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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ANTI(안티)
작가 : 고전부
작품등록일 : 2017.10.30

한 독자의 초대장을 받고 일본 오사카로 간 작가 '시호'. 그곳에서 '시호'의 소설 속 장면과 똑같은 살인이 벌어진다.

 
08. 지휘봉
작성일 : 17-11-15 13:55     조회 : 272     추천 : 0     분량 : 80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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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8 - 지휘봉

 

 

 “…흉기.”

 

 벽면에 쓰인 혈흔에 시선을 옮긴 수연은 혼잣말을 되뇌었다. 그리고는 요코의 시신을 향해 걸어가더니 두 손가락을 요코의 목 부근에 가져다 대었다. 시신은 아직 완전히 굳지 않았다. 수연은 곧바로 손목시계를 보았다. 현재 시각은 12시 10분이었다. 사망 추정시각은 아마도 10시에서 12시 사이일 것이다.

 

 “스미레.”

 “…네!”

 

 본부에 전화를 걸던 서정은 갑작스레 불린 저의 이름에 화들짝 놀라며 수연을 보았다. 묘하게 휘어진 눈썹은 수연의 감정 상태를 여실히 드러냈다.

 

 “모두를 다시 거실로 데리고 가.”

 “…….”

 “한 사람씩 몸수색을 실시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서정은 수연의 목소리만 들어도 냉랭한 기운이 절로 펴지는 것을 감지했다. 수연은 잔뜩 화가 난 듯 보였다. 하지만 그 분노의 대상은 범인이 아닌 수연 자신일 것이 뻔했다. 모두의 발을 묶어 놓은 상황에서도 범인은 보란 듯이 살인을 저질렀으니까.

 

 수연은 거듭 상황을 되짚었다. 시간과 환경, 그리고 흉기라는 범주였다. 범인을 검거할 때 가장 중요하다 여기는 동기는, 뒷전이었다.

 

 9시 20분쯤 요코는 방에 있었다. 그걸 수연이 확인했고, 12시까지 요코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시신을 발견했을 당시 요코의 방문과 창문은 잠겨있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밀실이었다. 방문은 안에서 잠글 수 있으므로, 방문을 열고 들어와 살인을 저지른 뒤 유유자적하게 문고리를 돌리고 나가면 손쉽게 밀실을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요코가 범인에게 선뜻 문을 열어주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수연이 요코의 방문을 나설 때에 요코가 문을 잠그는 소리를 분명히 들었으니까. 그렇다면, 요코가 경계심을 풀 만한 이가 범인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요코의 방에 또 다른 출입구는 창문이었다. 층이 낮았으므로 2층에서도 충분히 오를 수 있는 높이였다. 하지만 창문은 안에서만 잠글 수 있으므로 창문을 통해 들어왔다 하더라도 방문을 통해서만 나가야 했다. 그래야만 시신을 발견했을 때의 밀실이 완성되니까. 결국 범인은, 어딜 통해 들어왔든 방문으로 나갔다는 말이 된다.

 

 요코의 사망 추정 시각은 대략 10시부터 12시 사이였다. 한 사람씩 상세하게 알리바이를 캐물어야 했지만 공교롭게도 이곳에 있는 이들 모두 요코의 사망 추정 시각에 한 번씩 자리를 비웠다. 많게는 20분 정도까지, 살인을 저지르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모두에게 똑같이 시간적인 가능성이 있는 상태에선 다른 가능성을 살펴봐야 했다. 예를 들면 흉기였다. 요코를 죽인 이는 목을 조를 줄과 손목을 그을 날카로운 칼이 있어야 했다. 하숙집에 있는 이들이 자리를 뜰 때마다 신체검사를 했으니 몸속에 흉기를 숨기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교묘하게 흉기를 숨겼다 하더라도 살인을 저지르고 흉기를 처리하는 데에 20분은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그러므로 지금 우선적으로 할 일은 흉기를 발견하는 일이었다. 밀실에 대한 트릭을 푸는 건 그다음이었다.

 

 “형사들이 오면 모두 이 집 주변을 샅샅이 수색하라고 지시해.”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의 몸수색은…내가 직접 할 거야.”

