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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내겐 너무 소중한 그대
작가 : 카렌
작품등록일 : 2017.10.30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마술사학교'의 최종우승자 마술소녀 윤제이. 한달 전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아빠의 죽음에 무언가 숨겨진 음모가 있는 게 분명하다며, 제이의 주변 사람들을 차례차례 의심하는 수상한 그놈이 나타났다. 그놈의 정체는 사생활이 철저하게 비밀에 휩싸여 있는 독일에 국민마트 CEO 강철수. #티격태격, #알콩달콩, #로맨틱코미디, #츤데레 남주, #당찬 여주 habilis21@naver.com

 
38.내가 철수 씨를 좋아한다고?
작성일 : 17-11-15 20:25     조회 : 270     추천 : 0     분량 : 7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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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이는 조금은 멍한 표정으로 화분에 물을 주고 있었다.

 

 날이 좋아서 테라스에 두고 따뜻한 햇볕을 듬뿍 받게 했더니 화분은 날이 갈수록 무럭무럭 자라났다.

 

  "……."

 

 평소 같으면 푸르른 잎이 피어난 화분을 보면서 힐링하고 있었을 텐데, 오늘 그녀는 사뭇 심각한 표정이었다.

 

  ㅡ 윤정아, 나 물어볼 게 있는데. 대답해줄 수 있어?

 

 제이는 요즘 들어 자신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변화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자칭 위키사전 윤정에게 슬며시 물었다.

 

  ㅡ 뭔데? 뭐든지 대답해 줄게. 보상으로는 마들렌 하나면 충분하지.

 

  ㅡ 으이고, 그냥 내가 하나 사줄게.

 

 제이는 살짝 혀를 차면서 계속 말꼬리를 이어갔다.

 

  ㅡ 내 얘기는 아니고 내 친구 얘기인데.

 

  ㅡ 일단 카테고리를 정해야지. 가족 문제야? 아니면 경제문제? 연애문제? 기타 등등?

 

  ㅡ 굳이 따지면 ……기타 등등인 것 같아.

 

 제이는 앞에 놓여있는 시원한 얼그레이를 한 모금 마시면서 시선을 위로 향했다.

 

  ㅡ 증상이 어떤데?

 

  ㅡ 그냥 가끔 어떤 한 남자만 느린 동작으로 보인다고 해야 할까?

 

  ㅡ 느린 동작? 그 사람 마임하니?

 

  ㅡ 아니, 그게 아니라…… 이상하게 그 사람만 눈에 보이고, 그 사람만 슬로모션처럼 움직이는 것 같이 보인대. ……특히 웃는 모습이!

 

 사실 그녀의 뚜렷한 이상증상은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제이는 철수와 즐겁게 하루를 보낸 이후, 철수와 함께했던 시간을 계속 되새기고 있었다.

 

 그날 같이 보면서 울고 울었던 만화책.

 

 그날 같이 먹었던 맛있는 삼겹살.

 

 그날 인형 뽑기에 성공하면서 환하게 웃음 짓던 그의 표정.

 

  ㅡ 윤정아, 넌 어떻게 생각해?

 

 도무지 자신의 이런 증상을 설명할 길이 없었던 제이는 윤정에게 도움을 청했다.

 

  ㅡ ……그건 그냥 네 친구가 그 남자를 좋아하는 거 아니야?

 

 윤정의 말을 떠올린 제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면서 혼잣말했다.

 

  "……말도 안 돼."

 

 내가 철수 씨를 좋아한다고?

 

  "……그럴 리가 없잖아."

 

 테라스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화분에 물을 준 제이는 다시 집안으로 돌아왔다.

 

  '그래, 윤정이가 하는 말이 전부 다 맞는 말은 아니잖아.'

 

 제이는 간식 캔을 따서 노랑아의 밥그릇에 소복하게 담았다.

 

  "노랑아, 간식 먹자."

 

 간식 캔 따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바람같이 달려와서 제이의 발밑에서 서성이고 있던 노랑이는 허겁지겁 숨도 쉬지 않고 간식을 먹었다.

 

 가벼운 운동 후 샤워를 하고 나온 철수는 부엌에 있는 제이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었다.

 

  "제이, 오늘은 아침 일찍 일어났네요?"

 

  "네? ……저 원래 아침형 인간이에요."

 

  "그래요?"

 

 제이의 말에 철수는 피식, 한번 웃고 냉장고를 열어서 물을 꺼냈다.

 

 좁은 부엌에서 살짝 철수와 몸이 스친 제이는 긴장해서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꿀꺽꿀꺽.

