별로 빌려주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빌려줘야할 것만 같은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 몇 개를 빌려준 것이 화근이 되었다.

 역시나 돌려받았을 때는 부러지거나 각질이 묻어 대부분 망가졌다는 것.

 

 

 "평소엔 말도 안 걸고 별로 친하지도 않으면서, 뭐 필요할 때만 나 찾는다니까."

 

 그 동안 쌓인 것이 많았는지 얌전해 보이던 그 동기는 말을 마치자마자 소주 한 잔을 거칠게 입에 털어넣었다.

 

 

 "다른 고학번 선배들이 그러는데, 14 여자 선배들이 입학했을 때부터 버릇없기로 유명했대."

 

 "맞아. 그래도 다 예쁘게 생겨서 남자 선배들은 엄청 좋아했다고 하더라고. "

 

 "11학번 안동혁 선배가 산증인이지."

 

 "맞아, 김조이 선배랑 안동혁 선배 사귀잖아."

 

 그 말이 나오자 다들 웅성웅성 거리기 시작했다.

 몇몇은 정말이냐며 놀라워 했고, 몇몇은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둘이 헤어졌대."

 

 사귄다는 소식이 테이블 전체에 채 퍼치기도 전에 누군가 결별 소식을 입에 올렸다.

 다름 아닌 소희였다.

 

 "김조이 선배 성격 더럽잖아. 처음엔 예뻐서 만났는데 결국 헤어졌대."

 

 "대박."

 

 동기들은 심마니가 산삼이라도 찾은 듯한 놀라운, 또 한편으로는 어딘가 기쁨이 잔뜩 어린 표정을 지었다.

 

 

 "또 다른 선배들 말로는 김조이 선배가 바람펴서 그렇다는 얘기도 있어. 남자 꼬시는 데는 완전 선수래."

 

 소희는 마치 자신의 분야에 빠삭한 전문가가 티비 프로그램에 나와 그 지식을 소개하는 것 같았다.

 나머지 동기들의 반응은 여느 건강 프로그램의 방청객들보다 뜨거웠다.

 

 

 "아, 맞다. 나도 소희랑 비슷한 얘기 들은 적 있어. 이건 진짜 비밀인데…, 나는 김조이 선배가 누구랑 동거했다가 낙태한 적 있다는 얘기도 들었어."

 

 또 다른 동기가 소희의 말에 신빙성을 실어주려는 것인지 말을 보탰다.

 누가 뭐라 카더라, 하는 카더라 통신은 그 날 밤 술자리 내내 계속 됐다.

 

 

 

 

 

 

 

 

 "그랬다는 거야."

 

 현채와 연우는 이야기를 마치고 한숨을 쉬었다.

 

 

 "난 솔직히 그 선배가 누구랑 사귀는지 누구랑 동거를 하는지 그런 건 관심 없어. 근데 무슨 이유 때문에 출석을 안 하는 건지는 좀 알고 싶다고."

 

 현채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난생 처음 겪어보는 대학교의 시험 범위 폭탄과 조별 과제 지뢰에 아마 넋이 나간 것이 틀림없었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조별 과제 하는데 조장이 출석을 안 하면 어쩌자는 거야."

 

 "그러니까 말야. 카톡도 씹고 전화도 안 받잖아."

 

 연우도 기분 나쁘다는 듯 핸드폰을 쳐다보며 말했다.

 

 

 "다른 선배들 말로는 아프다고 하던데."

 

 과방에 들른 선배들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더니 정말 저렇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 말에도 현채와 연우의 반응은 싸늘했다. 오히려 더 역정을 냈다.

 

 "아픈 사람이 어떻게 SNS에 사진은 계속 올린대? 어제도 술 마시러 간 것 같던데?"

 

 현채는 SNS에서 김조이 선배의 계정을 내게 보여주며 말했다.

 11시간 전에 업로드 된 술집에서 찍은 사진들.

 

 

 "난 양소희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걔 말이라면 늘 반신반의 하는데. 이번에 김조이 선배 소문은 진짜 같아."

 

 현채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핸드폰을 겉옷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그래도 설마 낙태까지…."

 

 "낙태는 양소희가 한 얘기 아니니까, 그건 제외지."

 

 내가 설마,하자 현채 역시 그것까지 믿진 않는다고 답했다.

 

 

 "아무튼, 그런 소문 돌만큼 별로인 사람이란 건 확실히 알겠다."

 

 연우도 어느정도 동조했다.

 

 

 

 나 역시, 어쩌면 이 때부터 김조이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이 점점 쌓여온 것일지도 몰랐다.

 

 

 

 

 

 

 

 

 

 

 

 

 

 

 

 

 카톡-

 

 

 '뭐해?' 16:22 하태양

 

 

 엄청 썸남 같은 말투야.

 

 

 '그냥 누워 있었는데' 전송

 

 

 사실 위에 미리보기 알림 떠서 바로 알았는데, 일부러 4분 뒤에 읽었어.

 딱히 밀당을 하려는 건 아닌데.

 그냥. 바로 보기 싫었어. 그냥. 뭔가 네 연락을 엄청 기다린 것 같잖아.

