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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마법사 죽이기
작가 : 나드리
작품등록일 : 2016.8.30

마법사를 죽이러 다니는 마법사 이야기.

 
기적-1
작성일 : 16-08-31 00:38     조회 : 376     추천 : 6     분량 : 5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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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엘은 수건을 적셔 엘라의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엘라의 몸을 뒤집자 이불 밖으로 흰 살결이 드러났다. 이엘은 이불을 당겨 덮어주곤 늦은 저녁을 먹었다. 식사는 식은 죽 한 그릇이 전부였다. 엘라를 먼저 먹이고 보살핀 탓이었다. 벌써 삼 년이나 됐기에 익숙한 생활이었지만 그럼에도 어깨를 짓누르는 묵직함은 떨칠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이엘은 바지춤에 감춰 둔 비밀을 매만졌다. 그러면 기분이 나아졌다. 그건 최후의 보루였지만 마음을 기댈 마지막 기둥이기도 했다.

 

  이엘은 금세 그릇을 비웠다. 허기는 여전했다. 그는 배를 달래기 위해 나무껍질을 씹으며 바닥에 모포를 깔았다. 모포 두 장과 짚으로 만든 베개가 침구의 전부였다. 이엘은 누우며 생각했다. 내일은 소개소에서 일거리를 찾을 수 있어야 하는데. 저번 주에 받은 일당이 얼마나 남았더라. 찾아볼 필요는 없었다. 얼마가 남아 있든 어차피 바닥이었다. 내일은 꼭 일을 구할 거야. 이엘은 다짐하며 잠들었다. 입안에는 나무껍질이 남아 있었다.

 

  “일 없어.” 소개소장이 쌀쌀맞게 말했다.

  “부탁이에요. 한 번만 다시 확인해주세요.” 이엘이 사정했지만 소장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인마, 몰라서 그래? 진짜 일이 없는 걸 어쩌라는 거냐.”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요. 부탁드려요.”

  “거 참.”

 

  소장은 귀찮다는 듯 의뢰서철을 꺼냈다.

 

  “자 봐라. 원래 이런 거 보여주면 안 되는데 하도 생떼를 써서 그러는 거야. 네 눈으로 직접 보고 내 고충 좀 헤아려 봐라.”

  “감사합니다!”

 

  이엘은 의뢰서철를 허겁지겁 펼쳐 들었다. 도시 곳곳에서 들어 온 의뢰가 빽빽이 적혀있었다. 이엘은 최근 의뢰를 찾기 위해 빠르게 장을 넘겼다. 장을 넘기는 이엘의 손이 점점 느려졌고 마침내 마지막 의뢰가 나타났다. 이엘은 그 부근의 내용을 열심히 훑었다. 확실히 이전 장들과는 달랐다. 간격이 먼 날짜들이 코앞까지 붙어있었다. 그중 여러 개는 이미 이엘이 착수한 바 있던 일이었다. 자신이 했던 작업을 빼자 남은 의뢰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의뢰들의 주인은 이미 다른 사람들이었다. 이엘의 모습을 본 소장이 말했다.

 

  “포기해. 대부분의 사람은 수도로 떠났어. 아무리 고향이 좋다지만 목숨은 아까운 거니까. 나도 고민이라고. 계속 남아 있어야 할지.”

  “조금만 더 볼게요!” 이엘이 다급하게 외쳤다. 하지만 소장은 듣지 않았다. 그가 이엘의 손에서 서철을 빼내며 말했다.

  “이미 난 해줄 만큼 해줬다. 막말로 이 마을은 죽었어. 사람도, 여유도 없지. 너도 마찬가지 아니냐. 차라리 너도 수도로 가는 게 어때?”

  “그럴 순 없어요. 아시잖아요.” 이엘이 고개를 푹 수그렸다. 소장이 딱하다는 듯 혀를 찼다.

  “네 누나 말이군. 어쩔 수 없지. 아무리 그래도 없는 걸 만들어 줄 순 없어. 대신 약속하마. 일이 들어오면 네 몫을 남겨두지.”

 

  이엘이 힘없이 웃으며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이엘은 그 말을 하며 속에 심장이 타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이엘의 심장이었던 불덩이는 천천히 내려앉아 마주치는 모든 걸 빨갛게 달구고 검게 태웠다. 그리고 마침내, 불덩이는 이엘의 바지춤 안에 숨겨진 비밀과 마주쳤다. 그 순간, 이엘은 속이 차갑게 식었음을 느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바지춤 안으로 손을 넣어 비밀을 쥐고 있었다. 자신의 행동에 놀란 이엘은 서둘러 바지에서 손을 뺐다. 안 돼. 아직은 아니야. 이엘은 이를 꽉 물었다. 오늘만 참아 보자. 내일은 분명 일이 들어올 거야. 그는 떨어지지 않는 발을 억지로 옮겼다.

