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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무지개의 소리
작가 : 휘음
작품등록일 : 2017.10.31

눈을 감고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나뭇잎에 맺힌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경쾌한 붉은 소리부터 무거운 보랏빛 소리까지.
필사적으로 전하려는 그 마음 가득한 무지개의 소리가.
네가 알려준 그 소리가.

 
7
작성일 : 17-11-25 20:03     조회 : 325     추천 : 0     분량 : 4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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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사료에 노국공주가 나오면 무슨 왕이라고 했지?”

 

  녀석은 어째서인지 오지 않았다. 매일같이 찾아오던 녀석이 나타나지 않으니 어딘가 어색했다. 늦잠이라도 자는 건가? 고개를 마구 저었다. 간만에 얻은 자유를 이렇게 어이없게 보낼 수는 없었다. 항상 귀찮다고 생각했으면서 이제와서 녀석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는 내가 너무나도 웃겼다.

 

  수업시간 내내 운동장을 봤지만 녀석은 나타나지 않았다. 항상 철봉에 매달려 거꾸로 세상을 보던 녀석은 머리카락 한 올 내비치지 않았다. 써달라던 감상문과 녀석이 읽어보라며 준 노트가 서랍 안에 있는 데... 오늘은 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조금 있다가 오려나...

 

  “너네 고3이다. 여름방학이 어디 있다고 그렇게 졸고 있어? 자지 말고! 다음 페이지. 1388년 이성계는 위화도에서 군사들을 이끌고 다시...”

 

  어제 삼시세끼 뭘 먹었는지도 제대로 기억 못하는 데 그 머나먼 옛날 일을 꼬박꼬박 외우고 있는 자신의 뇌가 감탄스러워지는 국사시간, 나는 좀처럼 집중을 할 수 없었다. 보충수업 교재 가득 문제들이 나와 아이컨택을 정성스럽게 하고 있었지만 감흥이 없었다.

 

  더운 선풍기 바람에 짜증이 올라왔다. 녀석이 보이지 않아서 그런가? 아니다. 더운 여름 낡은 선풍기의 허접한 바람에 몸을 맡겨야 하는 것에서 나오는 짜증이 분명했다. 낡고 제대로 닦지 않아 먼지를 한가득 내뿜으며 머리 위를 어지럽게 빙글빙글 돌고 있는 선풍기는 시원한 바람은커녕 더운 바람을 던져주고 있었다.

 

  “그래서 16번의 답은 3번.”

 

  맞았다.

 

  역시, 답은 3번으로 찍는 것이 진리다.

 

  찍신께서 점지하신대로 3번을 찍어 맞은 것에 대해 감탄을 금치 못했다. 수능 때도 이렇게 잘 찍으면 좋은데. 설마, 여기서 운을 다 써버리는 건 아니겠지?

 

  종이치자마자 갑작스레 뒤에서 지우개가 날아왔다. 어느 놈이야? 찍신께 아직 감사의 인사도 못 올렸는데! 부러져 짤만한 지우개... 명명백백 이름까지 써져있는 이 지우개의 주인은 재환이었다.

 

  “오늘은 여친이 안 와서 외로우신가. 한 여름군?”

 

  “뭐래... 뭔 여친? 모쏠한테 여친이 어디있다고.”

 

  어이없는 소리에 난 녀석의 지우개를 주워 똑같이 던져줬다.

 

  “나이스 캐치!”

 

  얄미운 놈.

 

  정환은 내가 던진 지우개를 낚아채 잡았다. 그리고는 의기양양하게 가슴을 쫙 펴고 웃었다. 확 손을 꺾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정환이가 촐싹거리는 동작을 선보이며 다가왔다.

 

  “모쏠부대에서 절규 중이라고. 회원하나 탈퇴했다면서. 장기회원이 될 거라고 좋아했는데 갑작스런 탈퇴라니... 이렇게 슬플 수가!”

 

  뭐라는 건지... 모쏠이기는 하지만 그런 무대에 들어간 적도 없는 데다 장기회원이 될 생각은 추호도 없는데 누구를 거기에 밀어 넣는 거야? 그리고 누가 지금 여친이라고?

 

  난 어이없다는 듯 정환을 바라봤다.

 

  “여친 아니야.”

 

  문득 떠오르는 그 얼굴에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녀석과는 그런 아름다운 관계가 아니다. 그저 죽어라 쫓아다니며 입시생 그림 디스하는 여자아이와 불쌍하게 당하기만 하는 남자아이. 그게 우리들을 설명할 수 있는 최대한의 관계였다. 서로에게 그런 감정이 티끌의 먼지만큼도 없는 그런 관계.

 

  내 답변에 정환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그리고는 또 아무런 말이나 내뱉기 시작했다.

 

  “둘이 맨날 붙어 있잖아. 하루도 안 보면 덧 날것처럼!”

 

  “맨날 보면 다 사귀는 거냐? 그럼, 너랑 나랑 사귀냐?”

 

  끔찍한 소리를 내뱉게 하다니... 대단하다. 재환!

 

  내 말에 정환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는 닭살이 돋은 듯 자기 몸을 마구 부벼대기 시작했다. 나야말로 온 몸에 닭살이 돋아나고 있었다. 내가 뱉은 말이지만 괜히 입 밖으로 냈다는 생각에 고개를 마구 저었다.

 

  “설마! 그럴 리가! 하고 진저리를 칠거라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 우리 사이를 부정하는 거니, 여름아?”

 

  “징그러워!”

 

  미친 놈. 실없는 놈.

 

  정환의 장난에 털이 거꾸로 솟는 기분이 들었다. 머리끝까지 기분 나쁜 전율이 감돌았다.

 

  “진짜 여자친구 아니야?”

