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반목(反目) - ④

　지혜는 눈을 감자마자 목구멍에서부터 숨이 턱 막혀왔다. 숨이 쉬어지지가 않았다. 그런데 문득 목에서 응당 느껴져야 할 고통이 느껴지지 않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피가 흐르는 느낌도 없었다. 지레 놀라 스스로 호흡을 멈춘 것일 뿐 아직 칼에 찔리진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방금 전까지 지혜의 목을 단단히 옥죄고 있던 민철의 팔 힘도 어쩐지 느슨해진 느낌이었다.

　지혜는 이상한 기분에 슬그머니 눈을 뜨다 순간 흠칫 놀라고 말았다. 언제 나타났는지 꽃님이 열 발자국도 안 되는 거리에서 민철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지혜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민철의 팔을 뿌리치며 지인이 있는 곳으로 도망쳐 나왔다. 지인은 그제야 안도하며 지혜를 품에 안았다.

　“지혜야!”

　“언니!”

　지인은 말을 잇지 못한 채 눈물만 글썽이며 지혜의 얼굴을 연신 어루만졌다.

　그러다 문득 꽃님이 자신이 아닌 민철을 심상치 않은 눈빛으로 보고 있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민철은 지금껏 꽃님이 마치 자기편인 것처럼 이야기했던 것과는 달리 잔뜩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그러더니 끝내는 들고 있던 단도마저 내동댕이친 채 비명을 지르며 본회의장 밖으로 달아나버렸다.

　“으아악!”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런데 그때 그 광경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던 지인이 불쑥 꽃님에게로 다가갔다. 지혜는 깜짝 놀라 지인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언니?”

　하지만 지인은 마치 뭐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지혜의 손을 뿌리치며 꽃님에게 가까이 갔다. 그리고 달래듯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얘.”

　꽃님이 스르륵 돌아섰다. 꽃님과 눈이 마주친 지인은 저도 모르게 어깨가 움찔했다. 하지만 곧 다시 용기를 내 꽃님을 살살 구슬렸다.

　“자꾸 사람들을 놀래고 괴롭히면 안 돼. 원하는 게 있으면 말을 하렴. 언니가 도와줄게. 응?”

　꽃님은 지인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왠지 모르게 지인이 꽃님을 진짜 설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순간 본회의장이 기대감으로 가득 찼다.

　그러나 그 희망은 곧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사람들은 갑자기 나타난 뭔가를 보고 기겁하며 술렁였다. 마찬가지로 그것을 본 지혜가 다급하게 지인을 불렀다.

　“언니!”

　그제야 비로소 등 뒤에서 오싹한 기운을 느낀 지인은 뒤를 돌아봤다. 그러나 지인이 고개를 미처 다 돌리기도 전에, 등 뒤에 있던 존재는 지인을 뒤에서 확 부둥켜안았다. 지인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비명을 질렀다.

　“꺅!”

　지인을 양팔로 결박한 것은 조금 전 로텐더 홀에서 전경대 경감을 데리고 사라졌었던 바로 그 궁녀 유령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다른 곳에서도 여자의 비명이 들렸다.

　“꺅!”

　또 다른 비명의 주인공은 바로 승희였다. 승희도 지인처럼 어느 새 나타난 궁녀 유령에게 단단히 결박당한 채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승희와 지인은 곧이어 그 자세 그대로 빙판 위에서 미끄러지듯 꽃님 쪽으로 끌려갔다. 그러고는 꽃님과 삼각형을 이루며 그 앞에 나란히 세워졌다. 그 광경을 넋 놓고 보고 있던 동원과 학현, 그리고 지혜는 그제야 정신을 번쩍 차리며 허겁지겁 두 사람을 구하려 달려들었다. 지혜는 유령의 팔을 움켜잡으며 소리쳤다.

　“이거 놔! ……?”

　하지만 지혜의 손은 유령의 몸을 관통하여 허공만 갈랐다. 당황한 지혜는 이번엔 지인의 팔을 붙잡고 잡아 당겼다. 그러나 아무리 기를 써도 지인은 마치 대들보에 묶여 있는 것처럼 꿈쩍하질 않았다.

　동원과 학현도 마찬가지였다. 둘은 승희의 팔을 한쪽 씩 붙잡고 죽을힘을 다해 잡아당겼다. 승희와 지인 사이에 있던 동원은 지인의 팔도 함께 잡아끌었다. 하지만 승희 또한 지인처럼 꿈쩍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조바심이 난 동원은 결국 지인을 잡아끌던 손을 놓아버리고 승희에게만 매달리기 시작했다. 지혜는 발끈했다.

