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로맨스
고마워 미안해 사랑해
작가 : 지평선
작품등록일 : 2017.10.31

30일 뒤에 지구가 운석에 충돌해 멸망한다.
지구의 멸망을 막으려는 영웅들의 이야기도 아니고,
멸망하는 지구를 분석하는 공상과학물도 아니다.

삶이 30일 남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그 사람들의 버킷리스트.

 
D-28, 나비의 날개짓
작성일 : 17-11-19 14:06     조회 : 257     추천 : 0     분량 : 5134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비밀이 있다.

 그러니까,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그 비밀을 지키기 위해 거짓말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와, 노을아. 너 지갑 완전 예쁘다."

 

 "여기 브랜드꺼 다 예쁘잖아. 나도 용돈모아서 지갑이나 바꿀까? 지금 쓰는 건 너무 촌스러워."

 

 

 연우와 현채는 서로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같은 학과에 진학해서 이미 유명했다.

 서로 고등학교 때는 데면데면한 사이였는데 오히려 대학에서 더 가까워졌다고 했다.

 둘은 전혀 다른 듯 하면서도 붙어다니면 풍기는 분위기가 비슷했다. 같이 다니다보니 닮아진 것 같기도 하고.

 

 나는 연우와 현채가 편하고 좋았다.

 사람을 만나면 첫인상만으로 묘하게 끌리는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연우와 현채가 그랬다. 알게 된 지 얼마 안 됐지만 뭐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조금은 나를 내려놓아도 될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친구들이었다.

 

 

 "노을이 너 생각보다 집이 잘 사는구나?"

 

 얼굴만 몇 번 본 이름도 모르는 동기가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과방에 있던 다른 동기들이 가볍게 웃었다.

 '뭐야-', '집 잘 사는구나래', '무슨 시어머니들이 하는 멘트 같아', '근데 그렇게 비싼 브랜드는 아니지 않나?'

 한 마디의 농담에 웅성웅성 서로 다른 말들이 번졌다. 한 마디 한 마디가 귀에, 아니 가슴에 꽂히는 듯 했다.

 

 "노을이네 집 부모님은 뭐 하시는데?"

 

 옆에서 잠자코 핸드폰만 만지작 거리던 소희가 왼쪽 눈썹을 씰룩거리며 내게 물었다.

 갑작스러운 주목과 집중에 당황해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어, 우리 부모님.."

 

 "뭐 그런 걸 물어 봐?"

 

 현채가 조금 불쾌하다는 듯 쏘았다.

 

 

 "내가 뭘?"

 

 "그런 개인적인 사정, 이런 공개적인 곳에서 말하기 싫을 수도 있잖아."

 

 현채의 말이 옳았다.

 하지만 나는 현채의 말이 옳소,하고 이야기 하지 못했다.

 그저 홍당무가 된 내 얼굴이 부끄러워 고개만 떨구고 있었다.

 

 

 "내가 가난한 애 창피주려고 물어본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무안을 줘? 난 노을이 부러워서 물어보는 거야."

 

 "맞아, 일부러 무시하려고 그런 것도 아니고 진짜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솔직히 노을이가 작고 귀여운 이미지인데도 은근 좀 귀티나는 구석이 있잖아. 그래서 나도 노을이 볼 때마다 궁금했거든. 도대체 어떤 집안 자제분이신지!"

 

 맨 처음 농담을 던졌던 이름 모를 동기가 소희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아이들은 뭐가 재밌는지 또 자기들끼리 낄낄 거렸다.

 

 

 "진짜, 노을이 부모님은 뭐하셔? 내가 듣기론 우리과 신입생 중에 아버지가 은행 지점장인 분도 있다던데. 혹시 그 애가 노을이 아니야?"

 

 "나 아냐."

 

 또 다른 이름 모를 동기가 어처구니 없는 질문을 했다.

 나는 얼른 부인했다.

 

 "그럼? 그럼 뭐 하시는데?"

 

 "보험.."

 

 "보험?"

 

 "어.."

 

 나의 시원찮은 대답에 과방에 있던 동기들이 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보험회사 다니셔?"

