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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내겐 너무 소중한 그대
작가 : 카렌
작품등록일 : 2017.10.30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마술사학교'의 최종우승자 마술소녀 윤제이. 한달 전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아빠의 죽음에 무언가 숨겨진 음모가 있는 게 분명하다며, 제이의 주변 사람들을 차례차례 의심하는 수상한 그놈이 나타났다. 그놈의 정체는 사생활이 철저하게 비밀에 휩싸여 있는 독일에 국민마트 CEO 강철수. #티격태격, #알콩달콩, #로맨틱코미디, #츤데레 남주, #당찬 여주 habilis21@naver.com

 
40.제이 씨, 우리 형이랑 사귀어요?
작성일 : 17-11-17 18:57     조회 : 239     추천 : 0     분량 : 8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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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손으로 핸드폰을 든 제이는 철수의 책장에 꽂혀있는 파일의 네임텍을 눈으로 재빨리 훑었다.

 

  "파일이 책장에 있는 거 맞죠?"

 

  - 네, 그렇습니다.

 

  "제목이 뭐예요?"

 

  - '아시아 프로젝트 기획안'이라고 쓰여있는 파일입니다. 아마 초록색이었던 것 같습니다.

 

 책장 안에 가득 꽂혀있는 파일을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짚어가던 제이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아, 찾았다!"

 

  - 찾았습니까?

 

  "네, 초록색이 아니라 분홍색이었잖아요. 초록색인 줄 알고 한참 찾았네."

 

  - 미안합니다.

 

 풀죽은 철수의 목소리를 들고 제이는 풋, 웃음을 터트렸다.

 

 이럴 때 보면 철수 씨도 귀엽단

  말이야.

 

  "그럼 이건 제가 직접 회사로 가서 가져다드리면 되는 거죠?"

 

  - 아니요. 그럴 필요 없습니다. 10분 뒤면 집 앞으로 제 비서가 도착할 겁니다. 그 사람한테 전해주면 됩니다.

 

  "네, 알겠어요."

 

  - 제이.

 

 전화를 끊으려던 제이가 나지막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동작을 멈췄다.

 

  - 정말 고마워요.

 

  "……."

 

  - 제이가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진심 어린 철수의 목소리에 제이는 생긋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그는 마치 자신의 존재 자체를 고마워하는 사람처럼 별것 아닌 사소한 것에도 언제나 정중하게 고마움을 표했다.

 

  "철수 씨, 저 철수 씨 책장에 꽂혀있는 책 좀 빌려 가도 되나요?"

 

  - 내 책장에 꽂혀있는 책 말입니까?

 

  "네."

 

 언제나 철수는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간혹 밥을 먹을 때도 책에 눈을 떼지 않는 철수에게 잔소리한 적이 있었지만, 과연 그가 어떤 책을 읽는지 궁금해졌다.

 

  - 좋아요. 읽고 싶은 책 있으면 마음대로 읽어요.

 

  "네, 알겠어요."

 

 통화를 마친 제이는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책장을 보면서 신중하게 읽을 만한 책을 골랐다.

 

 주로 경영서와 경제서들이 꽂혀 있는 철수의 책장을 보고 제이는 머리가 아득해졌다.

 

  '이렇게 어려운 걸 철수 씨는 어떻게 읽는 거지?'

 

 철수의 책장에서 그녀가 읽을 만한 책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조금 가볍고 술술 읽히는 거였으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제이가 원하는 책은 철수의 책장에서 찾을 수 없는 것 같았다.

 

 볼에 빵빵하게 바람을 넣은 제이는 읽을 만한 책을 찾는 것을 포기하고 그의 의자에 털썩 앉았다.

 

 컴퓨터 앞에는 그녀가 꽃집에서 사 왔던 장미 허브 화분이 놓여 있었다.

 

  ㅡ 이거요. 선물이에요.

 

  ㅡ 이게 뭡니까?

 

 철수의 커다란 손에 들려있는 화분은 더 작고 앙증맞아 보였다.

 

  ㅡ 화분이요. 이걸 컴퓨터 앞에 두면 일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일 없을 거예요.

