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은 항상 칭찬을 받는 우등생의 연기가 보고싶었다. 무슨 동물일지도 궁금하고 말이다. 유진은 그걸 보며 실컷 비웃어줄 생각이었다.
준모는 손목을 겨드랑이에 끼고 푸덕푸덕대고 있었다. 입을 뾰족히 내밀고 있는 포즈가 예사롭지 않다. ‘다른 애들하고는 눈빛이 다른데… 진짜 진지하네.’ 유진은 그를 계속 주시했다.
그 와중에도 준모는 발은 쪼그리고 앉아 종아리께 만큼만 일어났다 앉았다 했다. ‘그렇게까지 열심히 해야하나 이거,’ 유진이 눈살을 찌푸렸다.
“꼭꼬… 꼭꼬꼬꼬꼭…”
‘아! 닭인가? 닭이다!’ 유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분명 비웃어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저렇게 진지하니까…’ 유진은 또 마냥 비웃을 수가 없었다.
‘저래서 연기자라고 하는 걸까? 근데 그냥 웃긴데? 대하는 태도가 진지해서 그나마 다른 애들이 연기하는 동물보다는 나아보이는 걸까?’ 유진은 복잡한 기분이 되었다. 처음엔 그냥 비웃을 작정이었는데, 계속 보게 되었다.
‘아니, 그래도 웃긴데. 웃으면 정말 크게 혼나겠지. 닭이라니. 어쩌면 윤준모에게 딱 어울리는 동물이다.’ 유진이 다시 주변 동물들에게 눈을 돌렸다.
“이번엔, 인간들끼리 싸움이 벌어졌어요! 큰 전쟁이 있을거랍니다. 세계 1, 2차, 아니 그보다 엄청난 전쟁이 일어날 거예요!”
다른 동물들은 죄다 난리가 났다. 위 아래로 뛰어다니고 물건을 던지는 시늉을 한다. 무대만 사용하는 게 아니라 강당 전체를 뛰어다니며 소리지르는 짐승도 있었다. ‘저건 좀 웃기네.’ 라며 유진도 웃음을 꾹 참았다.
‘이건 정말…’ 결국 ‘풉’ 하고 웃음이 터지고 말아서 유진은 고개를 파묻고 웃었다. ‘뭐 이런 수업이 다 있냐. 이게 과연 도움이 될까?’ 매 수업마다 유진은 이 수업의 존재성 자체를 의심하게 되었다.
그 와중에, 닭은 조용히 자리에 앉아있는 게 유진의 눈에 띄었다.평온한 표정이 마치 닭이 클래식이라도 들으며 알이라도 품는 것 같았다. ‘전쟁이 난다는 데 왜 저렇게 평온해? 푸드덕거리며 닭장을 쏘다녀야하지 않나?’ 유진이 머리를 긁적였다.
“자, 이제 쉬고. 제자리로 와서 다들 사람으로 돌아와아.”
끝까지 자리에 앉지 않고 야옹거리던 알렉스마저 사람의 모습을 갖추자 선생님이 말을 이었다.
“아까 보니까 유진이랑 준모의 연기가 돋보였어. 준모야, 아까 전쟁이 난다고 했을 때 왜 가만히 있었어?”
“닭은 전쟁에 대해 잘 모를 것 같아서요.”
준모의 대답에 다들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저기? 다들 그렇게 쉽게 인정하는 거야? 의사가 입는 가운 같은건가,’ 윤준모가 말했다는 것 만으로 다들 설득이 된 것 같다. 그 점이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유진이었다.
‘이것들은 다 바보인가. 닭도 꼬끼오 거리면서 난리 법석을 떨 수도 있지 않나? 왜냐하면 전쟁이 코앞이면 사람들이 먹이를 안 줘서 굶어 죽을 수도 있을텐데!’ 말이 유진의 목구멍에서 맴돌았다.
“그럼 유진이는?”
“네? 아, 저도요.”
“그게 정말 탁월했어! 다른 상황들은 자연재해고 얼마든지 우리와 동물들에게 위협적일 수 있지만, 사실 잘 생각해보면 전쟁은 동물들에게는 그렇게 특이한 일이 아닐 수도 있잖아?”
