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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일반/역사
책사
작가 : 권오단
작품등록일 : 20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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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책사』는 명나라의 시조인 홍무제가 명을 건국한 이후, 제2대 황제 건문제가 천자가 된 1399년(건문 1년 6월)부터 제5대 황제 선덕제가 한왕 주고후의 반란을 평정하는 1426년(선덕 1년 8월)까지, 27년간의 역사가 배경이 된다. 후일 영락제가 되는 연왕이 조카인 건문제의 견제로 자신의 지위가 점점 위태로워지고 있음을 깨닫고 3년간의 내란(정난의 변) 끝에 황제의 자리에 오른 후, 영락제의 아들인 홍희제가 치열한 권력다툼 끝에 황태자의 자리에 오르고, 손자인 선덕제가 한왕의 반란을 평정하며 권력을 잡기까지 명나라 역사상의 부흥기인 인선의 치세를 주도했던 책사 목풍아의 활약상을 다룬 작품이다.

 
책사 1 - 도망자 3
작성일 : 16-06-08 11:44     조회 : 525     추천 : 0     분량 : 8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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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이 무렵, 연왕부의 내실에서는 연왕과 환관 하나가 밀담을 나누고 있었다.

  “아직 그 맹랑한 녀석을 사로잡지 못했나?”

  “송구합니다.”

  “호위무사의 말에 의하면 머리가 아주 비상한 놈이라면서?”

  “예. 그렇다 합니다. 경서와 춘추를 보지도 않고 술술 외운다고 하더군요.”

  “그 놈이 쓴 시를 보았나?”

  “예. 그 시를 보니 제갈량의 시가 생각나더군요.”

  “제갈량의 시? 어떤 내용의 시인지 궁금하군.”

 

  큰 꿈을 누가 깨울 것인가 大夢誰先覺

  일평생 나는 스스로 알고 있었지 平生我自知

  초당의 봄잠을 늘어지게 잤어도 草堂春睡足

  창밖의 해는 더디더니 가는구나 窓外日遲遲

 

  시를 외우던 환관이 고개를 숙이며 연왕에게 말했다.

  “촉한의 소열제 유비가 제갈량을 얻기 위해 양양 융중의 초당으로 발걸음을 했을 때 세 번이나 찾아온 유비를 문밖에 세워두고 잠에서 깬 제갈량이 읊었던 시입니다. 제갈량이 자신을 써줄 현명한 군주를 오랫동안 초려에서 기다리고 있지만 그 사람은 오질 않고 시간은 더디게 가서 안타깝더라고 말하는 내용이지요. 이 시의 뜻을 알아챈 유비는 제갈량을 수중으로 넣을 수 있었지요.”

  “그렇다면 놈이 쓴 시가 자신을 써 달라는 내용이란 말인가?”

  삼십대 초반 쯤 되어 보이는 환관이 고개를 숙였다.

  “목풍아가 벽에 남긴 시를 살펴보면 그렇습니다. 둘째 구에 바람의 뜻은 용이 하늘로 오르는 것을 돕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연왕이 흡족한 얼굴로 말했다.

 “그렇다면 놈의 최종 목적은 소천이 아니라 바로 나라를 것이군.”

 “네. 놈은 맹랑하게도 공주님을 이용하여 대왕을 시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볼수록 맹랑한 놈이군. 감히 나를 시험하다니…….”

 “머리가 좋은데다가 배포까지 담대한 녀석 같습니다. 삼십여 명이나 되는 호위무사들을 속인 기지도 그렇고, 시로서 대왕님을 시험하는 배포도 그렇고……”

  연왕이 정화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 말을 들으니 그 놈이 보고 싶군. 병사들에게 아직 소식이 없는가?”

  “아직… ”

  그때 병사 하나가 급하게 들어와 무릎을 꿇고 말했다.

  “전하. 목풍아의 부하가 사로 잡혀 방금 왕부로 데리고 들어왔다는 전갈이 왔습니다.”

  “목풍아는?”

  “회풍(回風) 마을에서 놓쳤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놓쳤다고?”

  “예. 회풍 마을에서 검문을 하던 병사가 그 놈의 계교에 속아 말을 빼앗겼는데 얼마 후에 검문을 하던 병사가 그 말을 발견했습니다. 말 등에 있는 목풍아의 수배지에 시 한 줄이 쓰여 있어 가져왔습니다.”

  병사은 품속에서 종이 하나를 꺼내 환관에게 올렸다. 환관이 수배지를 다시금 연왕에게 건내었다. 연왕이 목풍아의 수배지에 두 줄로 쓰여진 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羲軒遠矣悲何極

  太風不見心自傷

 

  복희씨(伏羲氏) 헌원씨(軒轅氏)의 태평한 상고시대(上古時代)는 멀다. 슬픔이 어찌 끝이 있으랴.