 

 화분에 코를 대고 향을 맡은 철수가 미소를 머금었다.

 

  ㅡ 이거 이름이 뭡니까?

 

  ㅡ 장미 허브요.

 

  ㅡ 이름 참 잘 지었네요. 정말로 허브에서 장미 향이 나는군요.

 

  ㅡ 신기하지 않나요? 허브에서 장미 향이 나다니.

 

 제이는 반짝거리는 눈동자로 철수를 바라보며 물었다.

 

  ㅡ 정말 신기하네요. 제이.

 

  ㅡ ……?

 

  ㅡ 고맙습니다. 진심으로 고마워요.

 

 제이는 대답을 하는 대신 고개를 가로로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오직 그가 예전에 겪었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하루하루 편안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었다.

 

 밖으로 나가기 위해 의자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킨 제이는 다시 책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철수가 무엇을 읽고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 지, 그가 평소에 읽는 책을 읽으면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보기만 해도 머리 아픈 책들 사이에서 얇은 에세이 집을 발견한 제이가 책으로 손을 뻗었다.

 

  "이건 에세이 집이네."

 

 조금은 빛바랜 것 같은 책을 집어든 제이는 책을 펼쳐보았다.

 

  '응? 이게 뭐지?'

 

 책을 열자마자 폴라로이드 사진 한 장이 바닥으로 툭, 하고 떨어졌다.

 

 사진을 들어서 확인한 제이의 동공이 파르르 떨렸다.

 

 사진에는 지금과 별로 다르지 않은 모습의 태오와 철수가 찍혀있었다.

 

 두 사람 다 양복 대신 티셔츠를 입은 걸 보니 대학생 때인 것 같았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서 푸른색 눈동자가 아름다운 여자가 환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철수는 여자의 어깨에 다정하게 어깨동무를 하고 있었다.

 

 폴라로이드 사진 속에서 철수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듯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

 

 

 

 지갑 안에 넣어두었던 태오의 명함을 꺼낸 제이는 마른침을 목구멍으로 꿀꺽 삼켰다.

 

  ㅡ 만약 형한테 또 무슨 일이 있으면 저한테 이 번호로 전화하세요.

 

 언젠가 태오에게 도움을 청할 날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렇게 빨리 할 줄은 몰랐던 제이는 떨리는 손으로 다이얼을 눌렀다.

 

  - Hallo(여보세요).

 

 갑자기 들리는 독일어에 제이는 잠시 숨을 멈추었다가 다시 입을 뗐다.

 

  "저기, 태오 씨. 저 윤 제이에요."

 

  - 어? 제이 씨. 무슨 일이에요?

 

 밝게 대답하는 태오의 목소리를 듣고 제이는 안심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태오 씨, 되게 오랜만에 목소리 듣는 것 같아요."

 

  - 그렇죠? 아아, 벌써 한국을 떠난 지 일주일이나 지났네. 한국의 소맥이 벌써부터 그리워요.

 제이는 대답 대신 풋, 하는 웃음을 터트렸다.

 

  "제이 씨, 그동안 잘 지냈어요?"

 

  "네, 그럼요. 태오 씨는요?"

 

  - 저도 뭐, 맨날 회사에 출근하고 있어요.

 

  "그렇구나."

 

 제이는 활짝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 제이 씨, 우리 형이랑 사귀어요?

 

  "네에?"

 

 갑자기 뜬금없는 말을 내밷는 태오의 목소리에 제이는 눈을 커다랗게 떴다.

 

  "그, 그게 무슨 소리세요. 말도 안 되요!"

 

  - ……에이, 아니구나. 기대했는데.

 

  "기, 기대요?"

 

  - 네, 사실 독일로 오기 전에 형한테 제이 씨랑 잘해보라고 이야기했거든요.

 

  "……."

 

  - 사실 우리 형한텐 제이 씨가 너무 아깝지만, 난 제이 씨가 우리 가족이 되었으면 좋겠거든요.

 

  "……."

 

  - 그런데 아닌가 보네요. 아쉬워라.

 

 태오의 말에 난처한 표정을 짓던 제이가 말문을 열었다.