 

 "아니, 그런 게 아니고.."

 

 "헐, 그럼 보험회사 CEO?"

 

 "저기..아니."

 

 내가 손사레를 칠수록 아이들의 표정은 상기되어갔다.

 나는 난감한 표정으로 '아니,아니'하며 애 꿎은 머리카락만 닳도록 넘겼다.

 

 난 이렇게 불편하지만 저 애들에겐 그냥 심심풀이 장난 정도의 일이겠지.

 장난삼아 나를 놀리려하는 의도 반, 그리고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마음 반인 것 같았다.

 

 

 "아, 맞다! 장노을, 너 아까 사범대 복사실에 내 책 제본 맡긴 건 어떻게 됐어?"

 

 "응? 그 논비 교재? 그거... 이제 가서 찾아오기만 하면 될 걸..?"

 

 "그걸 아직도 안 찾아왔어? 그거 빨리 안 찾아오면 같은 수업 듣는 사람들이 막 가져간단 말야."

 

 "아, 미안해. 얼른 가서 찾아올게."

 

 

 나는 연우의 도움으로 얼른 과방에서 자리를 떴다.

 자리를 뜨면서도 등 뒤로 떠드는 동기들의 수근거리는 속삭임에는 저절로 귀가 쫑긋거렸다.

 

 보험회사 CEO? 은행 지점장? 벤처기업 대표?

 동기들의 질문에 맞다고도, 아니라고도 할 수가 없었다.

 아니니까 맞다고 할 수 없었고, 아니라고 하면 사실대로 말해야 하니까 그렇게도 할 수 없었다.

 

 눈이 두 개인 사람들이 모여사는 마을에 눈이 하나만 달린 사람이 나타나면 그 사람은 '이상한' 사람이 된다.

 평범한 부모 밑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모여사는 마을에 평범하지 못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사람이 나타나면 그 사람도 '이상한' 사람이 된다.

 

 

 왜 그렇게 말하냐고?

 수 년 동안 그런 시선 속에서 살아왔으니까.

 

 '쟤는 어쩌다 부모가 둘 다 요절했대?'

 '아이고, 저 애 부모 죽은 거 아니야. 부부가 이혼하고 애를 할머니한테 맡긴 거래. 못 들었어? 애 아버지가 사업한답시고 사람들한테 투자금 받아 먹고 뒷통수를 쳤다잖아.'

 '뭐? 그래서 이혼한거야?'

 '그건 아니고, 여자도 알고 있었더라고. 사기치고 부부가 야반도주 하려다가 붙잡혔대. 투자자들이 돈 내놓으라고 난리를 쳤는데, 결국 그 돈을 전부 어디로 빼돌렸는지 절대로 말을 안 했다는 거야. 둘 다 징역 살고 나와서 갈라섰대.'

 '어머, 그럼 그 빼돌렸다는 돈은 전부 어디로 간 거야?'

 '그거야 모르지. 애만 불쌍하게 됐어. 할머니도 일찍 죽어버렸잖아.'

 '불쌍하긴 한데.. 어릴 때부터 그런 일을 많이 겪어서 그런가, 애가 불쌍하기도 하면서 어디가 좀 어둡고 칙칙하더라고. 애답지 않게 말 수도 적고.'

 

 '얘기 들었어? 장노을 쟤 부모님 안 계신대.'

 '어우 야, 부모님 안 계실수도 있지. 난 그런 걸로 뒷담하는 거 좀 별로야.'

 '완전 웃긴다 너. 나도 그런 거 싫거든? 근데 쟤는 부모님이 그냥 안 계시는 게 아니래.'

 '그럼?'

 '범죄자래.'

 '뭐? 범죄자? 무슨 범죄자?'

 '사기 전과가 4개인가 5개가 있었대. 완전 부부사기단이었대.'

 '진짜로? 대박.'

 '진짜 그렇게 안 보이지 않냐? 얌전하게 생겨가지고.'

 

 

 

 보험...

 보험금이야.

 이거 우리 할머니 사망보험금으로 산 지갑이야.

