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현대물
무지개의 소리
작가 : 휘음
작품등록일 : 2017.10.31

눈을 감고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나뭇잎에 맺힌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경쾌한 붉은 소리부터 무거운 보랏빛 소리까지.
필사적으로 전하려는 그 마음 가득한 무지개의 소리가.
네가 알려준 그 소리가.

 
6
작성일 : 17-11-20 01:27     조회 : 344     추천 : 0     분량 : 4572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하늘에 한가득 구름이 비를 뿌렸다. 모처럼 쉬는 날인데...

 

  장마가 오기엔 조금 이른 시기이지만 여름이니 시원하게 한바탕 쏟아질 때가 된 모양인지 구름은 몇 시간째 쉬지 않고 비를 뿌려대었다.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아... 조금 더 잘까...?

 

  벽에 덕지덕지 붙여놓은 그림들이 무기력하게 뻗어있는 나에게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조금은 부담스럽지만 익숙한 그 시선에 나는 누운 채로 기지개를 켰다.

 

  나기... 이름이 소나기라고 했지...?

 

  “나는 네가 재미있는 그림을 그렸으면 좋겠어.”

 

  빗소리가 녀석이 재잘대는 소리 같아 귀를 틀어막았다. 기분 좋게 들리던 빗소리가 시끄러운 소음으로 변질되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벽에 걸려 나를 바라보던 그림들이 입을 모아 비웃는 소리들을 뱉어내는 것만 같았다. 내가 자랑스러워하던 하나같이 배운대로 그린 수상작들이 깔깔거리며 웃어댔다.

 

  일어나 그림들을 보자 하나같이 일그러져 이상하게 보였다. 가슴이 울렁거렸다. 빗소리가 더욱 거세졌다. ‘못 그렸어.’라며 녀석이 비웃는 소리가 들렸다.

 

  결국 방에서 나온 나는 거실에서 창밖을 바라보고 계신 할머니에게로 갔다. 비가 오는 날이면 항상 거실 구석자리에 앉아 베란다 너머의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시는 할머니는 오늘도 어김없이 그 자리에 계셨다. 무언가를 깊게 생각하시는 듯 비가 오는 날이면 저 자리는 할머니의 지정석이 되었다.

 

  “우리 강아지... 할미에게 그림 하나 그려주련?”

 

  할머니는 내 쪽을 돌아보지 않으시며 조용히 말씀하셨다. 최근 들어 더욱 마른 할머니의 마른 나뭇가지와도 같은 손목을 바라보던 나는 방에 도로 들어가 스케치북을 꺼내왔다. 스케치북을 넘기자 여태껏 그린 그림들이 다시 깔깔거렸다. 그 녀석 탓이다.

 

  나를 비웃는 그 소리들을 떨쳐내고자 고개를 마구 저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할머니는 여전히 창밖만을 바라보고 계셨다.

 

  할머니께서는 종종 내게 그림을 그려 달라 하셨기에 익숙하게 할머니 옆에 자리를 잡았다. 잠깐 고개를 돌려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할머니의 어깨가 이렇게나 앙상하고 좁았던가.

 

  “어떤 걸 그려드릴까요?”

 

  “네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려주련?”

 

  “앨리스요?”

 

  “토깽이 따라갔다가 구멍에 빠져서 이런저런 여행을 하고 다시 돌아온 그 아가씨가 앨리스여?”

 

  짤막하고도 정확한 줄거리.

 

  “네, 앨리스예요.”

 

  할머니께서는 꼭 조시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셨다. 내가 어릴 적부터 그 이야기에, 삽화에 매료되어 있는 걸 아시는 지 할머니께서는 가끔 앨리스를 그려줄 것을 부탁하셨다.

 

  스케치북의 하얀 순백과 마주한 나는 칠흑의 연필로 구멍에 빠져 방황하던 소녀, 앨리스가 모자장수와 만나 티타임을 즐기는 모습을 그리기 시작했다. 가만히 찻잔을 구경하는 앨리스와 차를 따르는 모자장수, 그리고 나무 위에 숨어서 이를 지켜보는 체셔고양이. 차도 과자도 없는 모양뿐인 티타임이지만 어딘가 즐거워 보이는 모습을. 나는 말없이 선으로 표현해 나갔다.

 

  거실엔 빗소리와 연필과 스케치북의 사각거리는 마찰소리가 무의미하게 재잘거리듯 가득찼다.