　“야! 강동원!”

　그러나 동원은 못들은 척 외면해버렸다. 지인이 승호가 있는 곳을 끝까지 불지 않아준 은인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승희를 잃을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한편 지인은 계속 이러다 지혜마저 휘말려버리는 건 아닌지 덜컥 겁이 났다. 그래서 작심하고 몸부림을 쳐 지혜의 손을 뿌리쳐냈다. 지혜는 그런 지인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언니……?”

　지인은 울먹이며 지혜에게 소리쳤다.

　“지혜야! 넌 꼭 살아!”

　투명한 눈물이 지인의 눈언저리에 고였다가 주르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 순간 궁녀 유령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등 뒤에 난 다른 차원의 틈으로 빨려 들어가듯 지인을 데리고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언니 안 돼! 언니! 언니! …… 언……니…….”

　지혜는 지인이 사라진 쪽을 넋 놓고 바라보다 결국 다리에 힘을 잃으며 털썩 주저앉았다.

　잠시 후 지인이 정신을 차렸을 땐, 그녀의 몸은 본회의장 천장 부근에 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닫기가 무섭게 곧바로 바닥을 향해 거꾸로 곤두박질을 치기 시작했다. 지인은 미처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팔다리를 마구 허우적댔다. 바닥이 무서운 속도로 다가왔다. 순간 저 밑에서 주저앉아 울고 있는 지혜가 눈에 들어왔다. 지인은 지혜에게 팔을 뻗었다. 그러나 다급한 마음에 입 밖으로 나온 건 단말마의 비명뿐이었다.

　“꺄악!”

　지혜와 지인의 눈이 서로 마주쳤다.

　쿵!

　바닥에 거꾸로 처박힌 지인은 곧바로 머리가 깨지면서 목도 같이 부러졌다. 그리고 그 상태로 바닥에 털썩 너부러지며 팔다리가 말라죽은 고목처럼 꺾여 덜렁거렸다. 지혜는 기겁하여 허우적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렇게 사랑하던 언니였는데, 자신의 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언니였는데, 지금 지인의 모습은 그런 지혜가 순간적으로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만큼 흉측한 몰골이었다.

　충격에 휩싸인 지혜는 순간순간 경기까지 일으키며 지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휘둥그레진 두 눈에선 마치 날카로운 칼에 움푹 베인 뺨에서 피가 배어나오듯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한편 지인이 순식간에 떨어져 죽는 걸 목격한 동원은 대번에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승희라고 똑같이 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이에 무작정 꽃님 앞으로 달려가 무릎을 꿇고 애원했다.

　“꽃님아! 이렇게 빌게. 승희 좀 살려줘! 응? 제발 …….”

　그러나 꽃님은 그저 한결같은 표정으로 동원을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동원의 애원도 별 소용이 없는 건가 싶던 순간 꽃님이 돌연 동원에게 스르륵 다가섰다. 그러고는 놀란 동원이 뭘 어떻게 해볼 새도 없이 불쑥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앞으로 내밀었다. 그건 다름 아닌 동원이 꽃님을 처음 만났을 때 줬던, 그리고 아까 본청 밖에서 꽃님이 꺼내 보였었던 그 무지개떡이었다. 동원은 꽃님이 왜 자꾸 무지개떡을 내미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답답했다. 한편으론 자기를 궁지로 몰아넣고 나서 떡을 내미는 걸 반복하는 꽃님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때 뒤쪽에 있던 승희가 동원을 야단스럽게 불렀다.

　“오빠!”

　동원은 가슴이 철렁했다. 기어코 승희한테도 일이 생긴 건가 싶어 당혹스러워하며 황급히 뒤를 돌아봤다. 그러나 이내 얼굴이 환해졌다. 승희가 유령에게서 풀려나 있었다. 승희를 결박하고 있던 유령이 어느 새 저 뒤로 물러나 있었다. 동원은 반색하며 벌떡 일어났다.

　“승희야!”