 

 수연의 마지막 말에 모두의 시선이 엉켰다. 누굴 보고 있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다만 분명한 건 그 누구에게도 의심을 거둘 수 없다는 것이었다. 모두가, 동일한 선상 위에 서 있었다.

 

 

 *

 

 

 수연은 알 수 없는 얼굴로 거실 탁자에 앉아있는 이들을 보고 있었다. 한 발짝 물러선 채 수연의 뒤에 서 있던 서정은 묘한 정적이 감도는 상황을 그저 관망하고 있을 뿐이었다.

 

 수연이 직면한 상황은 예사롭지 않았다. 9시에 처음 소지품 검사를 했을 때와 6명이 몸에 지니고 있던 물건은 변한 게 없었고, 하숙집의 어디에서도 요코의 흉기로 쓸 만한 물건은 발견되지 않았다. 호수 밑까지 들어가 보았지만 상황은 똑같았다. 모든 게 깨끗했다. 마치, 의도된 듯.

 

 “저희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되나요? 저희는 물론 하숙집 전부 수색해 보았고, 별 수상한 점은 발견되지 않았다면서요.”

 

 보다 못한 소은이 잔뜩 화가 난 음성으로 수연에게 따지듯 물었다. 시간은 어느덧 새벽 3시를 넘어가고 있었고, 전부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밤을 새우고 있는지라 예민함이 극에 달하고 있었다. 수연 자신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침묵이 유지됐지만 모두가 싸늘한 표정으로 저를 보고 있다는 걸 수연은 일찍이 알아챘으니까.

 

 그때였다. 하숙집 외부를 수색하던 감식 반 남자 형사 한 명이 달려오더니 수연의 귀에 무언가를 말하기 시작했다. 잠잠히 남자 형사의 말을 듣던 수연은 조금의 표정 변화 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말을 끝낸 남자 형사는 다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네. 모두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흉기는 발견되지 않았어요. 즉, 범인에 대한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했다는 거죠. 3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요.”

 

 무책임한 말을 너무나 당당하게 말하는 수연의 태도에 소은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픽하고 숨을 새더니 머리를 한 번 쓸어 넘겼다. 그리고는 입을 몇 번 달싹이다 다시 표정을 굳혔다. 서정은 티가 나지 않게끔 소은을 유심히 관찰했다. 소은은 망설이고 있는 듯 보였지만 아직은 제가 알고 있는 사실을 밝힐 의향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언제 생각이 바뀔지는, 누구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서 저는 현재 나와 있는 정황에서 범인을 유추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언뜻 보기엔 아무도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조금 더 면밀히 따져보니까 한 사람만 유독 가능성이 높더군요.”

 

 서정이 흠칫하며 수연을 보았다.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서정은 다시 한 번 소은의 눈치를 살폈다. 수연이 소은이 말했던 이의 꼬리를 잡은 걸까. 서정은 궁금증이 일었다.

 

 자신감이 넘치는 음성에 유정은 수연이 그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이토록 오래 시간을 끌지는 않았을 거라 짐작했다. 도연 또한 마찬가지였다.

 

 “수경 씨.”

 “…네?”

 “요코 씨의 사망 추정 시각인 10시부터 12시 사이에 자리를 한 번 비우신 적이 있죠? 정확히 어디서 뭘 했는지 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쇼고와 요코가 죽기까지. 수연이 한 사람에게만 단독으로 질문을 한 건 수경이 처음이자 유일한 대상이었다. 제 손만 만지작거리며 음울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던 수경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수경을 보는 수연의 표정은 흔들림이 없었다.

 

 “전…저는…요코 씨를….”

 “질문에만 답해주시면 됩니다.”

 

 취조를 하듯 수연은 수경을 몰아세울 것처럼 냉정하게 말을 끊었다. 망연자실한 얼굴로 수연을 쳐다보던 수경은 이내 작은 목소리로 간신히 입을 떼었다.

 

 “전…얼추 포장을 다 한 주방에 있던 그릇들을 3층 다락방에 옮기려고 했어요. 그때가 10시 55분쯤이네요.”

