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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N의 밤
작가 : MrNerd
작품등록일 : 2016.8.22

격리된 구역, 생존자, 그리고 좀비

 
<1부 : 낙조> - 4장 : 활
작성일 : 16-08-31 15:09     조회 : 497     추천 : 3     분량 : 7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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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야, 이거?”

 

 건호가 중얼거렸다. 시체 중 한 놈과 눈이 마주치자, 녀석이 더욱 히스테릭한 비명을 내지른다.

 

 “뭔 일이 있던 거냐? 너 도대체 뭘 한 거야?”

 

 “저도 몰라요. 소리 듣고 나와 보니까 이 모양이었다고요.”

 

 승재가 답답하다는 듯 거칠게 창가를 향해 팔을 벌렸다. 그 손끝에 수많은 시체들의 시선이 기분 나쁘게 쫓아온다. 대체 뭐 때문에 이렇게 몰려든 거지? 시체들이 모두 이쪽을 보고 있었다. 밤에 공격성이 높아지긴 하지만, 이 정도로 정확하게 기척을 채고 몰려드는 일은 없다. 뭔진 몰라도 이 방에서 누가 뭔가를 했다는 얘기다. 누가? 대체 뭘 한 거지?

 

 의문은 금세 풀렸다.

 

 현관 쪽에서 신경질적인 쇠붙이 소리가 났다.

 

 “아빠.”

 

 민아였다. 민아가 현관문을 연 채 누군가에게 말을 걸었다. 사람이 아닌 짐승의 절규가 들려왔다.

 

 “아빠, 어딨어?”

 

 “민아야!”

 

 승재가 외쳤다.

 

 건호는 곧장 민아에게로 달려갔다. 또 다시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자신이 맨 몸이라는 것도, 무기를 들어야한다는 것도. 시체와 마주할 때마다 느꼈던 혐오도 증오도 그 순간만큼은 들어오지 않았다.

 

 사고는 필요 없었다. 그냥 가야했다. 책에 있고, 신문에 있고, 뉴스에 있는 수많은 이유들. 왜 그들을 지켜야 하는가, 왜 우리는 살아가는가.

 

 그러나 태초부터 세상이 돌아갔던 이유는, 없다. 그저 그렇게 돌 뿐.

 

 마찬가지다. 아버지가 자식을 구하는 데 이유는 없다.

 

 민아의 비명이 들리고, 그의 손에 차가운 감촉이 느껴졌다. 시체의 끈적거리는 침이 그의 팔에 닿았다. 녀석의 이빨이 째깍거리는 시계처럼 허공에서 딱딱거린다.

 

 “승재야!”

 

 그가 목이 터져라 불렀다.

 

 “가방, 내 가방에서 장도리 꺼내!”

 

 “에?”

 

 딸꾹질이라도 하듯 승재가 짧게 소리를 냈다.

 

 “멍하니 있지 말고, 빨리 가방에서 망치 꺼내라고!”

 

 언어로 때리기라도 하려는 듯 건호는 한 자 한 자 힘을 주어 소리쳤다.

 

 시체의 손이 허공을 올라가더니 그대로 재빠르게 내려왔다. 때 낀 손톱이 그의 살을 파헤치기 전에, 건호는 있는 힘껏 시체를 걷어찼다. 의미 모를 소리를 지르며, 시체가 쓰러지고 덩달아 뒤에 있던 두 녀석도 도미노마냥 픽 쓰러진다.

 

 놈들이 쓰러지자마자 왼편에 있던, 후드티 입은 시체가 신발장에 발을 들였다.

 

 “승재야!”

 

 그 순간, 장도리가 날아들어 후드티의 얼굴을 가격했다. 검붉은 피를 흘리며 녀석의 머리가 잠시 기우뚱거렸다. 장도리가 신발장 타일에 부딪치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건호는 곧장 장도리를 주워들어 다시 한 번 시체의 머리통을 가격했다. 피가 더욱더 뿜어져 나왔고, 또 다시 과일 으깨지는 소리가 났다.

 

 “빨리 민아 데리고 들어가!”

 

 머리통에서 장도리를 빼내며 건호가 소리쳤다. 넘어지는 후드티를 밀치며, 다른 시체가 금세 다가오더니 가래 끓는 소리를 낸다. 좀 전에 쓰러졌던 녀석이다.

 

 욕설 한 번. 과일 으깨지는 소리 한 번. 그리고 검붉은 피가 분수가 되어 천장을 적신다.