  큰 바람을 보지 못하니 마음 스스로 상하는구나.

 

  목풍아의 화상(畵像) 앞에 쓰인 시를 보던 연왕이 환관에게 시를 건냈다.

  “맹랑한 놈이군. 자신을 모셔 가면 태평한 상고시대를 열 수 있는데 내가 이 맹랑한 놈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아 슬프다니. 이놈은 이 연왕이 소열제(유비)가 제갈량에게 그랬던 것처럼 자기를 모시러 오기를 바라는 것인가?”

 정화는 바닥에 부복해 있는 환관을 물러가도록 하고 연왕에게 말했다.

  “옛말에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하였습니다. 그 놈의 행적과 이 시를 보면 초야에 묻혀 있던 인재가 틀림없습니다. 아무래도 전하께서 수배를 푸시고, 연왕부로 올라오라는 방문을 다시 써서 붙이는 것이 상책이라 생각됩니다.”

  “무슨 소리? 나는 그럴 생각이 없어.”

  “소열제(昭烈帝-유비)는 인재를 만나면 몸을 숙이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전하께서 자신을 드러낼 시기가 아닙니다. 몸을 숙여 인재를 포용하실 때입니다.”

  연왕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 놈이 제갈량이 아니듯, 나 역시 소열제가 아니야. 놈이 바라는 대로 순순히 들어줄 수는 없지. 내 뜻을 알겠나? 정화.”

  정화라는 환관이 고개를 숙였다. 정화는 연왕부 환관의 우두머리로 연왕을 최측근에서 보필하는 수뇌부이며 오른팔이라 할 수 있었다. 그는 홍무 4년(1371년) 운남의 곤양(昆陽)에서 태어났다. 본래 이름은 마삼화(馬三和)였는데 홍무 16년, 명의 운남 토벌군에 의해 12세에 거세당하여 전리품으로 연왕 주체에게 헌상된 인물이었다.

 연왕이 재능과 능력을 높이 사서 정화라는 이름을 지어줄 정도로 신뢰하는 인물이었다.

 정화는 연왕이 강경한 태도로 나가자 연왕의 체면을 세우면서 목풍아를 포섭하는 계책을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럼. 저는 물러가 보겠습니다.”

  “좋아. 목풍아 문제는 네게 일임하겠다. 내가 원하는 것은 내 머리위에서 노는 버릇없는 천재가 아니라 말 잘 듣고 능력있는 부하다. 목풍아란 놈을 고분고분한 강아지로 만들어서 데리고 와라.”

  “네.”

  정화는 내실에서 물러 나오기 무섭게 금부의 역리들을 불러들였다. 생각해보면 연왕에게 한고조같이 너그러운 마음을 기대하기는 글렀다. 출생부터 한고조와 달랐으며 기질이 거세 남의 비위를 맞추거니 남의 밑에 들어가는 것을 싫어하였다. 누군가에게 명령을 받거나 휘둘림을 받는 것을 싫어하기에 한고조나 소열제같은 너그러움을 기대하기는 무리가 있었다.

  지금 가장 시급한 일은 최대한 신속하게 군사를 풀어 목풍아의 움직임을 봉쇄하는 일이었다.

 목풍아가 마음을 돌려 남경으로 가 버린다면 연왕으로서는 인재 하나를 잃어버리는 손실을 입는 것이요, 훗날의 화근을 키우는 결과를 낳을 지도 몰랐다.

 건곤일척의 승부를 앞둔 마당에 능력있는 인재를 적으로 삼는 것보더 어리석은 일은 없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연왕은 목풍아보다 우위에 서고 싶어했다. 연왕이 우위에 서기 위해서는 목풍아를 굴복시켜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목풍아를 사로잡는 것이 모양새가 있었다. 반드시 목풍아를 사로잡아 끌고 와야 연왕이 체면을 세울 수 있는 것이다.

 금부관원들이 들어오자 정화는 전후사정을 이야기 들은 후 지도를 펼쳤다. 연왕이 맡고 있는 순천부가 그려진 지도를 바라보던 정화는 회풍현을 가리켰다.

  “이곳에서 목풍아를 마지막으로 보았다 하였나?”

  “그렇습니다.”

  “빼앗긴 말이 발견된 지점은?”

  “50리 밖에 있는 상목현(桑木縣)입니다.”

  “길목은 철통같이 지키고 있겠지?”

