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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내겐 너무 소중한 그대
작가 : 카렌
작품등록일 : 2017.10.30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마술사학교'의 최종우승자 마술소녀 윤제이. 한달 전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아빠의 죽음에 무언가 숨겨진 음모가 있는 게 분명하다며, 제이의 주변 사람들을 차례차례 의심하는 수상한 그놈이 나타났다. 그놈의 정체는 사생활이 철저하게 비밀에 휩싸여 있는 독일에 국민마트 CEO 강철수. #티격태격, #알콩달콩, #로맨틱코미디, #츤데레 남주, #당찬 여주 habilis21@naver.com

 
39.품에 안긴 가녀린 몸
작성일 : 17-11-16 19:53     조회 : 237     추천 : 0     분량 : 7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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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대에 일찍 누웠지만, 새벽 2시가 되도록 잠에 빠지지 못한 제이는 결국 침대에서 일어났다.

 

  '왜 이렇게 잠이 안 올까.'

 

 결국 제이는 얇은 카디건을 어깨에 걸치고 거실로 나왔다.

 

 캣타워에서 꿀잠을 자는 노랑이가 깰까봐 제이는 불을 켜지 않고, 거실 소파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ㅡ 제이 씨, 우리 형 잘 부탁해요.

 

 오랫동안 잠들지 못한 이유는 계속 제이의 머릿속에 태오가 한국을 떠나기 전 자신에게 남겼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내가 과연 철수 씨를 도와줄 수 있을까.'

 

 만약 자신에게 철수를 도와줄 능력이 있다면, 얼마든지 도와주고 싶었다.

 

 하지만 제이는 철수가 겪고 있는 고통에서 영원히 해방해 줄 자신이 없었다.

 

 태오가 생각하는 것보다 자신은 훨씬 더 약한 여자였으니까.

 

  ㅡ 제이 씨가 형 곁에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철수가 자신의 곁에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순간이 훨씬 더 많았던 제이는 태오의 말이 의아스럽게만 했다.

 

  '철수 씨도 내가 철수 씨 곁에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할까.'

 

 제이는 문득 철수가 자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ㅡ 제이 씨랑 있을 때 형은 평소보다 훨씬 더 편안해 보이는 것 같아요. 독일에 있을 때보다 지금 형의 마음에 안정이 생긴 것 같다고 해야 할까.

 

 항상 수수께끼 같은 미소만 짓는 철수의 속마음을 알 수 없었지만, 다행이도 제이는 자신의 진심은 분명하게 잘 알고 있었다.

 

 매일 약을 먹어야지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철수를 도와주고 싶었다.

 

  '철수 씨는 나한테 정말 소중한 사람이니까.'

 

 제이는 다부진 표정으로 주먹을 곽 움켜쥐면서 속으로 읅조렷다.

 

  '할 수 있어, 윤 제이!'

 

 복잡했던 문제에 간단하게 결론을 내리자, 무거웠던 가슴이 한결 가벼워진 제이는 천천히 소파에서 일어났다.

 

 며칠 동안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던 문제가 해결되자, 참았던 졸음이 밀려왔다.

 

  "흐윽, 하앗……! 으흑!"

 

 망으로 돌아가려고 했던 제이는 철수의 방에서 들려오는 신음에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이 소리는 뭐지……?'

 

 분명히 들뜬 남자의 신음에 들리고 있었다.

 

  '철수 씨의 방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제이는 잠시 망설이다가 살짝 열려있는 철수의 방에 조심스럽게 귀를 가져다 대었다.

 

  "……허억, 으흑! 헉! ……하아."

 

 분명히 신음을 흘리고 있는 남자의 목소리는 철수의 것이었다.

 

 제이는 철수가 고통에 몸부림치면서 신음을 내뱉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안절부절못했다.

 

 그가 걱정되었던 제이는 당장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방문을 열고 함부로 들어가는 것은 조금 망설여졌다.

 

 그렇다고 괴로워하고 있는 철수를 이대로 내버려 둘 순 없었다.

 

 방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던 제이는 여자의 이름을 부르는 철수의 목소리를 듣고 동작을 멈췄다.

 

  "하나야, ……하나야! 이하나! 어서 도망쳐!"

 

 그리고 잠시 후 신음을 내뱉던 철수가 깊은 잠에 빠졌는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멍한 표정을 지은 제이는 한동안 철수의 방문 손잡이를 부여잡고 서 있었다.

