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차가운 초밥
“수연이는?”
조수석에 올라타는 찬별을 보며 은희가 물었다. 찬별은 연보라색 책가방을 무릎 위에 올리고 벨트를 두르며 대답했다.
“집에 일 있다고 먼저 갔어.”
은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시동을 걸었다. 찬별은 차창으로 하교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수연이가 왜 그렇게 화를 냈지.’
아무리 생각해도 평소에 늘 하던 장난이었다. 폰을 뺏어 카톡이나 사진첩을 뒤적이며 애인 행세를 하는 것이 둘 사이의 놀이였던 것이다. 평소였다면 ‘아 볼 거 없어.’ 하면서 웃었을 수연인데.
‘하긴. 사생활 침해잖아. 잘한 것 없어, 박찬별.’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거리니 마음이 찌르르 아팠다.
‘그래도 제일 친한 친군데.’
찬별은 조금 야속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찬별은 수연에게 모든 비밀을 다 알려주었는데, 수연은 뭘 그렇게 야박하게 숨기는 걸까.
마음속에서 ‘그래도 내가 잘못했어.’ 하는 생각과 ‘그래도 차수연 너무 심했어.’라는 생각이 날을 세우고 싸웠다.
“뭐 먹을래. 초밥? 쌀국수?”
“초밥.”
“수연이도 한 끼 먹이고 싶었는데.”
은희는 찬별의 친구로써 수연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공무원 아버지에 전업 주부인 어머니, 승무원 출신의 언니를 두고 있다는 것이 안정적으로 느껴지는 덕이겠지.
찬별은 은희의 옆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핏줄이 비칠 정도로 창백한 피부.
‘엄마는 아무리 봐도 30대로 밖에 안 보여.’
이렇게 아름다운 엄마가 어째서 이토록 불행하게 살아야 하는 건지, 찬별은 생각할수록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그건 엄마가 욕심이 너무 많아서잖아.’
자꾸만 오락가락하는 자신의 마음이 어지러워 찬별은 눈을 감아버렸다.
사실 찬별은 엄마를 조금도 사랑하지 않는다. 스스로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담임선생님이랑 통화했어. 야자도 특별반도 다 거부했다며.”
“그 얘긴 끝났잖아요. 과외 스케쥴만으로도 벅찬데.”
찬별은 원어민 선생과 전화로 하는 영어 회화 과외, 월수금 방과 후에 받는 수학 과외, 수연과 함께 받는 프랑의 언어영역 & 외국어 영역 과외, 시험 기간에만 특별히 받는 사회탐구 영역 과외까지 거의 전과목에 걸친 과외를 받고 있었다.
그 중 프랑과는 친구에 가까웠고 사탐 과외도 중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낸 대학생 언니이기 때문에 엄마 몰래 슬쩍 슬쩍 자유 시간을 내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혼자 공부하는 게 나아. 우리 학교 분위기, 별로야.”
은희는 찬별을 깊이 바라보더니 제 몫의 연어초밥을 찬별의 그릇으로 옮겨주었다.
“그래, 엄마는 찬별이 믿으니까.”
찬별은 말없이 초밥을 꼭꼭 씹고 미소국을 호록 마셨다.
일주일에 한 번은 이렇게 두 모녀가 외식을 했다. 은희는 직업은 없지만 찬별의 교육을 위해 이런 저런 활동을 하는 것이 많아 늘 바빴다.
‘1등 학생은 1등 엄마가 만든다.’는 것이 은희의 지론이고 찬별은 은희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초등학생 때부터 지금껏 모범적 학생으로 잘 자라오고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반장이 되고서 은희가 얼마나 기뻐했는지를 찬별은 지금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엄마는 널 위해 살 거야. 너만 잘해주면 엄마는 아무 것도 바라는 게 없어.”
찬별이 초등학교 5학년이 되던 해에 은희는 남편과 이혼했다. 찬별은 아빠를 좀 더 사랑했지만, 엄마의 오래된 불행이 자기 탓인 것만 같아 엄마의 곁에 남기로 결정했었다.
초등학교 5학년생이 결정하기엔 너무 무거운 일이었지만.
“중간고사 준비는 잘 하고 있는 거지? 이번에는 꼭......”
은희가 이번에는 꼭...... 하고 말을 줄이는 것이 찬별은 미치도록 싫었다. 그 말줄임표에 담긴 ‘전교 1등 좀 해보자, 응?’ 하는 소리가 귓속으로 따갑게 파고드는 것 같았다.
“걱정 마, 노력하고 있으니까.”
고작 할 수 있는 대답은 그 정도였고 그것이 최선이었지만 은희는 늘 못마땅한 표정으로 얇은 입술을 다물었다.
‘엄마, 도대체 뭘 어떻게 하라는 거야? 나 죽을만큼 노력하고 있는 것 안 보여?’
그렇게 외치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은희는 얇게 만든 유리 꽃병 같아서 약간의 불행이 조금만 침범해도 곧장 깨져버릴 것 같았으니까. 찬별은 그런 엄마가 언제나 불안했다.
“프랑소와 선생님 수업은 어떠니. 전화 통화로 느끼기엔 좀 자신감 없는 사람 같아서.”
“프......”
‘프랑은’ 하고 말하려던 찬별은 이내 입을 다물고 ‘선생님은’ 하고 얼른 발음했다. 언젠가 ‘프랑’이라고 부르는 것을 들은 은희가 ‘선생님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니? 제대로 된 존경을 드려야 너도 그만큼 배워올 수 있는 거야.’ 하고 잔소리를 했기 때문이었다.
“선생님 좋으셔. 작가라서 아는 것도 많고. 수업 외에도 알려주시는 게 많아서 도움이 많이 돼.”
은희는 음, 하고 목으로 소리를 내더니 자못 진지하게 물었다.
“학업에 방해가 될 정도로 잡다한 얘길 나누는 건 아니겠지?”
“그런 거 아니야.”
찬별은 자신의 목소리에 공격성이 묻어나지 않도록 조심하며 다음 말을 이었다.
“언어 영역은 배경 지식이 중요하잖아. 외국어 영역도 마찬가지고. 이런 저런 배경지식을 늘려주시는 거야. 지금까지 받았던 과외 중에 난 선생님 과외가 제일 도움 돼.”
찬별은 말을 끝내자마자 다시 입을 열었다.
“아, 그리고 이번 토요일에 선생님이 문학 행사에 초대하셨어. 유명한 작가들이 나와서 특강해주시는 거래. 수연이랑 같이 가려고. 좋은 기회 같아.”
부러 ‘낭독회’라는 단어 대신 ‘특강’이라는 단어를 쓴 것은 찬별의 영리한 계산이었다. 찬별은 은희의 대답을 듣지 않으려고 젓가락을 딱 소리가 나게 내려놓고 물을 마셨다.
은희가 계산을 하는 동안 뒤에 선 찬별은 극도의 피로감이 몰려드는 것을 느끼며 생각했다. 독서실에 가면 우선 수연에게 카톡을 보내자. 뭐가 어떻든 간에 사과를 하고 관계를 풀어야 돼.
15. 카톡은 화해를 싣고
[차수, 뭐해?]
[그냥 있어. 넌?]
[난 독서실.]
[ㅇㅇ]
[차수.]
[웅.]
[미안해.]
[나도.]
[진짜임.]
[나도임......]
[낼 떡볶이 쏜다! :)]
[오예, 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