  “예. 고을과 고개, 길목마다 병사들을 풀어 검문을 하고 있습니다. 고을마다 철통같은 경계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개미새끼 한 마리도 빠져나갈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래? 그렇다면 놈이 숨어 있을 만한 곳은 이곳 밖에 없겠군.”

  정화는 회풍현과 상목현 가운데 있는 묘탑산을 가리쳤다.

  “묘탑산을 샅샅이 뒤져라. 놈은 이 산에 숨어있을 것이다. 반드시 사로잡아야 한다. 털끝하나 다쳐서는 안 된다. 알겠느냐?”

  “네. 그런데 목풍아의 부하라는 놈은 어떡할까요?”

  정화가 피식 웃었다.

  “털끝 하나 건드리지 말고 놔둬라.”

  “예?”

  놀란 눈으로 정화를 바라보는 금부관원을 향해 정화는 뜻모를 미소를 지었다. 천자가 될지 모르는 호걸과 승상이 될지 모르는 천재의 만남. 정화는 왠지 모를 호기심이 솟았다. 정화는 갑자기 묘탑산으로 가서 목풍아라는 사내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무래도 내가 가야겠다. 말을 준비하라 일러라.”

 

  다음날, 환관 정화는 군사들을 이끌고 묘탑산으로 찾아왔다. 묘탑산은 골이 깊지 않고 그리 높지도 않은 작은 산이었다. 산 위에 삐죽삐죽 솟아오른 바위가 탑과 같이 생겨서 사람들이 묘탑산이라 부르는 모양이었다.

  정화는 깊게 패인 눈으로 금부관원이 가져온 지도를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회풍현에서 목풍아에게 빼앗긴 말이 상목현에서 발견되었다면, 길목마다 병사들이 검문을 하고 있었다면 목풍아가 숨을 곳은 묘탑산 밖에는 없었다.

 정화는 탑을 쌓아놓은 듯한 묘탑산을 올려다보았다. 무수한 생각들이 교차하였다.

 ‘목풍아는 저곳에 앉아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자신이 계자추(介子推)인양 착각하여 진(晋)나라 문공이 그랬던 것처럼 연왕이 애타게 불러주길 기다리는 것일까? 이곳에서 그를 정중하게 부르면 당장 어슬렁거리며 웃는 모습으로 나타나겠지? 그러나 연왕이 원하는 것은 고분고분한 강아지. 목풍아의 기를 살려놓기에는 연왕의 자존심이 용납지 않을 것이다. 독안에 든 쥐에게 사정할 수는 없는 일이지. 어차피 가진 식량도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니 내편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좋은 패를 들고 꿀릴 수는 없는 일이지. 사나운 말을 고분고분하게 길들이기 위해서는 강수를 두는 수 밖에.’

 정화는 데려운 부장들을 막사로 집결시켰다. 파견된 군사들의 우두머리들이 속속들이 막사로 들어오자 정화는 명령을 내렸다.

 “오늘 나는 전하의 명을 받고 한 사람을 사냥하러 이곳에 왔다. 그놈은 맹랑하게도 공주님을 희롱하고 전하를 욕되게 한 놈이다. 분명 이 산에 숨어있을 것이 확실하다. 제군들은 일렬로 열을 지어 흩어지지 말고 풀뿌리 하나 돌멩이 하나까지 샅샅이 수색하도록. 사냥을 하는 것이니 동물들을 사냥하는 것은 허용한다. 그러나 사람이라면 털끝 하나 다치지 않게 사로잡도록 하라.”

 명령이 떨어지자 군사들이 산 아래에서 대열을 이루어 호각을 부르고 징을 치며 묘탑산을 올라오기 시작하였다.

 와아아~~

 이만명의 군사들이 일제히 소리를 지르자 묘탑산이 쩌렁쩌렁 울리었다. 새가 놀라고 노루가 뛰었다. 토끼, 오소리, 승냥이, 여우, 멧돼지 할 것 없이 묘탑산의 풀숲이며 바위아래에 숨어있던 온갖 짐승들이 놀라 뜀을 뛰며 어쩔 줄을 모르고 허둥거렸다.

 공식적으로 사냥대회였기 때문에 숲을 날뛰던 동물들은 군사들의 손에 차례로 사냥감이 되었다.

 목풍아 한사람 덕에 죄 없는 묘탑산의 짐승들이 화를 입게 된 것이었다. 짐승들은 살기 위해 산 위로 뛰어올랐다.

