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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르세라의 딸들
작가 : Alphafemale
작품등록일 : 2017.11.17

미래의 가상의 어느 나라.

무슨 이유에서인지 남성의 인구 비율이 여성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자 정부가 남여를 차별하는 남아 특혜 정책을 시작한지 어언 삼십 년. 게다가 파산 직전의 정부는 도시를 제외한 다른 지역들의 개발 투자를 급격히 제한하며 도시간의 빈부 차이를 심하게 조장해왔다.

이런 불평등한 정부 정책에 강하게 반대하는 깡촌 르세라. 그곳에서 자란 어린 클로이가 도시 청년 케이시를 만나면서 그들의 불평등한 계약관계가 암암리에 시작된다.


alisa46@hotmail.com

englishchung@gmail.com

 
원하지 않던 병원 신세
작성일 : 17-11-22 15:15     조회 : 233     추천 : 0     분량 : 4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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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여기.”

 

 예의상 그의 호의를 거절할 수는 없었기에 커피는 받아들었지만 입에서 차마 고맙다는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손안에 들어온 알루미늄 잔은 지나온 오랜 세월을 말해주듯이 여기저기가 찌그러져 있었다. 클로이가 커피를 입에도 안대고 들고만 있자 그가 다시 말했다.

 

 “여기도 많이 바뀌었어. 지금 이 자리 말이야, 이십 년 전에는 머레이 강이랑 연결되던 작은 골짜기가 흐르던 곳이야.”

 

 남자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그녀의 눈에 이 센티미터는 족히 될만한 거대한 개미가 갈라진 땅의 틈 사이를 어렵게 건너가는 것이 보였다.

 

 “여기 출신이예요?”

 

 그가 르세라 출신이 아니라는 것은 대충 짐작했지만 시간을 때워야 되겠기에 클로이가 건조하게 물었다. 오늘 저녁 메뉴가 뭔지도 훤히 알 정도로 서로를 빠삭하게 꿰고 있는 동네라 누군가의 가족이 시티에서 온다면 이미 한달 전부터 그 소식이 모든 동네 사람들의 귀에 전해졌을 것이 뻔했다. 특히나 클로이가 아무리 최신 소식에 무디다 하더라도 그녀의 빠른 소식통인 아니카가 젊은 남자의 소식을 간과할 리가 없었다. 지금까지 얘기를 들었어도 수백 번은 들었을 터였다.

 

 “아니, 엄마가 밀듀라에서 태어났어. 외삼촌을 따라서 먼고 국립공원에 몇번 와봤지.”

 

 그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저 멀리 끝없이 이어진 모래 언덕을 바라봤다.

 

 “그런데 여기 왜 왔어요?”

 

 그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마음 속에 일던 호기심이 드디어 입 밖으로 튀어나오고 말았다.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약간 놀란 표정을 한 남자가 갑자기 피식 하고 웃었다. 그녀의 턱에 붙여진 반창고가 그제서야 눈에 들어왔다.

 

 “웃겨요?”

 

 클로이가 이제야 올 것이 왔다는 듯이 눈을 부라리며 그를 쏘아봤다.

 

 “아니, 아니야.”

 

 조롱하는 듯한 그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들은 그녀가 이불을 집어던지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내가 우습죠? 시티에서 왔으니까 시골 사람들이 얼마나 우습게 보이겠어? 게다가 난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여자니 더 우습겠죠?”

 

 그녀의 공격적인 말투에 더 놀란 남자가 커피를 내려놓고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왜 대답을 못해요? 시티에서는 여자를 뭐같이 대우한다면서요?”

 

 “네가 웃긴 건 사실이야.”

 

 담배연기를 길게 뿜어낸 남자가 그녀를 슬쩍 쳐다보며 말했다.

 

 “뭐예요?”

 

 여전히 그의 얼굴에는 조소와 같은 웃음이 남아 있었다. 한번도 이런 식의 대우를 누구에게서도 받아 본 적이 없는 그녀가 끓어오르는 분노와 증오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조이만 아니었으면 애초에 여기 오지도 않았어!”

 

 몸을 거세게 돌린 그녀가 자전거를 일으켜 세우고는 빠르게 올라탔다.

 

 

 

 얼마 동안을 달리고 있던 걸까. 뺨에 눈물이 흐르는 것을 깨달은 클로이가 한 손으로 눈가를 훔쳤다. 몇 번을 훔치고 훔쳐도 눈물은 계속해서 쏟아져 나왔다.

 

 “크흐흑!”

 

 세상에 태어나 이런 수모를 당한 적이 없었다. 너무 열이 받은 그녀가 목에서 꺼이꺼이 소리가 나는 것을 내버려뒀다. 아니 더이상 참을 수가 없어 마음껏 터뜨렸다.