 

  “진짜 못 그렸어.”

 

  빗방울이 창문을 때릴 때마다 녀석의 소리가 튀어 올랐다. 못 그렸어. 못 그렸어.

 

  주말에도 일을 나가신 부모님의 부재로 지금 집엔 할머니와 나, 단 둘 뿐. 힐끔 할머니를 한 번 보고 난 입을 열었다. 저 창밖에서 끊임없이 나를 질타하는 녀석의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할머니, 저 그림 못 그려요?”

 

  “우리 강아지가 그림ㅇ르 왜 못 그려? 여기저기 상도 타오는 데.”

 

  평화로운 대답에 내 안 어딘가에서 안도하는 느낌이 올라왔다. 그래, 내 그림을 못 그린다 평하는 건 그 녀석뿐이야. 인정받고 그에 합당한 상이 내려지는 그림을 못 그린다 평하는 녀석이 잘못된 거야.

 

  “어떤 여자아이를 만났는데 제가 그림을 못 그린대요.”

 

  고자질이었다. 아주 단순한 내 속을 풀기위한 고자질. 마치 대나무 숲에 대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소리를 질렀다던 동화 속 신하처럼 나는 할머니께 고자질을 했다. 녀석은 내가 누군가에게 이런 고자질을 했다는 사실을 모를 것이다.

 

  스케치북을 들고 연필을 이리저리 굴리는 내 등에 할머니의 깡마른 그렇지만 따뜻한 손이 닿았다. 할머니께서는 가만가만 내 등을 토닥이기 시작하셨다. 딱딱하고 거칠어서 위로가 될 만한 촉감은 아니었지만 어쩐지 몽글몽글한 감정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것 같았다.

 

  못 그린다며 나를 비웃던 빗소리가 고요히 가라앉으며 돌연 박자감을 나타냈다. 이젠 비소리가 시끄럽지 않았다.

 

  “그 애는 너를 싫어하누?”

 

  “글쎄요, 모르겠어요. 싫어한다면 저를 만나러 오지 않아도 되는 데, 항상 저를 만나러 와요. 벽화를 그린다고 했을 땐 엄청 좋아했고요.”

 

  “그런데 왜 네 그림을 못 그렸다하누?”

 

  녀석이 꽤나 진지한 얼굴로 한 말이 떠올랐다. 계속해서 내 속을 시끄럽게 들쑤셔 놓는 말이다.

 

  “제가 재미있는 그림을 그렸으면 좋겠대요.”

 

  “우리 강아지는 학원에서 그리는 그림이 재미없누?”

 

  입을 다물었다. 석고상을 보고 똑같이 그리고 정해진 구도로, 주제로 그림을 그리며 천편일률적인 개성 제로의 그림을 쏟아내는 것이 난 재미가 없었다. 입시미술을 즐거워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아니었다. 난 재미가 없었다. 막힘없이 그리던 손이 멈춰섰다.

 

  앨리스의 얼굴은 비어있는 채, 벽화에 그려 넣은 앨리스의 얼굴이 돌연 떠올랐다.

 

  “학원은... 당연히 재미가 없죠.”

 

  다시금 손을 움직이며 어렵게 답하자 옆에서 움직이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자 할머니께서 날 보고 계셨다. 눈동자 가득 사랑이 담겨있었다.

 

  매마르고 따뜻한 손이 이제 내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할미가 그려달라는 그림도 재미없누?”

 

  “이건 재미있어요.”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싫었다면 진즉 거절했을 것이다. 핑계를 대고 그리지 않았을 것이다. 이걸 그리는 건 학원에서 그리던 그림들처럼 강제가 아니다. 정해진 시간 안에 그려야 하는 것도 아니고 정해진 구도로 그려야 하는 것도 아니다. 거절할 수 있으며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그림이다.

 

  할머니께서 다시 창밖을 바라보셨다. 몇 시간째 계속해서 내려대던 비가 조금씩 그치고 있었다. 나는 비어있는 앨리스의 얼굴을 보았다.

 

  “그 아이는 네 그림을 좋아하는 모양이구나.”

 

  못 그린다고 타박하는 녀석이 내 그림을 좋아한다고?

 

  다시 생각해 보니 녀석이 좋아하기는 했다. 낙서를. 벽화에 그려진 앨리스를. 토끼를. 그 녀석이 못 그렸다고 한 그림은 학원에서 그리던 그림들이다.

