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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티그리스 강가에서
작가 : 애플타운
작품등록일 : 2016.5.19

빚을 갚기 위해 마을을 벗어나 시내로 일자리를 얻게 된 마드린느는 저택에서 하인으로 일하게 된다. 그러나 저택은 완벽하지만 그만큼 쓸쓸했다.

 
10장 엘제나
작성일 : 16-06-04 10:53     조회 : 622     추천 : 0     분량 : 11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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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장 엘제나

 

 엘프란 종족의 특징은 수려한 외모, 큰 키, 각 종족에 따른 특별한 능력 등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특징으로 꼽는 것은 ‘동화’ 능력이다.

 

 주변 환경으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으면서 동화되는 능력이 있는 엘프 종족은 모여 살수록 오래, 건강하게 살 수 있다. 반대로 종족을 떠나 인간과 같이 살던 종족들은 인간을 닮아 짧은 수명을 누린 뒤 땅으로 돌아가게 된다.

 

 실제로 인간과 같이 살던 엘프는 초반에는 이질감이 느껴졌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이 풍기는 체취와 분위기를 닮아갔다고 한다.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인간들과 가까이 지내던 엘프는 말하지 않으면 엘프인지도 모를 정도라고 한다.

 

 그러니 엘프 종족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바로 자신들의 영역을 다른 종족들이 침범하는 것이오, 허락없이 그들의 영토에 발을 디딛는 것은 위협 행위나 다름없다.

 

 -엘프 종족에 관하여–

 

 고아원의 장이었던 리브씨는 마드린느의 눈에도 아름다웠다. 가이온이 사람들 중에서도 차가우면서도 오만하게, 많은 하인들의 그의 손수발을 들었다는 것을 예상케하는 잘생긴 얼굴이라면 리브씨는 다른 느낌이었다.

 봄날의 산뜻한 바람 같이 부드러우면서도 자상해보였고, 현명해보였다. 어린 나이지만 많은 것을 알고 잘 활용할 줄 아는 성숙한 사람으로만 봤었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을 사랑으로 돌보는 사람.

 

 그런 인상에서 이상하다거나 보통 사람들과 다르다는 점은 딱히 느끼지 못했는데?

 

 “ 그걸 어떻게 알았어? ”

 “ 처음에는 방에서 유난히 정갈한 기운이 느껴졌는데, 그 눈동자와 머리칼을 보고 알았지. 그리고 그렇게 어린 나이에 많은 아이들을 화 한번 내지 않고 통솔하는 것도 이상한 거다. 나이가 많아도 그런 짓은 못해. 엘프들은 노화가 느리니까 아마 생긴 것보다 나이가 많을 거다. ”

 “ 너무 단순하게 추측하는 거 아냐? 그냥 애들이 순해서 그런 걸 수도 있어. 리브 씨가 좀 단정하고 깔끔한 사람인 걸 수도 있고. ”

 “ 사람 냄새가 많이 나기는 했지만 그래도 엘프는 엘프야. 학원에서 엘프들의 특징에 대해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

 “ 너 진짜 리브씨를 엘프라고 확신하는구나? ”

 “ 엘프가 왜 이런 데 있는거지? 이상한데. ”

 “ 너 오늘 농담 좀 한다? ”

 한없이 진지해진 가이온에 비해 마드린느는 가볍게만 대꾸했다.

 “ 어쨌든 이따가 리브씨한테 엘제나라는 사람을 아는지 물어봐야 할거다. 여신이 여기로 우리를 보낸 거에는 이유가 있겠지. ”

 “ 그래, 알겠지. 설마 처음부터 허탕치겠어? 밤에 애들이 잠이 들기 전에 책을 읽어주는 시간이 있어. 그 이후부터는 조용하니까 그때 물어보자. ”

 가이온이 잠들어 있던 동안 마드린느는 고아원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대충 일과를 파악하고 있었다. 빈손으로 있기가 뭐해 잡일이라도 도우고 있었다.

