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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무지개의 소리
작가 : 휘음
작품등록일 : 2017.10.31

눈을 감고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나뭇잎에 맺힌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경쾌한 붉은 소리부터 무거운 보랏빛 소리까지.
필사적으로 전하려는 그 마음 가득한 무지개의 소리가.
네가 알려준 그 소리가.

 
5
작성일 : 17-11-18 00:54     조회 : 324     추천 : 0     분량 : 4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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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지금 현재 기분은? 1번, 이건 꿈이야. 2번, 이건 꿈일 거야. 3번, 이건 꿈이겠지? 4번, 이건 꿈이 분명해! 5번... 생략.

 

  나는 눈을 마구 문질렀다. 분명 나는 녀석에게 벽화 봉사활동을 간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점심식사가 끝나면 벽화를 그리러 간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어디서 한다는 장소를 말해준 기억은 없었다. 없는 게 당연하다. 난 얘기한 적이 없으니까.

 

  그런데 어떻게 안 것인지 녀석은 떡하니 벽화 봉사활동 현장에 와 있었다. 그것도 나보다 먼저! 오전 내내 보이지 않아 방학이니 이제 나오지 않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레 이렇게 나타나니 정말 당혹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알고 온 거야?”

 

  눈을 껌뻑이며 도대체 무슨 재간으로 내가 봉사활동 하는 곳까지 알아낸 것인지 묻자 녀석은 당당한 미소로 자신의 왼 손을 쫙 펴보이며 말했다.

 

  “너는 어디에 가든 내 손바닥 안이거든.”

 

  세상에. 내가 근래에 들은 말 중 가장 끔찍한 말이었다. 내가 어디에 있든 알아낼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스토커인가? 역시 스토커 인건가? 경찰에 신고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어라? 나기잖아?”

 

  나기?

 

  나는 내 뒤에서 들려오는 사람 소리에 몸을 돌렸다. 함께 봉사활동을 진행하게 된 대학생인 진영이 누나가 환한 미소로 내 쪽을 향해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잠깐만. 내 이름은 여름이다. 한여름. 하지만 방금 누나가 부른 이름은 ‘나기’였다. 나보다도 희한한 이름에 눈을 껌뻑이던 나는 별안간 화들짝 놀라 녀석을 보았다.

 

  “네 이름이...”

 

  “나기야. 소나기.”

 

  이제야 깨달은 거지만 나는 녀석의 이름조차 모르고 있었다. 왜 여지껏 이름을 물어볼 생각을 안 하고 있었던 거지? 그 전에 왜 녀석은 자신의 이름을 얘기해주지 않은 거지? 일주일 조금 넘는 시간을 함께 하면서 녀석은 왜 자신의 이름을 물어보지 않느냐고 나에게 언질조차 하지 않은 거며 나는 왜 녀석의 이름을 궁금해 하지 않은 걸까? 알 수 없었다.

 

  “여름이도 와 있었구나?”

 

  “이 녀석하고는...”

 

  “나기? 나기는 중학생 때부터 벽화 봉사활동에 흥미가 있다면서 우리를 따라다니고 있어.”

 

  벽화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의외로 적다. 많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수도권도 아닌 지방 중에서도 후미진 구석이 있는 이곳은 벽화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적었다. 뭐하러 그런 일을 하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쨌든 녀석, 나기는 내가 봉사활동을 하든 하지 않던 오늘 이 장소에 나왔을 것이고 나는 보란 듯이 녀석이 먼저 속해있던 단체에 짜잔하고 나타난 것이다. 내 뒤를 밟아 따라온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안도감이 들면서도 살짝 서운한 감정이 들었다.

 

  “이 동네는 조금 넓어서 오래 시간을 들여 그려야 해. 마을 어르신들께 아주 어렵게 허락을 맡았으니까 신중하게. 알았지?”

 

  나와 녀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동네를 예쁘게 만들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자칫하다간 오히려 지저분하게 보일 수도 있어 꺼리는 어르신들도 계신다. 담장에 무슨 그림이냐며 손서리를 치시는 분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런 분들께 어렵게 허락을 맡은 것이니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 내야겠다며 나는 두 손을 꽉 쥐었다. 회색의 무미건조한 벽을 보자 손이 근질근질 거렸다. 벌써부터 어떻게 그려야 할 것인지 구도가 머리에 차곡차곡 들어섰다.

