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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고마워 미안해 사랑해
작가 : 지평선
작품등록일 : 2017.10.31

30일 뒤에 지구가 운석에 충돌해 멸망한다.
지구의 멸망을 막으려는 영웅들의 이야기도 아니고,
멸망하는 지구를 분석하는 공상과학물도 아니다.

삶이 30일 남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그 사람들의 버킷리스트.

 
D-29, 고백
작성일 : 17-11-16 17:52     조회 : 259     추천 : 0     분량 : 50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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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3월 2일, 오후 3시 41분

 

 

 "15학번 새내기들은 과방 청소한다."

 

 '국어국문학과 회장 안동혁'

 

 명찰이 목에 대롱대롱 걸려있다.

 

 

 그 때, 갑자기 명찰을 가리며 청자켓이 불쑥 내 앞으로 끼어든다.

 

 "안녕, 아까 입학식 때 못봤는데. 넌 이름이 뭐야?"

 

 끝만 곱슬곱슬 하게 말려있는 중단발.

 옅게 진 쌍꺼플과 동그란 눈매.

 그녀의 발랄한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난 장노을이야."

 

 "아참, 보자마자 반말해버렸네. 96년생 맞아?"

 

 "응, 맞아."

 

 "아, 다행이다. 난 또 실수한 줄 알았네. 나도 96년생이야. 이름은 양소희. 친하게 지내자."

 

 

 소희가 내 옆으로 팔짱을 꼈다.

 까슬까슬한 청자켓의 감촉이 코트를 뚫고 밀려들어왔다.

 

 

 "귀여운 애들 둘이 붙어있네. 근데 귀엽다고 청소까지 봐줄 수는 없는데."

 

 아까 입학식 때 줄서면서 얘기했던 임혜성이란 사람이잖아?

 어두운 코트를 벗은 그의 인상은 조금 달라보였다.

 흰색 니트조끼가 잘 어울렸다. 자세히 보니 머리도 완전히 검다기보다는 갈색빛이 은은하게 도는 것 같고.

 

 "아이, 오빠. 별로 할 것도 없어보이는데요?"

 

 소희가 애교섞인 투로 투덜대며 말했다.

 

 

 "남자애들이 큰 물건 밖으로 꺼내놓으면 여자애들이 빗자루로 쓸고 청소한대."

 

 "누가요?"

 

 여전히 소희는 조금 귀찮은 듯 했고, 나와 낀 팔짱을 더욱 세게 옭아맸다.

 

 

 "학생회장 형이 그러던데?"

 

 "입학식날 무슨 청소야? 어휴, 이럴 줄 알았으면 입학식 오지 말걸. 그치?"

 

 소희는 이 대화에서 처음으로 나를 바라보며 억울한 표정으로 동의를 구했다.

 나는 어색한 미소로 화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사람 많아서 금방 끝날거야. 좀 있다 보자."

 

 임혜성은 소희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지나갔다.

 

 

 ..뭐야?

 

 

 "소희 너, 저 사람이랑 친해?"

 

 "별로? 왜?"

 

 "엄청 친해보여서."

 

 "저번에 새터왔을 때 보고, 오늘 본 게 다야."

 

 "아, 새터.."

 

 

 새내기놀이터의 준말. 입학하기 전에 같은 단과대학 사람들끼리 모여서 몇 박 몇 일로 친목을 다지는 여행(?)을 가는 것.

 부담스러워서 다들 안 갈 줄 알았는데, 그래도 간 사람들이 있구나.

 

 별로 친하지도 않은데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막 머리를 쓰다듬고 그러다니.

 드라마에서 보니, 저런건 서로 호감이 있을 때 하는 행동이던데.

 

 ..임혜성이 소희를 좋아하나?

 정작 소희는 아무렇지도 않아보이는데.

 

 아, 내가 왜 이런 걸 고민하고 있어?

 지금 이럴 때가 아니라, 다들 바쁘게 청소하는데 나도 뭐든 해야하지 않을까.

 근데 소희가 팔짱을 너무 꽉 끼고 있어서 움직일 수가 없네.

 

 "저, 소희야.."

 

 "어? 왜?"

 

 "이거 팔 좀.."

 

 

 "니들은 뭔데 거기서 노닥거려?"

 

 누군가 뒤에서 내 말을 끊었다. 근데 이거 어디서 많이 맡아 본 향수 냄새같은데.

 돌아보니 아까 화장실에서 핸드폰도 찾아주고 여기까지 데려다 준 언니.. 아니, 선배님.

 

 어쩐지 또각또각 소리도 낯설지 않다, 했더니.

 

 

 "다른 애들이 쓸고 있으니까 너네는 가서 걸레 빨아 와."

 

 "네."

 

 풀죽은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빠른 걸음으로 걸레를 빨기 위해 2층 화장실로 올라갔다.

 소희는 나를 앞질러 여자 화장실 안으로 쏙 들어갔다.

 나란히 선 두 개의 세면대 앞에 소희와 내가 나란히 섰다.

 소희는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지 물이 사방으로 다 튀었다.