 

 한 손에 페트병을 들고 바로 입안으로 물을 털어 넣는 철수의 목젖이 크게 꿈틀거렸다.

 

 두근두근.

 

  '……엄마야, 내 심장아 나대지마.'

 

 제이는 때를 가리지 않고 크게 울려대는 심장에게 엄하게 명령했지만, 심장은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쿵쿵 울려댔다.

 

 페트병에 남아있던 물을 전부 마신 철수는 소매로 그의 입가를 닦으면서 제이를 향해 씨익, 미소를 보냈다.

 

 환하게 웃음 짓는 그의 동장 하나하나가 또 제이의 눈앞에서 느릿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순수한 소년처럼 웃는 얼굴, 살짝 열려있는 운동복 지퍼 사이로 보이는 탄탄한 가슴 근육, 성이 난 듯 팔뚝에 솟아있는 굵은 힘줄.

 

 저도 모르게 철수를 향한 시선이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자, 제이는 번뜩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야옹."

 

 제이가 준 간식을 벌써 다 먹은 놀랑이가 만족스러운 듯 울음소리를 냈다.

 

  "우리 노랑이, 버, 벌써 다 먹었네?"

 

 제이는 붉어진 얼굴을 숨기기 위해 급하게 찬장에 놓여있던 간식을 하나 더 꺼내 주었다.

 

  "오늘은 머리를 양 갈래로 묶었네요?"

 

  "네? ……네."

 

 제이는 양 갈래로 묶은 머리를 만지면서 수줍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근데 머리가……."

 

 철수가 눈을 가늘게 뜨고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자, 제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요? 조금 이상한가요?"

 

  "아니요. 예쁩니다."

 

 제이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은 철수는 샤워하기 위해 욕실로 들어갔다.

 

  "……치, 장난꾸러기."

 

 제이는 살짝 입술을 앞으로 내밀었지만, 입가에는 살짝 미소가 어려 있었다.

 

 띵동.

 

 알람 소리를 듣고 얼른 핸드폰 화면을 확인해보니 정혁이 보낸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제이 씨, 오늘 1시에 카페 늘봄에서 만나는 거 맞죠?]

 

  [네, 맞아요.]

 

  [지금 일이 바빠서 조금 늦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미안합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천천히 오세요.]

 

  [그럼 최대한 일찍 가보겠습니다. 그런데 제이 씨.]

 

  [네? 왜용?]

 

  [제이 씨가 처음으로 저한테 먼저 만나자고 한 거 알아요?]

 

  [그런가요?]

 

  [네, ……기쁘네요.]

 

 정혁의 마지막 메시지를 받은 제이는 울상을 지으며서 입술을 앞으로 쭈욱 내밀었다.

 

  "……기뻐하시면 안 되는 데."

 

 제이는 정혁이 보낸 메시지를 보고 한숨을 길게 푹 내쉬었다.

 

 정혁은 정말 좋은 사람이었지만, 그녀에게는 친한 오빠 그 이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따뜻하고 포근한 사람이었지만, 불타오르는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잠시 망설이던 제이는 린다의 말을 떠올리고 서둘러 외출복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ㅡ 아니면 빨리 아니라고 말해주는 게 좋다. 뭐, 오빠로서 좋다느니, 예전처럼 지냈으면 좋겠다느니, 뭐 그런 거 다 어장관리 아이가?

 

 정혁에게 확실하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지 않으면, 그의 마음을더 큰 상처를 줄 것 같았다.

 

  "외출하는 겁니까?"

 

 간단하게 샤워를 마친 철수는 뽀송뽀송한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면서 그녀에게 다가왔다.

 

 물에 젖은 그의 모습을 보고 제이는 살짝 얼굴이 붉어졌다.

 

 철수는 동작 하나하나가 평범한 듯 뇌쇄적인 느낌이었다.

 

  "네, 잠깐 다녀올게요."

 

  "어디 가는 건데요?"

 

  "잠깐 집 앞에 있는 카페 늘봄에 가려고요."

 

  "그럼 나랑 같이 가요."

 

  "……네?"

 

 제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자, 철수는 씩 웃으면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 내 심장아 제발 좀……!'

 

 제이는 또 제정신이 아닌 심장이 펄떡펄떡 뛰어대자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아뇨, 그게……."

 

 위험하다, 위험해. 지금 상황은 너무 위험해.

 

 가까이에 있으면 내 심장이 뛰는 소리가 철수 씨에게 들릴지도 몰라.

 

 제이는 살짝 한걸음 뒤로 물러서면서 그의 시선을 피했다.