 

  “여름이는 벽화가 처음이니?”

 

  “어렸을 때 벽에 낙서를 했던 걸 제외하면요.”

 

  “벽에 낙서라... 나도 그런 때가 있었는데. 내가 벽화를 하고 있는 것도 어쩌면 그 때의 그 재미난 추억을 잊지 못해서 일지도 몰라.”

 

  진영누나는 그렇게 말하며 들고 온 도구를 점검했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다른 녀석들도 올 거야.”

 

  조금 더 기다리자 누나의 말대로 사람들이 오기 시작했다. 각종 도구들을 들고 나타난 사람들은 재빠르게 구역을 나누고 구도를 구상하고 스케치를 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도 그들의 틈바구니에 끼여 성심성의껏 연필을 움직였다. 우툴두툴한 벽면을 따라 움직이는 연필선이 불안정하면서도 곧게 나아가려 애를 썼다. 어쩐지 그 모습이 나와 같아 보여 살짝 심통이 났다.

 

  “뭐 그리는 거야?”

 

  “아까 말했잖아. 여기엔 토끼를 따라가는 앨리스를 그릴 거야.”

 

  “토끼는 어디에 그리는 데?”

 

  “저쪽 끝에 시계를 들고 촐랑거리면서 뛰어가는 토끼를 그릴 예정이야.”

 

  녀석은 연필도 붓도 들지 않고 그저 여기저기를 탐방하며 수다를 떨어댔다. 벽화 봉사활동에 수다를 떨러 오는 건가? 그러고 보니 녀석은 미술계에 종사하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그런데 왜 벽화 그리는 봉사활동을 몇 년 동안이나 다니고 있는 거지?

 

  조금 읽어봤지만 녀석이 쓰는 소설에는 벽화에 관련된 이야기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 그저 탑 안에서 무기력하게 있던 소년과 그런 소년을 막무가내로 끌고 지상에 내려와 여행을 하는 소녀의 이야기였다.

 

  궁금증이 일었다. 알고 싶었다. 녀석이 왜 몇 년 간 이곳에 속해있었는지.

 

  “저기... 그런데 나기는 그림 안 그려요?”

 

  처음으로 꺼낸 물음은 누구나가 의문을 가질만한 것이었다. 나기는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소설 소재를 얻기 위한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무의미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떠드는 수다만 잔뜩 늘어놓을 뿐.

 

  가지가 쭉 뻗은 아름드리나무를 그리고 있던 근육질이 우락부락한 형이 몸집에 어울리지 않은 작은 연필을 멈춰 세웠다.

 

  “몇 년 동안 봐왔지만 나기는 절대 그림을 그리지 않아. 뭐, 가끔 물감을 나르는 거나 도시락 배분 같은 걸 도와주기는 하지만 그저 옆에서 떠들기만 하던 걸?”

 

  “내가 지난번에 물어봤을 때, 자기한테 벽화를 그려줄 사람이 따로 있어서 자기는 안 그린다고 하던데? 게다가 그려봤자 어마어마하게 사고를 칠거니 발로 그린 그림 뒤치다꺼리하고 싶다면 언제든지 환영한다고...”

 

  옆에서 진영누나가 근육형의 말을 거들었다.

 

  그려줄 사람?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는 없었으나 녀석의 그림은 발 그림이라 벽화를 그리는 일을 도와주다간 대형 사고가 생길 것이 분명하다는 느낌은 받을 수 있었다.

 

  투박하면서도 울퉁불퉁한 벽에 가해지는 연필심의 소리가 귀에 거슬리는 듯 기분 좋은 듯 고막을 두드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 까? 녀석은 벽화를 그리는 내 옆에 다가오지 않았다.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을 때에는 나한테 와서 온갖 이야기를 늘어놓던 녀석이 다른 사람들과만 이야기를 하니 조금 어색했다.

 

  그새 설마 녀석의 수다에 길들여지기라도 한 건가? 나는 고개를 마구 저었다. 그럴 리가 없다. 뭐가 듣기 좋은 소리라고.

 

  “여름아, 토끼 코가 두 개가 됐는데?”

 

  “왁! 죄송합니다!”

 

  바로 물감을 칠하지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연필로 자그마하게 엑스자를 그려 넣었다. 색칠할 때에는 절대 실수하지 말아야지. 나도 모르게 녀석을 바라보다 헛손질을 한 모양이었다. 이러면 안 돼지.

