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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내겐 너무 소중한 그대
작가 : 카렌
작품등록일 : 2017.10.30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마술사학교'의 최종우승자 마술소녀 윤제이. 한달 전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아빠의 죽음에 무언가 숨겨진 음모가 있는 게 분명하다며, 제이의 주변 사람들을 차례차례 의심하는 수상한 그놈이 나타났다. 그놈의 정체는 사생활이 철저하게 비밀에 휩싸여 있는 독일에 국민마트 CEO 강철수. #티격태격, #알콩달콩, #로맨틱코미디, #츤데레 남주, #당찬 여주 habilis21@naver.com

 
44.나중에는 내가 너 구해줄게.
작성일 : 17-11-24 20:38     조회 : 260     추천 : 0     분량 : 8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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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삐, 철커덕.

 

 웅크리고 앉아서 제이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영훈은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미소를 머금었다.

 

 착, 착, 착.

 

 제이는 슬리퍼를 신고 걸어오는 것 같았다.

 

 집에서도 슬리퍼를 신고 생활하다니, 역시 제이는 자신의 여신이 될 자격이 충분히 있는 여자임이 분명했다.

 

 그리고 오늘 밤, 제이는 완전히 자신의 것이 될 것이다.

 

 저벅, 저벅.

 

 그녀의 발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걸 보니 제이가 자신에게 가까이 온 것 같았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영훈은 뒤에서 와락 그녀를 두 팔로 껴안았다.

 

  "……윤제이, 가만히 있어!"

 

 그런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영훈의 손에 닿은 곳에 말랑하고 물컹한 느낌이 아니라 딱딱하고 단단한 촉감이 느껴졌다.

 

  "윤 제이, 가만히 있어?“

 

 머리 위로 서늘한 남자의 음성이 들리자 영훈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어둠 속에서 영훈의 목소리를 들은 철수의 표정은 험악하게 구겨져 있었다.

 

 뒤에서 자신의 몸을 뎦치다가 다시 뒤로 물러서는 이 녀석은 어디서 굴러 들어온 녀석인가.

 

 철수는 크게 소리를 치고 화를 내는 것보다 더 무서운 방법으로 영훈의 심장을 움켜 쥐었다.

 

  "뭐라고?"

 

 영훈은 그의 앞에 나타난 철수를 보고 맹수라도 본 것처럼 소스라치게 놀랐다.

 

 쉽게 흥분하지 않는 성격의 철수는 화를 내지 않고 어두워져 있는 방 안의 불을 밝히기 위해 버튼을 눌렀다.

 

 주위가 밝아지자 자신의 앞에서 벌벌 떨고 있는 영훈의 초라한 모습이 보였다.

 

 아까 뒤에서 자신을 덮치면서 보여줬던 당당함은 환한 불빛 아래에서 연기처럼 사라져있었다.

 

  "너, ……뭐야?"

 

 길게 질문할 필요도 없다고 느낀 철수는 단 세 글자로 영훈이 왜 여기에 있는 건지 물었다.

 

 이곳은 나와 제이 그리고 노랑이가 함께 사는 평화롭고 아늑한 공간인데, 불순물처럼 찾아온 너의 정체는 무엇이냐.

 

 철수의 서슬 퍼런 눈동자는 영훈에게 그렇게 묻고 있었다.

 

  "……그, 그, 그, 그게……."

 

 영훈은 그의 두 어깨를 짓누르는 듯한 철수의 존재감에 압도된 듯 제대러 서있지도 못했다.

 

 철수는 불쾌한 표정으로 영훈을 바라보고 있다가 고갸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아까 뭐라고 했지?"

 

 오늘 철수는 집에 오지 않고 예약한 H 호텔 스위트 룸에서 머무르려고 했지만 왠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뭐가 이상한 건지 특별하게 이야기할 순 없었지만, 오늘은 그녀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뚜렷한 이유도 없고 목적의식도 없이 그냥 갑자기 든 생각이었다.

 

 무시하려고 하면 충분히 무시하고 지나칠 만한 생각이였지만 제이와 관련된 것이었기 때문에 철수는 이를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었다.

 

 불이 꺼져 있는 집 안에는 평소와는 매우 다른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노랑이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은 것도 이상한 점이었다.

 

 언제나 여왕님처럼 도도하게 굴었던 노랑이는 사람이 왔다고 해서 캣타워에서 내려오지는 않았지만, 항상 그들을 반기는 귀여운 울음소리를 냈다.

 

 철수가 불을 켜지 않고 안으로 들어간 것은 신의 한 수였다,

 

 만약 철수가 불을 켰다면 겁도 없이 집 안으로 들어온 영훈이 자신에게 존재를 드러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내가 물었지. 너 뭐냐고."

