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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위치 헌터
작가 : 데르벨
작품등록일 : 2017.11.19

가족의 복수를 위해 대륙을 떠돌며 마녀를 사냥하는 남자의 이야기

 
1화 비오는 밤의 여관
작성일 : 17-11-19 19:22     조회 : 387     추천 : 0     분량 : 5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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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1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밤이었다. 여관 안은 한산했다. 손님 대신 벽에 걸린 등불의 은은한 빛과, 향긋한 스튜 향이 실내를 채웠다. 분위기에 취한 여주인은 냄비 속의 스튜를 저으며 노래를 흥얼거렸다.

 

 아이야, 눈을 감거라. 마녀들의 밤이 시작되는구나.

 잠이 들지 않는 아이는 그들의 만찬에 손님이 된단다.

 아이야, 눈을 감거라. 마녀들의 축제가 시작되는구나.

 구울과 유령과 트롤이 그곳에서 너를 기다린단다.

 네 몸은 스튜가 되고, 네 눈은 스프가 되고, 네 뼈는 장식이 될 거야.

 아이야, 마녀들이 온다. 어서 잠이 들거라. 어서 잠이 들거라.

 그들이 너를 데려가지 않도록.

 

 “인상적이군.”

 갑작스런 목소리에 깜짝 놀란 주인이 스튜를 젓던 국자를 내려놓으며 고개를 돌렸다. 문가엔 검은 망토를 머리까지 뒤집어쓴 남자가 서 있었다. 그가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망토의 모자를 벗자, 잔뜩 눌린 갈색머리가 드러났다.

 머리와 같은 색깔의 수염이 사내의 얼굴 밑을 무성히 덮은 것이 보였다. 루시아 지방에선 코와 입술 사이의 수염만 남기고 깔끔히 정돈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여인은 그가 외지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스튜를 끓이면서 그런 노래를 부르다니. 손님들의 입맛을 달아나게 할 생각이오?”

 사내는 등에 맨 배낭을 벗더니 물기를 탁탁 털며, 바를 향해 걸어왔다. 등불이 그의 얼굴 비추자, 콧잔등부터 턱까지 나있는 희미한 흉터가 보였다. 수염이 흉터 전부를 가려주진 못했다.

 하지만 그보다 인상적인 것은 망토를 벗은 사내의 모습이었다. 옆구리에는 기다란 장검이 매달려있었고, 허리춤 앞엔 여인의 팔뚝만한 단검이 꽂혀있었다. 잔뜩 해진 가죽갑옷을 입고 있었고, 벨트의 양옆 매달려 있는 작은 주머니들도 보였다. 어딜 봐도 평범한 여행자의 모습은 아니었다.

 “그냥 자장가일 뿐인 걸요. 그리고 걱정할 필요 없어요. 우리 집 스튜는 맛 좋기로 소문이 자자하니까.”

 여주인은 경계심 가득한 눈초리로 사내를 보며 말했다. 전쟁이 막 끝난 시대였다. 대륙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국가들이 말려든 그 전쟁은 무수한 탈영병과 도적들을 만들어냈다. 그 두 부류는 끔찍한 전쟁이 만들어낸 사생아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여주인에겐 그런 역사적인 비극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의 관심은 오로지 그 두 부류가 약탈하기 쉬운 대상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는 사실에만 맞춰져 있었다. 그녀의 걱정을 눈치 챈 사내가 칼을 풀어 바에 기대놓으며 말했다.

 “정직한 자들은 나를 두려워 할 필요가 없소. 나는 악한 것들을 사냥하는 사람입니다.”

 “현상금 사냥꾼이신가요?”

 사내가 고개를 저었다.

 “그들은 부차적인 목표지.”

 그러더니 여주인을 쳐다보며 말했다.

 “알버트. 오도로스의 알버트요.”

 “마틸다. 이 여관의 주인이에요.”

 “혼자 운영합니까?”

 마틸다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알버트가 여관을 둘러보며 말했다.

 “여자 혼자 운영하기엔 부담이 크지 않소?”

 “남편은 전쟁터에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았어요. 그래도 아이들과 함께 있으니 혼자는 아니에요.”

 “아이들은 어디에?”

 “늦은 밤이니, 위층 방에서 자고 있어요.”

 “손님은 나뿐이오?”

 “정말 궁금한 것도 많으시군요. 여긴 마을 주점이 아니에요. 여행객들이 지나가다 들르는 것으로 밥벌이를 하는 곳이죠.”

 “그런 식이면 생활이 곤란하지 않소?”

 “남편이 남긴 유산이 있어요. 여관은 부업이나 마찬가지에요.”

 마틸다는 그렇게 말하며 스튜를 저었다. 그녀가 고개를 돌려 알버트에게 말했다.

 “스튜 한 그릇 하실래요? 비를 맞으셨으니, 속을 따듯하게 하셔야 할 것 같은데.”

 알버트는 고개를 저으며, 그녀의 뒤쪽에서 끓고 있는 냄비에 눈짓을 보냈다.