 

 “하아아… 크흑!”

 

 자격지심이었을까. 여자로 태어난 게 그렇게 억울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남자였더라면 그의 멱살이라도 잡고 싸웠을텐데. 여자이기에 그런 것은 통용도 안되었고 비웃음 거리가 되어 마땅했다.

 

 “크흐흐흐흑!”

 

 엉망이 된 얼굴을 제대로 닦으려고 소매로 얼굴을 훔칠 때였다. 엉금엉금 기어서 그녀의 방향으로 오는 자라를 발견한 그녀가 급브레이크를 밟자 몸이 핸들 바를 넘어 앞으로 고꾸라졌다.

 

 “아아아…!”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의식도 하지 못한 채 그녀의 몸이 땅 위에서 몇번을 데굴데굴 구르고는 드디어 멈췄다.

 

 “아야…”

 

 오른쪽 발목이 심하게 아파와 고통이 올라오는 곳을 몸을 숙여 내려다보니 찟긴 바지 사이로 피가 보였다.

 

 “흐윽…”

 

 고통 때문에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던 그녀가 머리를 땅 위로 떨어뜨리고는 신음소리를 흘렸다. 아픔을 참으려고 해도 끈덕지게 소리가 자꾸 입밖으로 흘러나왔다.

 

 여기에 계속 이러고 있을 수는 없어.

 

 햇살이 조금씩 따뜻해지고 있는 터라 독사들이 일광욕을 즐기러 나올 시간이었다.

 

 그런데 여기가 어디지?

 

 고통이 조금 사그러들자 그녀가 주위를 살폈다. 초록색 빛이 많이 사라진 것을 보니 집과는 반대 방향으로 온 듯 했다.

 

 “흐윽!”

 

 클로이가 겨우 몸을 일으키고는 바지를 걷어올려 상처가 난 곳을 제대로 살폈다. 정강이의 피부가 뭐에 찢겼는지 길게 빨간 선을 보이는 것도 모자라서 하얀색 부분까지 드러내고 있었다. 게다가 발목은 어딘가에 부딪혔는지 시퍼렇다 못해 심하게 부어올랐다.

 

 도움을 받으려면 여기에 있으면 안돼. 큰 길가로 나가야 해.

 

 도저히 자전거에 올라탈 용기가 나지 않은 그녀가 대신 자전거를 밀었다.

 

 “아아…!”

 

 한 발에만 힘을 줘 절뚝거리며 걸으니 속도가 전혀 나지 않았다. 아침을 거른데다 일어나서 수분 섭취도 한번도 안 했으니 기운이 있을 리가 없었다.

 

 “엄마…”

 

 그녀는 얼굴도 모르는 엄마를 낮게 불렀다. 기운도 없고 눈은 자꾸만 감겨왔다.

 

 “르세라… 엄마…”

 

 직사광선을 피할 그늘 한점도 찾을 수 없었던 그녀는 비틀비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자전거에 기대 계속해서 걷고 또 걸었다.

 

 [부우웅~]

 

 차소리가 꿈결처럼 들려왔다.

 

 큰 길인가?

 

 하얀 토*타가 나타나고는 그녀 앞에 정지했다. 운전석에서 누군가가 뛰어나오는 것 같은데 얼굴이 선명하지가 않았다.

 

 제발 저 하얀 토*타만 아니었으면 좋겠어. 누군지를 예측할 수가 없잖아…

 

 피곤함이 갑자기 밀려오고는 그녀가 서서히 눈을 감았다.

 

 

 

 

 ***

 

 “흐음…”

 

 클로이가 몸을 뒤척이며 이불을 머리끝까지 잡아당겼다. 이불이 얇고 가벼운데도 이상하게 하나도 춥지가 않았다.

 

 “으응…? 여기가 어디야?”

 

 눈을 겨우 뜬 그녀가 주위를 천천히 살폈다. 깨끗하게 정리된 방 안에는 소파와 테이블이 가지런히 높여 있었고 벽에는 풍경화까지 걸려 있었다.

 

 [끼익!]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아니카의 모습이 보였다.

 

 “클로이, 지금 깬거야? 기분 좀 어때?”

 

 “어? 기분…?”

 

 아직도 이 모든 상황이 이해가 안된 그녀가 더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눈을 깜박였다.

 

 “아직까지 아저씨 안 만났어? 너 지금 여기 어디인 줄이나 알아?“

 

 “아니… 아야!”

 

 클로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앉으려고 하자 손등에 꽂힌 링겔의 바늘이 그녀의 거동을 저지했다.

 

 “병원?”

 

 “그래! 기억 안나? 너 뱀이 들끓는 스네이크 밸리에 혼자 쓰러져 있었다면서? 대체 그 아침 일찍 거기서 뭘 한거야?“

 

 스네이크 밸리면 조이가 있는 곳에서 그리 멀리 않은 곳이었다. 갑자기 그 도시 남자의 비웃는 얼굴을 기억해낸 그녀가 미간을 확 찌푸렸다.