 

 철수는 대답하지 않는 영훈에게 성큼성큼 한 걸음씩 다가갔다.

 

 철수가 그의 앞으로 다가가 별다른 동작을 하지 않았는데도 영훈은 뒤로 자빠지면서 바닥에서 나동그라졌다.

 

  "그, 그게……"

 

 영훈의 이마에서는 땀이 비 오듯이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철수의 표정은 여유가 흘러 넘쳤다.

 

 맹수 우리 속에 겁도 없이 발을 들여놓은 비루한 것을 보는 듯이 철수의 눈빛은 강렬하고 날카로웠다.

 

  "죄, 죄송합니다. 지, 집을 잘못 찾아온 것 같습니다."

 

 영훈의 말 같지도 않은 변명에 철수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지금 이 상황은 웃음 밖에 나오지 않는 상황이었다.

 

 겨우 머리를 써서 한다는 말이 고잔 그런 것이었다니.

 

 호기 있게 자신의 집에 함부로 침범한 자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무척이나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너 여기 왜 온 거야."

 

 철수는 다시 한번 낮은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이번에 그의 목소리에는 영훈을 향한 마지막 경고의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이번에도 허튼수작 부리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가 담겨 있었다.

 

 영훈도 이번엔 철수가 마지막 경고를 그에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건지 그대로 무릎을 꿇고 바닥에 엎드렸다.

 

  "죄, 죄송합니다! 형님!"

 

 함부로 자신의 낙원에 침범한 자에게 형님 소리를 듣는 것에 토기가 밀려왔다,

 

  "형님? 누가 니 형님이야?"

 

 철수는 거칠게 넥타이를 풀어 해지고 양복 재킷을 벗어 던졌다.

 

 이미 모든 사태를 예감하고 있는 듯이 영훈은 고개를 바닥에 처박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그냥 윤제이 팬이라서 그랬어요. 윤제이가 평소에 어떤 모습인지 궁금해서 그랬습니다!"

 

  "……뭐?"

 

 웅얼거리는 영훈의 말을 다시 한번 제대로 듣기 위해서 철수는 그의 멱살을 잡아 일으켰다.

 

  "뭐라고 말했어. 다시 한번 말해봐."

 

  "……히익!"

 

 철수에게 멱살을 잡혀서 대롱대롱 공중에 매달린 영훈은 기겁을 하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너 대체 우리 집에 왜 온 거야."

 

 철수에게 제이와 함께 살고 잇는 이 공간은 누구도 침범해서 안 되는 성역 같은 곳이었다.

 

 아무에게도 그녀를 빼앗기기 싫어서 자신만 들어올 수 있는 공간에 꼼꼼 숨겨놓았는데 바퀴벌레 같은 남자가 주제도 모르고 안으로 들어왔다.

 

  "죄, 죄송합니다. 카메라 설치 한 거 다 떼겠습니다!"

 

 영훈의 말을 들은 철수는 멱살을 잡은 채로 그를 바닥에 내팽겨 치고 제이의 방으로 들어갔다.

 

 항상 단절하게 개어져 있던 제이의 이불은 엉망이 되어 있었고 여기 저기에서 그녀의 방에서 평소에 보지 못했던 물건들이 발견되었다.

 

 제이의 방안에 있는 물건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던 철수는 영훈이 설치해놓은 몰래카메라를 하나씩 찾아냈다.

 

 제이의 책상에 올려져 있는 물병, 안경테, 그리고 평소에 절대 제이가 차고 다니지 않을 법한 시계에는 초소형 카메라가 달려있었다.

 

 만약 철수가 제이의 방에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던 것을 몰랐더라면 그녀의 일상이 모두 카메라에 녹화되었을 것이다.

 

 녹화된 파일들이 밖으로 유출되었다면 제이는 크나큰 충격에 사로잡힐 것이다.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 제이는 한 달 동안 방안에 틀어박혀서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녀의 방에 설치된 몰래카메라로 인해 그녀의 사생활이 세상 사람들에게 입에 오른다면 제이는 집에서 나오려고 하지 않고 대인 기피증에 시달렸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것들이 모두 눈에 선명하게 그려졌던 철수의 눈동자에서 번쩍 섬광이 튀어 올랐다.

 

 머리끝까지 치솟아 오른 분노를 참을 수 없었던 철수는 거실에 있는 영훈에게 달려갔다.

 

 뛰어온 철수의 주먹은 정확하게 영훈의 복부에 처박혔다.

 

  "허억!"

