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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집사와 남편 사이
작가 : 루야
작품등록일 : 2017.11.7

메이블 공작, 비올레타 메이블에게 7살 이전의 기억은 없다.

그녀의 나이 7살, 죽을 뻔한 비올레타의 앞에서 부모는 걱정 하나 하지 않았다는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

'죽을뻔한 너를 살린 사람은 황제 폐하이니 그 분께 평생을 바쳐라.'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소녀는 그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나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노예처럼 부려지는 것에 불만을 가졌고 스물이 넘은 후로는 반항심이 생겼다. 하지만 무려 7살 때부터 지속된 세뇌는 그녀를 당당해질 수 없게 만들었다.

26살, 19년 동안의 속박을 마침내 예정된 죽음으로서 벗어나게 된 그녀. 행복한 삶은 고사하고 그저 죽음으로 도망칠 생각 뿐이었는데...

'저는 주인님의 충직한 종복이니까요.'

그대는 왜 내게 다가오는가.
마음을 열어 내 뒤를 맡기고 했건만 그대는 왜 존재하지 않을 나의 미래를 이야기하는가.


[ 시한부여주, 공작여주, 무심여주, 흑막남주, 여주호구남주, 남주후보 아마도 셋, 조금의 힐링물(잔잔X), 피폐물ㄴㄴ 초반부에 살짝 스릴러, 새드엔딩 아니에요 :D ]

-표지는 shutterstock!
-조아라와 동시 연재중..!

 
14화. 이상한 집사님
작성일 : 17-11-23 22:31     조회 : 271     추천 : 0     분량 : 3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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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실로 들어와 수건을 바닥에 내려놓은 비올레타가 셔츠 단추를 하나 둘 풀러갔다. 물에 젖은 셔츠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다리에 딱 달라붙은 바지도 벗어버리고 목욕 용 수건을 몸에 두른 그녀는 등을 돌리고 물의 온도를 재고 있던 노엘을 조용히 불렀다.

 

 숙이고 있던 상체를 올린 노엘이 예? 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흘 전에는, 내가 감정이 과했다.”

  “아닙니다. 제 위법행위를 고발하지 않으신 것만 해도 감사할 따름이죠.”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목욕시중을 들어줄 수 있겠나?”

  “예? 예. 여, 영광입니다.”

 

 어울리지 않게 그의 귀 끝이 알게 모르게 붉게 물들었다. 수증기가 피어올라 흐릿한 욕실 안에서 목욕수건 하나를 두르고 그를 바라보고 있는 비올레타는 위험하기 그지없었다.

 

 빗물에 창백하게 질린 어깨 위로 새카만 머리칼이 흐트러져 있었고 물에 젖은 속눈썹 아래서 짙은 자수정 같은 눈이 흔들림 없이 노엘을 응시했다. 붉게 상기된 입술이 살짝 벌어져 얕은 숨을 뱉어냈다.

 

 비올레타가 가만히 서 있는 것이 추운지 물방울이 떨어지는 팔다리를 문질렀다. 퍼뜩 정신을 차린 노엘이 당황해 그녀를 따뜻하게 데운 물로 안내했다. 비올레타의 부드러운 살갗이 살짝 손에 스쳤다. 노엘은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아무 사심도 없는 척 비올레타가 커다란 욕조 안에 자리하는 것을 도왔다.

 

  “그대의 근신을 취소하마. 오늘부터 다시 복귀해도 좋다.”

  “정말…… 감사합니다.”

 

 벌을 내린 주체로서 노엘을 먼저 찾아가기가 뭐했던 비올레타는 기꺼이 먼저 다가와준 그의 근신을 취소했다.

 

  “팔을…….”

 

 따뜻하게 온 몸을 녹이는 물에 온몸을 담그고 있던 그녀가 오른팔을 뻗어 노엘의 손에 맡겼다. 부드러운 손길이 팔을 안마하고 피로를 풀어주었다. 정확히 근육이 굳고 뭉친 곳을 풀어주는 섬세한 손가락에 비올레타가 만족스런 비음을 흘렸다.

 

  “좋으십니까?”

