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생각시의 살인교사 (1) - ⑦
지혜가 의사당 안에서 학현을 발견했을 땐 로텐더 홀은 이미 팽팽한 긴장감에 휩싸여 있었다. 본회의장 출입문 바로 앞은 국회사무처 경호기획관의 지휘 아래 50여명의 국회 경위가 막고 서 있었고, 그 앞으로는 100여명의 전경대가 방패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방어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그 맞은편에는 민철을 비롯한 1~2백 명가량의 사람들이 본회의장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전경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맨손이었지만 어디서 구했는지 일부는 몽둥이 같은 둔기를 들고 있기도 했고, 개중에는 구내식당이나 탕비실에서 구해온 것 같은 식칼과 과도 따위의 흉기를 들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일단 양측은 머리수가 비슷했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는 싸움에 익숙한 경위와 전경들 쪽의 전력이 월등히 앞서 보였다. 하지만 주변에서 사태를 관망하고 있던 족히 천명은 되어 보이는 사람들의 존재는 그들에게 적잖은 심리적 압박으로 작용했다. 그들이 언제 민철 쪽으로 가담할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민철 쪽의 사람들도 은근히 그렇게 될 가능성에 기대를 걸며 경위와 전경들에게 위협과 회유를 반복했다.
“야, 안 비켜? 안 비키면 우린 다 죽어!”
“아까 밖에서 사람들 죽는 거 봤잖아? 우리 같이 살자!”
나이 어린 전경대원들의 얼굴엔 동요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중년의 고지식한 경감에게만은 어림없었다. 그는 버럭 고함을 지르며 부하들을 다그쳤다.
“야 이 새끼들아! 정신 안 차릴래? 소대장들 뭐해? 애들 단속 안하고!”
그의 호통에 동요하던 전경들은 찔끔했다. 경감은 이어서 대치중인 사람들을 향해서도 소리쳤다.
“여러분, 진정들 해요! 이게 지금 뭐하는 짓들입니까?”
그러자 민철이 앞으로 나서며 대꾸했다.
“뭐긴 뭐야! 다 같이 살자는 거지. 그러니까 너도 얌전히 물러나라고!”
그러나 경감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오히려 민철을 몰아세웠다.
“오호라, 그러고 보니 넌 아까 귀신한테 홀렸던 그놈 아냐? 야 이 새끼야! 미치려면 혼자 곱게 미칠 것이지, 왜 멀쩡한 사람들까지 선동하고 지랄이야? 너 지금 이게 범죄단체 구성인 거 몰라?”
‘범죄’라는 말에 사람들은 순간 마음이 흔들렸다. 갑자기 분위기가 자신한테 녹록치 않게 돌아가는 것을 느낀 민철은 당황하며 말을 더듬었다.
“너, 너도 봤잖아! 여기가 이상하게 변하는 거랑 귀신이 나타나는 거. 좀 전엔 밖에서 사람들까지 죽었다고!”
민철이 밖에서 있었던 ‘추락사’를 언급하자, 이번엔 반대로 전경들 중 일부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바로 밖에서 대기하고 있다 사람들이 떨어져 죽는 걸 직접 목격한 이들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 이미 국회의장을 만나기 위해 안에 들어와 있었던 경감은 사람이 죽었다는 민철의 말이 가당치가 않았다.
“무슨 헛소리야? 아까 건물이 이상하게 변했던 건 다 원래대로 돌아왔잖아? 귀신같은 것들도 사라졌고! 이건 집단 최면이나 히스테리 같은 게 분명해! 착각이라고!”
집단 히스테리? 물론 사람들은 지금까지 자신들이 봐왔던 게 헛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그것들이 사실이 아니었으면 하고 바라는 심정도 있었기에 경감의 말은 그들의 마음을 흔들어놓기에 충분했다.
분위기는 다시 역전 됐다. 민철의 반박에 동요하던 전경들은 다시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가는 모습이었고, 이젠 오히려 민철의 뒤에서 전경들을 위협하던 사람들 쪽이 다시금 동요하기 시작했다. 이를 감지한 경감은 ‘이때다’라고 생각하며 사람들을 밀어붙였다.
“모두 무기를 버리고 해산하세요! 그러면 지금까지 여러분이 한 일은 없었던 일로 해주겠습니다! 만약 …….”
그런데 그때 경감 옆에 있던 전경 하나가 불쑥 귓속말을 했다. 그는 방금 전까지 의사당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소대장들 중 한명이었다.
“중대장님. 그건 좀 곤란할 것 같습니다.”
경감은 중요한 순간에 맥이 끊기자 살짝 짜증이 났다.
“뭐가?”
“그게 좀 전에 밖에서 의원 몇 명이 저들한테 맞아 죽었습니다.”
경감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 그게 정말이야?”
“네.”