 

  "지금 통화하는 거 괜찮으세요?"

 

  - 네, 그럼요. 지금 쉬는 중이라서 괜찮아요. 무슨 일인데요?

 

  "조금 무거운 얘기에요."

 

  - ……형 얘기에요?

 

  "어떻게 알았어요?"

 

 저도 모르게 불쑥 진심을 내뱉은 제이가 손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지만 이미 늦은 것 같았다.

 

  - 제이 씨가 형 문제 아니면 나한테 전화할 일이 뭐가 있겠어요.

 

 제이는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요즘 제이의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는 것은 철수의 문제밖에 없었다.

 

  "사실 요즘 철수 씨가 밤에 잠을 못 자고 악몽을 꾸는 것 같아요."

 

  - 악몽이요?

 

 악몽에 시달리며 고통에 몸부림치던 철수를 떠올리자 제이의 표정이 항층 어두워졌다.

 

  "네, 정말 걱정이에요."

 

  - …….

 

 태오도 형의 건강 상태가 걱정되는지 아무 말이 없었다.

 

 조금 망설이던 제이가 조심스럽게 입술을 떼었다.

 

  "태오 씨."

 

  - 네?

 

  "저한테 3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주시겠어요?"

 

 철수에 관해 조금 더 인터넷 검색을 해본 결과, 그는 독일에서 납치사건을 겪고 나서 언론에 절대 얼굴을 노출하지 않는 '은막의 경영자'로 바뀌었다는 기사를 찾았다.

 

 분명 3년 전에 있었던 납치 사건이 철수의 공황 장애 증세와 연관이 있는 것 같았다.

 

  - ……후우.

 

 태오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 글쎄요.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하는지 모르겠네요.

 

 제이는 태오의 말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귀를 쫑긋 세웠다.

 

  - 제이 씨는 어디까지 알고 있어요?

 

  "3년 전에 철수 씨가 납치당하셨다는 사실만 알고 있어요."

 

  - 그렇군요.

 

 태오는 입을 열기 전에 잠시 망설였다.

 

 생생하게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자 가슴이 저릿해졌다.

 

 끔찍했던 그날의 참상을 어떻게 제이에게 전해야 할지 앞이 막막했다.

 

  "제이 씨가 알고 있는 그대로예요. 우리 형은 3년 전에 납치를 당했었죠."

 

 납치범들의 전화를 받았던 건 바로 자신이었다.

 

 당시 집에서 한가롭게 와인을 마시고 있던 태오는 철수가 납치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들고 있던 와인잔을 떨어트렸다.

 

 쨍그랑!

 

  ㅡ Was? 3,000,000 Euro? (뭐라고? 300만 유로?)

 

 그들이 원한 건은 바로 단 한 가지, 돈이었다.

 

  - 인종차별 단체였던 '블랙 데스'는 한국 사람인 형과 내가 독일에서 크게 돈을 버는 것이 마음에 안 들었나 봐요.

 

 형을 무사히 구출할 수 있다면 돈은 얼마든지 낼 수 있었던 태오는 '블랙 데쓰'가 시키는 대로 거액의 돈을 가방에 넣으려고 했다.

 

  ㅡ 여보세요? 태오야! 나 형이야. 그들이 원하는 대로 절대 돈을 주지 마! 대신 경찰에 신고해!

 

 납치범들의 전화를 빼앗은 철수는 절대로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말라며 소리쳤다.

 

 태오는 당장 돈을 주고 철수를 구하고 싶었지만, 형이 시킨 대로 경찰에 먼저 신고를 했다.

 

  - 그런데 사실 그때 우리 형은 혼자 납치당한 게 아니었어요.

 

  "혼자 납치당했던 게 아니었다고요?"

 

  - 네, 그때 사귀던 여자친구랑 함께 납치되었었죠.

 

  "……."

 

  - 경찰에 신고하자 납치범들은 그들의 위치를 꼭꼭 숨겼고. 결국 내가 납치범들에게 돈을 지급하고 나서, 우리 형과 당시 여자친구는 풀려날 수 있었어요. 정확히 납치된 지 일주일 만에 풀려났죠.