 

  그때였다. 커다란 가방을 든 남자가 소개소 문을 열었다. 그는 절뚝이는 발걸음으로 소장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말했다.

 

  “사람 좀 구하려는데…….”

 

  이엘이 외쳤다.

 

  “저요! 제가 할게요!”

 

  남자가 이엘을 바라봤다.

 

  ***

 

  소장은 얼굴을 찌푸렸다.

 

  “이엘. 그냥 취소해라. 아무래도 감이 좋지 않아.”

 

  소장의 걱정스러운 말투에 이엘은 가슴을 부풀렸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나이는 어려도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이라고요.”

  “뭐? 하긴…… 틀린 말은 아니다만. 그래도 내 말을 듣는 게 좋을 거다.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진 아는 거냐?”

 

  이엘은 고개를 저었다. 시내에서는 본 적 없는 사내였다. 고개를 숙인 소장이 이엘에게 속삭였다.

 

  “사람을 판다더라.”

  “에이 설마요.” 소름이 돋았지만, 이엘은 애써 무시했다.

  “물론 소문일 뿐이지만…… 그래도 모르는 거야.”

 

  그때, 의뢰인이 이엘을 불렀다.

 

  “가자.”

 

  소장은 이엘을 잡기 위해 손을 뻗었지만 닿지 않았다. 이엘은 소장에게 인사하며 떠났다. 이엘이 떠난 자리를 보며 소장이 말했다.

 

  “저놈, 조사해 봐.”

 

  의뢰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

 

  가방을 맡아 든 이엘이 빠른 걸음으로 남자를 쫓았다. 남자는 다리를 저는데도 걷는 속도가 대단했다.

 

  “좀 천천히 가요.” 이엘이 헐떡거리며 말했다. 땅이 젖어있는 숲에서는 움직이는 게 쉽지 않았다.

  “시간이 없어. 최대한 빨리 가야 늦지 않아.”

 

  이엘은 자신이 잘못된 선택을 한 건 아닌지 후회하기 시작했다. 남자는 이엘이 도와야 할 일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다. 그는 이엘이 자기 일을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했다. 보수에 대한 확신만 없었다면 이엘은 그를 따르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남자는 이엘의 눈앞에 직접 돈을 꺼내 보여줬다. 이엘은 그걸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자신과 일의 정체를 밝히지 않는 남자와 단둘이 있는 것은 오싹한 일이었다. 이엘은 여차하면 달아날 생각으로 남자와 거리를 벌렸다.

 

  “잠깐.” 남자가 별안간 멈춰 섰다. 이엘마저 멈추자 주변이 고요해졌다. 남자가 손가락을 까닥여 이엘을 불렀다. 이엘은 긴장하며 남자에게 다가갔다. 남자가 말했다.

 

  “소리 내지 말고. 저기 봐.”

 

  이엘은 숨을 죽인 채 남자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봤다. 멀리 떨어진 바위가 보였다. 그리고 그 앞에는 생전 처음 보는 동물이 있었다.

 

  “보여?”

  “네, 보여요.” 이엘이 마른 침을 삼키며 대답했다. “저렇게 커다란 뿔은 처음 봐요.”

  “용뿔 사슴이라는 거야. 말 그대로 용의 뿔을 가졌지.” 남자가 씩 웃었다.

 

  놀란 이엘이 외쳤다.

 

  “용의 뿔이라고요?”

  “쉿!” 남자가 급하게 이엘의 입을 막았다. “닮아서 그런 거지, 진짜 용의 뿔은 아니야. 하지만 저 사슴도 희귀한 동물인 건 사실이지.”

 

  이엘은 용뿔 사슴을 멍하니 쳐다봤다. 그는 이와 비슷한 동물을 본 일이 없었다. 이엘에게 있어서 동물은 자신을 위협하는 맹수거나 먹잇감일 뿐이었다. 그는 처음으로 동물에게서 아름다움을 느꼈다. 눈처럼 흰 털과 곧은 다리, 솔잎처럼 긴 속눈썹과 윤기 나는 발굽이 이엘의 마음을 빼앗았다. 하지만 그 모든 아름다움도 사슴의 뒤통수에 달린 기다란 뿔의 위용에는 달하지 못했다. 사슴의 뿔은 진줏빛으로 반짝였으며 끝은 우아하게 휘어있었다. 숲의 푸른 장막을 뚫고 들어온 햇빛은 사슴의 뿔에 닿아 무지개로 떨어졌다. 남자가 넋을 잃은 이엘에게 말했다.

 

  “아름답지?”

  “예. 저런 건 처음 봐요.”

  “잘 봐둬. 평생에 한 번 보기도 힘든 동물이니까.” 남자는 바닥에 침을 뱉었다. “이 동네 사람들은 자기네들 등 뒤에 어떤 보물이 숨겨져 있는지 관심도 없지만.”