 “배는 든든히 채웠소. 그보다 몸을 따뜻하게 하는 데는 데운 에일 한 잔이 더 나을 것 같은데.”

 마틸다는 어깨를 으쓱이며 커다란 솥에서 몸을 돌렸다. 선반에서 나무잔을 꺼낸 그녀가 냄비에서 맥주를 퍼 알버트의 앞에 내려놓았다.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운이 좋으시네요. 마침 끓이던 것이 있었어요.”

 “누군가 여기 올 예정인가 보군요.”

 “네?”

 “손님이 없는데도 음식을 준비하는 모습 때문에 물어 본거요. 날씨에 맞게 데운 술도 있고.”

 마틸다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아, 그 얘기였군요. 사실은 제 자매들이 오늘 오기로 했어요.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이니, 술과 음식이 빠질 수 없죠.”

 “이렇게 늦은 시간에 온단 말이오? 비까지 내리는데?”

 “그건 저와 제 자매들이 걱정할 문제죠.”

 마틸다가 약간 기분이 상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가 계속 질문을 하는 것이 성가시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알버트가 그것을 눈치 채고 빠르게 사과했다.

 “이런 내가 실례했소. 직업적인 습관이오.”

 “괜찮아요.”

 마틸다가 사과를 받아들이자, 그가 오른쪽에 달린 주머니에서 동전 하나를 꺼내 건넸다.

 “맥주 값을 지불해야겠군. 여기 있소.”

 “묶고 가실 건가요?”

 숙박 여부를 물어보며 동전을 받으려던 마틸다가 흠칫 놀라며 손을 뺐다.

 “왜 그러시오?”

 “은...화로군요.”

 알버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소, 무슨 문제라도? 이건 아바스 상회에서 공인한 은화요. 환전율도 나쁘지 않을 텐데?”

 “그게... 맥주 한 잔 값으로는 너무 많아서요.”

 “숙박도 할 생각이오.”

 “요즘 통 손님이 없어서 거슬러 드릴 잔돈이 없어요. 혹시 다른 돈은 없나요?”

 “이걸 어쩐다... 그럼 바이로라의 동전도 받습니까? 그쪽에서 막 넘어오는 길이라 아직 환전을 못했소.”

 “네, 차라리 그게 좋겠네요.”

 마틸다는 반색을 하며 왼손을 내밀었다. 그 순간 알버트가 바지춤에서 은으로 된 단검을 꺼내 번개 같은 속도로 그녀의 손을 내려찍었다.

 -콱!

 “꺄악!”

 여성의 날카로운 비명이 여관을 가득 채웠다.

 “무, 무슨 짓이에요!”

 “무슨 짓이냐고?”

 마틸다의 울음 섞인 목소리에 알버트가 냉소적으로 대꾸했다.

 “오히려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마녀야! 이 여관의 가족들에게 무슨 짓을 했나!”

 -치이익

 단검은 마틸다의 손을 뚫고, 바를 이루는 탁자에 깊숙이 박힌 상태였다. 그녀의 손에선 피 대신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알버트가 기대어놨던 칼집에서 검을 뽑으며 말했다.

 “내 복장을 보고 타지에서 왔다 안심했겠지. 하지만 정말 아무 소문도 퍼지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나? 그 가족의 친척과 친구들이 아무 의구심도 품지 않을 줄 알았어? 마틸다가 여관 주인 아내의 이름인 걸 내가 몰랐을 것 같아!”

 “끄으으으....”

 마녀가 고통에 가득 찬 표정으로 여관 문을 바라봤다. 그 시선을 눈치 챈 알버트가 말했다.

 “네 동생들은 이곳에 오지 않는다. 애초에 그 두 잡년이 네 위치를 말해줬지.”

 “그, 그 애들을 어떻게 한 거야!”

 “네년들 주인의 품으로 보내줬다. 화끈하게 태워서 말이야.”

 그가 말을 마치며, 검을 횡으로 세차게 휘둘렀다. 그러나 검은 아무것도 베지 못하고, 맥없이 빈 공간을 스쳤다. 마녀가 스스로 손목을 끊고, 뒤로 물러선 탓이었다.

 “독한 년이로군!”

 “이 개자식!”

 알버트의 말에 마녀는 악에 받친 고함으로 답했다. 동시에 그녀의 몸이 흐물흐물 거리며, 빠르게 변하기 시작했다.

 “키에에엑!”

 끔찍한 괴물의 모습이 된 마녀가, 그에게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이런!”

 -푸슛!

 알버트가 황급히 몸을 젖혀 공격을 피했지만, 갑옷에 가죽이 갈라지며 피가 뿜어 나왔다. 조금만 더 깊었다면, 치명적일 수도 있는 상처였다.

 마녀는 그대로 뛰어올라 여관 한 복판에 내려섰다. 알버트가 도망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것은 괜한 행동이었다. 마녀 앞에서 도망친다는 것은 그의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으니까.

 “쿠켁켁.”

 괴물로 변한 마녀가 입을 귀까지 찢으며 웃었다. 자신의 승리를 예감한 모양이었다.

 “변신 마술을 쓰다니, 동생들의 실력만 보고 방심했군.”