 

 라고, 차마 이렇게는 말 할 수가 없었어.

 

 

 나쁜 의도로 한 거짓말은 아니었어.

 아니, 따지고 보면 난 거짓말 한 적도 없어.

 너네가 전부 아무렇게나 떠든 말이었고, 난 계속 아니라고했어.

 나는 아니라고 했는데, 너네가 계속...

 

 

 

 

 

 

 

 

 

 몇 일 남았지?

 하나, 둘, 셋, 넷 … 스물 여덟.

 

 이제 한 달도 채 안 남았구나.

 그 동안 하고 싶었던 게임도 실컷 했고, 먹고 싶었던 음식들도 실컷 먹었어.

 이 불어난 팔뚝 살이 지난 8개월 간의 인생을 증명해주고 있지.

 아마 죽기 전에 게임을 못 해서, 아니면 못 먹은 음식이 생각나서 후회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야.

 

 오늘 아침 뉴스도 봤다. 그 운석인지 뭔지가 육안으로도 확인 가능할만큼 빠른 속도로 지구로 날아오고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내가 그런 뉴스를 봐도 전혀 놀라워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분명 살 수 있는 날이 28일 남았는데 마치 28년은 더 남은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왜 이렇게 안이하고 나태할까,하는 생각으로 밤잠 설쳐가며 곰곰히 생각을 해 봤다.

 그건 아마도 '나 혼자가 아니다.'라는 점 때문인 것 같다.

 

 만약 나 혼자 28일 남았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면?

 다들 어떻게든 살 희망이 있는데, 나만 그 희망을 뺏겨버렸다면?

 남들의 시간은 다 똑바로 흘러가는 데 내 시간만 중간에 뚝 끊겨버렸다면?

 

 평생을 주위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눈치보면서, 그렇게 살았는데.

 결국 마지막까지도 '남들도 죽으니까 별로 억울하진 않네.' 이딴 마인드로 정신승리나 하다니.

 

 

 

 노트북을 켠다.

 SNS에 접속한다.

 너의 이름을 클릭한다.

 

 인워드엔젤 라이브 영상을 공유한 것이 여전히 마지막 게시물이구나.

 

 

 

 '같이 가고 싶어, 너랑.'

 

 

 

 네가 갑자기 예상하지도 못한 말을 꺼냈잖아.

 난 무슨 대답을 해야할 지 몰라서 생각해 본다고 했어.

 솔직히 말하면 조금 화도 났어. 너무 아무렇지도 않은 네가 짜증나기도 했어.

 나한테 화를 내던가, 욕을 하던가. 네가 조금은 망가져도 되는 순간이었잖아. 내가 네 짜증 받아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잖아.

 

 근데 너는 항상 그러더라.

 화내야하는 순간에는 조용히 있다가, 늘 이상한 타이밍에서 발끈했잖아.

 

 그 날도 그래.

 넌 나를 만나자마자 바로 화를 내는 게 상식적으로 맞잖아.

 근데 처음 만났을 때 넌 아무렇지도 않았어. 아니, 지금 생각해보니 조금 기분 좋아보였던 것 같아.

 내가 네 제안을 거절하다시피 그냥 가 버리고, 메세지 보낸 이유 얼버무리니까 그때서야 솔직하지 못하다며 화를 냈어.

 

 

 

 '하태양.' 전송

 

 

 이상한 놈이야, 너.

 나보다 더 이상해.

 

 

 그러니까

 읽어.

 읽어라.

 읽어야 해.

 제발!

 

 

 

 '왜?'

 

 

 아.

 

 이렇게 답장 오니까 알겠어.

 난 네가 답장해줄 거란 걸 그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아.

 

 

 '콘서트 예매했어?' 전송

 

 

 

 '아니. 안 간다며.'

 

 '내가 언제 그랬어? 생각해 본다고 했잖아.'

 

 '그래서 갈 거야?'

 

 '만나서 얘기할래?'

 

 

 

 답장해줘.

 빨리.

 어서.

 제발!

 

 

 

 '알겠어.'