 

  “그렇게 풋풋하고 아름다운 사이로 보여 절대 그렇게 안 보일 텐데? 핑크빛 오오라는 커녕 시커먼 어둠의 자식들이 술렁거리는 모습이 보일게 분명한데?”

 

  “둘이 그렇게 투닥투닥 거리면서 하하호호하는 데?”

 

  투닥투닥 거리면서 하하호호?

 

  어이가 없었다. 녀석과 나는 그런 사이가 절대 아니다. 맨날 발로 차이고 그림 못 그린다고 비웃음 당하고 자기가 쓴 소설의 감상문을 써오라며 강요당하고 벽화를 그리러 간다는 그 한마디에만 방긋방긋 웃는 그 밉살맞은 녀석과 내가 그런 사이라니! 세상에 천지가 개벽하고 죽은 성인들이 단체로 놀라 살아 돌아올 얘기다.

 

  부정하는 내 모습에 정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믿어라 좀 믿어! 사람 말은 좀 믿어야지. 내가 여태까지 살면서 그렇게 믿음을 주지 못했었나? 절대적인 신뢰를 퍼부을 만큼 정갈하게 살았는데?

 

  그 때, 누군가가 쳐다보는 느낌이 들었다. 신성한 쉬는 시간에 느껴지는 이 시선! 머리가 쭈삣 서며 자꾸만 땀이 배어나올 정도로 따가운 이 시선!

 

  “그런데 그거 아냐, 이 인기남아.”

 

  나는 눈을 깜빡였다. 정환이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인기남? 누가? 주변을 둘러봐도 인기남은 없었다. 정환이가 내 가슴팍을 툭툭 건드렸다.

 

  “너잖아. 너. 인기남. 마성의 남자, 한여름!”

 

  “또 시답잖은 말을 한다.”

 

  장난을 치는 게 그리도 좋은 것인지 녀석은 킬킬거리며 밉게 웃었다. 그러면서 나를 놀릴 생각인 건지 나를 인기남이라고 칭했다. 내가 인기가 많다니...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었다. 인기와는 전혀 거리가 먼데.

 

  “너 없을 때 너에 대해서 묻는 녀석이 있거든.”

 

  “나? 나에 대해서 묻는 다고?”

 

  눈이 동글동글해졌다. 반도의 흔한 평범한 고등학생인 나에 대해서 궁금해 한다고? 새로운 스토커의 등장인가? 몸을 사려야 하나? 이번에야 말로 경찰에 연락해야 하나?

 

  온갖 고민에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몰래카메라인가? 누가 날 지켜보고 있는 거야? 설마, 영화로 보던 「트루먼 쇼」인건가? 그런 거야?

 

  “여기에 카메라라도 숨겨져 있는 거야? 솔직하게 말해 봐. 너도 배우지? 배역인 거지? 내 감시인인 거야? 너 내 친구 맞아?”

 

  “얼씨구?”

 

  이번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은 건 정환이었다. 녀석은 내 이마를 두어번 쿡쿡 찔러대더니 검지를 들어 자신의 머리 옆에서 뱅뱅 돌려보였다.

 

  “미쳤냐?”

 

  짤막한 말 한마디에 나는 정환을 한 대 후려쳤다. 나는 지금 엄청 심각한데 장난이나 치고 있다니.

 

  “그런데 누가 내 뒤를 캔다는 거야?”

 

  기분이 나빴다.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 데, 어느 날 누군가가 내 뒤를 캐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기분 좋다고 할 인간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나는 고개를 마구 저었다.

 

  여름의 더운 열기 때문인 것인지 머리가 어질 거렸다. 녀석이 보고 싶었다. 다시 창밖을 쳐다보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녀석은 그 자리에 없었다.

 

  “어?! 저기! 저기!”

 

  정환이 누군가를 가리켰다. 고개를 빼꼼 내밀고 몰래 내 쪽을 쳐다보고 있던 것은 남학생이었다. 여자가 날 쫓아다니더니 이젠 남자인가. 오한이 들었다. 노려보고 있는 모습이 나를 영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눈초리였다.

 

  설마... 녀석을 좋아하는 건가?

 

  녀석을 좋아하니까 내가 옆에 있는 것이 싫어서 지금 저렇게 나를 무섭게 노려보고 있는 건가? 그런 건가? 내가 싫어서? 녀석의 옆에 있는 내가 싫어서?

 

  또 또... 망상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고개를 마구 저었다. 오늘 하루만 해도 머리를 몇 번이나 저으니 현기증이 났다.

 

  “이봐!”

 

  말을 걸어보려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녀석이 쏜살같이 도망갔다. 그리고 이어지는 종소리.

 

  “누군지 알아?”

 

  “글쎄? 2학년인건 알겠는 데 누군지는 모르겠어. 나님의 정보력을 동원해서 한 번 찾아볼까?”

 

  마당발이라고 소문이 난 재환이라면 저 정체불명의 남학생에 대해 알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정환이의 정보통에 손을 빌리고 싶어졌다. 내가 직접 저 또 다른 스토커를 상대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지금 나에겐 소나기라는 어마어마한 녀석이 있으니까.

 

  “찾을 수 있어?”

 

  “당연하지. 이 학교의 모든 잡다한 정보는 다 내 손 안에 있도다!”

 

  “그럼 부탁할게.”

 

  나는 정환에게 덥썩 부탁했다. 저 또 다른 남자 스토커의 정체를 밝혀주기를 간절히 아주아주 간절히 바랐다. 이 이상 스토커에게 시달리고 싶은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었다.

 

  더구나 이번엔 남자? 여자도 아니고 남자한테 쫓기는 건 더욱 사양이었다. 그런데 꼭 어디서 본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착각일까? 어디서 본 듯한 그런 느낌이 들었지만 들어오시는 선생님으로 인해 더 이상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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