 “ 그 전까지 도움 받은 것도 있고, 호감도 좀 살 필요가 있으니 너나 나나 리브 씨를 좀 도와줘야 할 것 같은데. ”

 “ 너나 잘해. 설거지 해본 적은 좀 있으신가요, 도련님? ”

 “ 설거지는 못하지만, 구연 동화는 참 잘하지. 재밌는 얘기도 많이 알고 말이야. ”

 발걸음을 돌려 다시 온 길을 되돌아가고 있었다. 애들이 식사를 끝냈으니 리브씨를 도우러 가는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들은 일이 생각보다 빨리 끝날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

 마드린느는 그동안 쌓아온 설거지 실력을 발휘해서 단시간에 많은 양의 설거지를 끝냈고, 가이온은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동화를 실감나게 얘기해주며 놀아줬다. 리브씨는 일거리가 줄었다며 아주 좋아했다. 아이들이 순해서 그런지 모두들 책을 읽어줄 때도 조용히 잘 들었고 침대에 들 시간이라며 불을 끌 때도 칭얼거림 없이 잘 따랐다. 그렇게 마드린느와 가이온, 그리고 리브 씨와의 질문 시간이 돌아왔다.

 리브씨에게 물어볼 것이 있다고 말하자 그가 작은 방으로 안내했다. 테이블에 앉은 세 명 중 두 명이 긴장하며 말을 꺼냈다.

 “ 우리 부부가 여기까지 온 것은 ‘엘제나’ 를 만나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혹시 여기에 ‘엘제나’ 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까? ”

 “ 엘제나요? 이 고아원이나 주변 근방에는 없습니다만. 혹시 그런 이름을 가진 아이를 찾으시나요, 가이온 씨? ”

 없단다. 분명히 없다고 했다. 고아원에도, 근방에도 없다고 했다.

 마드린느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외쳤다.

 “ 그럼 애칭이 ‘엘제나’ 인 사람은 없나요? 아니, 다른 종족은요? 꼭 사람일 필요는 없어요! ”

 리브가 흠칫 놀라더니, 두 사람을 또렷이 쳐다봤다. 누군지 얼굴을 기억하려는 듯이 말이다.

 “ 사실 ‘엘제나’ 란 애칭을 가진 종족이 있긴 했습니다만… 여러분은 대체 누구신데 그 분을 찾으시는 거죠?

 둘 다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어떻게 말해야 할 지 고민하고 있었다.

 이대로 사실을 말하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여겨졌다.

 그런 두 사람을 노려보며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로 리브가 말했다.

 “ 보아하니 신혼부부는 커녕 생판 서로를 잘 모르는 남남인 것 같은데 말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

 가이온이 어쩔 수 없다고 마드린느에게 말했다.

 촌극은 금방 끝나기 마련이었다.

 관객은 연기가 형편없음에 넘어가지 못하고서는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 엘프가 감이 좋군 그래. ”

 “ 어설픈 배우가 관찰력은 있군요. 당신네들은 대체 누구길래 인적이 드문 곳까지 와서 부부라고 거짓말까지 하며 엘제나를 찾는 겁니까? ”

 “ 내 소개를 하지. 나는 티그리스 가문의 가이온 아벨 티그리스일세. 로첸 티그리스의 후계자이자 저택 벨체 라 돌리아의 주인일세. ”

 “ 그 말이 사실이라면, 장미로 수놓은 은하수의 주인께서 어찌 이 누추한 곳까지 행차하셨습니까. 그 쉽게 말하는 이름이 타인의 것을 잠시 빌리는 것에 불과하다면, 이 옆의 아가씨는 누구이며 왜 동행하시는 겁니까? 필시 영애는 아닐 터. ”

 왼쪽 눈꼬리를 올린 채 공손하지만 불신하는 어투의 리브에게 가이온은 지지 않으려 했다. 이 엘프가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는 몰랐지만, 그는 적어도 보통 사람이 아닌 영주의 아들이었다. 답을 찾으려는 자, 먼저 답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 내가 지니고 있는 검의 문장을 확인하게. 정교해 아무나 흉내낼 수 없네. 흉내낼 배짱의 사내 들은 이미 목이 땅에 굴러다니고 있으니 말일세. ”

 “ … 이 아가씨는 누구입니까? ”

 “ 아마 내가 잠들어 있을 때 검의 문장은 확인했겠지. 내 하인인 마드린느 테르피 양일세. ”

 “ 수발인과 사랑의 도피중이었던 모양이군요. 못 본 체 해드릴 테니 걱정은 마시지요. ”