 

 

 

 ***

 

 

 

 청와대 상춘재에서 열린 간담회에 참석한 기업인들 사이에서 철수와 정혁은 단연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건배!"

 

 찰칵찰칵.

 

 한데 모인 기업인들이 맥주 잔을 들고 우렁찬 목소리로 건배를 하자, 기자들은 앞다투어 플래시를 터트렸다.

 

 기자들 사이에서 가장 취재 경쟁이 치열한 기업인은 한국에서 마트 점유울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신세상'의 이정혁 사장과 보육원 출신으로 독일에서 성공한 이후 한국으로 금의환향한 '말디'의 강철수 대표였다.

 

  "역시 이 사장은 날이 갈수록 더 잘생겨지는 것 같아. 꼭 젊었을 때 나를 보는 것 같아."

 

  "요번에도 '신세상'이 시장점유율 1위를 했다지? 역시 이정혁 사장이 '신세상'에 들어온 이후로 승승장구하는 구먼."

 

  "아닙니다.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정혁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면서 겸손한 어조로 대답했다.

 

  "이봐, 이 사장, 요즘 혹시 만나는 여자 있나?"

 

  "……네?"

 

 건설업계에서 큰손이라고 불리는 윤 회장이 핸드폰으로 한 여자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예쁘지 않나? 내 여식이라네. 머리가 좋아서 공부도 잘했고 지금은 시향에서 첼로를 연주하고 있네."

 

 윤 회장의 말에 담긴 의미를 알아들은 정혁이 조용히 미소만 지었다.

 

  "어떤가? 마음에 들면 내가 소개해주겠네."

 

  "……."

 

 적극적인 윤 회장의 태도에 난감해진 정혁은 입을 한일자로 꾹 다물었다.

 

 사실 사업을 하면서 만나는 회장님들이 딸을 소개해주겠다면서, 적극적으로 선 자리를 주선할 때가 제일 난감한 순간이었다.

 

  "죄송합니다. 윤 회장님. 저는 당분간 일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정혁은 가볍게 목례를 하고 자리를 피했다.

 

 간단하게 한입에 먹을 수 있는 안주가 놓여 있는 테이블로 온 정혁은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기업인들과 정계 관계자들이 모여서 서로 허심탄회하게 소통을 하는 것은 회사를 운영하는 정혁에게 굉장히 유익한 자리였다.

 

 서로 미래 사업의 전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기업을 운영하면서 어려웠던 점에 대해서 선배님들께 좋은 조언도 얻으니, 한달 전부터 골치가 아팠던 회사일을 쉽게 해결할 수 있을 듯 했다.

 

 특히나 오늘 간담회는 야외에서 생맥주와 함께해서 그런지 분위기가 더할나위 없이 좋았다.

 

  "……."

 

 분위기도 좋고, 술맛도 좋고, 모든 것이 좋고 즐거운 밤이었지만, 정혁의 표정에는 그늘이 져있었다.

 

  ㅡ 죄송해요. 정혁 씨. ……전 정혁 씨랑 지금처럼 지내는 것이 더 좋아요.

 

 정혁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여자에게 차였던 순간이 잊히질 않았다.

 

 중학교 때부터 연애사업을 시작했던 정혁은 항상 여자에게 먼저 대쉬하고, 항상 여자에게 먼저 이별을 고했다.

 

 사업이나 연애나 정혁은 언제나 발 빠르고 적극적으로 행동했으며, 어떤 여자도 자신을 거부하지 않았다.

 

  "제이에게 보기 좋게 차였군."

 

 씁쓸해진 정혁은 생맥주를 단숨에 들이키고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ㅡ 난 앞으로 제이 씨랑 친한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싶어요.

 

  ㅡ …….

 

  ㅡ 마술사의 팬으로 가끔 만나도 되겠죠?

 

 마지막으로 미련을 버리지 못해서 했던 말이었지만, 정혁은 자신과 제이는 절대 연인 사이로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때 그 순간에 정혁은 그답지 않게 작은 희망을 마음에 품었지만,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니 승산없는 게임이었다.

 

  "강철수 대표님, 여기 한 번만 봐주세요."

 

  "잠깐 우리 방송국과 인터뷰해주시면 안됩니까?"

 

  "강철수 대표님, 사진 한 장만 찍을게요!"

 

 기자들은 서로 철수의 인터뷰를 따내려고 고군분투하는 모습이었다.