  “으…… 음, 내가 늙긴 늙었는지.”

  “겨우 스물여섯의 나이십니다. 그렇게 치면 저는 노인이나 마찬가지죠.”

 

 비올레타가 쿡쿡 웃었다.

 

  “그대는 내가 곧 죽는다는 사실을 아니 뭐 하나 부탁해도 되겠나?”

  “하문하십시오, 주인님.”

  “시간이 지나 내가 신의 품으로 돌아간 후에 충직한 집사로서 내 아들을, 베르안 메이블을 보좌해주게.”

 

 노엘은 그녀의 왼쪽 팔을 마사지하며 하하- 웃었다.

 

  “주인님께서 신의 품으로 돌아가시는 날은 그리 쉽게 오지 않으리라 생각하지만 혹시라도 그런 날이 오면 기꺼이 공자님을 보필하겠습니다.”

  “……고맙구나.”

 

 셔츠를 팔뚝까지 걷어 올린 그가 비올레타의 왼팔을 도로 물속으로 넣어주며 머뭇거렸다.

 

  “다리는…… 어찌.”

  “부탁해도 되겠나?”

  “원하신다면.”

 

 비올레타는 사심 하나 없이 오른다리를 그에게 맡겼다. 얇고 매끈한 다리에 근육이 알게 모르게 뭉쳐있는 곳을 골라 정성스레 안마하며 노엘은 제 눈을 감았다. 손아귀에 감기는 부드러운 다리의 감촉이 그를 충동질하고 있었다.

 

 비올레타가 편안함에 몸을 맡기고 살며시 눈을 감았다. 꾹꾹 아프지 않게 눌러오는 노엘의 손가락이 절로 잠을 불러왔다. 하아- 만족스러운 신음이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왔다. 그녀는 상체와 허벅지의 반을 가리는 수건이 흘러내리는 것도 모르고 몸을 편하게 풀었다.

 

  “주인님, 주인님.”

  “……왜 그러냐?”

 

 나른하게 늘어진 그녀가 기지개를 키며 몸을 일으켰다. 잠깐 졸았는지 어느새 물이 식어있었다. 비올레타가 시간을 헤아려보며 상체를 일으키자 축축한 수건이 가슴께에서 스르륵 흘러내렸다. 반쯤 드러난 살결에 노엘이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가끔 집사가 목욕시중을 드는 경우도 있었지만 과할 정도로 주인의 속살을 보는 것은 심각한 무례였다. 고개를 돌린 그를 의식한 비올레타는 목욕용 수건을 꽉 여미며 욕조에서 나왔다. 정적이 흐르는 욕실 안을 바깥에서 울리는 빗소리가 채웠다.

 

  “내가…… 잠시 잠에 빠졌었나.”

  “예, 워낙 곤히 주무셔서 물이 식은 지금에야 각하를 깨웠습니다.”

  “시간은 어느 정도 지났지?”

  “저녁 시간이 막 지났습니다. 식사는 방에 계시면 가지고 올라오겠습니다.”

 

 비올레타는 그녀의 몸을 닦을 수건을 들고 망설이는 노엘을 보다 그의 곤란함을 해결해주기로 했다. 조금 무리수를 두어 그에게 목욕시중을 맡겼지만 낯 뜨거운 일까지 모두 시킬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내가 할 테니 가서 식사를 준비해주게.”

  “예, 곧 가져오겠습니다.”

 

 그녀의 손에 공손히 수건을 넘긴 노엘이 조금 달아오른 목덜미를 버젓이 드러내며 욕실을 나섰다. 비올레타는 통쾌하게 풀린 얼굴을 하고 닫힌 문을 응시하다 목욕수건을 푸르고 물방울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노엘 미에타에게 참 익숙해졌구나.’

 

 왠지 헛웃음이 나왔다.

 

 

 저녁 식사를 마친 비올레타는 노엘을 앉혀놓고 책상서랍에 있는 손수건을 찾았다. 주려고 했던 것이 언제인데 아직까지도 주지 못했나, 웃음이 나왔다. 반듯하게 접어놓은 손수건의 오른쪽 아래에는 그녀가 열심히 수놓은 늑대가 있었다.