 “ 티그리스 가문을 수호하는 강, 티그리스 여신의 영혼을 걸고 말하는 바, 우리는 여신으로부터 엘제나의 소원을 이뤄주기 위해 왔네. 그녀가 우리에게 명했네. 엘제나의 소원을 대신 들어주라고 말일세. ”

 티그리스 여신의 영혼을 걸고 말을 한다는 것은 자신과 자신의 과거와 미래, 머나먼 후손까지 이어지는 말이었다. 이는 절대적인 사실에만 말할 수 있었으며, 거짓이나 불이행될 약속에 자신의 이름을 들먹이는 자에게는 여신의 분노가 그 주위를 떠나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었다. 실제로 신의 이름을 잘못 말한 자들에게 좋은 결말이란 있지 못했다. 이는 사실이었다.

 “ 그리 말씀하신다면 사실이 맞겠지요. 엘제나를 만나러 가시겠습니까? 지금 안내를 해드리지요. ”

 긴 소맷자락을 휘두르며 앞장서는 리브에게 비장함이 엿보였다.

 둘은 지하실로 들어갔다.

 길고 좁은 통로 끝에 작은 함이 있었다.

 그 위에는 꽃 몇 송이가 놓여져 있었다.

 비석이 있었고 그 위에 써있는 글귀는 다음과 같았다.

 [엘리브제나, 아이들의 어머니, 이곳에 잠들다.]

 가이온과 마드린느는 자신들의 두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니었다.

 마드린느는 비석을 한참동안 쳐다봤다.

 ‘ 본명은 엘리브제나. 애칭은 엘제나. 중간에 있는 이름은 리브? ’

 뒤를 돌아 엘프를 쳐다봤다. 눈길을 피하는 엘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 네, 그녀는 제 어머니입니다. 엘리브제나, 오늘은 그녀의 기일입니다. ”

 가이온과 마드린느는 죽은 자의 소원을 들어줘야만 했다.

 

 리브가 향에 불을 붙이며 함에 말을 걸었다. 알싸한 향이 공간을 금새 채웠다.

 “ 어머니, 손님들이 오셨습니다. 티그리스 여신께서 보냈다고 하더군요. 여신께서도 어머니가 보고싶으신가 봅니다. ”

 청록색의 맑은 두 눈이 탁해지더니 눈물이 방울방울 맺혔다. 목소리도 떨렸다.

 “ 저도… 어머니가 보고 싶습니다. ”

 

 그제서야 그들은 이 엘프가 가지고 있던 17세 소년의 감수성을 느낄 수 있었다. 리브의 생김새는 오묘해서 13세 살의 아이에서부터 넓게는 20대 초반까지 보여 나이를 쉽게 가늠할 수 없게 했다. 더군다나 아이들을 볼보고 다른 이들을 대하는 면모는 성숙해서 어린 나이라 여겨지지 않게 했던 것이다.

 낮의 리브와 지금의 리브는 분명 다른 모습이었다. 불 같은 성질을 드러내기도 하고, 어머니에 대한 울음을 숨기지도 않았다. 똑똑하기는 했으나 자기 감정을 자신도 잘 조절하지 못하는 듯 했다. 사람에 대한 불신도 감추지 않았다. 정중하고 친절한 선생님으로만 보였던 모습은 철저하게 계산된 모습이었으리라. 그래야만 어린 아이들이 존경심을 갖추고 따를 것이다.

 가이온과 마드린느는 조용히 죽은 자에 대한 예를 갖췄다. 마저 향을 올렸고 공손하게 절을 올렸다. 사후에 대한 평화가 함께하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다.

 ‘ 17세란 나이에서 이렇게 어른스럽기까지 그는 얼마나 많은 가면을 써야 했을까. ’

 마드린느는 과거의 자신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착잡했다.

 

 리브는 조용히 그들을 창고로 안내했다. 아이들이 모두 잠들어 있었지만 예민했다. 미세한 진동이나 소리도 크게 울리는 밤에서 다른 곳에서는 대화를 나누기가 어려웠다.

 리브가 문을 잠그고서는 조금의 자상함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냉랭하게 말했다.