 

  이엘은 그를 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괜찮은 사람일지도 몰라. 하지만 왜 이 동물을 찾은 거지? 나는 왜 데려왔고? 이엘은 궁금증을 참지 못했다.

 

  “이제 뭘 해야 하나요?”

 

  남자가 말했다.

 

  “가방에 있는 걸 다 꺼내봐. 종이만 빼고.”

 

  이엘은 남자의 가방을 열었다. 안에는 큰 종이 여러 장과 길고 넓적한 나무판자,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해괴한 도구들이 잔뜩 들어있었다. 남자가 나무판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바닥에 세워봐.”

 

  이엘은 판자를 바닥에 세우고 남자의 턱짓에 맞춰 위치를 조정했다. 마침내 이엘이 판자를 정확한 위치에 세우자, 남자는 더 작고 둥그스름한 테두리의 판자를 꺼냈다. 판자는 두께감이 있어 보였는데, 한 면에는 열 개가량의 둥근 홈이 패어있었다.

 

  “앞으로 나랑 함께 일하려면 무슨 도구인지 정도는 알아야 할 거야. 이건 팔레트다. 물감을 놓는 곳이지.”

  “물감이 뭔데요?”

  “색, 그 자체지.” 남자가 주먹만 한 크기의 통 여러 개를 늘어놓으며 말했다.

 

  이엘은 판자를 든 채로 남자가 하는 행동을 유심히 지켜봤다. 남자는 통의 뚜껑을 열고 작은 숟가락으로 물컹한 파란색 덩어리를 건졌다. 그리고는 그것을 손에 들고 있는 둥근 판자의 홈에 담았다. 그렇게 여러 색깔의 덩어리를 옮긴 남자는 통의 뚜껑을 닫고 끝에 작은 술이 달린 막대기를 들었다.

 

  “이건 붓이야.” 남자가 이엘을 바라봤다. “준비는 끝났어.”

  “전 뭐하면 되죠?” 이엘이 묻자 남자가 답했다.

  “그대로 서 있으면 돼.”

  “예?” 이엘은 이해하지 못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하는 ‘일’이라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없었던 것이었다. 남자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봐, 이름이 뭐지?”

  “이, 이엘이에요.”

  “좋아, 이엘. 난 뷔크라고 해.” 뷔크가 붓으로 이엘 너머에 있는 용뿔 사슴을 가리켰다. “난 화가야. 그림을 그리지. 그리고 지금 저 멋진 자태의 영물을 화폭에 담으려 해. 근데 이 숲의 바닥에는 도저히 이젤을, 그러니까 지금 네가 들고 있는 판자가 이젤이야. 엄밀히 말하면 아니지만. 어쨌든 그림을 그리는 데는 그 판자가 꼭 필요하단 말이야. 왜냐하면 그 위에." 남자는 아직 가방에 들어있는 종이를 가리켰다. "저 도화지를 펼쳐 놓아야 하거든. 난 이젤 없인 그림을 못그려. 그런데 방금 말했듯 이 숲에선 이젤을 고정할 수가 없어. 나 혼자서는 도저히 그림을 그릴 수가 없었지. 그래서 사람을 구하려고 인력소개소를 찾아간 거야. 거기서 널 만난 거고. 이제 이해하겠어?”

 

  이엘은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지금까지 해온 대부분의 일이 이엘의 이해를 필요로 하지 않았었다. 뷔크는 만족스러운 듯 말했다.

 

  “좋아. 그러면 그 판자를 최대한 움직이지 않도록 고정하고 있어줘. 그거면 돼. 쉽지?”

  “예.”

  “착하구나.”

 

  이엘은 아이를 어르는 듯한 뷔크의 말에 속이 상했지만 드러내지 않았다. 대신 자신이 해야 하는 일 만을 생각했다. 가만히 있으면 돼. 가만히만 있어도 당장 두 주는 걱정 없이 살 수 있어. 게다가 아까 분명 그렇게 말했지. 앞으로 나랑 일하려면, 이라고. 그 말은 계속 나를 고용하겠다는 뜻이잖아. 이건 행운이야. 이 기회를 놓치지 말자, 이엘!

 

  ***

 

  이엘은 좀이 쑤시는 것도 꾹 참고 판자를 지탱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그 상태로는 아름다운 용뿔 사슴을 볼 수 없었다. 이엘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 저도 사슴을 보면 안 될까요?”

  “안 돼.”

 

  단호한 뷔크의 말에 이엘이 입을 삐죽거렸다.

 

  “왜 안 되는데요?”

 

  뷔크가 말했다.

 

  “난 동료를 고용한 게 아니야.”

 

  뷔크가 사슴에게서 눈을 떼 이엘의 눈을 바라봤다.

 

  “이젤 다리를 고용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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