 마녀의 크기는 변신 전에 비해 두 배로 커진 상태였다. 손과 발은 알버트의 얼굴을 덮을 정도였고, 모두 날카로운 손, 발톱이 자라있었다.

 그가 바에 박혀있던 단검을 뽑아들자, 마녀의 왼손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알버트는 마치 주먹다짐을 하듯이 왼쪽 몸을 살짝 앞으로 내밀며 자세를 취했다.

 먼저 움직인 것은 알버트였다.

 -챙!

 빠르게 몸을 날려 내려친 검이 마녀의 단단해진 오른팔에 막혔다. 그가 의도한 대로였다. 알버트는 멈추지 않고 몸을 반 시계방향으로 회전시켜, 역수로 쥔 은 단검을 찔러 넣었다.

 “끄아악!”

 마녀가 고통의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단검은 의도했던 마녀의 목이 아닌 어깨에 박혀있었다. 마녀가 휘두른 주먹에 맞은 알버트의 몸이 벽으로 날아가 쳐 박혔다.

 -쿵!

 “크억!”

 내장이 뒤틀릴 것 같은 충격이었다. 코와 입에서 피가 조금씩 흘러나왔다. 알버트가 바로 몸을 구르자, 그 자리로 마녀의 주먹이 날아왔다.

 -쿠쾅!

 목재 벽이 뚫릴 정도의 위력이었다.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면, 내장 부위에 같은 구멍이 생겼을 터였다.

 “흐우으...흐으...”

 마녀의 상태도 좋지는 않았다. 어깨에 박힌 은 단검의 성스러운 힘이 그녀를 좀 먹고 있었다. 서둘러 단검을 뽑고 치료를 해야만 했다.

 당연히 알버트는 그런 짓을 기다려 줄 생각이 없었다. 그가 양손으로 검을 쥐며 매서운 공격을 펼쳤다. 빠르게 몇 차례의 공방이 오간 후 마침내 알버트의 검이 마녀의 복부에 꽂혔다.

 그러나 그것은 마녀가 파 놓은 함정이었다. 살을 주고 뼈를 취하는 전략.

 마녀가 강하게 휘두른 주먹 한 방에 알버트의 몸이 탁자들에 부딪히며 나가떨어졌다. 마녀는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배에 박힌 검을 뽑아 멀리 던졌다. 은 단검도 뽑으려 했으나, 건드리는 것 자체가 너무 고통스러웠다. 그것을 뽑으려면 주술적인 방법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저 밉살스런 놈을 쳐 죽이는 것이 먼저였다. 마녀가 알버트에게 다가가 그의 목을 움켜쥐고 들어올렸다.

 “컥, 컥!”

 알버트가 고통스러운 신음을 냈다. 하지만 그의 손들은 쉼 없이 주머니를 뒤지고 있었다. 그러나 마녀는 알버트의 얼굴을 보느라 그 움직임을 눈치 채지 못했다.

 “얼마나 착한 아이들이었는데... 너 같은 개자식한테 그런 꼴을 당할 아이들이 아니었어!”

 마녀가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소리쳤다. 그 순간, 분주하던 알버트의 오른손이 멈췄다.

 “죽어, 마녀사냥꾼!”

 마녀가 목을 쥔 손에 힘을 줬다. 그 순간 알버트가 손에 쥔 물건을 마녀의 왼쪽 얼굴에 쳐 박으며 외쳤다.

 “네 주인의 품으로 돌아가라, 이 마녀야!”

 “끼야아아아악!”

 마녀가 고통에 가득 찬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녀의 얼굴에서 검은 연기가 쉼 없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콜록, 콜록.”

 바닥에 떨어진 알버트가 기침을 하며 일어섰다. 성수의 위력은 강하지만 한시적이다. 틈을 줘선 안 됐다.

 쓰러진 마녀에게 달려가 어깨에 박힌 은 단검을 뽑아, 머리통을 수차례 내려찍었다. 성수가 마녀의 살을 물렁하게 만들어, 마치 삶은 양배추를 찌르는 것 같았다.

 이윽고 마녀의 움직임이 멈추자 알버트는 그녀의 머리를 몸통에서 떼어내 멀리 차버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언제 다시 움직일지 모른다. 마녀는 그런 족속이니까.

 그 조치를 취하자 그제야 마녀의 몸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헉, 헉.”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고, 오장육부는 모두 뒤틀린 것처럼 아팠다. 온 몸에 근육도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알버트는 주머니에서 개쑥갓 가루를 찾아서 조금 먹은 다음 상처에 뿌렸다.

 다음엔 망토를 가져와 몸에 걸쳤다. 생존자를 찾아보려 했지만, 스튜 속에서 아이 손가락을 발견하고 그만 뒀다. 여관주인과 그의 아내도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게 분명했다.

 알버트는 여관에 불을 지른 뒤, 길을 나섰다. 그러나 전투의 흥분이 가시자, 상처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그를 쑤셔댔다. 결국 몇 걸음 걷지 못하고, 알버트는 시야가 흐려지는 것을 느끼며 그대로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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