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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칼끝이 너를 향할 때
작가 : 몬밍
작품등록일 : 2017.11.21

“당신은 아무것도 몰라.” 
스캇은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한 쪽 눈썹이 날개처럼 치켜 올라갔다.
'언제까지 저 소리를!'
지긋지긋한 말에 이젠 노여움이 타올랐다.
그는 몸을 돌려 분노를 내뱉으려 했다.
그러나...
그를 응시하는 로렌의 눈동자에 까마득한 슬픔을 보고는 온몸이 차가워지는 느낌이었다. '어째서 네가 그런 표정을 짓는 거지?'

 
2편 순백의 기사
작성일 : 17-11-23 20:51     조회 : 277     추천 : 1     분량 :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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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스캇은 서리가 내린 공터에 서있는 젊은 기사 위에, 불타오르는 대평야에서 홀로 빛나던 한 사내를 덮어씌웠다.

 

 거대한 군마에 우뚝 앉아 세상을 내려다보던, 흰 바지에 하얀 장갑, 그리고 은빛 금속 고리들로 새하얗던 전장의 ‘순백의 기사’;

 그 아름다운 옷차림의 정점은 금빛 독수리가 비상하는 흰 망토였는데, 크라온의 기사를 상징했다.

 

 스캇은 그 점이 마음에 안차면서도 그것이 사내와 무척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자신 앞에서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순백의 기사’, 로렌의 새하얗던 옷은 누렇게 색이 변색되고 은빛 갑옷은 빛바랬지만, 여전히 빛나 보였다.

 

 그는 죽음을 명예라는 미명이라 부르며, 재래식 화장실인 척하는 푸세식 화장실 같은 자들 아래에서 썩기 아까운 자였다.

 

 전장에서 그와 칼을 겨누며, 목덜미가 서늘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푸른창공을 비상하는 한 마리의 고고한 독수리처럼 그는 거침없이 밀고 들어왔다.

 결국 패전했음에도 끝까지 자신을 로져스 산맥까지 몰아붙여 포로로 잡아 협상까지 오게 만들지 않았나.

 

 만약 클라온 제국이 제대로 지원만 해줬어도 패전은 웰터펠의 것이었을 거라고 스캇은 확신했다.

 스캇은 로렌을 꼭 설득해 자신 편에 두고 싶었다.

 

 

 

 “쓸데없는 소리.”

 

 그러나 로렌은 눈을 돌렸다.

 들릴락 말락하게 중얼거리는 그의 말소리 안에 담긴 주저는 스캇에 닿지 못하고 바람과 함께 흐트려졌다.

 

 

 ***

 

 “경!”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로렌은 그 외침이 반가웠다.

 끈질기게 따라붙는 회색빛을 외면하고 얼른 돌아보니 공터의 가장자리를 살피던 워커가 소리쳤다.

 

 “여기 천이 매달려 있습니다!”

 

 

 “플란, 이 자를 대신 감시해.”

 

 로렌은 스캇을 털이 북실북실한 플란에게 감시를 명하고 워커에게 다가갔다.

 소리친 워커의 말대로 늙은 소나무 가지에 검은 천이 묶여 있었다.

 

 “검은 천이라....윌터펠 제국이군.”

 

 로렌은 짧게 읊조리고는 가지에 있는 천을 펼쳐 보았다.

 차가운 바람이 일행 사이로 훑고 지나갔고 천은 살아있는 것처럼 펄럭였다.

 

 

 “뭐라고 적혀 있지?”

 

 스캇은 로렌이 오래토록 말이 없자 다급하게 물었다.

 로렌은 답이 없었다.

 

 대신 경멸이 담긴 미소를 던지며 단도를 꺼내 천을 조각냈다.

 바람에 흩날리는 천을 보며, 스캇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서둘러 자신을 잡고 있는 플란의 복부를 치고 도주하려고 했다.

 

 

 “윽..!”

 

 그러나 플란이 빨랐다.

 그는 스캇의 정강이를 차 무릎 꿇렸다.

 

 로렌 경은 창백한 얼굴로 무릎 꿇은 스캇을 내려다보았다.

 입에서 바람 빠진 웃음이 흘렀다.

 

 

 “대가리에 똥만 숙성시키는 오크보다 못한 왕과 제국은 썩었다고 했나?”

 

 로렌은 뒤돌아 천천히 빛바랜 투구를 벗었다.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는 삶아 먹힌다했던가?”

 

 그의 투구가 내려간 그 자리에는 시린 겨울의 달빛을 받아 한여름의 호수처럼 반짝이는 푸른 머릿결이 파도쳤다.

 

 “그 말 그대로 되돌려주고 싶군.“

 

 “바리테온 스캇.”

 

 달빛을 등진 로렌은 장검을 손에 들고, 불어 오르는 바람은 거의 다 뜯겨 나간 그의 망토를 펄럭였다.

 

 로렌은 인간 같지 않은 우아한 손짓으로 검집에서 자신의 새하얀 장검을 뽑아 들었다.

 칼자루는 장식이 없었지만, 푸르게 빛나는 검신은 그 자체로도 눈이 부셨다.

 

 달빛을 받아 투명하게 살아나는 검날을 바라보며, 스캇은 신음같은 소리를 내뱉었다.

 

 “말도 안돼.”

 

 어린 아이처럼 목소리가 갈라졌다.

 

 로렌이 마침내 스캇을 완전히 돌아 바라보았을 때, 거기에는 푸른 머릿결의 '여인'이 달빛 아래, 고고히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음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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