 

 ”네 다리는 다행히 부러지지는 않았어. 그런데 흉터가 좀 남을거라네.”

 

 그 말에 클로이가 이불을 확 들췄다. 상처 위에 거즈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것이 보였다. 다리를 움직이려고 하자 아픔이 밀려왔다.

 

 “나 집에 갈래.”

 

 “뭐야? 너 오늘은 여기 있어야 해. 감염이 얼마나 무서운 건데.“

 

 “넌 신기하게 아빠랑 똑같은 말을 한다. 약 받아가면 되지. 차 가져왔지?“

 

 “어.”

 

 “그럼 됐어. 나가자.“

 

 링겔 바늘을 손등에서 빼버린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불현듯 하늘이 노래지며 어지럼증이 밀려왔다.

 

 “괜찮아?”

 

 그녀의 안색이 안 좋아 보이자 아니카가 물었다.

 

 “어… 미안한데 나 물 좀 갖다줄래? 목이 마르다.”

 

 “그래. 잠시만 기다려.”

 

 아니카가 쏜살같이 병실에서 사라지자 그녀가 옆에 놓인 의자 위로 쓰러지고는 눈을 감았다.

 

 토할 것 같아. 속이 너무 안 좋네.

 

 몸에서 식은 땀이 나는 것이 느껴졌다.

 

 빨리 퇴원해야 병원비도 아낄텐데…

 

 [덜컥!]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좀처럼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어진 클로이가 조용히 말했다.

 

 “미안, 아니카. 나 조금만 더 앉아 있을게. 오 분만… 이러고 있으면 나 다 나을거야… 너랑 같이 갈 수 있어. 오 분만…”

 

 여전히 눈을 감은 채로 점점 무거워지는 머리를 벽에 기대 쉬었다.

 

 “오 분만 기다…”

 

 갑자기 누군가의 억센 팔이 그녀를 안아 올리자 클로이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눈을 떴다.

 

 “?????”

 

 도저히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어진 그녀가 침대에 조심스럽게 뉘어질 때까지 얼이 빠져 있었다.

 

 “… 어떻게 알고... 여기를 온 거예요?”

 

 그의 얼굴을 다시 대하자 속에서 올라오는 역겨운 느낌이 더욱 강해졌다. 게다가 그는 그녀와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완전히 없는 사람 취급을 하고 있었다.

 

 [덜컥!]

 

 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온 아니카가 예상치 못한 방문객을 보고는 놀란 기색을 했다.

 

 “내가 혹시 방해라도 하는 건 아닌지…”

 

 “아니야!”

 

 “아닙니다.”

 

 둘이 동시에 아니라고 부정하는 이 상황이 강한 긍정으로 밖에는 들리지 않았던 그녀가 클로이에게 물을 건네주고는 가방을 들었다.

 

 “클로이, 나 나중에 다시 올게. 몸조리 잘하고 있어.”

 

 남자에게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약간 숙이는 것도 잊지 않은 그녀가 어색하게 문을 닫고는 사라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계획이 완전히 무산되자 화가 난 클로이가 몸을 움직여서는 그에게 등을 돌렸다. 그와 할말이 있을 리가 없었다. 아니 한마디라도 더 했다가는 폭발할 것만 같았다.

 

 “퇴원은 이틀 후에 합니다. 다리도 다리지만 몸에 수분과 영양분의 공급이 많이 필요하대요. 그러니까 그 전까지 멋대로 행동할 생각은 하지도 말아요.“

 

 지가 뭔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명령이야…!

 

 남자의 발자국 소리가 멀어지고는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아아! 재수없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문이 다시 황급히 열리자 그녀의 몸이 차갑게 얼어붙었다. 눈을 굳게 닫고 자는 척을 하는 그녀의 촉각이 온통 등뒤로 쏠렸다. 그녀를 조심스럽게 살피는 눈길이 얼굴 부근에서 느껴지고는 낯선 손이 그녀의 링겔이 꽂혀 있던 손등을 부드럽게 매만지더니 감싸안았다. 손을 뿌리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의 얼굴조차 마주하기 싫었던 그녀는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숨소리까지 얕게 내며 자는 척을 했다.

 

 “… 아야!”

 

 “깨 있었어요?”

 

 등을 돌려 서 있는 사람을 올려다보니 간호사가 그녀의 손등에 바늘을 집어넣고 있었다.

 

 “자던 사람도 깨겠어요. 아파…”

 

 눈물을 찔끔 흘리는 그녀를 아랑곳도 하지 않은 간호사가 할일을 마치고는 병실에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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