 

 정혁은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철수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보육원 출신으로 무작정 독일에 가서 국민 마트라고 불리는 '말디'를 창업한 철수를 정혁은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었다.

 

 그가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이 수많은 실패와 엄청난 노력 끝에 얻은 것이라는 것이 눈에 보였다.

 

  "……."

 

 하지만 정혁은 철수를 그저 고운 눈길로 바라볼 수는 없었다.

 

  ㅡ 안녕하십니까, 이정혁 사장님. 저는 '말디'의 대표이사 감철수라고 합니다.

 

 처음 제이의 공연장에서 그를 만났을 때부터 철수가 제이를 특별하게 대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제이를 바라보는 철수의 눈빛에는 평소와 다르게 다정함과 따뜻함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철수가 독일로 떠난다는 소식을 듣고 정혁은 속으로 뛸 듯이 기뻤다.

 

 철수가 없는 동안 정혁은 살들하게 그녀를 옆에서 보살폈다.

 

  '그런데 설마 같이 살고 있었을 줄이야.'

 

 어느새 제이와 함께 사는 철수를 보고 정혁은 그에게 한 방 제대로 먹은 기분이었다.

 

  "……후우."

 

 정혁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분하지 않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겠지.'

 

 아직 제이는 연애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지만, 정혁은 같이 살고 있다는 철수가 무척 거슬렸다.

 

 연애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던 제이가 연애를 하게 된다면, 그 상대는 바로 앞에 있는 강철수일 것이다.

 

  "오랜만입니다. 강철수 대표님."

 

 정혁은 속으로 썩어 문드러지는 마음을 숨기고 그에게 다가가서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그의 속사정이 어찌 되었든 여기는 보는 눈들이 많았고, '말디'의 대표인 철수와의 관계가 흐트러지는 것 또한 '신세상'에겐 악재일 것이다.

 

  "……반갑습니다."

 

 타이 없이 블랙 와이셔츠를 풀어헤친 철수도 평소와 다르게 정중하게 그의 인사를 받았다.

 

 철수도 딱히 자신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에 정혁은 가볍게 목례를 하고 뒤를 돌아섰다.

 

  "저기요, 이 사장님."

 

  "……?"

 

 '사장님'이라는 호칭을 써서 깍듯하게 부르는 철수의 목소리에 정혁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깐 할 얘기가 있습니다."

 

 정혁은 철수와 함께 조용한 곳으로 가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 이곳에서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네, 강철수 대표님과 함께 맥주를 마시니까 저도 기분이 좋군요."

 

 영혼 없는 인삿말을 주고받은 정혁과 철수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

 

  "……."

 

 두 사람 사이에서 가라앉은 침묵은 어느 때보다 무거웠다.

 

  "제이가 이 사장님을 많이 따르더군요."

 

 정혁은 씁쓸한 표정을 감추기 위해 손에 들고 있던 맥주를 마셨다.

 

  "제가 독일에 없는 동안 제이를 많이 챙겨주셨다고 들었습니다."

  "네, 그랬습니다."

 

  "……이 사장님이 부럽군요."

 

 철수의 입에서 의외의 말이 튀어나오자 정혁의 동공이 커다랗게 벌어졌다.

 

 고개를 돌려 바라본 철수의 옆모습을 무척이나 씁쓸하고 쓸쓸해 보였다.

 

  "'부럽다'라는 게 무슨 말씀이신지……."

 

 정혁이 살짝 말끝을 흐리자 철수가 계속해서 말꼬리를 이어갔다.

 

  "제이는 언제나 나와 있을 때 긴장하는 것 같은데 이 사장님과 있을 때는 무척 편해 보이더군요."

 

  "……."

 

  "내가 원래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이 아닌데, 유독 제이 앞에 서면 긴장해서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집니다."

 

 얼마 전에 자신이 제이에게 차인 것을 철수는 모르는 듯했다.

 

  "제이 씨한테 조금 더 다정하게 대해 주세요."

 

 숨길 필요 없는 사실이었지만, 자신이 제이에게 거절당한 것을 철수에게 입을 열고 싶지 않았던 정혁은 입을 다물고, 사람들이 있는 자리로 다시 돌아왔다.

 

 

 

 ***

 

 

 

 청와대에서 열린 오찬이 끝나자마자 집으로 돌아온 철수가 시계를 바라보니 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ㅡ 제이 씨한테 조금 더 다정하게 대해 주세요.