 묘당의 그늘에서 늘어져 있던 목풍아도 이 소리에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놀란 짐승들이 앞 다투어 산 위로 뛰고 뒤를 따라 올라오는 함성소리와 호각소리에 목풍아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정말 무식하기 짝이 없는 연왕이구나. 이 목풍아를 사냥감으로 생각했던 말인가?”

 제갈량을 모시기 위해 삼고초려한 유비 정도는 아니더라도 개도적이나 짐승흉내쟁이까지 능력이 있다고 뽑아들이는 맹상군 정도는 되리라 생각했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목풍아는 건량을 싸들고 벌떡 일어났다. 이대로 군사들에게 사로잡힌다면 그야말로 사로잡힌 사냥감 신세를 면치 못한다. 이것은 연왕과의 도박이었다. 두 사람의 기세의 싸움이었다. 이렇게 사로잡히게 된다면 연왕에게 휘돌리는 신세를 면치 못한다. 그것은 목풍아가 바라던 바가 아니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목풍아는 인재로 대접받으며 중용 받고 싶었다.

 산 아래에서 군사들이 일렬로 대오를 맞춰 창으로 수풀을 휘저으며 올라오고 있는 것이다.

  “사면초가(四面楚歌)가 따로 없구나.”

 산정에 올라갔을 때 몸을 숨길 만한 곳을 찾아보았던 목풍아였다. 그러나 산 위로 올라갈수록 바위산이라 목풍아가 몸을 숨길만한 곳은 찾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몸을 피할 곳이 여의치 않았다.

  “아! 이대로 목풍아가 연왕의 허수아비가 되는 것인가?”

  눈앞이 암담하여 목풍아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목풍아의 뇌리에 문득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목풍아는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던 바위 구멍이 떠올렸다. 시원한 바람이 나오던 구멍. 작은 돌을 치우면 몸을 숨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과연 목풍아의 짐작은 들어맞았다. 구멍 주변의 돌을 치우니 가슴이 들어갈 만한 구멍이 있었다. 절벽에서 굴러 떨어진 바위들이 자연적으로 있던 동굴 입구를 막은 것이었다.

 병사들의 고함소리가 가까워지자 목풍아는 얼른 구멍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딱 한 사람이 들어갈 만한 구멍이라 애벌래처럼 기어가다보니 구멍이 점점 넓어졌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더니 하늘이 나를 도왔다. 이렇듯 위급한 순간에 도망칠 곳이 생기다니. 이 목풍아의 운은 정말 질기다니까.”

  목풍아는 근처에 있는 바위로 구멍을 막았다. 구멍에서 흘러나오는 빛이 없어지자 눈앞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두워졌다. 다행히 얽히고설킨 바위틈에서 흘러나오는 가는 빛 때문에 동굴의 천장이 흐릿하게 보였다.

  ‘지금쯤 군사들이 빈손으로 허탈하게 산 아래로 내려가고 있겠지?’

  웃음이 절로 나왔다. 묘당 벽에 남긴 시를 본 연왕의 표정이 궁금했다.

  ‘내가 그렇게 신호를 보내었건만 토끼몰이를 하다니. 연왕은 인재를 보는 눈이 없는 것일까? 내가 사람을 잘 못 본 것일까?’

  목풍아는 한숨을 내 쉬었다.

  홍무제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된 건문제 주윤손은 연약한 인물이었다. 아직도 명나라의 기틀이 잡히지 아니한 시기에 학자들의 손아귀에서 힘을 펴지 못하는 황제는 목풍아가 바라는 이상적인 군주가 아니었다.

  목풍아는 제갈량이 소열제(昭烈帝)를 만나지 않고, 스스로 조조를 만나러 갔다면 천하통일의 위업을 이룰 수 있었으리라 생각했다. 돗자리나 짜는 빈천한 소열제에게 의탁하여 천하의 기재가 허무하게 생을 마감한 것을 보면 스스로의 운은 스스로가 개척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목풍아는 연왕을 찾아 길을 떠났던 것이다. 뜻밖에 연왕의 딸 주소천을 만난 것은 목풍아에게 행운이라 할 수 있었다. 주소천을 통해 목풍아가 뛰어난 지략과 권모술수가 있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보여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연왕이 큰 인물이라면 응당 정중하게 인재를 모실 것이라 생각했지만 모든 정황이 그와는 반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묘당 벽에 남긴 시를 보고도 토끼몰이를 하는지 두고 보자.’

  이무렵, 사냥을 빌미로 묘탑산을 구석구석 수색했던 군사들이 산을 내려와 정화에게 보고하였다.

  “상공의 말씀처럼 사람이 있던 흔적은 있었습니다.”

  “흔적이 있었는데 사람을 없더란 말이냐?”