 “ 일을 마저 처리합시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머니의 이름이 들어간 일이 제대로 끝날 것 같지가 않군요. ”

 등받이가 있는 의자에 앉은 리브는 팔짱을 낀 채로 질문을 던졌다. 소매 자락이 흩날리며 지붕 밑에 금새 떨어져버리는 물방울을 닮을 형태를 취했다. 전의 울먹거리던 소년과는 다른 가면을 쓰고 있는 그는 엄격하고 진지한 지도자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흡사 과자를 몰래 훔쳐먹다 걸린 아이를 취조하는 모습 같았다. 많은 아이들을 혼자서 통제하려면 그 정도의 면모는 있어야 되는 걸까.

 “ 어머니의 소원을 들어준다고요? ”

 차가운 얼음장 같은 질문이었다. 냉소가 들어있는 얼음이었다. 대체 당신네들은 무슨 생각인거냐, 라는 속뜻이 들어있는 질문.

 이제서야 엘제나가 엘리브제나의 애칭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의 소원을 들어줘야 자신들의 온전한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가이온과 마드린느는 겨우 이런 곳에서 물러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알아낼 수 있는 부분까지는 다 알아낼 생각이었다. 그녀의 과거에 대해서 들어야 했다. 필요하다면 너무나도 사적이라고 여겨지는 일화들까지도 캐물을 것이며, 생전에 좋아했던 꽃은 어떤 것이었는지, 가장 좋아했던 음식은 어떤 것이었는지 모조리 알아내야 했다. 직접 입으로 소원을 들을 수 없는 상태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추적과 추측밖에 없었다.

 어떤 질문을 먼저 던져야 할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그들에게 선뜻 리브가 내민 것은 한 권의 책이었다. 겉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 쥴랑드 고아원 일지 ’

 보잘 것 없어 보이는 표지에 화려한 글씨체였다. 잉크와 펜만으로 이렇게 글씨를 잘 쓰기도 쉽지 않았다.

 “ 유일한 어머니의 유품입니다. 돌아가시기 직전에 소지품들은 다 태우시더니 이것만은 계속 남겨달라 말씀하셔서 제가 가지고 있었습니다. 살펴보시지요. ”

 마드린느는 리브가 이렇게 선뜻 유품을 내놓은 이유는 무엇인가 싶었지만 모든 게 가이온 덕분이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아무리 화가 난다 해도 영주 가문 사람, 그것도 영주의 아들임을 스스로 밝혀 모른 체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지킬 선은 지켜야 그에게도 폐가 가지 않을 터였다.

 마드린느와 가이온은 일지를 받아들고서는 처음부터 읽기 시작했다. 내용은 단순했다.

 

 116년 1월 5일.

 홀테, 마이, 리가 컨디션이 좋지 않아 우선은 안정을 취하게 함.

 타일러가 5일장에 다녀오고 싶다고 얘기함.

 자금이 약간 부족하다.

 다음주에 고아원에 물품을 기부하러 사람들이 올 예정. 다과 준비 필요.

 

 …..

 

 116년 3월 5일

 텃밭의 수확이 예상보다 적음.

 다른 곳에서의 기부 필요.

 아이들은 건강하나 감기 기운이 있어 과일과 야채를 많이 넣은 요리로 식사를 준비할 것.

 

 ….

 116년 4월 9일

 날씨가 좋아 아이들을 데리고서 물놀이를 시켰다.

 아이들이 매우 좋아했다.

 바흐와 벤이 다퉈서 둘을 일단 띄어놨다. 반성문을 쓰고 화해를 시킬 생각이다.

 다행히 자금은 아직까지는 부족하지는 않다.

 필요한 물품 : 상추 씨앗, 토마토 씨앗, 오리 3마리, 거미 10마리.

 다음 5일장에서 구매할 것.

 

 ….

 

 죄다 이런 내용이었다.

 말 그대로 ‘일지’ 에 불과했다.

 엘제나가 살아 생전 쥴랑드 고아원을 운영하며 있었던 일들만 적어 넣었을 뿐 그녀에 대한 정보는 알 수 없었다.

 어떤 성격의 엘프였는지, 호탕한 성격이었는지, 아니면 세심하고 자상한 예술가 타입의 글씨를 잘쓰는 엘프였는지 조차 추측할 단서는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왜 여기 고아원을 운영하고 있는 것인지, 왜 하필 여기, 이곳에서 살다가 죽음을 맞이한 것인지.심지어 남편과 자식 리브에 대한 이야기도 없었다.