 

  "……."

 

  - 납치 사건을 겪은 뒤로 철수 형은 여자친구랑 헤어졌어요.

 

  "……."

 

  - 그리고 나서 철수 형은 공황 장애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어요.

 태오에게 모든 설명을 들은 제이는 충격을 받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철수에게 그런 끔찍한 과거가 있었을 줄이야.

 

 언제나 강하고 단단한 사람처럼 보이기에 과거에 이렇게 잔인한 일을 겪었을 줄은 짐작조차 못 했었다.

 

  - 그 뒤로 우리 형은 극도로 외부 노출을 꺼렸어요. 인터넷에 퍼져 있는 자신의 기사도 모두 삭제하고, 회사 업무는 집에서 자택 업무로 대신했죠.

 

  "……그렇군요."

 

  - 아직도 한국 임원중에도 철수 형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

 

  - 개인 경호원을 붙이고 다니고 항상 주위를 경계하고 다니죠. 보면 안쓰러울 정도로 주변 경계를 많이 해요. 예전보다 확실히 의심도 많아졌고.

 

 처음 만났을 때 그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덩치 큰 사내를 떠올린 제이는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 제이 씨를 만나서 다시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다시 재발한 모양이에요.

 

 제이는 씁쓸한 표정으로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슬픔이 가득 담겨 있었다.

 

  "저기, 태오 씨. 마지막으로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 네, 뭐든지 질문하세요.

 

 입안이 바싹 마른 제이는 망설이다가 말문을 열었다.

 

  "철수 씨 예전 여자친구는 어떤 여자였어요?"

 

 질끈 눈을 감고 질문한 제이는 스피커에서 흘러나올 태오의 목소리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자 제이는 살짝 실눈을 떴다.

 

  - 우리 형의 전 여자친구는 굉장히…….

 

  "……."

 

  - 사랑스러웠어요.

 

 

 

 ***

 

 

 

 철수는 오늘따라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 제이의 표정을 보며 눈치를 살폈다.

 

 퇴근하자마자 회사로 돌아온 철수는 어쩐지 제이가 평소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제이, 오늘은 약속이 없었나 봐요."

 

  "네? ……네."

 

 양복을 벗고 거실로 나온 철수는 쾌활하게 질문했지만, 그녀는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집에 들어올 때 언제나 그녀의 환한 미소를 보면서 하루의 피로를 잊었던 철수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기분이 언짢아 보이는 제이를 보니 철수의 기분도 지하로 추락앉는 기분이었다,

 

  "제이, 오늘은 집에서 저녁 먹지 말고 밖에서 외식이나 할까요?"

 

  "외식이요?"

 

  "네, 오랜만에 같이 밖에 나가서 먹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제이가 아무 말이 없자 철수가 먼저 지갑을 챙기면서 집을 나섰다.

 

  "나가서 맛있는 거 사 먹으면 기분 전환이 될 거예요."

 

  "아니요. 괜찮아요."

 

  "괜찮다고요?"

 

 철수가 눈을 껌벅거리며 제이를 바라보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네, 저는 그냥 오늘 저녁 집에서 먹고 싶어요."

 

 현관문까지 나가서 신발을 신었던 철수는 조금은 힘이 빠진 표정으로 다시 집 안으로 들어왔다.

 

  "회식하고 싶으면 철수 씨 혼자 나가서 드세요."

 

 철수는 제이의 차가운 표정을 보고 혹시 자신이 무엇을 잘못 했는지 곰곰이 기억을 되짚었다.

 

  '혹시 그거 때문인가?'

 

 철수는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면서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ㅡ 철수 씨, 여기 한번 먹어보세요?

 

  ㅡ 이게 뭐예요?

 

  ㅡ 몸에 좋은 브로콜리에요.

 

  ㅡ 브로콜리요? ……난 브로콜리 싫습니다.

 

  ㅡ 왜요, 이게 얼마나 건강에 좋은 데요.

 

  ㅡ 그래도 난 안 먹습니다.

 

  ㅡ 그러지 말고 먹어보세요. 자, 아, 해보세요.