 

  할머니는 더 이상 아무 말씀하지 않으셨다. 나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손을 움직여 배경을 완성시켰다. 앨리스의 얼굴은 계속 비어있는 채였다.

 

  “그 앨리수라는 아가씨는 마지막에 집으로 돌아간다고 했지? 여행을 끝내고 돌아간다고 했지?”

 

  앨리수가 아니라 앨리스라고 굳이 정정하지 않았다. 나는 할머니께서 나를 보고 있지 않고 있음을 알고 있음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아가씨는 어떻게 집에 돌아간거여?”

 

  “여왕님의 심기를 건드려서 병사들이 공격을 받다가 갑자기 잠에서 깨어나요.”

 

  앨리스의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정말 허무한 이야기다. 토끼를 따라가 이상한 나라를 여행하며 여러 사람들 혹은 여러 독특한 종족들과 만났지만 결국 모든 것은 꿈이었다는 결말은 허무함을 안겨주었다.

 

  “그 아가씨가 병사들에게 도망칠 때 원래 있던 곳으로 건너갈 다리가 있었으면 좋겠구먼.”

 

  들리지 않을 듯 자그마한 목소리로 할머니께서 힘없이 말씀하셨다. 그저 단순하게 모든 것은 꿈이었다는 결말이 할머니께서도 마음에 들지 않으신 모양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나는 앨리스의 비어있는 얼굴을 사진으로 보았던 젊은 시절의 할머니의 얼굴로 채워 넣었다.

 

  색은 나중에 칠해야지.

 

  문득 녀석이 나에게 주었던 노트가 떠올랐다. 마지막에 결국 어떻게 되더라? 탑에 갇혀있던 소년은 소녀의 손에 이끌려 여행을 한다. 넓은 세계를 경험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따뜻함을 알아간다. 그리고 마지막엔...

 

  “다 그렸누?”

 

  “색은 나중에 칠할게요.”

 

  할머니께 완성된 스케치를 보여드리자 잔잔한 미소를 지으셨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할머니의 표정이다.

 

  “아가씨 얼굴이 참으로 곱구나.”

 

  “네. 너무 곱죠?”

 

  투박하고 거친 손이 앨리스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젊은 날의 할머니의 얼굴이란 걸 알아보실까?

  비가 그쳤다. 하지만 그럼에도 창문에 맺혀있던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건성으로 툭툭 소리를 내었다. 할머니께서 일어나 베란다 문을 여셨다.

 

  “여름아, 할머니 부탁 하나 더 들어주련?”

 

  “뭔데요, 할머니?”

 

  할머니께서는 베란다로 나가 창문을 여셨다. 비구름이 빠르게 흩어졌는지 듬성듬성 햇빛이 구름사이를 뚫고 내려왔다.

 

  저 멀리 산등성에 흐릿한 무지개가 걸렸다.

 

  “아가씨가 집으로 돌아올 때, 건넜을 길을... 다리를 그려주련?”

 

  앨리스의 이야기가 분명했다. 할머니께선 역시 앨리스의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으신 모양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앨리스가 하트여왕의 트럼프 병정들에게 쫓겨 건널 길을 그려드려야지.

 

  “여름아, 아가.”

 

  할머니께서 다시금 나를 부르셨다. 여전히 조용조용한 목소리셨다.

 

  비가 그치자 매미들이 소란스럽게 떠들기 시작했다. 비가 내리는 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하려는 듯 시장의 상인들보다 더욱 좋은 목청으로 수다를 떠들어대었다.

 

  시끄러운 매미들의 수다소리 사이로 잘 들리지 않는 할머니의 말씀에 나는 유심히 할머니의 입모양을 살폈다.

 

  “무지개 좋아하누?”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8 8 2018 / 1 / 13 312 0 4224   
7 7 2017 / 11 / 25 324 0 4211   
6 6 2017 / 11 / 20 345 0 4572   
5 5 2017 / 11 / 18 323 0 4954   
4 4 2017 / 11 / 14 331 0 4105   
3 3 2017 / 11 / 12 322 0 4483   
2 2 2017 / 11 / 10 371 0 3606   
1 1. 2017 / 11 / 5 545 0 4465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저승 암행어사전
휘음
[로판] Hey, Say!!!
휘음
사천(四天)
휘음
익스트림 노잼시
휘음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