 

 

 

 이 대답이 나오기 전까진 이 대답만을 간절히 바랬지만,

 대답을 듣자마자 또 깨달았어. 이것도 나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아.

 

 

 

 Bucket list.

 다시 펴본다.

 

 -D-n. 하태양에게 고마웠다는 말 전하기.

 -D-n. 하태양에게 미안했다는 말 전하기.

 -D-n. 하태양에게 사랑한다는..

 

 아, 방금 머리 속으로 상상했는데 이거 진짜 아니야.

 

 

 -D-n. 하태양에게 사랑했었다는..

 

 찌질함의 절정이다.

 

 

 -D-n. 하태양에게 좋아했었다는..

 

 갈수록 태산이네.

 

 

 -D-n. 하태양에게 진심 전하기.

 

 가장 두리뭉술하고, 가장 보기가 좋으며, 가장 나의 마음이 편안하구나.

 진심이라는 단어에 이런 효용이 있었을 줄이야.

 

 

 까톡-

 

 '집엔 잘 들어갔느냐?' 09:54 손연우

 

 연우도 참, 내가 임혜성을 만나러 갔을 거라고 생각했다니.

 뭐,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전혀 이상한 건 아니지만.

 아니지. 오히려 하태양을 만났다는 게 훨씬 이상한 걸지도 모르지.

 

 '잘 들어갔다.ㅋㅋ' 전송

 

 '장노을 벌써 집에 들여보내면 어떡해? 또 사고칠 듯.' 09:56 성현채

 

 '그 날 딱 한 번 그런 거 가지고.. 원래 사고뭉치는 성현채 너잖아.' 전송

 

 '하긴. 사고치면 어때? 몇 일이나 더 산다고.' 09:57 성현채

 

 

 저 말이 뭐라고 이렇게 가슴이 뜨끔하냐.

 

 

 '야, 성현채. 그게 문제가 아니야. 노을이 봉사활동 왔다가 그 남자 만났다!ㅋㅋㅋㅋ' 10:00 손연우

 

 '그 남자?!?!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 남자?!?!?!' 10:00 성현채

 

 '그래 그 남자!' 10:01 손연우

 

 '그래서 어떻게 됐어??' 10:01 성현채

 

 '둘이 아주 진지하게 깊은 대화를 오래 나누더군요. 현기증납니다. 빨리 대답해주시죠, 장노을 양! 그 남자가 뭐라고 하던가요?' 10:01 손연우

 

 '두구두구두구두구!' 10:02 성현채

 

 

 

 

 '잘 해결됐어ㅋㅋ' 전송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비밀이 있다.

 그러니까,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그 비밀을 지키기 위해 거짓말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소한 나비의 날개짓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역풍을 일으키기도 한다.

 
작가의 말
 

 날씨 추운데 감기 조심하시고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15 D-22, 과엠티(1) 2017 / 12 / 15 257 0 4796   
14 D-23, 데이 2017 / 12 / 11 265 0 4904   
13 D-24, 물과 기름 2017 / 12 / 7 244 0 4850   
12 D-25, 가을 서리 2017 / 12 / 4 256 0 4792   
11 D-25, 붕괴 2017 / 12 / 1 254 0 4856   
10 D-26, 사랑은 공통 분모 2017 / 11 / 28 276 0 4735   
9 D-26, 호불호는 종이 한 장 차이 2017 / 11 / 25 269 0 4764   
8 D-27, 떡볶이 먹으러 갈래? 2017 / 11 / 22 240 0 4748   
7 D-28, 나비의 날개짓 2017 / 11 / 19 258 0 5134   
6 D-29, 고백 2017 / 11 / 16 259 0 5086   
5 D-29, 뜻밖에도(2) 2017 / 11 / 13 265 0 4798   
4 D-29, 뜻밖에도(1) 2017 / 11 / 10 256 0 5172   
3 D-30, 바보와 멍청이 2017 / 11 / 7 281 0 5181   
2 D-30, 너에게 연락하기 2017 / 11 / 4 256 0 5328   
1 D-31, 정리 2017 / 10 / 31 438 0 5143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