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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동거의 법칙
작가 : 하나송
작품등록일 : 2017.11.17

눈 떠보니 너는 나, 나는 너!
기구한 인생에도 열심히 살아가던 ‘죽고 싶지 않은 여자’ 유수연과 못 가진 거 없이 다 가지고도 ‘죽고 싶은 남자’ 강태주의 예측불허 바디체인지 동거 로맨스.
&
“촌스럽게 제 얼굴 하고 그러지 좀 마십시오. 제발.”
“아이고, 죄송합니다. 제가 이쪽과는 영 연이 없는 소시민이라….”
&
[cin4418@nate.com]

 
4. 민망한 시작
작성일 : 17-11-22 09:33     조회 : 223     추천 : 0     분량 : 5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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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저 오줌 마려워요….”

 

 간신히 내뱉은 수연의 말에 태주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싸, 쌀 것 같아요. 사실 선녀님 집에서부터 급했는데…”

 “뭐하고 있습니까? 가서 싸면 되지.”

 “싸, 싸라고요? 어떻게요?”

 “뭘 어떻게 쌉니까? 남자가 오줌 어떻게 싸는지 몰라서 묻는 겁니까?”

 “아니, 어떻게 싸는지는 아는데 남자가 돼서 싸본 적은 없으니까 하는 소리죠.”

 “아는 대로 하시면 됩니다. 괜히 못 볼 꼴 보이지 말고 얼른 화장실 가십시오. 저 쪽.”

 

 태주가 턱짓으로 아래층 화장실을 가리켰다. 머뭇거리던 수연이 도저히 못 참겠는지 어정쩡한 걸음걸이로 화장실을 향해 걸었다. 달칵, 들어서는 소리에 내심 신경이 쓰였던 태주의 시선이 물끄러미 화장실 문으로 가 닿았다.

 

 “아으어허어엉….”

 

 화장실 문을 타고 기괴한 울음소리가 넘어왔다. 듣다 못한 태주가 휘적휘적 걸어 화장실 문 앞에 섰다.

 

 “바지 내렸어요?”

 “네에. 바지는 내렸는데 이, 이거 팬티는 못 내리겠어요.”

 “팬티 안 내리면 어떻게 쌉니까? 빨리 내려요.”

 “으엉….”

 “내, 내렸습니까?”

 “네, 네! 저 내리긴 했는데요, 전무님! 걱정은 마세요! 지금 저 안 보고 있거든요!”

 

 서서 소변을 보는 건 처음일 텐데. 어떻게 안 보고 조준할 수 있으려나. 그냥 앉아서 싸라고 할 걸 그랬나.

 

 화장실 문에 귀를 딱 가져다 붙인 태주가 걱정스러움에 마른 침을 꿀꺽 넘겼다.

 

 “악! 왜 거기다 싸!”

 

 오, 이런 젠장.

 잔뜩 당황해 내지르는 수연의 목소리를 따라 태주의 얼굴도 실시간으로 움찔거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소란은 처음 한순간이었고 곧 옳게 조준한 물줄기가 쪼르르 떨어지는 일률적인 소리가 문을 타고 넘어왔다. 용무를 마치고서도 수연은 바로 나오지 않았다. 샤워기로 튼 물소리가 몇 분 정도 이어지고 나서야 힘없이 문을 열고 잔뜩 진이 빠진 얼굴을 한 수연이 모습을 드러냈다.

 

 “전무님.”

 “예.”

 “죄송합니다.”

 “…….”

 “본의 아니게…”

 

 뭐, 예상은 했다. 당황하던 목소리가 뚝 끊기고 옳게 소변을 보는 듯한 소리가 넘어왔을 때부터.

 

 “죄송할 게 뭐 있습니까. 이제 한 번 해봤으니 어렵지 않겠군요.”

 “네. 어떻게 누는지 바로 이해했어요.”

 “그거 다행이군요. 그럼 저리 가 계시죠.”

 “예? 뭐하시게요?”

 “저도 오줌 마렵거든요.”