 

 시체가 쓰러지자, 좁디좁은 층간이 한눈에 보인다. 전날만 해도 고요했던 복도에는 시체들의 절규로 메워졌다. 일그러진 메아리가 이쪽저쪽으로 튀어 다닌다. 위아래서 녀석들이 슬금슬금 걸어오고 있다.

 

 문.

 

 건호는 서둘러 문고리를 잡았다. 그러나 문고리를 잡자마자, 또 다른 손이 그의 팔을 움켜쥐었다. 문 뒷가에 있던 녀석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녀석의 목구멍에서 비웃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장도리가 난폭하게 날아든다. 녀석이 비웃음을 멈췄다. 다음 순간 양 눈이 없는, 장님 시체가 계단을 다 내려온다. 세 걸음 정도 되는 거린가. 눈깔도 없으면서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지 궁금해 할 여유조차 없다. 타이밍 좋게도 시체의 머리에서 장도리가 빠지질 않는다.

 

 제기랄. 항상 느리게 걸어 다니면서도 이럴 때는 빠르다.

 

 “아저씨!”

 

 승재가 달려왔다.

 

 “오지 마!”

 

 뒤돌아보자, 승재의 손에 들린 권총이 보인다.

 

 승재가 서투른 동작으로 권총을 장전시켰다. 자신이 빗맞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살고 싶은 절박감이, 그 짧은 순간에 교차한다. 그리고 시체가 다가왔다.

 

 젠장. 건호가 외쳤다.

 

 “쏴!”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안전장치가 되어 있던 것도, 총알이 떨어진 것도 아니었다. 승재는 아직 타인의 생명을 직접 들어본 적이 없었다.

 승재는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그 쉽고 단순한 과정 동안, 망설임이 승재를 끌어들인다. 방아쇠를 당길 용기가, 그에게는 아직 없었다.

 총구가 정신없이 흔들렸다.

 

 그 사이에 시체가 바싹 다가왔다. 건호는 장도리가 박힌 머리통을 그대로 끌어 장님에게로 갖다 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힘을 줘봤지만 장도리는 빠지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장도리는 나중에 찾으면 그만이다. 그는 장도리에서 손을 떼고 곧바로 시체를 차냈다. 이미 죽었지만 두 명분의 무게는 여전히 버거웠다.

 

 영혼의 무게는, 이곳에서 너무나도 가볍다.

 

 녀석이 쓰러지자, 건호는 곧바로 문고리를 당겼다. 애원하듯 시체들의 몸뚱이가 문간에 걸렸다. 그는 서둘러 발로 차 몸뚱이를 빼냈다. 생각보다 쉬운 일이었다.

 

 마침내 문이 닫혔다.

 

 뒤늦게 온 녀석이 문을 두들겼다. 소리는 조금씩 커져갔다. 그러나 그것뿐이었다. 잠기지도 않은 문은 닫혀있는 것만으로 벽이 되었다. 시체들은 더 이상 문을 열 수 없었다. 그들에게 그럴 이성도, 기억도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 유일한 경계가 그저 벽이 된다.

 

 “괜찮아?”

 

 건호가 헉헉거리며 승재에게 물었다. 승재는 아무 말 없이 서있기만 했다.

 

 “승재야?”

 

 “죄송해요.”

 

 승재가 힘없이 말한다. 총구가 바닥을 향한다.

 

 “죄, 죄송해요.”

 

 “괜찮아.”

 

 건호가 승재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 정도면 충분히 잘 한 거야.”

 

 “쏘, 쏘려고 했어요. 그냥 영화처럼……, 쉬울 것 같았는데, 손가락만, 움직이면…….”

 

 승재가 더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의 입에서 옅은 흐느낌이 흘렀다. 필사적으로 참아왔을 눈물이, 바닥에 떨어지며 조심히 빛을 낸다. 저 눈물에 담겨있는 것은 무엇일까? 두려움일까, 무력함일까.

 

 “괜찮아.”

 

 건호가 승재에게서 총을 가져가며 말했다. 승재는 그러거나 말거나 아무 말 없이 눈물을 닦았다.

 

 “이제 괜찮아.”

 

 “알아요.”

 

 승재가 애써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괜찮아요.”

 

 승재의 눈두덩이 부어 있었다. 그 뻔한 자국을 건호는 못 본척했다.

 

 “저것들은 어떡하죠?”

 

 승재가 문을 가리켰다.