  “예.”

  “자세히 말해보라.”

  “묘탑산의 벼랑 아래에 허물어져 가는 작은 묘당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사람의 흔적이 발견하기는 하였습니다만 주위에 사람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묘당 벽에 글이 하나 적혀 있어 베껴 가지고 왔습니다.”

  병사가 품속에서 종이를 꺼내어 정화에게 건네었다.

 

  主失烏騅沈烏江 주인 읽은 오추마는 오강에 잠기고

  白樂不顧千馬藏 천리마는 백락을 만나지 못하여 숨는다

  山東燕京咫尺間 산의 동쪽 연경이 지천간이건만

  吐哺握發無周公 인재를 찾던 주공은 어디에도 없네.

 

  시를 읽던 정화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토포악발(吐哺握發)이란 주공(周公)이 인재를 맞이할 때의 태도를 말함이다. 인재가 찾아오면 식사를 하다가고 뱉어내고, 머리를 감다가도 머리채를 잡은 채 맞이하였다는 고사였다.

 연왕이 자신의 능력을 알아주지 않아서 슬프고 안타깝다는 말이었다. 돌려 생각하면 주공만도 못한 연왕이 사람 보는 눈이 없어서 능력 있는 목풍아를 몰라주니 심히 유감스럽다는 의미였다. 한마디로 예의를 갖추어 인재를 모시기 바란다는 말이었다.

  “하룻 강아지 같은 놈.”

  정화가 시문를 내려놓고 무심하게 말했다.

  “산을 다시 수색한다.”

  “묘탑산을 다시 수색한단 말입니까? 이만이나 되는 병력이 샅샅이 뒤졌는데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 산에 있다. 이 산 어딘가에 반드시 숨어있을 것이다. 그 자를 반드시 찾아야한다. 군사들에게 전하라. 연왕께서 공의 능력을 높이 사서 중용하실 것이니 어서 나오라고. 연왕께서 모든 죄를 용서하고 크게 쓸 거라고 그렇게 소리치면 놈은 분명히 나타난다. 알겠는가?”

 “그래도 나타나지 않는다면 어찌합니까?”

 “그럴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나타나지 않는다면 불을 질러도 좋다.”

 “불을 말입니까?”

 “묘탑산을 모조리 태워도 좋다. 묘탑산이 잿더미가 되도록 나오지 않는다면 그놈이 이미 멀리 도망갔다는 말이겠지.”

  “예. 명을 받들겠습니다.”

  금부관원이 머리를 갸웃거리며 막사로 나갔다. 이내 막사 바깥이 시끄러워지더니 다시 수색에 들어가는지 호각소리와 징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정화는 들고 있던 시문을 내려다보았다.

  “볼수록 지모가 돋보이는 녀석이군. 쫓기는 주제에 예의를 차리라고 이처럼 격조 높게 시문을 쓰다니 정말 볼수록 대단한 놈이야. 그러나 너는 상대를 잘못 만났다.”

  정화의 입가에 뱀꼬리같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지모가 뛰어난 자들은 왠지 껄끄러웠다. 연왕의 신임을 빼앗아갈 염려도 있었고, 대립각을 세워 훗날의 정적이 될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상대가 열등한 자라면 상관없지만 이처럼 똑똑한 자라면 두고두고 후환거리가 될 수도 있었다.

 연왕에게 목풍아는 필요한 인재이지만 정화에게 목풍아는 후환거리가 될 수 있는 인물이었다. 정화에게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인 것이다.

 목풍아가 천자의 편에 선다면 큰 문제가 되겠지만 지금은 오갈데 없는 사면초가의 몸이라 그럴 수도 없었다.

 정화는 목풍아를 어떻게 처리할지 이미 결정을 마친 터다.

 상책은 목풍아를 죽이는 것이고, 중책은 병신으로 만드는 일이고, 하책은 목풍아를 온전하게 연왕부로 데려가는 것이었다.

 연왕부로 데려간다는 것은 연왕부내에서 껄끄러운 정적을 만드는 꼴이고, 병신을 만드는 것은 손빈과 방연의 고사처럼 훗날의 후환거리를 만드는 꼴이었다. 결론은 목풍아를 죽이는 것이 가장 깔끔한 일이었다.

  연왕이 문책하더라도 이 시를 보이며 이미 목풍아가 연왕에게 마음이 떠났노라 간단히 설득시킬 수 있었다.

 “쥐새끼. 꼭꼭 숨어 있어라. 나에게 발견된다면 이곳이 네 무덤이 될 것이다.”

 정화는 시문을 탁자위에 내려놓고 차가운 미소를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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