학생들이 쳐다보는 시선들에 괜히 쑥스러워진 유진은 고개를 숙였다. ‘이게 다 저 윤준모 탓이다. 괜히 네 녀석이 으스대면서 그런 말을 하니까 뭔가 대단한 걸 한 것 같잖아.’
종철이 준모와 유진을 번갈아보며 존경하는 눈빛을 쏘아대는 것이 유진은 매우 부담스럽다. ‘너는 또 왜…’ 유진은 종철이가 엄지를 치켜드는 것을 보고 고개를 돌렸다.
“무조건 큰 일이라고 해서 크게 반응하는 건, 어쩌면 우리가 가진 편견일지도 모르지. 어떤 경우엔 사람도 아무런 반응을 못하거나, 안 할수도 있잖아.”
‘항상 다양한 관점에서 상황을 보고 내 캐릭터를 이해해서 표현하도록 해,’ 라며 그 이상한 수업이 끝났다. ‘뭘 이해하고 배운건지 모르겠네,’ 유진은 연기 수업이 끝나면 항상 배가 고프다. 특히 오늘은 여러 동물들에게 시달려서 그런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엄청 잘했어, 축하해.”
“아냐, 고양이도 귀여웠어.”
“나는 너무 생각이 짧았어.”
‘알렉스, 넌 정말 좋은 친구야, 닭살 돋는 것만 빼면…’ 물론 유진은 솔직하게 남을 칭찬하고 대하는 점이 알렉스의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저런 말을 직접 듣는 건 드라마 대사같아서 유진은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하지만 유진도 알고있다. 같은 역할을 놓고 경쟁하게 되어도 알렉스는 상대방을 응원해주고 위로해줄 것이다. 그리고 그게 기분 나쁘지 않다는 것. 어떤 면에서 유진은 알렉스를 굉장히 높게 평가하고 있다.
“얻어 걸리는 거지, 뭐, 나는 알렉스 연기 좋더라.”
“그래?”
“응, 부담스럽지도 않고. 보기 편안해서.”
“고마워, 나도 유진, 연기 좋아해.”
“됐어, 으아, 닭살 돋아. 밥이나 먹으러 가자.”
유진은 알렉스와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향했다. 유진의 나무늘보가 수업 내내 고민한 것처럼 꽤나 고민되는 메뉴였다. 결국 알렉스와 다른 걸 시켜 반반 나눠먹는 걸로 결정했다.
유진이 식판을 받고 차례를 기다리면서 연기 수업때를 돌이켜 생각했다. ‘즉흥연기도 쉽고 자유롭게 하는 걸 보면, 윤준모는 인정하기 싫다해도 엄연한 배우네.’
“유진 학생, 수업 잘 했어?”
“어머님 안녕하세요.”
“호호호, 아까처럼 계란 후라이 해줄까?”
“아이, 정말 괜찮아요.”
유진이 손사레를 치며 거절했다. “자꾸 그러시면 저 버릇 나빠져요,” 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어, 저요 저. 저 해주세요.”
알렉스가 신이 나서 끼어들었다.
“야아, 바쁘신데 그러지 마.”
“호호호, 이 잘생긴 친구는 누구야? 몇 개 해줄까?”
‘오랫동안 해왔으니 일정한 패턴을 찾은 거겠지, 노하우 라든가…’ 유진은 생각을 이어갔다.
‘근데 그러면 피곤하지 않을까, 항상 모든 경우의 수나 자기가 생각하는 캐릭터를 이입하고 연기하려면? 자기자신이라는 캐릭터가 또 있게되진 않을까?’ 그 생각에 유진은 겁도 났다.
“저 하나만 해주세요. 감사합니다.”
“그래, 그래. 내가 유진이 것도 같이 해서 두 개 해줄게!”
“와아, 감사합니다!”
“야아! 아니에요, 저 괜찮은데…” 다른 생각에 잠겨있던 유진이 얼른 거절했지만, 아주머니는 이미 불 앞에 서 계셨다.
‘연기의 신이 아니라 잘 모르겠다. 생각만으로 배고프네...’ 유진은 식판을 든 채 또 생각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