 

 “이대로 둬도 괜찮아요?”

 

 건호는 말없이 창가를 가리켰다.

 

 그제야 승재는 깨달았다. 그렇게 시끄러웠던 소리가 모조리 사라졌다. 평소에 눈을 떴을 때와 똑같은 풍경이었다.

 큼지막한 태양은 부끄러운 듯 구름을 끼고 있었다. 하지만 미처 다 가리지 못해, 구름이 붉게 물든다. 그 주변의 공기만이 온통 붉은색이다. 그 위로 푸른 하늘이 펼쳐지고, 풍성한 구름이 새하얗게 빛났다. 어둠은 전혀 없었다.

 

 아침이다.

 

 ***

 

 “왜 그랬냐니까!”

 

 승재가 소리쳤다. 건호는 문간에 기대 잠자코 그 모습을 지켜봤다. 민아는 승재 앞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노파는 거실로 내보냈다.

 

 불쾌한 공기에 숨이 갑갑하다. 남매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방의 크기가 어째 평소보다 작아 보인다.

 

 “왜 대답을 안 하는 거야?”

 

 승재가 민아를 붙잡았다. 소녀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민아가 흔들릴 때마다 팔짱 낀 팔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나서선 안 돼. 팔에 더욱 힘을 주며 의미 없는 통제를 한다. 나그네가 머물러선 안 된다. 그는 오늘 떠나야 한다.

 

 그럼 왜 떠나지 않고 여기 있는 거지? 누군가가 불쑥 묻는다. 왜 지금 여기 있는 거야?

 

 “대답하라고!”

 

 승재가 민아를 거칠게 놓았다. 소녀의 몸이 벽에 튕겨나간다. 그러나 짧은 비명을 내지르는 것 말고, 여전히 소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야!”

 

 끝내 참지 못하고, 승재의 팔이 올라간다.

 

 “잠깐만.”

 

 건호가 승재의 팔을 붙잡았다.

 

 “잠깐 나가서 머리 좀 식혀라. 그냥 내가 얘기하마.”

 

 “예?”

 

 “머리 좀 식히라고.”

 

 그렇게 말하며 허공에 있는 팔에 턱짓을 해보였다. 자신의 손을 보자, 곧바로 승재의 얼굴에 그림자가 진다. 죄책감. 적어도 잘못인지는 알고 있는 모양이다.

 

 “자, 이제 말해봐.”

 

 승재가 나가자 건호가 천천히 민아에게 다가갔다.

 

 “오빠한테는 잘 말할게. 앞으로 민아 때리지 말라고, 응?”

 

 무릎을 꿇고 눈높이를 맞추려 해도, 소녀는 눈을 들려 하지 않았다.

 

 “얘기하기 싫니?”

 

 “거짓말이잖아요.”

 

 소녀가 간신히 입을 연다. 목소리가 많이 떨리고 있었다. 아픈 것도, 슬픈 것도 아니다.

 

 “응?”

 

 “오빠한테 얘기하는 거.”

 

 “그게 왜?”

 

 “아저씨, 이제 갈 거잖아요.”

 

 원망. 봐봐, 역시 당신도 마찬가지였어. 가시 돋힌 아내의 목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미안해.”

 

 안 돼. 누군가가 그렇게 말한다. 그 말 하지 마.

 

 “이제 아저씨가…….”

 

 귀찮아진다. 아마 죽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가 대답한다. 어쩔 수 없잖아.

 

 “아저씨 어디 안 갈게. 아저씨 계속 여기 있을께.”

 

 그가 웃으며 민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까닥하면 사라질까봐 천천히, 조심스럽게. 손이 닿자마자 소녀가 그의 품에 달려왔다. 소녀가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 그의 셔츠위로 뜨거우면서도 축축한 감촉이 퍼져나간다.

 

 남매가 서로 난리구나.

 

 그는 소녀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도 몰랐다. 미소 위에 약간이지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는 것도. 그렇게 한참을 있었다. 소녀는 울음을 그쳤다. 흔들림도 소란스러움도 모두 사라졌다. 소녀의 체온만이 그의 품에 조심히 남아있다.

 

 “자, 이제 말해줄래? 왜 그런 거야?”

 

 “아빠가…….”

 

 소녀가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

 

 “아빠 보고 싶었어요. 아저씨가 그랬잖아요. 아빠 찾아봐도 된다고.”