 

  나는 토끼의 얼굴이 제대로 그려졌는지 확인했다. 티가 나지 않게 살짝 그려 넣은 거라 자세히 봐야만 했다. 음, 생각보다 잘 그려졌어.

 

  살짝 눈길을 돌려 조금 전에 완성시킨 앨리스를 보았다. 내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계기가 된 삽화들과 내가 그린 앨리스. 확실히 아직 많이 부족해보였다.

 

  잠깐만... 그런데 앨리스가 누굴 좀 닮은 것 같은데...?

 

  “이 앨리스 나기를 좀 닮지 않았어?”

 

  스케치를 벌써 끝내가 채색 준비를 하던 진영누나가 앨리스를 가만가만 들여다보았다. 이각도 저 각도에서 앨리스를 살피던 누나는 옆에 있던 다른 사람들을 불렀다.

 

  “어? 진짜네? 조금 닮은 것 같기도 하고...”

 

  “뭐야, 여름이 여기다가 사심을 그려 넣은 거야?”

 

  “아닌데요.”

 

  나는 단칼에 부정했다. 물론 조금 닮은 것 같지만 나는 녀석을 그리지 않았다. 그래, 녀석보다는 훨씬 오래전에 만난 이름도 모르는 그 아이라면 모를까. 나중에 그려주기로 한 그림이 있었는데 내가 이사를 가는 바람에 그려주지 못했던...

 

  그런데 무슨 그림을 그려주기로 했더라?

 

  “이거 나 닮은 거 맞는 것 같은데?”

 

  조금은 기뻐 보이면서도 장난스러워 보이는 표정으로 녀석이 나에게 바짝 다가왔다. 얼굴이 가까워져서 그만 확 달아오른 나는 고개를 빠르게 돌려 내가 그리던 토끼만을 바라보았다.

 

  “너 아니야.”

 

  “진짜로? 다른 사람들도 다 닮았다고 하는 데?”

 

  곁눈질을 치자 반짝거리는 녀석의 눈동자가 나를 응시하는 모습이 보였다. 저 앨리스는 녀석이 아니다.

 

  “삽화에서 많이 보던 앨리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얼굴을 그려 넣은 것뿐이야. 그리고 내가 그린 앨리스가 너 같은 호박을 닮을 리가 없잖아.”

 

  말을 끝내자마자 나는 비명을 질렀다. 이 고약한 녀석이 앉아있던 나를 멋지게 발로 차 넘어뜨린 것이다. 이렇게 폭력적인 녀석이 내가 그린 앨리스를 닮을 리가 없었다. 앨리스는 용감하지만 폭력적이지는 않으니까.

 

  “흥! 그래도 그 스케치북에 있던 그림들보다야 조금 낫네.”

 

  “스케치북에 있던 건 학원에서 배우는 입시그림이거든? 이런 벽화랑 같겠어? 그리고 스케치북에 있는 그림들이 훨씬 퀄리티가 좋아.”

 

  “아니, 그 그림들은 못 그렸어. 재미없어.”

 

  또 못 그렸다는 소리에 나는 입술을 꾹 물었다. 자존심 어딘가에서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입시미술을 무시하는 거냐. 그 그림들이 얼마나 피와 땀과 열정이 들어간 그림들인데.

 

  “너 보라고 그리는 그림들 아니야. 대학 교수님들 보라고 그리는 거지.”

 

  “넌 대학 교수님들만 보는 그림을 그릴 거야?”

 

  녀석이 갑자기 훅 치고 들어왔다.

 

  “다른 사람들은 보지 않고 오로지 대학 교수님들만 보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 네가 그리고 싶은 그림은 그런 그림이야?”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는 교수님들이 봐주는 그림을 그려야지.”

 

  아무리 개성 있게 그린다한들 교수님들은 봐주지 않는다. 얼마나 정확한 구도로 어떤 색감을 썼으며 제한시간 내에 어디까지 완성시킬 수 있는가. 그게 지금 내가 그리고 있는 그림들의 최선이었다. 그게 입시미술이니까. 개성파든 사실주의든 그런 건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이다.

 

  내 대답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나기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다시금 내 얼굴에 자기 얼굴을 바짝 대었다.

 

  “나는 네가 재미있는 그림을 그렸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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