 

 

 * * *

 

 상처만 남긴 용변의 시간이 끝나고, 둘은 여전히 잠들지 못한 채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안 잡니까?”

 “분명 잠이 왔었는데, 왜인지 깼어요.”

 “저도 마찬가집니다.”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인 태주가, 소파 옆의 널찍한 유리 탁자 위에 있는 메모지 하나와 펜을 집어 들었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이야기나 해보죠.”

 

 착 다리를 꼬고 무릎 위에 메모지를 붙인 태주가 뭔가를 끼적여 수연에게 내밀었다.

 

 [강태주의 월요일 스케줄.

 오전 10시, 기업 임원회의.

 오후 12시 30분, 점심 약속.]

 

 “회사에서는 10시에 있는 임원회의만 준비하면 됩니다. 나머지 시간은 그냥 사무실에 틀어박혀서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있어요.”

 “임원회의는 뭘 준비해야 해요?”

 “그것도 별 거 없습니다. 그냥 임원들이 준비한 발표 자료 보면서 모여서 이것저것 시답잖은 이야기 하는 거예요. 입 다물고 있다가 수연 씨 의견 물어보면 대답은 ‘괜찮은 것 같습니다.’로 통일하세요.”

 “정말 그거면 돼요?”

 “예.”

 “그렇게 어렵지 않네요!”

 “그렇죠. 그런데 문제는…”

 

 한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태주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곤란해 보이는 얼굴에 수연이 메모지를 다시 한 번 들여다봤다. 임원회의는 별 거 없는데 문제가 있다면, 이 12시 30분에 잡혀 있는 점심 약속?

 

 “무슨 약속인데요?”

 “대광그룹 장녀인 하미소 씨와의 점심 약속입니다.”

 “히익! 대광그룹이요?”

 “네. 그런데 대광그룹인 게 문제가 아니고…”

 “아니고?”

 “하미소 씨는 제 약혼녀입니다. 예정대로라면 한 달 뒤에 여기 C동 시온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릴 사이죠.”

 

 꼭 남 얘기하듯 무덤덤하게 늘어놓는 태주의 말을 곱씹던 수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와! 축하드려요, 전무님!”

 

 글쎄. 이게 축하 받을 일일까.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며 웃는 태주에 대뜸 환호성을 내질렀던 수연이 갸웃하며 그의 눈치를 봤다.

 

 “그때가 하미소 씨와의 첫 만남이라서…”

 “네에?”

 

 황당한 반응은 예상했던 거였다. 일반인의 기준에서는 이해 안 될 상황이기도 하겠지.

 

 “처음 보는 사람이랑 결혼을 한다고요?”

 “월요일에 얼굴을 볼 거니 결혼할 때면 처음 보는 사이는 아니겠죠.”

 “아니, 뭔 그런…”

 

 뭐라 조잘거리려던 수연이 그냥 입을 다물었다. 팔자에도 없이 재벌 3세와 황당하게 엮이긴 했지만, 딱 거기까지면 됐다. 괜히 더 오지랖 부렸다간 태주가 불쾌해할지도 모를 노릇이다. 어차피 재벌 세계의 면면을 다 이해할 수는 없을 테니,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말면 되는 것이다.

 

 “일단 잘 알겠습니다. 그냥 남녀가 같이 밥 먹으면서 평범하게 대화하는 자리 아닌가요?”

 “예, 뭐.”

 “그러면 크게 어려울 건 없겠네요. 무엇보다 겉가죽이 전무님이니까 뭘 해도 이상한 건 못 느낄 것 같아요. 괜히 쫄지 말고 태연하게 잘 해보겠습니다.”

 

 의외로 침착하다.

 

 “그런데 제 일은, 전무님이 하실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테이블 위의 메모지를 한 장 뜯어온 수연이 펜을 끼적이기 시작했다.

 

 [유수연의 월요일 스케줄.

 오전 9시~오후 6시, 회사 출근.

 오후 6시 30분~오전 12시, 편의점 아르바이트.]

 

 쓱 내민 메모지를 받아들어 읽은 태주의 표정이 미묘하게 뒤틀리는 것을 수연이 바로 캐치했다.