 

 정곡을 찌르는 정혁의 말에 철수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자신이 그동안 제이에게 다정하게 대해주지 못했던 일들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몸 상태를 걱정해서 말을 걸어오는 제이를 향해 매몰차게 대답했던 일.

 

 그의 발작 증세를 보고 놀란 그녀에게 다정하게 다가가서 위로해주지 못한 일.

 

 바닥에 떨어진 유리 조각을 보고 눈동자가 흔들리는 그녀에게 제대로 된 변명조차 하지 않은 일.

 생각하면 모두 후회되는 일뿐이라서 철수는 심장에 가시가 박힌 듯 욱신거렸다.

 

  '난 제이에게 받은 것이 많은 데, 내가 그녀를 위해서 해준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

 

 손가락으로 미간을 매만지던 철수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덜컹.

 

 부엌에서 나는 이상한 소리에 철수는 문을 벌컥 열고 밖으로 나갔다.

 

  "제이."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머리를 매만지던 제이가 철수를 보고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

 

  "무슨 일입니까?"

 

  "아니에요. 철수 씨. 별일 아니에요."

 

 철수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플라스틱 컵을 주우면서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이건 왜 떨어져 있는 겁니까?"

 철수가 묻자 제이는 난처해 하며 어색한 웃음만 지었다.

 

  "그런데 이게 다 퉙니까?"

 

 식탁 위에는 각종 향초와 아로마 오일 그리고 상추가 가득 쌓여있었다.

 

  "이게 뭐냐면요……."

 

 그녀와 눈이 마주친 철수가 살짝 고갯짓을 하자, 제이는 전문 쇼핑호스트처럼 식탁 위에 올려져 있던 물건들을 하나하나 설명했다.

 

  "이건 시나몬 캔들이에요."

 

  "시나몬 캔들이요?"

 

  "네, 저는 몰랐는데 계피 향이 불면증에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이건 애플 캔들인데 불을 켜면 상큼한 사과향이 풍겨 나와요."

 

 제이는 직접 지포 라이터를 켜서 애플 초에 불을 붙였다.

 

 불을 켜고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 제이가 후, 하고 바람을 불어 촛불을 끄자, 상큼하고 달콤한 사과 향이 주위에 가득 퍼졌다.

 

  "정말 향이 좋군요."

 

  "그렇죠? 애플 캔들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캔들이에요."

 

  "그런데 이건 뭐예요?"

 

 철수는 식탁 위에 한 바구니 담겨 있는 상추를 보면서 다시 물었다.

 

  "제가 상추 차를 만들려고 준비한거예요."

 

  "상추 차요?"

 

 이름만 들어도 생소한 상추 차를 만들겠다는 제이의 포부 어린 목소리에 철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상추를 잘 말려서 물에 우리면 불면증에 좋은 상추 차가 된다네요."

 

 철수는 물끄러미 제이를 바라봤다.

 

  "왜요? 제 얼굴에 뭐 묻었어요?"

 

  "제이."

 

  "……네?"

 

 철수는 잠시 망설이다가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혹시 태오한테 무언가 들은 게 있습니까?"

 

 제이가 갑자기 불면증에 좋은 향초를 사들이고, 상추 차를 만들겠다고 부엌을 뒤집어 놓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짚이는 이유가 태오밖에 없었던 철수는 변화구 대신 직구로 제이에게 질문했다.

 

 동그랗게 눈을 뜨고 자신을 바라보던 제이가 새침하게 대답했다.

 

  "……아니에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철수는 손에 들고 있던 플라스틱 컵을 찬장 위에 올려놨다.

 

  "근데 이건 왜 떨어트린 겁니까?"

 

  "그게 사실은 위에 있는 찻주전자를 다시 꺼내려고 하다가 떨어트렸어요. 밤늦게 소란 피워서 죄송해요. 많이 화나셨어요?"

 

 조심스럽게 자신의 눈치를 살피는 제이를 보고 철수는 마음 한구석이 씁쓸해졌다.

 

 제이가 항상 자신 앞에서 편안하게 있지 못하는 것은 전부 다 자신의 잘못인 것만 같았다.

 

  "화 안 났어요. 제이가 안 다쳤으니까."

 

  "……."

 

  "제이가 다쳤으면 화났을 겁니다."

 

 철수는 키가 작은 그녀를 대신 해서 위에 올려져 있는 찻주전자를 내리기 위해서 손을 뻗었다.

 

 하지만 찬장 제일 높은 곳에 있는 찻주전자에 쉽게 손이 닿지 않았다.