 

 영훈이 고통에 찬 신음을 내뱉었지만, 철수의 화는 불붙은 듯이 더욱 세게 불타올랐다.

 

  "겨우 너 따위가 제이의 방 안에 마음대로 들어가다니."

 

 다음으로 철수의 주먹은 바로 영훈의 얼굴로 향했다.

 

  "허억!"

 

 머리가 띵해진 듯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영훈을 향해 철수의 주먹세례는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그의 이성을 잃게 했다.

 

 이미 세상 사람들에게 치여서 많이 지친 그녀에게 또 다른 커다란 시련을 줄지도 모르는 영훈의 행동은 용서받지 못할 끔찍한 짓이었다.

 

  "니가 뭔데 제이의 방에 함부로 들어가."

 

 퍼억!

 

 철수는 주먹이 정확하게 다시 한번 영훈의 하복부를 강타했다.

 

  "나도 들어갈 때 노크를 하고 양해를 구하건만 고작 너 같은 것이 제이의 방을 마음대로 들어가?"

 

  "제, 제발! 사, 살려주세요!"

 

 바닥을 기면서 용서를 구하는 영훈을 보고 철수는 비소를 머금었다.

 

  "들어올 때도 재주껏 들어 왔으니 나갈 때도 재주껏 나가봐."

 

  "……흐. 흐윽!"

 

  "날 이길 수 있다면 여길 나갈 수 있을 거야."

 

 와이셔츠의 손목에 있는 단추를 푸른 철수의 눈빛은 먹이를 발견한 맹수처럼 빛났다.

 

 

 

 ***

 

 

 

 제이는 급하게 문을 열고 경찰서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마침 술 취한 남자가 행패를 부리고 있는 경찰서 안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야, 민중이 지팡이가 시민을 때려도 되는 거야?"

 

  "이거 놔! 내가 누군지 몰라서 그래?"

 

 술 취한 남자들을 제어하기 위해 서너 명의 경찰들이 달라붙었지만 그들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취객들과 경찰들이 씨름하고 있는 현장에 가로막혀서 더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던 제이는 멀리 있는 철수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철수 씨!"

 

 제이를 발견한 철수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녀의 앞으로 다가왔다.

 

 제이는 자신을 보호해준 철수 덕분에 무사히 경찰서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에요?"

 

 갑작스럽게 경찰서에 있다는 연락을 받은 제이는 한달음에 동네에 있는 경찰서로 달려왔다.

 

  "……."

 

 그녀의 질문에도 아무 말 없는 철수의 입술에 생긴 상처를 보고 제이는 살포시 인상을 찌푸렸다.

 

  "철수 씨, 왜 그래요? 누구랑 다쳤어요?"

 

  "자, 자, 아가씨, 수사 방해하지 말고 자리에 앉아요."

 

 모자를 삐딱하게 눌러 쓴 경찰이 책상을 두드리자, 제이는 얼른 옆에 있는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이름이 뭐라고 하셨죠?"

 

  "강철수입니다."

 

 경찰은 타닥타닥 소리를 내면서 철수의 신상 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철수의 전화를 받고 무작정 달려오긴 했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제이는 눈동자를 굴렸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람을 그렇게 패면 어떡합니까?"

 

 그게 무슨 소리지? 철수 씨가 사람을 패?

 

  "……어머!"

 

 마음의 진정을 찾은 제이는 철수의 손목에 채워져 있는 쇠고랑을 발견했다.

 

  "이 남자분이 다른 남자분을 엄청나게 때리셔서 경찰서에 오신 거예요."

 

  "저, 정말요?"

 

 제이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철수를 바라보자 그는 아무 변명 없이 고개를 아래로 떨구었다.

 

 제이는 철수의 귓가에 가까이 다가가서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철수 씨, 왜 그랬어요? 사람을 때리면 어떡해요?"

 

  "……."

 

 변명조차 하지 않는 철수를 보고 실망한 제이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경찰 아저씨, 죄송합니다.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아니, 뭐, 저한테 사과하실 필요는 없죠."

 

  "그런데 피해자분은 어디에 계시죠? 제가 철수 씨를 대신해서 사과하고 싶어요."

 

 제이의 말에 경찰이 픽, 하고 웃음을 터트리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아, 윤제이 씨. TV에서 봤던 것처럼 되게 순진하시네. 제이 씨. 그 자식한테 사과할 필요 없어요."

 

  "네?"

 

  "그 자식이 윤제이 씨 사는 집에 무단 침입한 놈이었어요."

 

  "무, 무단 침입이요?"

 

  "네, 마침 여기 계신 남성분이 집에 계셔서 다행이지 아니면 제이 씨 큰일 날 뻔했어요."