 이렇다면 객관적인 수치만을 적어놓은 장부에 불과했다. 아니, 장부라면 세세하게 적어놓고 합과 차를 계산해 놓을 수도 있다. 이건 듬성듬성하면서도 짤막해 앞뒤를 파악하기도 힘들었다. 흐름도 없었다.

 이제 어쩔 것인가?

 한숨을 쉬며 가이온이 책장을 덮으려 했다. 더 이상 봐도 얻을 게 없다고 여긴 것이다. 몇 번이나 다시 전체를 다 읽어봤지만 내용은 변하지 않았다.

 마드린느는 글씨체가 예술이라고 생각했다. 희한하게 글자들이 깔끔하게 끝이 나지 않고 부분부분에 틈새가 없게 조금씩 연결이 되어 있었다.

 ‘ 이런 게 엘프 종족만의 예술성인가? ’

 내용보다는 특이한 글씨체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냥 잘썼다는 감상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다른 감상을 주었다.

 서로 이어져 있는 글씨들…

 손을 잡고 함께 달려가는 아이들 같은 글자들로 일지를 가득 채운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보는 만족감을 느끼기 위해서? 고아원을 운영하기도 바빴을 텐데, 이런 여유가 그렇게 설명이 되는 걸까?

 글자들이 흘러가면서 원을 만들고선 빙빙 돌면서 춤을 추는 것 같았다.

 방긋 웃으면서 쉴새 없이 돌고 도는 글자들이 속삭였다.

 아무도 들어서는 안 된다는 듯이, 오직 마드린느만이 들을 수 있게.

 

 

 

 

 그래, 우린 춤을 추고 있어.

 우린 별이니까, 우린 젊으니까,

 우린 춤을 추고 있어!

 거울의 성에서도, 빛을 만나지 못할 때에도,

 우린 항상 춤을 추고 있어!

 

 

 

 

 낭만적으로만 들리는 구절들이었다. 빛나는 청춘의 춤이라. 그것도 거울의 성에서라. 거울의 성. 거울의 성에서 빛이 없어도 춤을 추는 우리.

 ‘춤을 함께하려면 우선 거울의 성으로 들어가야겠지?’

 휴대용 손거울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일지의 첫 페이지를 열어보고서는 거울에 비춰봤다.

 [이 글을 읽을 때 쯤이면…]

 리브와 가이온이 마드린느의 행동을 미심쩍게 바라보다가 거울 속에 비친 글씨들을 보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단순한 사실들을 나열해놨던 일지가 다르게 읽혔던 것이다.

 리브가 구석에 놓여져 있던 사람 얼굴만한 거울을 가져왔다.

 이번에는 제대로 일지와 거울을 마주하게 했다.

 서로 연결되어 있던 글씨들은 거울 속에서는 매우 다르게 읽혔다.

 가이온과 리브, 마드린느 셋 모두 놀랐지만 그 중에서 유독 놀란 것은 가이온이었다.

 ‘ 이게 말로만 듣던 엘프들의 솜씨인가? 과연 놀라운데. 아무나 읽을 수 없다는 건가. ’

 하빈 학원에서 열심히 엘프들에 대해서 책을 찾아보고 수업을 들었던 그였다.

 그러나 엘프들의 장난이나 마법보다도 더 마법 같은 재주는 경험하지 않은 이상 그저 사람들의 요깃거리로 채우는 이야기마냥, 한낮 공상으로만 다가오기도 했었다.

 하지만 실제로 경험해 보자 허를 찌르는 재주에 대해서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엘프 엘리브제나는 일지를 기록하면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동시에 써 내려간 것이다. 그러고서는 이 일지만 남겼다.

 다른 물품들은 태웠지만 직접 이 일지만은 남겼다.

 이런 깔끔한 전개에 가이온은 엘리브제나가 여기까지 계산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일지만으로, 그것만으로는 충분하다는 배려까지도.

 그리고 마드린느의 얼굴을 쳐다봤다.

 ‘ 이런 일도 다 알고 있었던 건가, 엘제나는? ‘

 반면, 리브는 섭섭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자신의 어머니가 남긴 일지인데.

 유일한 유품인데.

 단 하나의 유품조차 그 속뜻을 읽어낸 게 아들이 아니라 낯선이라니.

 그리고 이런 방법조차 일러주시지도 않고 가시다니.

