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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고백
작가 : 안비로움
작품등록일 : 2017.10.31

용의자들의 기억을 자신의 것으로 되살려 체험할 수 있는 어느 이름없는 형사, 사건 미결로 정직을 당한 후 옛 연인의 죽음을 계기로 복귀한다.

 
에피소드 2. 주홍빛 회고 (2)
작성일 : 17-11-20 15:32     조회 : 208     추천 : 0     분량 : 4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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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공간은 다시 시멘트로 둘러싸인 직사각형의 취조실로 변한다.

 

  나는 추억을 끝마치고 애꿎은 코만 훌쩍거리며 천정을 응시한다.

 

  정면의 A는 고개를 숙이고선 내 이야기를 곱씹는 듯 보인다.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E는 이렇게 죽지 말았어야 할 사람입니다.”

 

  “……형사님은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했군요.”

 

  “사랑‘했’습니다. 지금 남은 건 그저 잔상일 뿐이죠,”

 

  잠깐의 정적. 그는 얘기하길 망설이는 듯 입을 열었다 닫기를 반복한다.

 

 

  “……형사님께 꼭 들려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사건엔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하지만 제 얘기를 듣고 난 뒤엔 E의 잔상마저 모두 지워질지도 모릅니다. 전 형사님의 결정에 따르겠습니다. 그래도, 들으시겠습니까?”

 

  ‘죽은 E에게 한 발짝 다가서는 대신, 살아있는 환상 속 그녀를 잃을 것이다.’라.

 

  나는 잡히지 않지만 살아있는 환상을 좇을 것인가, 아니면 이미 떠났지만 내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그녀의 실체를 좇을 것인가.

 

  "……듣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E와 내가 비밀로 간직하던, 지금은 유령이 되어버린 사람의 얘기를 들려드리죠.”

 

 

  다시 대저택, E의 가족으로 그녀를 지켜보던 나의 두 번째 기억.

 

  어린 시절 몰래 훔쳐보았던 문자의 기억이 머릿속에서 거의 잊힐 무렵, 나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무난히 졸업하고 여느 또래들처럼 성인이 되었다.

 

  소녀 또한 자랐다.

 

  어느새 열 살의 익은 과일. 달콤함을 빼앗아 간 그녀에게 더 이상의 질투는 남아있지 않았다.

 

  그녀가 내게 주던 끊임없는 관심으로 나는 마음을 열고 그녀를 동생으로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나 또한 자랐다는 증거일 테다.

 

  “오빠! 아주머니가 밥 먹으래.”

 

  인중 근처에 피어난 여드름을 터트리며 몸부림치던 내게, 방문을 불쑥 열고 E가 들어와 소리쳤다.

 

  “응, 곧 갈게.”

 

  “얼른 와! 이제 집에서 밥 못 먹잖아!”

 

  “알겠어, 금방 내려갈게. 먼저 가서 먹어.”

 

  “얼른 안 오면 내가 오빠 꺼 까지 다 먹는다?”

 

  “먹기만 해봐! 네 바닐라 아이스크림 먹어버릴 거야!”

 

  “메롱 이다!”

 

  스무 살을 갓 넘긴 해, 나는 대학에 입학해 기숙사로 거처를 옮기게 됐다.

 

  당시에는 올바른 선택이라 생각했다.

 

  오로지 공부에 몰두해 아버지에 걸맞은 아들이 되어 그간 받은 모든 은혜를 갚는 것이 효도라고 생각했었으니까.

 

  그러나 그 때 나는 가족의 곁을 떠나지 말아야 했음을, 좀 더 일찍 깨달았어야 했다.

 

  “일찍도 내려온다! 당분간 집 밥도 못 먹을 텐데 든든히 챙겨먹고 가야지.”

 

  계단을 내려가기 무섭게 식탁에 둘러 앉아 날 기다리던 가족들을 대표해 아주머니가 나를 꾸짖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얼마 후 새로운 사람과 결혼했다. 그녀는 30대 초반의 여성으로, 호리한 몸매와 긴 금발 머리 그리고 차가워 보이는 겉모습과는 다르게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아름다운 미소가 아직까지 뇌리에 박혀있는 나로서는 그녀를 쉽게 어머니로 인정할 순 없었다.

 

  “그리울 거예요. 아주머니도, 아버지도, 동생도 그리고 집도.”

 

  “아예 못 보는 것도 아닌데 뭐 그리 유난이더냐. 밥 먹자.”

 

  최후의 만찬을 수백 번 곱씹었다.

 

  즐겨보던 다큐멘터리에서 소가 줄곧 하던 추잡한 되새김질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아직 가족을 떠나본 적이 없었던 까닭이었다. 갈등만 줄곧 되뇌었다. 가기 싫다, 가고 싶다, 가야 한다, 갈 수 없다.

 

  “오빠 가면 난 누구랑 놀아?”

 

  “친구도 많으면서 무슨 걱정일까. 우리 딸은.”

 

  “집에서 놀아주는 사람은 오빠밖에 없단 말이야.”

 

  “걱정하지 마. 자주 편지할게. 가끔 놀러오기도 할 테니까.”

 

  “공부하러 가는 애가 그런 말을 왜 해. 공부에만 매진 해. 행여나 중도에 올 생각 말고.”

 

  아버지의 말씀으로 나는 해야 할 일이 있음을 다시금 상기시켰다.

 

  마지막 수저를 입에 물고 떠날 채비를 끝마친 뒤 다시 내려왔다.