 

 비올레타가 자그마한 흰색 천을 들고 옅은 웃음만을 짓고 있자 궁금해졌는지 노엘이 슬쩍 물었다.

 

  “무엇…… 입니까?”

  “그대에게 주려고 했던 것.”

 

 노엘에게 손수건을 건네며 비올레타가 팔짱을 켰다. 네 번 접으면 손 안에 바로 들어가는 손수건 하나를 받았다고 감격한 노엘은 뭐라 말해야 될지 망설이며 눈가를 흐렸다. 콧대가 시렸다. 이런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비올레타가 직접 수놓은 손수건.

 

 그녀가 얼마나 손수건을 들고 고민했는지 알만도 했다. 손수건에 비올레타의 체취와 체향이 온통 묻어 있었다. 감격한 나머지 몇 분 동안 말이 없던 노엘은 손수건을 안주머니로 밀어 넣으며 비올레타의 앞에 예를 갖추어 한쪽 무릎을 꿇었다.

 

  “맹세를 허락해주십시오. 비록 집사의 길을 선택했지만 소인도 기사의 작위는 있습니다.”

  “기사의…… 맹세라.”

  “부탁드립니다, 주인님.”

 

 비올레타는 느릿하게 오른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손을 정성스레 받아든 그가 손등에 입술을 대고 오른손으로 이마에 메이블 가의 약식문양을 그렸다.

 

  “……하인네스 11세 치하 23년 9월 8일, 기사 노엘 아론이 메이블 공작각하께 맹세합니다.”

 

 메이블 가의 약식문양을 흉내 내는 것을 마친 노엘이 이제는 미에타 백작가의 약식문양을 재빠르게 그려냈다.

 

  “제 생명이 다할 때까지, 모든 열과 성을 다해 당신을 모시고 보필하고 싶습니다. 부디 청하옵건대 제 청을 허락해 주십시오.”

  “그대의 청을…… 허한다.”

  “감사드립니다, 주인님.”

 

 반 박자 느리게 비올레타의 손등에서 입술을 때어낸 노엘이 희미하게 웃었다. 안타까운 듯 그 뒤로도 잠시 동안 그녀의 손을 잡고 있던 그는 의심을 피하기 위해 손을 때었다.

 

 노엘이 손수건을 가지고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는 새에 비올레타는 책상에 앉아 서류와 편지를 분류해놓기 시작했다. 밀린 업무들이 한 아름, 편지들은 다행히 몇 개 없었다. 노엘의 근신을 명했던 것 때문에 마음이 심란해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여러 서류들을 둘러보던 비올레타가 푸른색으로 물들인 아들의 편지지를 발견했다.

 

 그녀는 편지가 언제 왔는지 노엘에게 물어보려다가 그가 삼일 동안 근신이었다는 것을 깨달고 튀어나가려던 말을 막았다. 조용히 편지를 뜯은 비올레타가 딱 저를 닮은 필체를 보며 은근하고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뭐 기쁜 일이 있으십니까?”

 

 그녀가 사랑하는 이를 보는 얼굴로 웃음 지었기에 노엘이 슬쩍 물어왔다. 비올레타는 정말 기쁘다는 듯이 고른 치열을 드러내며 하하 웃었다.

 

  “베르안이 이곳으로 온다고 하는구나.”

  “메이블 공자님께서 말입니까? 아직 아카데미가 쉬는 계절이 아니지 않나요?”

 

 정곡을 찌른 노엘의 말에 비올레타는 의문을 품었다. 편지에는 그저 그녀가 보고 싶으니 별장으로 가겠다는 말만 장황하게 있을 뿐, 아카데미에 대한 말은 하나도 없었다. 설마 평소처럼 이유도 되도 않는 이상한 것을 핑계로 아카데미를 빠진 것은 아니겠지, 비올레타는 아멜리안 영지로 달려오고 있을 아들의 평소 행실을 떠올렸다.

 

  “영특한 아이라 학업에 대한 염려는 없다만…….”

 

 부모로서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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