 

 철수의 손끝을 바라보던 제이가 잽싸게 움직여서 작은 의자를 가져왔다.

 

  "제가 올라가서 꺼낼게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철수는 의자에 올라서서 찻주전자를 꺼내는 제이를 숨죽이고 바라보았다.

 

 만에 하나 제이가 의자에서 떨어질 것을 걱정한 철수는 밑에서 그녀가 떨어지면 다치지 않게 품에 안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한테 줘요. 내가 내려놓겠습니다."

 

 철수는 제이에게 찻주전자를 건네받아서 부엌에 있는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자, 이제 내려와요."

 

 제이는 찬장에 머리를 기웃거리며 의자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잠깐만요, 철수 씨. 여기 없어진 줄 알았던 가루 녹차가 있는 것 같아요."

 

  "가루 녹차요?"

 

 제이가 철수를 내려다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사실 가루 녹차가 어디있나 한참 찾았거든요. 여름에 시원한 녹차 마시면 맛있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더라고요. 그런데 여기 있네요!"

 

  "새거 사면 되잖아요. 위험하니까 그냥 밑으로 내려와요."

 

  "저것도 산지 얼마 안 된 거란 말이에요. 먹을 수 있을 거예요."

 

 제이는 찬장 깊숙한 곳에 있는 가루 녹차 통을 꺼내기 위해서 팔을 깊게 집어넣었다.

 

 철수는 불안한 눈빛으로 의자 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제이를 바라보았다.

 

  "그냥 내려오라니까요. 지금 제이가 얼마나 위험하게 매달려 있는지압니까?"

 

  "걱정 마세요. 노랑이보다 훨씬 안전하게 바닥에 착지할 수 있으니까. ……와, 잡았다!"

 

  "잡았으면 어서 빨리 내려와요."

 

  "네, 알겠어……어어!"

 

 제이가 의자 위에서 비틀거리자 철수는 잽싸게 그녀의 허리를 한쪽 팔로 낚아챘다.

 

  "꺄악!"

 

 의자에서 균형을 잃고 밑으로 떨어지는 제이를 다행히 안전하게 받은 철수는 그녀와 함께 바닥에서 몸이 겹쳐졌다.

 

 순간 사람을 매혹시키는 향기가 철수의 코끝을 강하게 자극했다.

 

 그녀가 다치지 않게 뒤통수를 받치고, 허리를 한쪽 팔로 감싸 안은 철수는 그녀의 머리에 코를 파묻고 진한 페로몬을 맡았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만드는 향에 취한 철수는 지그시 눈꺼풀을 감았다.

 

 그녀가 이렇게까지 사랑스러웠던가.

 

 품에 안겨있는 가녀린 몸을 떼어놓기 싫었던 철수는 더욱더 꽉 그녀의 몸을 끌어안았다.

 

 가만히 재이를 품에 안고 있던 철수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제이는 토끼같이 동그란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철수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앵두 같은 그녀의 입술로 향했고, 도톰한 아랫입술을 엄지 손가락으로 살짝 건드렸다.

 

  "처, 철수 씨?"

 

 제이의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 철수는 바로 제이의 위에서 내려왔다.

 

  "제이 안 다쳤죠? 그럼 다행입니다."

 

 민망해서 헛기침을 한 철수의 얼굴은 불타오르는 듯 상기되어 있었다.

 

  "그럼 잘 자요."

 

 철수는 황급히 자신의 방으로 들어와서 문을 걸어 잠갔다.

 

 지금 방문을 걸어 잠그지 않으면, 내면 속에서 꿈틀거리는 짐승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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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44.나중에는 내가 너 구해줄게. 2017 / 11 / 24 259 0 8193   
43 43.제이가 내 사무실에는 어떻게……? 2017 / 11 / 24 257 0 8265   
42 42.미래의 남편이요? 2017 / 11 / 22 249 0 8823   
41 41.짝사랑하는 여자의 속마음을 알아보는 법 2017 / 11 / 20 259 0 8481   
40 40.제이 씨, 우리 형이랑 사귀어요? 2017 / 11 / 17 238 0 8478   
39 39.품에 안긴 가녀린 몸 2017 / 11 / 16 238 0 7984   
38 38.내가 철수 씨를 좋아한다고? 2017 / 11 / 15 269 0 7784   
37 37.대표님, 제이 씨랑 데이트하세요. 2017 / 11 / 14 235 0 7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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