 

  가족들의 배웅을 뒤로 한 채 차에 올라탔다. 모습이 멀어졌다. 바라보던 모든 게 작아져간다.

 

  저택, 정원, 사람, 그리고 가족. 차는 도로를 향해 달렸다.

 

  차창 어느 곳에든 가족을 연상케 하는 그 어떤 것도 비치지 않을 때까지.

 

  ‘오빠, 기숙사는 어때? 룸메이트나 방은 마음에 들어? 아빠가 알아서 하셨겠지만, 미덥지가 않아…….. 오빠가 없으니까 정말 심심하다. 책을 읽어도, 게임을 해도 같이 해 줄 사람은 오빠뿐이었는데 요새는 계속 집에만 있어. 며칠 더 있으면 학교가야 되서 나가서 놀고 싶은데, 다들 바쁜가봐. 아빠도 서로 일 때문에 바쁘고 그리고 친구들도. 다 해야 할 일이 있나봐. 나만 놀고 있나? 내일 부턴 다시 그림도 그리고 책도 읽고 아이스크림도 왕창 먹어야지! 사실 지금도 먹고 있다? 편지지에서 바닐라 냄새나면 내꺼 인줄 알아! 집에는 언제 오는 거야? 아주머니한테 몇 밤 더 자면 오빠 오는지 물어봤더니 손이랑 발로도 셀 수가 없대. 그래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기다리기로 했어! 맞다. 그리고 나 아주머니한테 음식 하는 법 배웠으니까 오빠 오면 맛있는 거 만들어줄게! 밤이 늦어서 아빠가 얼른 자래. 또 편지 할게 오빠, 잘 지내!’

 

 

  어느덧 10년, 동생은 집을 비운 날 위해 꾸준히 편지를 썼다.

 

  나는 그것을 위안 삼아 대학교를 지나 대학원을 거쳐 10여년에 가까운 시간을 외부에서 견뎌냈다.

 

  마땅히 누릴 것을 누리고 얻어야 할 것을 얻어가며.

 

  하지만 타지에서 누구나 겪는 외로움 탓인지 진심으로 그리운 것인지 꿈에선 미소를 띤 소녀와 두 남녀가 매번 내게 어서 돌아오라며 손짓했다.

 

  그런 내 마음이 드디어 전해졌던 걸까. 동생은 어서 돌아오라는 한 줄의 편지 한 통과 함께 집을 벗어난 지 정확히 10년 째 되는 날 아침, 대학원 졸업식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검은 리무진을 기숙사 앞으로 보냈다.

 

  나갈 때와는 반대로 돌아갈 때는 흥겨운 마음이 속 깊은 곳까지 가득했다.

 

  “다녀왔습니다!”

 

  우렁찬 목소리로 삐걱대는 문을 열고 들어서자 뿌리칠 수 없는 피비린내가 났다.

 

  사진 속의 동생과 나 그리고 아버지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허나 취할 정도로 진동하는 불안의 냄새가 나의 표정을 찡그리게 만들었다.

 

  수년 간 나의 얼굴은 가족을 향한 미소만을 아껴두고 있었는데도 그 노력을 무색하게 만들듯 지금 이 저택의 분위기는 너무나도 처참하다.

 

  조심스레 계단을 올라 들어간 내 방에는 넓어진 어깨 덕에 좁아 보이는 침대, 정돈된 책상과 비어있는 책장, 빛바랜 벽지와 비닐 덮인 가구들, 무료함을 달래주던 오락기들은 내가 오랜 시간 집을 비웠다는 것을 대변하듯 단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집은 어느 이름 모를 나라의 움막처럼 투박하게 비어있었다.

 

  인기척 하나 느껴지지 않는 고요함. 나를 두고 이사라도 간 것일까.

 

  아니면 내가 비운 틈을 타 멀리 여행을 간 것일까.

 

  내게 돌아오라던 동생의 편지는 단순한 장난이었을까.

 

  쓸데없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커지기 시작했다. 우선 집을 한 번 살펴보기로 하자.

 

  헌데 밖으로 나왔을 때, 나는 내리쬐던 빛의 도움 아닌 도움으로 전에 없던 끔찍한 광경을 목격했다.

 

  바닥에는 사정없이 찢겨진 동생의 옷가지와 깊게 파인 손톱자국, 벽에는 무언가로 강하게 내려친 듯 움푹 들어간 흔적들이 이리저리 널브러져 있었다.

 

  분명 이것은 끔찍한 저주를 받아 광기로 일그러진 모습. 나는, 자리에서 그만 주저앉아버렸다.

 

  당장이라도 벗어나야했다.

 

  더 이상 내 기억과 닮은 구석 하나 없는 공간에서. 풀려버린 다리를 끌고 끌어 벽을 기대어 섰을 때 어디선가 인기척이 느껴졌다.

 

  공포에 사로잡혀 발버둥 치는 내 모습을 더 이상 반가이 여기지 않던 까닭이었을까.

 

  사이시간을 헤집고 들어오는 인기척은 나를 무척이나 의심 하는 듯 좀처럼 다가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마치 나를 익히 알고 있는 듯.

 

  “오……빠……?”

 

  그녀의 가냘픈 물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연애를 시작했다던, 행복에 겨운 편지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몰골로 그녀는 내 앞에 나타났다.

 

  난잡한 머리와 푸른 입술, 옷 너머로 잔뜩 비치는 생채기들, 미소는 커녕 표정이 없는, 무표정 그 이하의 얼굴, 코로부터는 조금씩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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