 

 

 "노을이 너 아까 그 선배 알아?"

 

 "그 예쁜 여자 선배?"

 

 "우리한테 걸레 빨아오라고 한 그 선배말야."

 

 "응. 그러니까."

 

 "그 선배 소문 진짜 안 좋대."

 

 

 다시 한 번 그 선배를 머리에 그렸다.

 흰색 미니스커트에 높은 굽의 구두. 밝은 머리 색깔과 화려한 화장.

 선배가 뿌렸던 향수 냄새와 규칙성있게 또각거리던 구두 소리도 떠올렸다.

 

 조막만하고 하얀 얼굴, 화장때문인지 위로 빠진 눈꼬리.

 예쁘긴 했지만 결코 좋은 인상을 주는 얼굴은 아니었다.

 게다가 차갑고 도도해보이지만 만리장성 같은 철벽상이 아니라 여지를 주는 스캔들의 주인공에 더 가까워 보였다.

 

 그래도 모른 척 해도 되는 일에 굳이 나서서 도와주는 걸 보면 아주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무뚝뚝하지만 좀 친절한 면도 있는 것 같고.

 소문이란 건 언제나 부풀려지고 모두 믿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그래. 오늘 처음봤는데 벌써부터 편견을 갖고 사람을 대하는 건 나빠!

 

 

 "그 선배 이름이 뭐야?"

 

 "김조이. 14학번이고 우리과 부회장이야."

 

 "아, 부회장이었구나."

 

 "그러니까 입학식날 왔지. 집부도 아닌 재학생이 입학식에 왜 오겠어?"

 

 나는 조금 무안한 얼굴로 소희의 눈치를 살피며 작게 아,하고 입을 벌렸다가 오므렸다.

 

 

 "근데, 그 소문이 뭔데?"

 

 ..편견을 갖고 사람을 대하는 건 나쁘지만, 무슨 소문인지도 모르면서 편견을 갖는 건 더 나쁘잖아?

  물어보지말까,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내 호기심이 그 생각을 누르고 입밖으로 터져나왔다.

 

 "그건 누가 들을 수도 있으니까 여기선 말 못해. 나중에 따로 알려줄게."

 

 "어, 그래."

 

 

 소희와 나는 화장실에서 내려와 1층에 있는 과방으로 함께 들어갔다.

 벌써 청소는 대충 마무리 되어 가고 있었다.

 나랑 소희가 걸레로 선반 위와 창틀 주위를 닦았고, 임혜성을 비롯한 남학생들이 청소를 위해 밖으로 빼놓았던 큰 탁자와 쇼파를 안으로 들였다.

 소매를 걷어붙이고 탁자를 든 임혜성의 팔에 힘줄이 서 있었다. 나도 모르게 그 쪽으로 시선이 뺏겼다.

 시간이 잠깐 멈추는 것 같았다.

 

 

 "다들 오늘 수고했어."

 

 학생회장이 말을 끝내자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 짝짝짝, 박수를 쳤다.

 나도 얼떨결에 박수를 쳤다. 소희는 다리를 꼬고 앉아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이제는 계속 부회장인 조이가 진행할 거야."

 

 뭘 또 진행해? 집에 안 가?

 

 나는 핸드폰을 켜서 시간을 확인했다.

 벌써 오후 5시가 다 돼가고, 창밖은 오래전부터 어두컴컴했다. 춥고 흐린 날씨 때문에 창밖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몸이 으스스했다.

 학생회장이 조이 선배에게 눈짓을 보내며 과방에서 나가고, 조이 선배가 가운데로 나왔다.

 

 "안녕하세요. 14학번 김조이입니다."

 

 또 다시 박수가 터져나왔다.

 

 

 "별 건 아니고, 내일부터 같이 학교생활 할텐데 모이신 김에 서로 자기소개라도 하고 마쳐야하지 않을까 해서요."

 

 

 자기소개는 무슨 자기소개야?

 

 

 "안녕하세요. 15학번 장노을입니다. 서울 사람이에요. 잘 부탁드립니다."

 

 '서울 사람이래.', '큭큭', '귀엽다.' 하는 소리가 박수소리 사이로 들렸다.

 나는 쑥스러워서 얼른 자리에 앉았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 학기 15학번 과대를 맡은 하태양입니다."

 

 나는 너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저희가 여초과인데, 그래도 올해는 남학생들이 많은 편이네요."

 

 김조이 선배의 말에 '오오-'하는 음흉한 환호성이 터졌다.

 그리고는 동시에 꺄르르, 웃음도 터졌다. 딱딱한 분위기가 살짝 흐트러지며 나도 슬쩍 웃었다.

 내 맞은 편에 앉은 너, 하태양을 다시 바라보았다.

 

 생각했던 얼굴과는 달랐다.

 방금 감은 듯한 부스스한 머리. 스트라이프 니트에 어두운 색 청바지.

 깔끔하지도 엉성하지도 않은 너의 모습이 너의 목소리가 주는 느낌과는 조금 달랐다.

 오히려 네 목소리를 듣고 떠오르는 이미지는 임혜성과 더 비슷했다.