 “네. 스미레 형사와 같이 갔었죠.”

 

 수연이 말을 마침과 동시에 서정을 바라보았다. 서정은 수연의 눈을 피하다 이내 한숨을 푹 쉬더니 천천히 입을 떼었다.

 

 “네. 하지만…죄송합니다. 휴우카 경위님. 전 그때 2층에 있었어요. 수경 씨를 다시 본 건 11시 15분쯤이었죠.”

 “이유는?”

 “화장실이 급했던 전 주방을 나서면서 수경 씨에게 물었어요. 혹시 잠시 화장실을 쓸 수 있냐고. 수경 씨는 2층에 있는 자기 방 화장실을 쓰라고 권유했습니다. 볼 일을 다 본 후 저는 계단 앞에서 유정 씨를 마주쳤어요. 그리고 밑에서 경위님이 유정 씨와 수경 씨 둘 다 감시를 하라고 하셨죠. 하지만….”

 “…….”

 “전 줄곧 2층에 있었습니다. 수경 씨가 시간을 지키지 못하면 그때 3층에 올라가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유정 씨가 2층에 있는 자기 방에 들어왔다 나갔을 때가 11시 15분이었고, 수경 씨도 그때쯤 내려왔습니다.”

 

 면목 없다는 얼굴로 서정이 고개를 숙인 채 제 발끝만 보았다. 그런 서정을 보며 혀를 찬 수연이 다시 수경을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제가 수경 씨의 알리바이에 의문을 가지게 된 이유는 2층에서 들린 소리였습니다. 1층 거실에서 여러분들을 지켜보고 있던 저는 2층에 있는 수경 씨의 방 화장실에서 나는 소리를 들었죠. 그래서 저는 수경 씨가 화장실에 간 거라고 생각했지만, 다시 수경 씨가 거실에 내려왔을 땐 손에 들고 있던 그릇들이 없었죠.”

 “네. 전 그걸 전부 3층 다락방에 옮겼어요. 다락방에 있는 그릇들을 보면….”

 “네. 수경 씨가 다락방에 갔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수경 씨가 다락방에 갔다가 요코 씨의 방에 들를 시간까지 있었다는 것 또한 명백한 사실이죠.”

 

 수경은 마른침을 삼켰다. 수연은 흔들림이 없었다.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수경 씨가 만약 범인이 아니라면 수경 씨는 요코 씨의 방에 가지 않았겠죠. 만약 스미레 형사가 다락방 문 앞을 떠나지 않고 계속 지키고 있었다면 수경 씨의 알리바이는 입증됩니다. 이건 저희의 불찰이니, 이 점은 빼놓고 다시 얘기를 이어가도록 하죠.”

 “…….”

 “유정 씨는 노트북 충전기를 가지러 가기 위해 11시경에 2층에 갔습니다. 거기서 스미레 형사와 마주쳤고, 스미레 형사의 말에 의하면 유정 씨는 정확히 15분 후에 다시 방을 나왔습니다. 그걸 스미레 형사가 입증했죠.”

 “네. 노트북 충전기와 외장하드를 가지러 갔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외장하드가 보이지 않아서 결국 노트북 충전기만 가지고 나왔습니다.”

 

 유정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서정은 유정이 방을 나오자마자 몸수색을 했다. 손에 든 충전기 외에는 아무것도 지니고 있지 않았던 것은 분명했다.

 

 “물론 하숙집의 층이 워낙에 낮기 때문에 유정 씨도 창문을 통해 3층으로 올라가 요코 씨의 방에 침입할 수 있죠. 유정 씨의 방 바로 위가 요코 씨의 방이니까요. 그리고 15분이면…서두르면 살인까지 저지를 수도 있는 시간입니다.”

 

 별다른 대꾸 없이 유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반박할 여지가 없는 논리였다.

 

 “하지만 저희가 요코 씨의 시신을 발견했을 때 창문과 방문은 잠겨있었습니다. 창문은 안에서 잠글 수 있게 되어 있어서 방문을 통해서만 나올 수 있는데, 유정 씨는 2층에 있는 자신의 방에서 나왔죠. 결과적으로 유정 씨는 밀실을 만들 수 없게 됩니다.”