 

 무단침입이라니……!

 

 경찰의 설명을 들은 제이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런데 집안으로는 어떻게 침입한 거죠?"

 

 분명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지문을 입력해야 문이 열렸다.

 

 지문감식기에는 철수와 제이의 지문 밖에 입력되어 있기 때문에 함부로 집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철수는 항상 보안에 있어서 만큼은 철저하고 예민하게 신경 썼다.

 

  "아마 이걸로 찍고 들어간 것 같아요."

 

 경찰은 손가락 모양의 실리콘 틀을 보여주면서 그녀에게 물었다.

 

  "제이 씨, 혹시 지문 같은 거 남한테 찍어 준 적 있어요?"

 

  "……네?"

 

 당황한 표정으로 기억을 더듬던 제이는 얼마 전에 백화점에서 했던 사인회를 떠올렸다.

 

  ㅡ 감사합니다. 저기 죄송한데 종이에다가 입술 한 번만 찍어주시면 안 될까요?

 

  ㅡ ……네?

 

 갑자기 나타나서 황당한 요구를 하는 남자의 얼굴을 떠올린 제이의 표정이 하얗게 질렸다.

 

  ㅡ 오늘 바른 립스틱 색이 너무 예뻐서 입술은 안 될 것 같고. 대신 손가락 찍어드릴게요.

 

 팬들이 보는 앞에서 괜히 소란을 피우고 싶지 않아서 급한 대로 입술 대신 지문을 찍어줬던 제이는 영훈을 그저 조금 특이한 팬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 적 있죠? 아이고, 제이 씨. 그러면 안 돼요. 지분 같은 거 다른 사람한테 함부로 찍어주면 안 되죠."

 

  "……."

 

  "그 자식이 제이 씨 지문을 본떠 만든 실리콘 틀로 문을 열고 들어가서 제이 씨 방안에다가 여러 개의 몰래카메라를 설치했어요."

 

  "……."

 

  "집안뿐만 아니라 화장실에다가도 전부 다 설치했어요."

 

  "……."

 

  "만약에 여기 계신 남자분이 없었다면 제이 씨는 정말 큰일 날 뻔했어요. 함부로 지문 같은 걸 찍어주면 어떡해요."

 

 제이는 자신을 책망하는 듯한 경찰의 말에 시선을 아래로 내리고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저기 경찰 조사는 제가 받는 거 아닙니까?"

 

 옆에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철수가 제이의 앞을 막아서도 경찰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 네. 잠시만요. 잠깐 확인할 게 있으니까 기다리세요."

 

 경찰이 떠나자 철수는 조금만 건드리면 눈물을 터트릴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제이를 보면서 인상을 구겼다.

 

 사실 이걸 보고 싶지 않아서 제이에게 전화를 하는 것을 망설였었다.

 

 그저 자신의 선에서 조용히 해결하고 싶었는데 참고인으로 제이를 부르지 않으면 경찰서에 나갈 수 없다는 엄포에 철수는 어쩔 수 없이 그녀를 이곳으로 불렀다.

 

 제이에게 험한 모습 보여주고 싶지 않았는데, 세상에서 아름답고 좋은 것만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다.

 

 철수는 침통한 표정으로 제이를 바라보았다.

 

 제이는 세상에 모든 짐을 어깨에 짊어진 사람처럼 어깨를 아래로 내리고 있었다.

 

  "정말로 이럴 줄은 몰랐어요."

 

  "……."

 

  "난 그냥 팬이라고 하길래 팬서비스로 해준 건데."

 

 제이의 눈가에 그렁그렁 맺혀있는 눈물이 결국 그녀의 볼을 타고 아래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제가 찍어 준 지문으로 우리 집헤 함부로 들어오다니……."

 

 서러워진 제이가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눈물을 흘리는 제이를 보고 철수는 가슴이 아파졌다.

 

 이런 모습은 절대 보고 싶지 않았는데…….

 

 제이의 눈에서 눈물이 나오지 않게 하려고 피땀흘려 노력했건만 결국 그녀의 눈에서 이슬 같은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철수는 암담한 심정으로 제이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커다란 손을 그녀의 볼에 살며시 가져다 대었다.

 

  "제이, 슬퍼하지 말아요."

 

  "……."

 

  "내가 이런 거 보려고 그 자식이랑 싸운 거 아닙니다."

 

 철수의 위로에 더 서러워진 제이는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소나기처럼 흘러내렸다.

 

 인상을 찌푸리면서 눈물을 흘리는 제이를 바라보던 철수는 티슈를 뽑아서 그녀의 눈물을 친절하게 닦아 주었다.