 

 

 "안녕하세요. 95년생 임혜성입니다. 다들 친하게 지내고 싶어요."

 

 다른 아이들보다 유난히 박수소리가 컸다. 내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들렸다.

 그의 눈웃음에는 미소년다운 청량감이 있었다.

 방금 저 미소, 소희에게로 향하고 있는 것이었을까?

 그러나 소희는 이미 자기의 소개를 마치고 스마트폰만 뚫어져라 보고 있을 뿐이었다.

 

 

 

 

 

 

 

 

 

 

 

 "연우 얘기는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노을이 너도 여기서 볼 줄은 몰랐다."

 

 잠깐 밖으로 나간 우리 셋. 뻘쭘하게 서 있는데, 침묵을 먼저 깬 건 임혜성이었다.

 임혜성은 늘 그랬다. 말하는 것을 좋아했고 정적을 불편해했다.

 

 

 "저기, 나는 수업하던 거 마저 치워야해서.."

 

 연우가 뒤로 내 등을 톡톡 치면서 그 자리를 빠져나갔다.

 

 

 "그 동안 어떻게 지냈어?"

 

 임혜성이 내게 물었다. 나는 임혜성을 쳐다보지 않았다.

 하태양을 만났을 때도 나는 그 애를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지만, 임혜성을 쳐다보지 못하는 건 조금 다른 이유에서였다,

 

 

 "틈틈이 학교 수업도 듣고, 집에서 놀기도 하고."

 

 "그랬구나. 앞으론 뭐 할 거야?"

 

 "넌 뭐 할 건데?"

 

 오히려 내가 되물었다. 필요 이상으로 차가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임혜성은 특별히 별 생각은 없는 듯 보였다.

 

 

 "여기 와서 봉사도 조금 하고. 집에서 가족들이랑 보내면서 이것저것 정리하려고."

 

 "..동기들이나 학교 선배들은 안 만나?"

 

 

 내 질문에 임혜성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처음으로 그에게 돌아간 내 얼굴. 그의 얼굴에는 내가 어떻게 보였을까?

 

 내 눈에 임혜성은 예전보다 힘이 없어보였고 약간 야위어 보였다.

 햇빛을 받은 갈색머리가 그의 하얀 얼굴과 잘 어울렸다.

 

 

 "안 만나지."

 

 "왜?"

 

 "너랑 같은 이유야."

 

 임혜성은 나를 빤히 쳐다봤다.

 

 

 "왜 너와 내가 여기서 만나게 됐을까, 생각했어."

 

 임혜성은 난간에 등을 기대며 고개를 살짝 내쪽으로 돌렸다. 햇빝에 눈이 부신지 눈을 살짝 찌푸렸다.

 그 말 다음에 나올 말을 나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마지막 인사를 하라는 거겠지."

 

 임혜성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고마웠어. 미안했고."

 

 "됐어. 이제와서 무슨."

 

 "잠들기 전에 니 생각 많이 했었어. 어제도 니가 꿈에 나왔어. 네가 내 앞에서 울면서…"

 

 "그만해."

 

 나는 단호하게 그의 말을 끊었다.

 

 

 "계속 후회했어. 고맙다고 못 해서. 미안하다고 못 해서."

 

 "못 한 거 아니잖아? 안 한 거지."

 

 "미안해. "

 

 "됐다니까."

 

 "그리고 너한테 고마웠다는 내 진심 전하고 싶었어."

 

 "그래, 충분히 전했어. 이제 그 일에 대해서 그만 얘기해."

 

 임혜성은 내가 '그만'이라는 단어에 힘주어 말하자 잠깐 멈췄다.

 나는 나도 모르게 미간을 좁히며 입술에 힘이 들어갔다.

 임혜성과 대답하면 늘 이렇게 답답하다. 날 구차하게 만든다.

 

 또 다시 그가 싫어하는 침묵이 찾아왔다.

 그는 늘 그랬던 것처럼 침묵을 깼다.

 

 "나 잠시였지만 분명 한 순간은 널 사랑했던 적도 있었던 것 같아."

 

 나는 '사랑'이라는 임혜성의 말에 답답했던 것이 활화산처럼 터져오르며 욱했다.

 

 

 "미친 놈."

 

 고마웠다고? 미안했다고? 사랑했다고?

 

 

 "미쳤다고해도 어쩔 수가 없네. 그래도 죽기 전에 네 얼굴 보면서 이렇게 얘기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진심이야."

 

 임혜성의 표정은 정말 진심인 것 같았다.

 

 

 "근데 너, 하태양은... 만나봤어?"

 

 진심이야, 라는 말을 내뱉은 지 얼마되지도 않아서 그의 입에서 너의 이름이 나왔다. 하태양.

 

 

 "하태양은 뭐래?"

 

 나는 임혜성을 노려봤다.

 

 "내가 하태양을 왜 만나? 너 만나는 것도 이렇게 기분이 더러운데."

 

 

 그 말을 마지막으로 돌아섰다.

 '너는 70년은 더 살 것처럼 군다니까', 연우의 카톡이 불현듯 머리를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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