 

 그랬었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잠들기 전에 소녀가 계속해서 그를 불렀던 것만은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 때 그렇게 대답한 건가.

 

 그런 건 반칙이지. 그렇게 말하고 싶지만, 그럴 용기가 차마 나질 않는다.

 

 “아빠가 그랬어요. 정말 온 힘을 다해서 불러주면, 아빠가 올 거라고.”

 

 “그럼, 시, 아니 그 유령들은 어떻게 온 거야?”

 

 “제가 어젯밤에 불렀어요.”

 

 “밤 동안 계속?”

 

 “네, 계속.”

 

 창밖 어둠을 향해 계속 소리 지르는 소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런 소녀에게로 향했을 시체들의 더러운 손들. 조금만 늦었어도 벌어졌을 참상이 머릿속을 괴롭힌다. 소녀가 시체가 된다.

 

 등골이 서늘해진다. 지난 2년간 간신히 지워낸 감정이 집요하게 심장을 파낸다. 두렵다. 무섭다.

 

 뭘 잘했다고 그렇게 자고 있었던 걸까. 두려움은 자연스레 분노가 되어 자신에게로 날아든다. 애타고 찾고 있던 소릴 왜 듣지 못한 걸까.

 

 “그래, 알았다.”

 

 그는 한숨을 쉬었다. 구석에 얼마 있지도 않은 동화책이 쌓여 있는 것이 보인다. 세상이 허용해줄 수 있는 동화는 그 정도뿐이라는 듯이, 책은 빈약하게 쌓여 있었다.

 

 “사실 말이야, 어제 아저씨가 말하는 걸 깜빡하긴 했는데, 그 유령들은…….”

 

 잠깐 망설이지만, 결국 입을 열었다. 진실을 알려주지 않으면, 이 아이는 더 상처 받는다.

 

 “사실 사람들을 헤쳐.”

 

 “네?”

 

 소녀가 눈을 휘둥그레 뜬다. 그 눈동자에 그가 비친다. 그 모습에 공연히 마음이 아파왔다.

 

 “유령들 말이야. 아저씨가 깜빡했는데, 사실은 사람들을 막 헤치는 애들이야.”

 

 “그럼 아빠가 거짓말한 거예요?”

 

 “아니야, 아빠가 오해한 거야.

 

 “그럼… 아빠는 저를 헤쳐요?”

 

 소녀가 울먹인다.

 

 “아니야, 아빠는 괜찮을 거야.”

 

 그가 다시 한 번 소녀를 껴안아 줬다. 이 정도 동화는 허용해 줘도 되겠지.

 

 “나중에 아저씨랑 찾자. 알겠지. 그러니까 다음에도 오늘같이 그러면 안 돼.”

 

 소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나중에 꼭 찾아요.”

 

 소녀가 옷에 파묻힌 채 들릴락 말락 그렇게 말했다.

 

 “그래, 아저씨랑.”

 

 ***

 

 “털보 아저씨.”

 

 문을 나서자마자 승재가 말했다.

 

 “말했어요?”

 

 “뭘 말해? 여기가 무슨 강력반이냐?”

 

 “아.”

 

 승재가 멋쩍게 웃는다.

 

 “말했어. 아빠 보고 싶다더라.”

 

 “그래요…….”

 

 승재가 금세 무표정한 얼굴이 되어 그렇게 중얼거렸다. 알고 있었다는 눈치다.

 

 “그래. 근데 방금 뭐라고?”

 

 “털보 아저씨요. 민아가 어제 계속 그렇게 부르더라구요.”

 

 과연. 면도를 안 한 지 꽤 됐으니 그럴 만도 하다. 마지막으로 거울을 본 게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 그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그…… 죄송해요.”

 

 “이번엔 또 뭐가 죄송한데?”

 

 “민아, 때리려던 거요.”

 

 “그게 왜 나한테 사과할 일인지 모르겠구나.”

 

 건호는 소파로 걸어가 앉았다. 언제 사라졌는지 노파는 보이지 않는다.

 

 “제가 잘못했으니까요.”

 

 “잘못한 거 알았으면, 다음부터 그러지마.”

 

 “알고 있어요. 그치만-”

 

 “뭘 얘기하고 싶은지는 알겠는데 민아한테 너무 그러지마. 어떻게 보면 내 잘못이었으니까.”

 

 “예?”

 

 그는 간밤에 일을 설명했다. 동화를 읽어준 것, 소녀에게 동화는 진짜라고 거짓말한 것, 그리고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채 동화 속 기적을 소녀가 부르짖던 것도.