 

 철수는 자신의 입에 브로콜리를 넣어주려고 하는 제이의 손길을 거칠게 뿌리쳤다.

 

  ㅡ 안 먹는다니까 왜 이래요.

 제이가 주는 브로콜리를 그냥 먹을 걸 그랬나.

 

 브로콜리 먹는 게 뭐가 그렇게 어렵다고 냉정하게 제이를 대했을까.

 

 심각한 표정으로 기억을 더듬고 있던 철수가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야, 제이가 그런 거로 화를 낼 리가 없는데.'

 

 철수는 다시 한번 그것보다 훨씬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ㅡ 철수 씨, 어때요? 책상 위에 화분이 있으니까 기분이 좀 상쾌해지지 않아요?

 

  ㅡ 네, 일하다가 장미 허브 향을 맡으면 정말로 스트레스가 풀리는 기분이더군요.

 

  ㅡ 그럼 몇 개 더 사둘까요?

 

  ㅡ 아니요. 그럴 필요는 없어요.

 

 당시에 급한 업무를 처리하느라 바빴던 철수는 저도 모르게 그녀의 호의를 차가운 목소리로 거절했다.

 

  '그래, 아무래도 그 일 때문인 것 같아.'

 

 제이는 자신을 생각해서 다정하게 말을 건넨 것이었는데, 철수는 일에 집중하느라고 그녀의 마음을 살피지 못했었다.

 

  '하지만 제이가 일하느라 바빴던 내 사정을 이해 못 해줄 여자는 아닌데.'

 

 미간에 깊은 주름을 잡고 있던 철수는 결국 제이에게 직접 물어보기로 마음 먹었다.

 

 그녀의 기분이 침울해 보이는데 자신이 그냥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저기, 제이."

 

  "……네?"

 

 제이는 약간은 창백해진 표정으로 철수를 바라보았다.

 

  "혹시 무슨 일 있었습니까?"

 

  "아니에요."

 

  "아니라고만 이야기하지 말고 나한테 솔직하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봐요."

 

  "……."

 

  "제이가 그렇게 풀 죽어 있는 모습을 보니까…… 난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철수는 진심이 담은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하루하루 자신에게 비타민같이 상쾌한 기운을 주었던 제이가 기가 죽은 채로 있는 건, 무척 보기 힘든 일이었다.

 

  "그게 사실은 제가 어젯밤에 철수 씨가 자다가 악몽을 꾸시는 것을 봤어요."

 

  "……."

 

  "철수 씨가 너무 걱정되어서 저는 오늘 독일에 계신 태오 씨와 통화했어요."

 

  "……그랬군요."

 

 철수는 모든 것을 다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철수 씨, 정말 미안해요."

 

  "네? ……뭐가 말입니까?"

 

  "철수 씨가 그런 끔찍한 일을 겪은 걸 저는 몰랐어요."

 

  "……."

 

  "만약 그걸 알았더라면 저는 철수 씨한테 조금 더 다정하게 대해줬을 거예요."

 

 3년 전에 자신에게 일어났던 납치 사건을 꺼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철수는 말없이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정말 죄송해요."

 

 자신에게 사과하는 제이를 보고 철수는 작게 웃었다.

 

 이미 그녀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에게 굉장한 힘이 되어주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모르는 듯했다.

 

  "아무래도 전 철수 씨에 옆에 있을 자격이 없는 것 같아요."

 

  "……."

 

  "집을 구하는 대로 빨리 여기에서 나가야겠어요."

 

 제이의 입에서 흘러나온 충격적인 말에 철수의 목소리가 바르르 떨렸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집을 나가다니요."

 

  "……."

 

 이맛살을 잔뜩 구긴 철수가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제이는 옆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철수에게는 제이의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제이. 왜 여기서 떠나겠다는 거예요."

 

  "……태오 씨가 그러시더군요. 철수 씨가 납치당했을 때 당시 여자친구 였던 분도 같이 납치를 당했었다고."

 

 예전 여자친구의 말이 나오자 난감해진 철수는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네, 그랬었죠. 그런데 그건 아주 오래전에 얘기입니다."