 왜 그러셨던 건지, 자신을 생각하시기는 하셨던 건지 어머니가 야속했다.

 그런 속내를 차마 다른 사람들 앞에서 드러낼 순 없었다.

 그냥 거울을 바라보고서는 새로 나타난 글자들을 읽어내는 일에 집중했다.

 일지에서 새롭게 읽을 수 있었던 내용은 이랬다.

 

 이 글을 읽을 때쯤이면 난 이 세상에 없겠지, 리브.

 나의 사랑스러운 아들아.

 만약에 하는 말이지만, 설사 네가 읽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고 해서 너무 자책하지 말거라.

 네가 다른 이의 모든 장점을 가질 순 없는 법이다.

 안타깝게도, 네가 이걸 읽는다는 게 마냥 좋은 뜻만은 아니겠구나.

 시간이 없으니 본론부터 말하겠다.

 나야 인간들과 너무 동화되어 버려 죽음이란 것에 가까워지게 되었지만,

 너만은 고향으로 돌아가길 바란다.

 우리 가문의 이름은 ‘투르크’ 다.

 투르크 가문은 울지 않는 산맥에서 엘프를 다스려 왔지.

 그곳으로 가거라.

 널 받아줄게다.

 내가 죽은 뒤에는 아무도 널 보호해 줄 존재가 없다는 게 염려가 돼 편히 눈을 감기가 힘들구나.

 책 끝장을 펼쳐보면 깃털 3개가 있을 거다.

 산맥으로 갈 때 사용하거라. 유용할게다.

 그럼 이만 써야겠구나.

 아이들이 일어날 때가 다 되었어.

 한 번 읽은 글은 태워지니 조심하렴.

 

 사랑을 담아서, 엘리브제나 투르크.

 

 PS. 뛰어내리기 전 휘파람 부는 거 잊지 말고.]

 

 리브가 황급히 일지의 뒷 장을 펼쳐보았다.

 아까는 분명히 없었고, 지금까지 수없이 일지를 펼쳐보았지만 전혀 낌새도 채지 못했던 깃털 3개가 곱게 들어 있었다.

 분홍빛과 흰 색이 얇게 섞인 벚꽃과도 같은 색의 깃털 3개가 리브의 손에 들어왔다.

 보기에는 그저 평범해 보여 딱히 어떤 새의 깃이라고 단정지어 말하기는 힘들 정도였다.

 무난한 깃털들을 잘 챙긴 리브는 어머니의 소원이 방금 드러났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팠다.

 죽기 전에 이미 자신의 죽음까지는 알 수 있었지만, 그 이후에는 리브를 돌봐줄 수 없어 다른 이들에게 돌아가라고 말하는 어머니였다.

 자신의 소원을 여신에게 빌어도 될 법하거늘…

 ‘ 당신은 왜 사후에도 저를 위해 이런 일을 마련하신 건지. ‘

 어머니의 소원은 하나뿐인 아들이 종족에게로 돌아가 안전하고 오랜 수명을 누리는 것이었다.

 리브는 여태까지 성이 없는 채로 살아왔지만 이제 자신의 성이 원래 ‘투르크’ 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리브 투르크.

 쥴랑드 고아원의 리브가 아니라, ‘울지 않는 산맥’ 의 ‘리브 투르크’ 였다.

 얄궂게도 자신의 뿌리와 출신에 대해 정성스레 말해주는 이 한 명 없이 그저 일지의 몇 줄로 알게 되었고 그로 인해 정체성까지 흔들릴 수 있게 된 엘프에게 변화를 지지해줄 버팀목은 없었다. 받아들이는 것은 모두 리브란 엘프에게 달려 있었다.

 엘프였지만 그는 태어나서부터 줄곧 인간들과 함께 살며 웃고 뛰놀며 생활했다.

 아침에는 인간들과 같이 기상했고, 같이 멱을 감았으며, 잘못했을 때에는 인간들과 같은 방식으로 혼이 났었다.

 몸은 엘프의 것이었지만 마음과 정체성 모두 인간의 것을 가지고 있었다.

 혈통적인 면에서 인간들과는 다르다고 해도 엘프에 대해서는 아는 것도 없었고, 정도 없었다.