 

 “그러니까 민아한테 너무 뭐라 하지 마.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은 내 잘못이니까. 너도 마찬가지고.”

 

 “알고 있어요.”

 

 승재가 순순히 받아들인다.

 

 “그래도 들려주기 싫었어요.”

 

 승재가 무슨 말을 하는지 건호는 알고 있었다. 밤은 더 이상 낭만적인 소설에서처럼 고요하지 않다. 그렇다고 그의 기억처럼 활기로 가득 찬 소란이 있는 것도 아니다. 어젯밤에도 그랬다. 창문을 닫아도 시체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갈 곳 잃은 망령들의 거리는 밤에도 쉬지 못한다.

 

 “솔직히 설명해주기도 힘들잖아요. 죽은 사람이 살아나서 돌아다니고 있어, 죽은 사람이 다시 우릴 죽이려고 해.”

 

 승재가 등받이에 기대며 무기력하게 웃는다.

 

 “그런 게 말이 될 리가 없잖아요?”

 

 “무슨 말인지는 알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안 된다고 하면 오히려 역효과지. 그래서 오늘 같은 일이 일어난 거고. 잘못했으면 아니라고 말해주고, 어느 게 옳은 건지 설명해줬어야 하는 건데. 너나 나나 어른스럽지 못했던 것 같다.”

 

 그의 말에 승재가 살짝 웃는다.

 

 “왜 웃어?”

 

 “그냥, 아저씨가 어른스럽지 못하다고 하니까요.”

 

 “어른도 잘못은 하니까. 그래도 잘못했으면 인정하고 다음에 똑같은 실수를 안 하면 돼. 그게 진짜 어른이지.”

 

 승재가 여전히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 역시 피식 웃는다.

 

 “자, 이제 밥 먹자.”

 

 “예?”

 

 “밥 먹자고. 왜? 아침은 원래 잘 안 먹어?”

 

 “아니요, 오늘 떠나신다고 했었는데 굳이 밥 먹고 가신다니까…….”

 

 “어차피 떠날 거니까 밥 먹지 말고 그냥 나가라.”

 

 “그건 아니지만…….”

 

 “밥 줘. 안 떠날 거니까.”

 

 소년은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사람이 말을 했으면 대답 좀 해, 이 사람아. 데리고 나가 달라며. 그렇게 해주겠다고.”

 

 “아저씨…….”

 

 소년의 얼굴이 금세 환해진다. 알기 쉬운 녀석.

 

 “고마워요.”

 

 그는 고개를 돌렸다. 그가 받아들이기엔 너무 순수한 말이다.

 

 “근데 갑자기 왜 그러세요?”

 

 “뭐가?”

 

 “어제는 그냥 간다면서요.”

 

 의뢰니까. 본업은 아니지만 그래도 맡은 이상,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령 실패하더라도 버리면 그만이고, 그 후에 이들의 사진을 보여줘서 보수의 반절이나마 받으면 된다. 문자 그대로 밑져야 본전이다.

 

 그러니까 그런 것뿐이야. 그렇게 자신에게 중얼거리며 애써 납득시켰다. 그게 아닌 걸 알면서도.

 

 “왜? 그냥 갈까?”

 

 그가 불만스럽다는 듯 눈썹을 올렸다.

 

 “아니요. 그냥 궁금해서요. 대답하기 싫으시면 말고요.”

 

 “널 보고 정한 거야.”

 

 그는 소년의 눈을 들여다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나 혼자 너희 셋을 다 지켜줄 순 없어. 하지만 네가 나서준다면 한 사람씩 한명만 맡으면 되니까 조금은 할 만해질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일주일 동안 계속 널 가르칠 거야. 주로 죽이는 방법 같은 걸로, 만약 남아 있는 동안 네가 가망이 없다고 생각되면 그냥 떠날 거야. 알겠어?”

 

 승재는 기쁜 지 두려운 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른이 남는 것과 동시에 여전히 자신이 그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 그의 표정은 아마 그 사이의 괴리감 탓이리라.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는 신경 쓰지 않고 거실 쪽을 가리켰다.

 

 “그럼 일단은 밥부터 먹자.”

 

 그가 말했다.

 

 “아침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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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우 16-09-03 19:34
 
오오 점점 재미있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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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우 16-09-03 19:35
 
* 비밀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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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Nerd 16-09-04 13:09
 
* 비밀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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