 

  "싸운 보람도 없이 왜 우는 겁니까."

 

  "……철수 씨한테 미안해서요."

 

 제이는 입술 사이로 힘겹게 목소리를 냈다.

 

 목이 콱 메어서 쉽게 말을 잇지 못하는 제이를 바라보던 철수는 다정한 눈빛으로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많이 아팠어요?"

 

 제이는 자신의 입술에 난 상처를 보고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니요. 하나도 안 아팠습니다."

 

  "여기, 입술에 상처 났잖아요."

 

  "이거 맞아서 생긴 상처 아닙니다."

 

  "……그럼요?"

 

 철수는 조금 낯부끄러워서 피식 웃음을 터트리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신나게 때리다가 실수로 내 주먹으로 내 입술을 때렸습니다."

 

 철수의 말에 벙찐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제이가 살포시 웃음을 터트렸다.

 

 다시 그녀의 웃음을 본 철수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게 뭐예요."

 

  "그때 너무 신났던 것 같습니다."

 

 제이가 다시 어이없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많이 때렸어요?"

 

  "네, 엄청 많이 때렸습니다."

 

  "……그래요, 그럼 됐어요."

 

 제이의 말에 철수는 흡족한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이가 자신에게 고맙다는 말 한마디만 한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그녀의 말 한마디에 그동안 했던 노력에 최고의 보상을 받은 기분이었다.

 

 누구에게도 못 가져본 이런 감정. 그래서 더 서툴고 낯설지만, 철수는 자신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철수 씨."

 

  "……."

 

  "정말 고마워요."

 

 제이가 맑은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면서 고맙다는 말을 했다.

 

 철수는 제이의 순수한 눈동자를 보는 순간 예전에 그녀와 만났던 기억이 다시금 떠올랐다.

 

 비록 지금 그녀는 그때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지만, 철수는 예전에 초등학생이었던 제이와 만났던 적이 있었다.

 

  ㅡ 나중에는 내가 너 구해줄게.

 고사리 같은 새끼손가락과 자신의 손가락을 걸면서 했던 굳은 약속.

 

 철수는 그때의 약속을 비로소 이룬 것만 같아서 뿌듯했고 자기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예전에 제이 씨가 나 구해줬던 거 기억 안 나요?"

 

  "……예전에요? 언제요?"

 

 제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신을 바라보자 철수는 훗, 하고 웃으며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아니, 아니에요."

 

 지금 중요한 건 그때의 일이 아니기에 그때의 일은 잠시 묻어두기로 했다.

 

 지금은 그녀와 이 난장판 같은 경찰서에서 벗어나는 게 더 중요했다.

 

 철수는 핸드폰으로 아는 경찰청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내, 청장님. 저 강철수입니다."

 

 철수는 간단하게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경찰서 안에 있는 서장에게 전화를 바꿔주었다.

 

 철수가 바꿔준 경찰청장과 통화를 한 경찰 서장은 전화를 끊은 뒤 그의 손목에 채워져 있던 수갑을 풀어주었다.

 

 함께 경찰서에 나오면서 제이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떻게 한 거예요?"

 

  "마술이죠. 나도 제이 만틈은 아니지만, 마술할 수 있어요."

 

 철수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하면서 미소를 머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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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49.영원히 그와 함께 하고 싶어. 2017 / 12 / 2 253 0 7901   
48 48.철수 씨가 너 좋아하는 거 아니야? 2017 / 12 / 1 248 0 8611   
47 47.무릎과 무릎 사이에 2017 / 11 / 29 628 0 8123   
46 46.제이는 철수를 좋아해? 2017 / 11 / 27 277 0 8107   
45 45.슬프면 슬프다고 말해요 2017 / 11 / 26 260 0 8563   
44 44.나중에는 내가 너 구해줄게. 2017 / 11 / 24 261 0 8193   
43 43.제이가 내 사무실에는 어떻게……? 2017 / 11 / 24 258 0 8265   
42 42.미래의 남편이요? 2017 / 11 / 22 253 0 8823   
41 41.짝사랑하는 여자의 속마음을 알아보는 법 2017 / 11 / 20 260 0 8481   
40 40.제이 씨, 우리 형이랑 사귀어요? 2017 / 11 / 17 241 0 8478   
39 39.품에 안긴 가녀린 몸 2017 / 11 / 16 240 0 7984   
38 38.내가 철수 씨를 좋아한다고? 2017 / 11 / 15 272 0 7784   
37 37.대표님, 제이 씨랑 데이트하세요. 2017 / 11 / 14 235 0 7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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