 

 

 '오늘 저녁에 영화 보러 갈래?' 16:30 하태양

 

 

 뭐야? 내가 4분 뒤에 답장했다고 너도 4분 뒤에 답장하는 거야?

 진짜 웃겨. 그럼 나 이번엔 6분 뒤에 읽을 거야.

 

 

 '최근에 뭐 개봉한 영화가 있어?' 전송

 

 

 

 지구 멸망이 다가오면서 돈을 많이 벌어 둔 유명한 배우들은 대부분 연예계를 떠났다.

 경관이 좋은 곳으로 여행을 가거나 자신의 저택에서 고상하게 자기계발을 하며 SNS에나 이따금씩 자신의 근황을 알렸다.

 아니면 몇 개 안 남은 예능 프로그램에 가끔씩 출현해, 유명 탤런트들은 어떻게 삶을 마감하는지 보여줬다.

 

 하지만 이들이 없다고 해서 영화나 드라마가 아예 제작이 중단된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작품을 만들고자 하는 감독과 연출가, 그리고 무명의 배우들이 있었다.

 그들이 만든 작품들이 종종 개봉되거나 티비를 통해 방영되었다.

 그러나 그런 작품들은 대부분 예술성이 뛰어나 일반인들이 이해하기에는 난해한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개봉해도 별 영향력은 없었다.

 

 이렇게 잘 아는 이유는, 언젠가, 너무 궁금해서 그들의 영화를 영화관에서 본 적이 한 번 있었다.

 추상적이고 난해한 스토리, 기괴한 영상미가 인상적이긴 인상적이었다.

 배우들은 때때로 알 수 없는 포효를 내질렀고, 필요 이상으로 투쟁적이었으며, 시도 때도 없이 눈을 부라리고 에너지를 내뿜었다.

 

 나는 영화관을 빠져나오면서 생각했다.

 이것은 '살아가라'는 메세지를 주는 영화라고.

 감독은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에게 '살아가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맨 처음 지구 멸망 소식이 전 세계 사람들에게 전해졌을 때, 사람들은 전부 망나니가 되었다.

 길거리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눈빛은 퀭했고, 몸짓은 둔하고 느렸으며, 모든 것이 멍청해보였다.

 작은 상점부터 시작해 큰 기업까지 문을 닫았고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고싶은 것만 했다.

 

 세상이 엉망이 되자, 지식인들은 '유종의 미'라는 슬로건을 빼들었다.

 이렇게 살지 말자,고 외치던 사람들이 이렇게 죽지 말자,고 외쳤다.

 

 지식인들이 주장한 '유종의 미'는 마침내 전 세계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고, 사람들은 남은 날들을 위한 새로운 규칙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저 영화는 내가 망나니였을 때 본 영화였다.

 

 영화가 끝난 후, 그 내용은 하나도 기억에 남지 않았다.

 단지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묵묵히 가슴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냥 숨쉬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진짜 '살아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데. 마지막을 이렇게 허무하게 보낼 수는 없어.

 

 몇 달 만에 방문한 시립 도서관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낡은 책을 옮기는 사서들, 자리가 없어 바닥에 쪼그려 앉아 책을 읽는 청년들.

 신문을 읽는 노인들, 성경을 읽는 아주머니, 고전 철학을 읽는 아저씨.

 대부분 고시 공부를 준비하는 고시생들, 수능 교재를 펼쳐놓은 수험생들, 토익 준비하던 대학생들이 가득 했던 예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요즘도 책을 읽는다. 시집을 읽기도 하고, 소설을 읽기도 하고, 잠이 안 올 때면 철학책도 뒤적거린다.

 좋아했던 영화를 다시 보고, 좋아했던 노래를 다시 듣는다.

 

 

 까톡-

 

 

 '노트북에 그 영화 있어.' 16:42 하태양

 

 

 어쭈, 또 나랑 똑같이 6분 있다가 답장한다 이거지?

 이번엔 8분 있다가….

 

 

 아,

 

 

 이게 무슨...멍청한 짓이람.

 

 

 1분 1초가 아까운 마당에.

 

 

 '무슨 영화?' 전송

 

 

 '네가 저번에 추천해줬던 거 있잖아. 그.. 애인 없으면 호텔에 갇히는 영화.' 16:45 하태양

 

 '아, 그거. 너 진짜 기억력 하나는 끝내준다.' 전송

 

 '나 기억력 안 좋은데.'16:47 하태양

 

 '내가 좋아하던 가수 기억하고, 내가 좋아하던 콘서트 좌석도 기억하고, 내가 추천한 영화까지 다 기억했잖아.' 전송

 

 '니가 좋아하고 니가 추천해준 거니까 기억한 거야.' 16:50 하태양

 

 

 

 하여튼, 사람 설레게 하는 말은 진짜 잘도 한다니까.

 

 "선수야, 선수."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7시쯤에 공원에서 보자. 내가 돗자리랑 노트북 가져갈게.' 16:51 하태양

 

 내가 읽어놓고도 답장이 없자, 너는 바로 결정을 내렸다.

 

 '그래' 전송

 

 

 나도 보고 싶었어, 영화.

 너랑.

 
작가의 말
 

 주말입니다.

 다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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