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얼룩진 중학생 시절
사실 수연이 고등학교 생활을 그토록 기대했던 것은 중학교 시절의 그늘을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기도 했다. 중학생 시절은 아무리 뒤적여 봐도 애틋한 추억보다는 가슴이 따끔따끔한 기억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딱히 왕따를 당해본 적은 없었지만 친구들 무리에서 떨어져 나갈까 늘 마음을 졸이던 시절을 수연은 보냈다.
1)
중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초등학생 때는 남, 녀 할 것 없이 동네 아이들이 뒤섞여 퐁퐁을 타러 다니기 일쑤였다. 중학생이 되어서야 비로소 ‘친구 무리’에 대한 인식이 생겼는데(보통은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무리가 생기기 때문에 수연은 스스로를 아주 느리다고 생각한다.) 수연도 여자 아이 5명 정도가 모인 무리에 낄 수 있었다.
5명 중 대장 노릇을 하던 아이는 일찍이 화장을 시작하고 치마를 줄여 입는 데에 도가 튼 날티 나는 아이였다. 미인이라고 보기는 힘들었고 개성 있는 얼굴이었다. 날씬한데 다리에 유독 알이 가득해서 남자애들이 언제 낳을 거냐며 자주 놀리곤 했다. 이름은 이은지였다.
하여간에 이은지를 중심으로 저마다 개성이 있는 아이들이 둘러 모인 무리였다. 수연은 키가 큰 아이로써 끼었고, 그림을 그리는 아이, 용돈이 풍족한 아이, 그리고 목이 길고 눈이 깊어 사슴처럼 예쁜 아이가 멤버였다.
예쁜 아이의 이름은 지원이었다. 강지원.
문제는 이은지가 어느 순간부터 강지원을 못마땅해 하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이은지는 강지원이 무슨 말을 하건 무슨 행동을 하건 장난인 척 시비를 걸었고 이윽고 강지원을 빼놓고서 놀게 되었다. 이은지가 강지원을 빼놓고 새로운 단체 채팅방을 만들었을 때, 아이들이 강지원이 있는 헌 단체 채팅방에서 하나씩 ‘나가기’ 버튼을 눌렀을 때, 그때부터가 본격적인 따돌림의 시작이었다.
갑자기 이탈된 강지원은 먹구름 낀 얼굴로 등교했고 쉬는 시간이면 내내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가끔 그 애가 빨개진 눈으로 고개를 들 때면 수연은 가슴이 아렸다.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 무리는 온전히 이은지를 중심으로 돌아갔고 이은지의 눈 밖에 난다는 것은 곧 강지원처럼 된다는 뜻이었다.
하루는 강지원네 엄마가 이은지에게 전화를 해왔다. 함께 모여 있던 모두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나 불호령이 떨어질까 이은지까지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는데, 의외로 통화의 용건은 식사 초대였다. 강지원의 생일이라는 것이었다.
모두가 우물쭈물하는 사이 이은지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가자.”
그 주의 토요일, 학교를 마친 후 무리는 모여서 문구점에 들러 시시껄렁한 선물을 샀다. 싸구려 연필 세트, 무늬 없는 지우개처럼 중학생 여자애가 갖고 싶어 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조악한 것들을 일부러 고르는 이은지를 보고 누구도 뭐라 말을 얹지 못했다.
강지원의 집은 해가 잘 들어 전체적으로 화사한 아이보리 톤이었다. 목이 시원하게 드러난 원피스를 입은 그 애가 자기 집 소파에 오롯 앉아있는 모습은 꼭 웃음을 잃은 공주 같았다. 수연은 지금도 그 때 그 장면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화려한 꽃무늬 블라우스를 입은 어머니 뒤에 앉아, 겁먹은 강아지처럼 아이들을 바라보던 강지원의 눈. 떨리던 손.
“뭐 이런 걸 다 사왔니.”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선물을 받아들던 강지원의 어머니는 이은지와 무리들을 쓱 훑어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생리대나 사오지. 우리 지원이 생리하는데.”
다들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뒤에서 조그맣게 ‘엄마.’ 하고 만류하는 강지원의 목소리가 들렸고 아주머니는 테이블을 가리키며 앉으라고 말했다.
모두 둘러앉자 아주머니는 강지원을 가운데에 앉혀놓고 그 애에게 종이 왕관을 씌웠다. 그 유치한 모습에 모두가 소리 없이 경악했다. 이은지가 빠지지 않고 입을 열었다.
“와, 너 공주 같다.”
그 목소리에 조소가 가득했기 때문에 모두 입을 다물었다. 강지원은 곧 울 것 같은 표정이었지만 엄마 앞이라서 그런지 자존심 때문인지 용케 울지 않고 버텼다.
상이 떡 벌어지게 차려진 음식을 나눠 먹는 동안 강지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대신 아주머니가 립스틱을 진하게 바른 입술을 열심히 놀려 이야기를 풀었다.