 

 수연이 말을 끝내자마자 다시 서정을 바라보았다. 서정은 여전히 수연의 눈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정은 유정의 문 앞에 계속 서 있었다. 유정의 알리바이는, 서정 스스로 입증한 셈이었다.

 

 “아쉽게도 유정 씨 이외엔 2층이나 1층으로 나간 사람은 없었습니다. 창문으로 침입할 수 있는 길은 없으니, 한마디로 범인은 요코 씨의 방문으로 들어간 거겠죠.”

 

 모두가 숨을 죽인 채 수연의 말을 듣고 있었다. 수경의 얼굴은 점점 하얗게 질려갔다.

 

 “저는 감식 반에 사전에 요코 씨의 문고리에 지문을 조사해달라고 했습니다. 그 결과 요코 씨의 문고리엔 요코 씨와 저의 지문만이 남아있었죠. 한 마디로 범인은 요코 씨가 직접 문을 열어주어야만 출입이 가능한 상황입니다. 자신이 문고리에 손을 대지 않았으니까요.”

 “…….”

 “물론 장갑 같은 걸로 손을 가린 채 문을 연다면 누구든 가능하겠지만, 몸수색 결과 그런 건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일단은 그런 가능성은 배제시키겠습니다. 그렇다면 결론은 요코 씨가 아무런 경계심을 가지지 않고 문을 열어줄 인물이 바로 범인에 가까워진다는 거죠.”

 “…….”

 “그리고 요코 씨를 이곳에 데리고 온 장본인인 도연 씨의 지문도 묻지 않은 걸 보면…아마도 도연 씨도 그동안 요코 씨가 문을 열어주면 들어갔던 거겠죠. 도연 씨라면 서슴없이 문을 열어줬을 테니까요.”

 

 수연의 말이 끝나자마자 도연이 살짝 인상을 구겼다. 불쾌하다는 표시인지, 혹은 초조하다는 표시인지는 알 수 없었다.

 

 “요코 씨가 다른 분들에게 서슴없이 문을 열어 줄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형사인 저에게도 경계를 풀지 않았으니까요. 그렇다면 범인은 도연 씨가 가장 유력해지죠. 그리고…항상 마스터키를 가지고 다니는 수경 씨까지.”

 “…….”

 “물론 다른 분들에게도 요코 씨가 문을 열어 줄 가능성은 충분히 있습니다. 하지만 극단적으로 가능성만 두고 보자면 도연 씨와 수경 씨가 가장 유력하죠.”

 

 수경과 도연이 잠시 동안 눈을 마주했다. 창백해진 얼굴로 서로를 보던 둘은 금방 시선을 거두었다.

 

 “그렇지만 이 사건을 풀 수 있는 열쇠는 알리바이나 방문을 여는 트릭 같은 것에 있지 않습니다. 그 열쇠는 바로…흉기의 유무죠.”

 

 유정은 요코의 시체를 다시 떠올렸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요코의 시체와 함께 있던 피로 쓰인 메시지를. 범인은 번거로운 일을 감행했다. 목을 조른 것만으로도 바빴을 찰나에 굳이 손목을 그어 혈흔을 남겼다. 그 이유는 명확했다. 시호의 소설 속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였다.

 

 “아시다시피 범인에게는 요코 씨의 목을 조를 줄과 손목을 그을 날카로운 칼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처분할 시간이 필요하죠.”

 “…….”

 “하지만 하숙집 내엔 흉기로 보이는 물건은 발견되지 않았고, 이곳에 있는 누구도 흉기를 완벽히 처분할 만큼의 시간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하나. 그 흉기는…아직 범인이 소지하고 있겠죠.”

 

 수연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길게 이어질수록, 수경은 점점 사색이 되어갔다.

 

 “저는 9시 30분부터 여러분들을 지켜봤고, 소지품 또한 거듭 검사했습니다. 모두에게 수상한 물건은 보이지 않았죠. 요코 씨의 시체를 발견한 후 몸수색을 했을 때까지도.”