　그런데 승희에게 가기 위해 돌아서다 그만 실수로 꽃님이 내밀고 있던 무지개떡을 손으로 탁 쳐내버리고 말았다. 동원은 흠칫 놀라 승희에게 달려가려다 말고 뒤를 돌아봤다. 꽃님의 손에서 떨어진 무지개떡은 저만치에서 데구루루 굴러가고 있었다. 가슴이 철렁한 동원은 곧바로 꽃님의 안색을 살폈다. 꽃님은 깜짝 놀란 듯 두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바닥에서 구르고 있는 무지개떡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무지개떡이 멈춰 섰다. 꽃님의 시선이 다시 동원에게로 향했다. 동원은 저도 모르게 어깨가 움찔했다. 그리고 그 상태로 꽃님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다 결국엔 도망치듯 승희에게로 가버렸다. 그러고는 승희의 얼굴과 몸 이곳저곳을 손으로 짚어가며 어디 잘못된 곳은 없는지 살폈다.

　“승희야, 괜찮아? 어디 다친 덴 없어?”

　“응, 괜찮아.”

　동원은 그제야 가슴을 쓸어내리며 승희를 꼭 끌어안았다. 그런데 갑자기 승희가 이상할 정도로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동원은 불길한 예감에 얼른 승희의 얼굴을 살폈다. 승희가 뭘 봤는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설마 설마 하며 승희의 시선이 향한 곳을 돌아보던 동원은 그만 기겁하며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꽃님이 험악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동원을 노려보고 있었다. 급기야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이 주체가 안 되는 듯 입에서 섬뜩한 신음 소리까지 내며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으으으으…….”

　그와 때를 같이하여 본회의장 안의 모든 집기와 가구들이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요란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돌연 돌풍까지 꽃님을 휘감고 일어나 순식간에 본회의장 전체를 휩쓸어버렸다. 사람들은 갑자기 일변한 주변 상황에 당황스러워하며 자세를 바짝 낮췄다.

　꽃님의 얼굴과 몸은 점점 더 험악하게 일그러지고 또 마구 뒤틀려져 갔다. 시뻘겋게 충혈 돼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같이 커지는 눈, 산발이 되어 사방으로 가닥가닥 뻗쳐 올라가는 머리, 메마른 고목나무 껍질처럼 딱딱하게 굳으며 쩍쩍 갈라져가는 피부. 그렇게 변한 상태에서 동원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꽃님의 모습은 다름 아닌 흉측한 악령 그 자체였다.

　사람들은 지금껏 단 한 번도 본적이 없는 그 소름끼치는 광경에 완전히 압도된 나머지, 누구 하나 도망칠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입만 뻐끔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꽃님은 돌연 턱을 앞으로 쭉 내미는가 싶더니 동원을 향해 단숨에 화살처럼 날아들었다. 동원은 순간 흠칫 했다. 하지만 너무나도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그 이상 뭘 어떻게 해볼 겨를이 없었다. 반면 그 직전에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학현은 승희의 손을 잡아끌고 멀찍이 도망쳐버렸다. 학현에게 끌려가다 꽃님이 날아드는 걸 목격한 승희는 동원을 향해 다급하게 소리쳤다.

　“오빠!”

　그러나 이미 꽃님에게 온신경을 빼앗겨버린 동원은 미처 그 쪽을 돌아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어느 새 동원의 바로 코앞까지 날아든 꽃님은 그 자세 그대로 둥둥 떠서 동원에게 얼굴을 들이민 채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꽃님의 옷자락이 바람에 나부끼듯 하늘거렸다. 유령인 꽃님이 숨을 쉴 리는 없었지만, 동원은 마치 꽃님의 싸늘한 콧김이 얼굴에 와서 닿는 듯 했다. 그러다 결국 더는 버텨내지 못하고 뒤로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러자 꽃님도 따라서 이동하며 끝까지 동원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꽃님의 그런 집요함에 동원은 저도 모르게 마른 침이 꿀꺽 삼켜졌다.

　그때 문득 자신이 실수로 쳐냈던 무지개떡 쪽으로 눈길이 갔다. 동원은 그 즉시 네발로 기다시피 하여 그 쪽으로 허겁지겁 달려갔다. 그리고 그것을 주워 꽃님 앞에다 도로 내밀며 말했다.

　“호, 혹시 내가 이걸 떨어트려서 그런 거야? 미안해. 일부러 그런 건 아냐. 실수한 거였어. 그러니 한번만 용서해줘, 응?”

　그러면서 꽃님의 눈치를 살피는 동원의 모습은 언뜻 불쌍하다 못해 비굴해 보이기까지 할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