우리 지원이는 올해 초부터 생리를 시작했어, 너희 중에 생리 시작한 아이 있니? 그래, 아직 없구나, 우리 지원이가 너희보다 빨리 어른이 되었네, 우리 지원이가 얼마나 속이 깊은 아인지 아니? 학교에서 힘든 일이 있어도 집에 와서 일절 티를 안 내는 애가 내 딸이야, 너희들도 너희들 집에서는 귀한 딸이겠지만, 우리 지원이는 나한테 하나밖에 없는 귀한 딸이야, 난 지원이를 위해서 뭐든지 할 수 있어, 너희 무슨 말인지 알겠니?
누구도 더 이상 음식을 삼킬 수가 없었다. 서로 데굴데굴 눈동자를 굴리며 주스나 사이다를 들이켤 뿐이었다.
침묵의 생일 파티가 끝난 후 모두들 현관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강지원이 머뭇머뭇 나와서 손을 흔들었다. 모두 이은지의 눈치를 보느라 손을 흔들지 못했다. 이은지가 슬쩍 강지원을 본 후 아주머니께 인사를 했다. 아주머니는 인사를 받지 않았다. 무리가 현관문을 빠져나가는 것을 지켜보다가 차가운 얼굴로 문을 닫았을 뿐이다.
문이 닫히던 순간에는 아주 큰 소리가 났다. 그리고 어렴풋이 강지원이 울음을 터뜨리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 말없이 엘리베이터에 올랐고 미술을 하는 아이가 불쑥 울음을 터뜨렸다. 이은지는 인사도 하지 않고 혼자 훌쩍 가버렸다.
다음 날부터는 미술을 하는 아이도 강지원처럼 책상에 엎드려있어야 했다.
수연은 지금도 소파에 공주님처럼 앉아있던 강지원을 생각하면 가슴이 콕콕 쑤시고 아팠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엎드려있는 그 애에게 다가가 가느다란 팔을 붙잡고 ‘일어나.’라고 말하고 싶었다. 사슴같은 그 애의 눈망울을 들여다보면서 ‘같이 맥도날드 갈래?’라고 말하고 싶었다.
2)
중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새로운 반이 되면서 전의 무리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고 모두들 그것을 다행스럽게 여겼다. 강지원이 겨울방학을 틈타 전학을 가면서 아이들 마음에 남은 상처도 어느 정도 아무는 것 같았다.
2학년이 되면서는 비교적 조용한 아이들 무리에 섞이게 된 수연도 안정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반에서 알게 모르게 무시를 당하는 어느 여자 아이 때문에 발생했다. 키가 작고 퉁퉁한 체형의 그 아이 이름은 진다래였다.
“쟤 완전 토 나오지 않냐.”
“아, 누가 매직한 머리를 저렇게 귀에 꽂고 다니냐.”
“그니까. 자국 다 남게. 아 토 쏠려.”
뒷자리를 점령한 여자애 몇 명이 진다래를 보며 큰 소리로 비아냥거린 이후로 반 아이들 모두 진다래를 피하기 시작했다.
수연은 마음이 몹시 불편했다. 진다래는 초등학생 시절 함께 뛰어놀던 동네 아이 중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엔 진다래가 수연의 사물함 속에 편지를 넣어두었다.
[수연아, 왜 인사해도 받아주지 않는 거야? 다시 옛날처럼 친하게 지내고 싶어.]
수연은 깜짝 놀라 편지를 구겨 버렸다.
문제는 청소 시간 그 편지를 발견한 여자애가 그것을 교탁 앞에 서서 읽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모두가 귀를 기울였고 그 자리에는 수연도 진다래도 있었다. 아이들의 시선이 모두 수연에게로 꽂혔다. 편지를 읽은 아이가 불량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차수연, 너 진다래랑 친하냐?”
수연은 돌덩어리가 가슴으로 쿵 떨어지는 강도의 충격을 느꼈다.
“아닌데?”
아이들은 그러면 그렇지 하는 눈길로 진다래를 웃으며 쏘아보았다. 말없이 수연을 바라보던 진다래는 대걸레를 들고 교실을 빠져나갔다. 수연은 편지를 읽은 여자아이가 그것을 박박 찢어 쓰레기통에 버리는 모습을 무표정하게 바라보았다.
이후 진다래는 반에서 은따가 되었고 수연은 조용한 아이들과 조용한 2학년을 보냈다.
3학년이 되면서는 운 좋게 2학년 때 친하던 아이와 같은 반이 되어 2학년 때와 다름없는 평화를 표면적으로나마 누릴 수 있었다. 불행히도 진다래 역시 같은 반이었기 때문에 수연의 마음은 언제나 바늘방석이었다.
언젠가부터는 수연 스스로도 진다래를 미워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
‘너 때문에 괜히 불편해졌잖아.’
그런 마음으로 진다래를 바라보는 자신 때문에 학교를 가는 것이 괴로웠다.
중학교 졸업식 날에는 진다래에게 쓴 사과편지를 끝끝내 전해주지 못했다.
‘고등학교에 간다면.’
고등학교에 간다면 이 모든 괴로움이 끝날 거라고, 그렇게 기대하며 수연은 남은 중학교 시절을 버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