 “…….”

 “하지만 더 깊이 생각해보면…누군가는 흉기 하나를 처음부터 갖고 있었어요. 물론 용도는 다르게 썼지만요.”

 

 수연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식탁을 향했다. 그 위엔 무언가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수경이 그릇을 포장하기 위해 사용한다고 했던 로프였다.

 

 “그렇다면 다른 흉기인 날카로운 물건은 어디 있을까요.”

 “…….”

 “스미레 형사.”

 “…네!”

 

 더불어 긴장하고 있던 서정은 제 이름이 들리자 또다시 화들짝 놀라며 유난스럽게 대답했다.

 

 “수경 씨가 3층을 갔다 온 후에 몸수색을 했지. 그때 새롭게 포착된 물건이 혹시 있었나? 내 기억엔…수경 씨는 내려오자마자 주방 쓰레기통에 뭘 버린 거 같던데.”

 “그건….”

 

 서정이 수경의 얼굴을 보며 입을 열기를 망설였다. 수경은 그저 고개를 숙인 채 반쯤 넋이 나간 얼굴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건…깨진 그릇의 조각이었습니다.”

 “…….”

 “수경 씨는 다락방에서 그릇들을 옮기다 모르고 하나를 깨뜨렸다고 했어요. 그걸 그대로 손에 들고 있길래 저는 위험하니 곧바로 쓰레기통에 버리라고 했어요. 어차피 그릇이었고, 새로운 물건이 아니라고 판단한 저는 경위님께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그 점도…죄송합니다.”

 

 냉정하게 서정에게서 시선을 거둔 수연은 수경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공교롭게도 쓰레기통에서 발견된 깨진 그릇엔 피해자 요코 씨의 혈흔이 발견되었습니다. 감식 결과가 나올 때까지 제가 여러분들을 붙잡아둔 것도 그 이유구요.”

 

 수연은 의례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모두가 굳은 얼굴로 수경을 보았다. 하숙집에 머무른 이들 중 가장 밝은 모습을 보인 건 당연히 수경이었다. 누구에게나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이었다.

 

 “증거까지 포착되면서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었기 때문에, 연행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물론 경시청에서 더 자세한 조사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수연은 투박하게 말을 하며 수경의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차가운 금속이 살에 닿을 때까지도 수경은 절대 입을 떼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범인임을 인정했다는 것으로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나약한 벌레가 풍파에 휩쓸려가는 것과 같은 꼴이었다.

 

 “히카 씨는….”

 “전….”

 

 서정이 수경의 뒤에 선 채 현관으로 향할 때였다. 수연의 옆에 있던 소은이 다급하게 무언가를 말하려 했다. 흡사 외치려 하는 것과도 같았다. 그러자 수경은 소은의 말을 끊은 채 입을 열었다.

 

 “아무렴 상관없어요. 이미 전 목적의식이 사라진 상태니까요. 다만….”

 

 현관문을 바라본 채로 수경은 멈춰 섰다. 수경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서정은 뒤를 돌아 소은의 표정을 살폈다.

 

 “이 하숙집은 꽤나 넓은 곳이더라고요. 어릴 때부터 자라 온 저도 모를 만큼.”

 

 수경은 한 마디를 내뱉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시 걸음을 떼었다. 조금 머뭇거리다 다시 수경을 따라 간 서정은 이번엔 앞장을 서더니 현관문을 열었다.

 

 요란하게 등을 킨 경찰차가 있었고, 그 옆으로 여러 명의 형사들이 보였다. 수연의 지시를 듣고 수경의 체포를 기다리던 형사들일 거라고 유정은 생각했다.

 

 “히카….”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보며 소은이 말끝을 흐렸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보였다.

 

 하숙집에 남아있는 모두가 그저 멍하니 수경의 뒷모습을 보았다. 수경은 담담하게 차에 올라탔고, 서정은 남아있는 형사들에게 무언가를 지시하며 상황을 정리하고 있었다. 곧이어 바람이 불었고, 큰 소리를 내며 하숙집의 문이 닫혔다.

 

 환한 불 아래에서도, 암전이 찾아온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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