 

  "사실 정혁 씨랑 카페 늘봄에서 만나기로 했거든요."

 

  "……아, 그래요?"

 

 제이는 철수의 표정에 약간 서운한 빛이 도는 것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철수 씨, 늘봄 케이크가 맛있는데, 조금 있다가 사올까요?"

 

  "아뇨, 괜찮습니다."

 

 아까보다 훨씬 어두워진 표정으로 말하는 철수를 보고 제이는 다시 한번 고개를 갸우뚱했다.

 

 벽에 걸린 시계를 본 제이는 정혁과 약속한 시각이 얼마 남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서둘러 카페 늘봄으로 향했다.

 

 

 

 ***

 

 

 

 오늘 정해진 업무량을 채우기 위해 철수는 자리에 앉았지만, 집중이 되지 않았던 그는 가볍게 목을 돌리며 스트레칭을 했다.

 

  ㅡ 정혁 씨랑 카페 늘봄에서 만나기로 했어요.

 

  "……제이가 이정혁이랑 자주 만나는군."

 

 조용히 혼잣말한 철수는 책상 앞에 앉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 창문 앞을 서성였다.

 

 조금 시간을 두고 기다리자 반팔 티셔츠를 입고 아파트 통로에서 나오는 제이의 정수리가 보였다.

 

 흰색 자동차가 제이의 앞에 멈춰 서더니 차에서 말끔하게 와이셔츠를 차려입은 정혁이 내렸다.

 

 친절하게 그녀에게 차 문을 열어주는 정혁을 보고 철수의 눈썹이 의도치 않게 꿈틀거렸다.

 

 제이를 태운 정혁의 차는 출발하여 이내 철수의 시야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

 

 다시 일하기 위해 자리에 앉았지만, 이상하게도 일이 쉽게 손에 잡히지 않았다.

 

 결국, 컴퓨터 전원을 끈 철수는 거실로 나가서 일인용 소파에 몸을 기대었다.

 

  "야옹."

 

 철수와 꽤 친해진 노랑이가 그의 무릎에 올라와서 그르렁 소리를 냈다.

 

 그는 부드러운 미소를 띠면서 노랑이의 목덜미를 조심스럽게 긁어주었다.

 

  "……."

 

 고양이가 그르렁거리는 소리에는 사람의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는데 철수의 구겨진 인상을 펴질 줄 몰랐다.

 

  "왜 이렇게…… 답답하지."

 

 철수는 목 끝까지 채워진 피케티의 단추를 풀고 나지막이 혼잣말 했다.

 

 눈을 감고 낮잠을 청해보려고 했지만, 소파보다는 침대에서 자는 게 낫겠다 싶어서 철수는 몸을 일으켰다.

 

  "……야옹."

 

 철수의 무릎에 편안하게 몸을 기대고 있던 노랑이가 바닥으로 폴짝 뛰어내렸다.

 

 피케티 대신 편안한 티셔츠로 옷을 갈아입은 철수가 침대에 누워서 억지로 잠을 청했다.

 

  "……분명히 친오빠 같은 감정이라고 했는데."

 

 정혁의 차를 타고 떠난 제이의 모습이 자꾸 눈에서 밟혔다.

 

  "후우."

 

 누워있었지만 쉽게 잠이 들지 않아서 철수는 일어나 침대에 걸터앉았다.

 

  "분명히 친오빠 같다고 했으니까 걱정 안 해도 되겠지. 그리고 내가 제이가 누굴 만나든 신경 쓸 필요 없잖아."

 

 누가 보면 정신이 나간 사람이라고 착각할 만큼 철수는 주절주절 혼잣말했다.

 

 아무래도 철수는 정혁의 차를 타고 떠난 제이가 신 경쓰이는 모양이었다.

 

 답답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철수는 바닥에 양 손을 짚고 팔굽혀펴기를 시작했다.

 

 쉬지 않고 100번을 하자 등줄기와 이마에서 땀이 줄줄 흘러내렸지만, 제이의 모습이 잔상처럼 철수의 눈앞에 아른거렸다.

 

 철수는 주먹으로 쾅, 하고 옆에 있던 벽을 세게 내리쳤다.

 

  "…… 벽이 왜 이렇게 똑바로 서 있지?"

 

 다시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 심호흡을 했지만 쉽게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통증이 밀려오는 주먹을 꽉 쥔 철수는 무심한 눈빛으로 주차장을 내려다보았다.

 

  "……Schwere Not(젠장)."

 

 평소에 절대 욕설을 입에 담지 않는 철수의 입에서 욕설이 흘러나왔다.