 

 “알바가 좀… 걸리죠? 저 주말에는 요 앞 파랑새마트 알바 하거든요. 지하 식료품 시식 코너요.”

 “그, 그렇습니까….”

 

 그냥 몸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 못하는 일에 대해서는 보상을 해준다고 할 걸 그랬나?

 

 뒤늦게 후회하며 그런 제안을 할까 하던 태주가 속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수연이 어떤 성격인지 아직 잘은 파악하지 못했지만, 섣불리 그런 식으로 얘길 하다가 기분 상해할 수도 있는 노릇이다. ‘얼마면 돼? 얼마면 되냐고?’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답 없는 재벌처럼 보이긴 왠지 싫었다.

 

 “해주실 거예요?”

 “아, 예. 뭐…”

 

 덥석 하겠다고 약속을 했으니. 게다가 수연 또한 고생해주겠다고 약속하질 않았는가. 엄밀히 따지면 길 가다 봉변당한 억울한 상황인데도.

 

 “그런데 이렇게 24시간이 부족하게 일해야 할 정도로 돈이 많이 필요합니까? 우리 회사가 서비스센터 직원들한테 대우가 부족했나?”

 “아뇨, 아뇨. 여기 서비스센터 직원들 복지 짱짱 유명하죠. 저 일하는 거에 비해서 월급 많이 받고 있어요. 그런데 제가 돈이 많이 필요해서요. 아래 딸린 동생들이 아직 덜 커서.”

 

 아래 딸린 동생들? 스물아홉이면 결혼 자금 준비 정도로 돈이 필요할 줄 알았다. 그런데 동생들 부양이라니. 팍팍한 가정이구나, 생각하며 태주가 고개를 살짝 주억거렸다.

 

 “그런데 전무님은 그 부모님… 있는 집에는 안 들어가 봐도 되는 거예요?”

 “예. 따로 지낸 지 오래 됐으니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부친인 강 회장과는 전혀 친한 사이가 아니다. 본가에서 지내다가 미국에 있는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부터 얼굴을 보지 않았다. 귀국해서는 바로 집을 얻어 따로 나와 살았으니.

 

 사실 같이 지낼 때도 따뜻한 말 한 마디 나눠본 적이 없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회사에서도 일적인 얘기를 나눌 때 외에는 서로 찾지 않으니 회사 대표와 전무의 관계로 얼굴 볼 때가 훨씬 많았다. 그런 관계가 딱히 좋다거나 싫다거나 생각해 본 적은 없었는데, 지금은 불행 중 다행이 아닌가. 그래도 아버지라고, 강태주의 몸을 뒤집어쓴 유수연을 의심스럽게 바라볼지도 모르니.

 

 “그런데 저는 집에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은데.”

 

 이어지는 수연의 말에 태주가 멍해졌다.

 

 “어떡하죠?”

 “그게 제일 문제 같군요.”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집에서는 잠만 자는 여자니 가족들과 마주칠 일이야 많을까 싶지만, 그래도 부담스러웠다. 남들과 부대끼며 일하는 것과, 가족들과 유수연인 척 이야기하며 지내는 것. 달라도 한참 다를 터.

 

 “제가 유수연 씨 집에서 유수연 씨 행세를 하고 지내는 건 조금 무리일 듯싶습니다만.”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스물아홉이나 됐으니 독립하겠다고 말하는 건 어떻습니까?”

 

 수연의 가족들을 속여야하는 건 둘째 치고, 낯선 곳에서 생판 모르는 사람들과 부대끼며 잠드는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 막막했던 태주가 황급히 제안했다.

 

 “그럴 상황이… 좀 아니거든요. 집에 할머니랑 할아버지도 계신데 몸이 편찮으셔서 봐드려야 해요. 수험생 동생 아침도 챙겨줘야 하고, 또 막내가 여섯 살이라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고요. 주말에는 둘째가 쉬니까 그나마 낫겠지만, 평일에는 제가 있어야 해요. 둘째 동생 일이 힘들어서 평일에는 좀 쉬어야 하거든요.”