 물론 그도 그가 엘프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지만 엘프라고 해서 특별하게 갖게 되는 능력이나 재능에 대해서는 자기 자신이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에 참석한 종족은 오로지 인간들이었을 뿐 리브를 도우러 온 엘프는 한 명도 없었기에, 그는 엘프에 대해, 자신의 종족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다고 하기는 어려웠다.

 그런 리브에게 어머니는 얼굴조차 본 적 없는 이들에게 돌아가라고 말하고 있다.

 어머니, 그렇기에는 너무나도 ‘투르크’ 란 성은 먼 이름이 아닌가요.

 저를 한 명의 인간으로 키우셔놓고서는, 이제는 어머니의 종족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네가 변해야 할 때라고 말씀하시나요.

 인간과 많은 면을 닮아버린 17세의 엘프는 롤랑드의 17세 소년이라고 보아도 무리가 없는 것을요.

 그렇다고 해서 이를 흘러가는 말로 치부하기에는 타이밍이 묘했다.

 어머니의 소원을 들어주려고 하려는 칭하는 자들이 와서 숨겨져 있던 글을 읽었는데, 그 글에 울지 않는 산맥으로 가라고 적혀 있었다…

 이럴 때 일수록 어머니, 엘리브제나의 일침이 필요한 시기였지만 그녀는 다른 곳에서 숨을 쉬고 있은 지 오래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혼자서 고아원을 이끄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이들을 돌보는 것도, 기부를 받는 것도, 뭐 하나 쉬운 일이 없었다.

 도와주는 둘째 타일러가 없었더라면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다행히 아이들은 잘 자라줬고, 어느 정도 머리가 큰 아이들이 어린 동생들을 잘 다독여주고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이 떠나야 할 때 인 건가.

 이들과 함께.

 낯설게 이 곳에 흘러 들어온 이들과 함께 어머니의 소원을 위해 떠나야 하는 것인가.

 아들로써, 낯선 이들도 그저 약속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이리 저리 떠도는데 그보다 못한 행동을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이 길이 어머니의 영혼을 위하는 길이라면.

 자신의 뿌리를 찾아 떠나는 일이 어머니가 원하셨던 일이라면, 갈 것이다.

 

 가이온은 ‘엘프의 의지가 물건에 남아 보여주고 싶은 부분을 시간을 맞춰 보이게 한 것’ 이라고 말했다. 이는 엘프들의 특별한 솜씨 중 하나라고 했다.

 

 마드린느는 어머니의 소원이 울지 않는 산맥으로 가는 것이라면, 기꺼이 동참하겠다고 말했다. 가이온도 물론 동의했다. 그들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엘제나의 소원이 이뤄지지 않으면 그들은 생에 대해 이별을 고해야 할 처지라고 했다.

 

 리브는 두 남녀를 침대로 보냈다.

 

 밤이 깊었던 것이다.

 

 셋 모두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한 명은 갑작스레 닥치게 된 떠남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었고, 다른 둘은 리브가 떠나지 않겠다고 말할 까 염려를 하고 있었다. 이들도 앞으로 어떻게 가야 할 지, 소원이 이런 식인 줄은 몰랐던 것이다.

 

 다음 날 아침, 식사 테이블에서 아무런 말도 오가지 않았다.

 

 덜그럭거리며 식사하는 소리와 딱딱한 음식물을 씹는 소리만 간간히 들을 수 있었다.

 

 으깨진 감자 샐러드와 강낭콩, 버터와 샤워크림을 위에 올린 고구마, 소금과 후추를 뿌려 아삭하게 씹히는 식감이 좋은 오이 따위가 식탁 위에 올려져 있었다.

 

 식사가 얼추 끝나자 각자 그릇을 정리하게 되었다.

 

 곧 있으면 아이들이 일어나 또 정신이 없을 것이다.

 

 일과가 시작되기 전 가볍게 티타임을 가진 세 명은 간소한 차 도기만을 바라보며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 오늘 당장 떠나기로 하죠. ”

 

 리브가 말했다.

 

 “ 고아원이야 다행히 저보다 어린 타일러가 잘 돌볼 수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아이들도 전과는 달리 많이 컸고, 서로를 돌볼 줄 알게 가르쳐놨으니까… ”

 

 잠깐의 침묵.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말.

 

 “ 지금 떠나고 싶네요. ”

 

 가이온과 마드린느는 다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만 끄덕이며 찻잔을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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