 

 아무래도 공황 장애 증세와 함께 자신에게 분노 조절 장애가 생긴 것 같았다.

 

 철수는 또다시 정혁을 만나러 간 제이가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그동안 제이가 공연 스케줄 때문에 바빠서 제대로 얼굴도 보지 못 했는데, 하루쯤은 나와 집에 같이 있으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떠나는 제이를 붙잡지 않고 쿨한 척 보냈지만 철수의 속마음은 그녀와 하루종일 함께 있고 싶었다.

 

  "근데 여기 책은 애 올려져 있는 거야?"

 

 철수는 자신이 책상에 올려놓은 두꺼운 책을 바닥으로 집어 던졌다.

 

 두꺼운 책이 바닥과 충둘하자 쿵, 하고 크게 울리는 소리가 방안에 가득 퍼졌다.

 

 평소에 아랫집에 사는 사람들을 생각에서 발걸음도 조심스럽게 내딛는 철수가 이상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가슴이 답답하지?"

 

 손바닥으로 세게 자신의 가슴팍을 퍽, 퍽 내려치던 철수가 이번에는 침대 옆 좁은 탁자에 올려져 있던 미니 자명종을 바닥으로 던졌다.

 

 쿵!

 

 그러나 치솟아 오른 화는 다시 가라앉지 않았다.

 

 아직 무언가가 더 부족했다.

 

 주변을 둘러보면서 던질만한 것들을 찾고 헤매던 철수가 이번에는 침대 위에 있는 배개를 손에 들었다.

 

 철수의 가슴 속에 쌓아두었던 화가 봉인이 풀린 것처럼 넘쳐 흐르기 시작했다.

 

  "베개에 왜 이렇게 먼지가 많아?"

 

 퍽!

 

 하지만 아직도 가슴 속에 응어리져 있는 무언가는 시원하게 풀어지지 못한 상태였다.

 

 이번에 철수는 아무것도 꽂혀있지 않는 꽃병을 바닥으로 집어 던졌다.

 

 쨍그랑!

 

 유리로 된 꽃병은 그야말로 산산조각이 나서 유리 조각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

 

 깨끗하게 정리가 되어있던 철수의 방안은 순식간에 엉망진창으로 변했다.

 

 달력은 찢긴 채로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으며, 바닥에는 두꺼운 책과 배게, 그리고 보기만 해도 위험해 보이는 유리 조각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털썩.

 

 기분이 한결 나아지긴 커녕 마음만 더 불편해진 철수는 무릎을 꿇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ㅡ 제이 씨에 대한 형의 마음을 진지하게 고민해봐.

 

  "그래. 제이에 대한 내 마음은……."

 

 정혁과 함께 사라진 제이의 모습만 떠올려도 가슴 속에서 불이 난 듯 분노가 차오르는 이유를 철수는 이제야 확실히 알 것 같았다.

 

  "……사랑하는 거야."

 

 그것 말고는 지금 드는 이 감정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사랑'외에는 없었다.

 

 제이를 많이 챙겨주고 싶고 아껴주고 싶고 다른 남자와 어울리지 않고 내 곁에서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솟구치는 건 자신이 제이를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사랑이었어."

 

 허망한 표정의 철수는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다.

 

 

 

 ***

 

 

 

 찻잔을 들고 있던 정혁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애써 태연한 목소리를 내려고 했지만 그의 목소리 끝이 살짝 떨렸다.

 

  "……그렇군요."

 

 더 입을 열 수 없었던 제이는 조용히 손끝만 바라보았다.

 

  "알겠습니다."

 

 정혁의 표정은 너무나도 쓸쓸해 보였지만 가만히 있는 것이 그를 위한 일인 것 같아서 제이는 입을 일자로 꾹 다물었다.

 

  "……죄송해요. 정혁 씨."

 

  "아니요. 제이 씨가 저한테 죄송할 일은 아니지요."

 

  "……."

 

 정혁은 씁쓸한 눈동자로 앞에 앉아있는 제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ㅡ 죄송해요. 정혁 씨. ……전 정혁 씨랑 지금처럼 지내는 것이 더 좋아요.

 

 처음으로 그녀가 자신에게 만나자고 했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카페 늘봄을 찾은 정혁은 순식간에 들떴던 기분이 지하로 추락하는 기분이었다.

 

  '……바보같이 김칫국부터 마셨군.'

 

 속이 쓰려진 정혁은 달달한 요거트 스무디를 목구멍으로 남겼지만 쓰라린 기분은 쉬이 나아지지 않았다.