 

 가만 있자. 그러니까 할머니, 할아버지에 딸린 동생들은 셋. 그나마 둘째는 일을 하고 있지만 나머지 동생들은 누가 돌봐주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

 

 잠시 수연의 사정을 곱씹던 태주가 어색하게 끊어지는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부모님은?”

 “아버지는 집에 잘 안 계세요. 일주일에 한 번 들어오시나? 어머니는 안 계시고요.”

 

 돈 많이 필요하다고 했을 때부터 의심했던 거긴 한데, 이 여자, 그냥 평범한 정도도 아닌 듯하다. 스물아홉 나이에 대가족의 부양을 끌어안고 참으로 기구하게 살고 있지 않은가.

 

 “일단, 주말에는 둘째가 쉰다고 했던가요?”

 “네. 전무님이 카페에서 통화했던 남동생이요.”

 “그럼 오늘은 여기에서 자고, 내일은 유수연 씨 집에 함께 가보는 걸로 합시다. 내가 그 집에서 유수연 씨 행세를 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좀 보고 판단해봐야죠.”

 “가, 같이요?”

 “그럼 같이 가야죠. 나는 아는 게 없는데. 그냥 직장 동료라고 소개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네, 뭐…”

 “그래요.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하고―”

 

 띵동.

 

 별안간 청량한 오피스텔 벨소리가 들리자 수연이 화들짝 놀라 허둥댔다. 갑작스레 방문한 지인이라도 된다고 생각했는지 당황한 모양새가 우습다. 태주가 픽 웃으며 소파에 느긋하게 몸을 기댔다.

 

 “옷 배달 온 모양입니다.”

 

 

 * * *

 

 만난 지 24시간도 채 안 되어 둘은 서로의 알몸을 본 사이가 됐다. 젖은 머리로 쭈뼛쭈뼛 나와 마주보고 서서 얼굴을 붉히고 있는 수연과 태주의 몸에서는 상큼한 바디워시 향이 진동하고 있었다.

 

 “저 최대한 안 보고 샤워했어요.”

 “전 남의 몸이라 조금 더 깨끗하게 하려고 구석구석 제대로 했습니다.”

 “악!”

 

 장난스럽게 내뱉는 태주의 말에 수연이 눈을 가리고 빽 소리를 내질렀다.

 

 “저 변태는 아니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네. 그냥 부끄러워서 그렇죠. 알몸 보여줘야 하는 건 전무님이나 저나 피차 마찬가지인데요, 뭐.”

 “신기하긴 하더군요. 여자 몸으로 살아보게 된 건 33년 만에 처음입니다.”

 “처음 아닌 사람도 있을까요? 저도 29년 만에 처음이에요.”

 

 어깨를 으쓱하며 수연이 배달된 옷을 쪼르르 걸어놓은 1층 옷장을 기웃거렸다. 센스 있는 태주의 비서는 따로 주문한 것도 아닌데 속옷부터 시작해 실내복, 외출복, 심지어는 휘황찬란한 파티용 드레스까지 몇 벌 붙여 배달을 보냈다. 구경하던 수연의 입이 떡 벌어졌다.

 

 “진짜 예쁘다.”

 

 고급스러운 치마 정장 한 벌을 빼든 수연이 태주에게로 다가가 그것을 대보았다. 눈이 반짝반짝해진 것을 보니 여간 마음에 드는 게 아닌 모양. 막상 예쁜 옷들이 생겼는데도 입지 못하는 처지를 아쉬워하는 것 같은 낌새도 있었다.

 

 “무사히 되돌아가면 다 유수연 씨 입어요.”

 “저, 정말 그래도 돼요?”

 “그럼 저걸 내가 입겠습니까. 어차피 다 버려야할 거.”

 “우와! 헤헤… 감사합니다, 전무님!”

 

 별 것도 아닌데 뭘 저렇게 좋아해.

 

 입은 귀까지 찢어져서 연신 허리를 숙이는 수연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태주가 작게 웃었다.

 

 그날 수연은 잠들기 전까지 한참을, 아직은 입지도 못할 옷들을 꺼내 구경하느라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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