 

  "철수 씨가 아직도 그 여자분을 잊지 못하시는 것 같아요."

 

 제이의 말에 어이가 없어진 철수는 목구멍이 콱 막히는 기분이었다.

 

 아주 오래전에 그녀를 떠나보냈던 철수는 이제 그녀의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제이,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태오가 제이에게 무슨 소리를 한한 겁니까?"

 

 자신의 질문에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랫입술을 잘근 깨무는 제이를 보고 철수는 속이 타들어 가는 듯했다.

 

  "태오 씨는 저에게 그냥 예전 여자 친구가 같이 납치되었다는 사실만 알려주셨어요."

 

  "그런데 왜 그런 소리를 하는 거예요."

 

 철수는 가슴이 아픈 듯 살포시 미간을 좁히면서 그녀에게 물었다.

 

 그는 그녀가 자신의 곁에서 떠나지 않기를 바랐다.

 

 오랫동안 자신의 곁에서 함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직 그녀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지도 못한 상황이었다.

 

 이대로 무작정 그녀를 떠나보낼 수 없었다.

 

  "철수 씨 책장에 꽂혀있는 책에서 우연히 폴라로이드 사진을 한 장 발견했어요."

 

  "……."

 

  "철수 씨가 굉장히 행복한 미소를 지으면서 옆에 있는 여자의 어깨에 팔을 두르시고 계시더군요."

 

 모든 상황을 파악한 철수는 작은 한숨을 내쉬면서 눈을 지그시 감았다.

 

  "사진 어디에 있습니까."

 

  "네?"

 

  "제이가 내 책장에서 발견했다는 사진 당장 가지고 와요."

 

 철수의 낮고 허스키한 목소리에 놀란 제이는 얼른 사진이 꽂혀있던 에세이 집을 철수에게 내밀었다.

 

 찌익! 찌익!

 

 철수는 폴라로이드 사진을 보지도 않고 두 손으로 잘게 찢어버렸다.

 

 그의 거친 행동에 놀란 제이는 손으로 입을 가렸다.

 

  "난 예전 여자친구 얼굴도 잊어버렸어요."

 

  "……."

 

  "이제 내 마음속에 있는 건……."

 

 제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철수가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서 주먹을 곽 쥐었다.

 

 아직 철수는 사랑을 시작하는 것이 두렵고 무서웠다.

 

  "……아닙니다."

 

 급하게 말을 마친 철수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서 조심스럽게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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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57.오빠, 미안한데 저 수건 좀 가져다주실래요 2017 / 12 / 21 365 0 7726   
56 56.그럼 둘이 언제 잤어요? 2017 / 12 / 20 270 0 8352   
55 55.정말로 미치도록 귀엽다 2017 / 12 / 11 252 0 8486   
54 54.절대 내 품에서 안 놔줄 거야 2017 / 12 / 9 262 0 8422   
53 53.나도 철수 씨를 좋아하고 있었단 말이에요. 2017 / 12 / 7 254 0 8814   
52 52.원래 독일에서는 인사 대신 목에 키스하는 … 2017 / 12 / 5 240 0 8764   
51 51. 개미지옥에 빠진 불쌍한 개미 2017 / 12 / 4 274 0 8102   
50 50.당신들한테 제안할 게 있어요. 2017 / 12 / 3 243 0 7987   
49 49.영원히 그와 함께 하고 싶어. 2017 / 12 / 2 253 0 7901   
48 48.철수 씨가 너 좋아하는 거 아니야? 2017 / 12 / 1 248 0 8611   
47 47.무릎과 무릎 사이에 2017 / 11 / 29 628 0 8123   
46 46.제이는 철수를 좋아해? 2017 / 11 / 27 277 0 8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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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43.제이가 내 사무실에는 어떻게……? 2017 / 11 / 24 258 0 8265   
42 42.미래의 남편이요? 2017 / 11 / 22 251 0 8823   
41 41.짝사랑하는 여자의 속마음을 알아보는 법 2017 / 11 / 20 260 0 8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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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37.대표님, 제이 씨랑 데이트하세요. 2017 / 11 / 14 235 0 7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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