 

  "괜찮아요. 제이 씨. 정말로 제이 씨가 나한테 미안해할 일은 아니잖아요."

 

  "……."

 

  "내가 더 미안해요. 괜히 제이 씨 힘들게 한 것 같아서."

 

 사과하는 정혁의 목소리를 듣고 제이는 고개를 좌우로 내저었다.

 

 손끝만 바라보던 제이가 고개를 들어 앞에 않은 정혁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정혁은 번듯한 외모에 사람을 배려하는 매너까지 있는 신사 같은 남자였다.

 

 여자라면 누구든지 정혁과 사랑에 빠지는 것을 원할 테지만, 제이는 예외인 모양이었다.

 

 정혁이 정말 좋은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그녀의 심장이 그에게는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럼 이만 일어날까요?"

 

 철수의 말에 제이는 고개를 끄덕였고, 두 사람은 바로 카페 늘봄에서 나왔다.

 

  "그럼 저 먼저 가보겠습니다."

 

  "……네, 안녕히 가세요."

 

  "저기, 제이 씨."

 

 등을 돌려 집으로 향하던 제이는 정혁이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난 앞으로 제이 씨랑 친한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싶어요."

 

  "……."

 

  "마술사의 팬으로 가끔 만나도 되겠죠?"

 

 조금 망설이던 제이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정말요? 정말 되는 거죠?"

 

 이번에는 제이가 좀 더 밝은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제이 씨, 정말 고마워요."

 

 제이는 내밀어 오는 정혁의 손을 잡고 조용히 악수했다.

 

 단둘이 만나는 것이 아니라면 제이도 그와의 관계를 여기서 단절시키고 싶지 않았다.

 

 

 

 ***

 

 

 

  "노랑아, 엄마 왔다!"

 

 제이가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노랑이에게 두 팔을 벌렸지만, 노랑이는 도도하게 홀깃 시선만 던지다가 다시 고개를 파묻고 잠을 청했다.

 

  "으이구, 콧대 높음 공주님 같으니라고."

 

 제이는 신발을 벗으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철수 씨는 아직도 일하시고 계시나?'

 

 잠시 망설이던 제이가 철수의 방문을 똑똑, 두드렸다.

 

  "철수 씨. 안에 계세요?"

 

 그의 방문 안에서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순간 철수가 바닥에 나뒹굴면서 괴로워하던 모습이 떠오른 제이는 다시 다급하게 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철수 씨, 어디 아프신 건 아니죠?"

 

  "……."

 

 잠깐 어디 나간 건가?

 

 망설이던 제이는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빼꼼 안을 들여다봤다.

 

  '엄마야, 방안이 난장판이잖아……!'

 

 엉망이 된 방을 보고 제이는 벌컥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유리로 된 꽃병은 산산조각이 나서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벽에 걸려있던 달력도 갈기갈기 찢어져 있었다.

 

  "……제이, 왔습니까?"

 

  "철수 씨, 방 안이 왜 이리 엉망진찬이에요?"

 

 텅비어 있는 줄 알았던 그의 방안에는 철수가 고요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있었다.

 

  "……."

 

 제이의 질문에도 제대로 답하지 않는 철수는 의자에 몸을 기대고 창밖만 바라봤다.

 

 낮게 한숨을 쉰 제이는 떨어진 유리 조각을 치우기 위해서 무릎을 굽혔다.

 

  "제이, 괜찮아요. 치우지 마요."

 

  "……."

 

  "내가 치울 테니까 그냥 나가봐요.

 

 오늘따라 철수의 표정이 무척이나 쓸쓸해 보여서, 제이는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조용히 방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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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46.제이는 철수를 좋아해? 2017 / 11 / 27 277 0 8107   
45 45.슬프면 슬프다고 말해요 2017 / 11 / 26 259 0 8563   
44 44.나중에는 내가 너 구해줄게. 2017 / 11 / 24 260 0 8193   
43 43.제이가 내 사무실에는 어떻게……? 2017 / 11 / 24 258 0 8265   
42 42.미래의 남편이요? 2017 / 11 / 22 251 0 8823   
41 41.짝사랑하는 여자의 속마음을 알아보는 법 2017 / 11 / 20 260 0 8481   
40 40.제이 씨, 우리 형이랑 사귀어요? 2017 / 11 / 17 239 0 8478   
39 39.품에 안긴 가녀린 몸 2017 / 11 / 16 240 0 7984   
38 38.내가 철수 씨를 좋아한다고? 2017 / 11 / 15 271 0 7784   
37 37.대표님, 제이 씨랑 데이트하세요. 2017 / 11 / 14 235 0 7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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