“그럼 설마 사람들이 죽었다는 게 …….”
“그게, 모두가 맞아죽은 건 아니고요 …….”
“그럼?”
“저도 보고서도 믿기진 않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갑자기 수십 명이 공중에서 나타나 떨어져 죽었습니다.”
“뭐야? 그럼 저 자식 말은? 그것도 사실이야?”
“그게 무슨……?”
“의원들을 죽여야 살 수 있다면서?”
그런데 그 말엔 소대장도 바로 대꾸를 하지 못했다. 대신 잠시 뭔가 골똘히 생각하다 쭈뼛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게 정확하진 않지만, 저 자가 무당이라 말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귀신에 대해 잘 아는 것 같긴 한데…….”
“무당?”
경감은 어이가 없었다. 잠시나마 진지했던 자신의 모습이 새삼 우습게 느껴졌을 정도였다.
“저 자식 무당이야? 거 참 가지가지 하네, 미친 새끼들. 믿을 걸 믿어야지.”
그러더니 다시 민철과 사람들을 향해 아까 하다 말았던 최후통첩을 마저 했다.
“여러분! 만약 5분이 지나도 해산하지 않으면, 그땐 강제로 해산하고 체포할 것입니다! 5분입니다!”
사람들은 경감이 갑자기 기세등등해져서 시한까지 못 박고 나오자 전에 없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이를 눈치 챈 경감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곧바로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전 대원, 2보 앞으로!”
그의 외침과 동시에 선두에서 방패를 들고 있던 전경부터 앞으로 2보씩 전진했다. 그러면서 일부는 몇 발짝 더 돌출 돼 나와 방패를 한 번씩 휘둘러 보이며 사람들을 위협했다. 그것은 꽤 효과가 있었다. 민철 쪽 선두에 서있던 사람들이 방패를 피해 뒷걸음질을 치다 뒷줄을 밀치는 바람에, 뒤에 있던 사람들도 연이어 뒤로 물러나버렸던 것이다. 이후 양측 간의 대치는 전경들 측이 다소 우위를 점한 가운데 한동안 균형을 유지했다.
그때 동원과 승희, 승호, 지인이 막 의사당 현관으로 들어섰다. 그들은 들어오자마자 계단 너머로 3층 로텐더 홀을 올려다보았다. 걱정한 것처럼 막 싸움을 하고 있진 않았지만, 홀 전체가 팽팽한 긴장감에 휩싸여 있는 게 얼핏 봐도 곧 무슨 일이 터질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지인은 걱정스런 표정으로 승호에게 물었다.
“오빠, 지혜 괜찮을까?”
승호는 지인을 안심시키며 말했다.
“걱정 마. 지혜라면 혼자서도 저 사람들 다 상대하고도 남을 아이잖아.”
하지만 지인은 여전히 마음이 놓이질 않았다.
“그럴까?”
이에 동원도 거들고 나섰다.
“지혜 씬 대학 때 시위 현장에서도 일당백이었잖아요. 별 일 없을 거예요.”
하긴 지혜는 불같은 성격 탓에 시위 때마다 몸을 사리지 않고 앞으로 나서서 항상 지인의 속을 태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경들에게 붙잡히거나 어디 다쳐서 나타난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지인은 지혜가 난리 통에 휩쓸릴까 걱정이 되긴 했지만, 이번에도 지혜를 믿어보기로 했다. 어차피 이제 와 말린다고 해서 말을 들을 아이도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지금은 승희를 돌보는 일이 더 급했다.
“얼른 대표실로 가요. 승희 눕혀야겠어요. 그리고 오빠도 이젠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몸을 숨겨야 돼.”
네 사람이 대표실로 들어간 이후에도 로텐더 홀은 여전히 대치중이었다. 학현과 지혜는 카페 로비 쪽에 나란히 서서 그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경감은 소매를 걷어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예고했던 5분이 막 지나고 있었다. 지금이라면 충분히 저들을 제압할 수 있을 거란 판단이 들었다. 이에 소대장들과 눈빛을 교환한 후 해산 명령을 내리기 위해 오른 손을 높이 쳐들었다. 그런데 그때 경감 쪽을 쳐다보고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대번에 하얗게 질려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경감은 내심 우쭐해졌다.
‘훗, 전부 겁먹었군.’
진압에 자신감이 붙은 그는 곧바로 부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전대원! 전ㅈ……”
그러나 경감이 ‘전진’이란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맞은 편 사람들이 그 보다 더 먼저 기겁하며 그의 등 뒤를 가리키면서 소리쳤다.
“으악! 뒤, 뒤!”
경감은 어리둥절했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등 뒤쪽에서 오싹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에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천천히 뒤를 돌아보던 경감은 그만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 버리고 말았다. 아까 홀에 나타났었던 궁녀 유령이 얼굴을 그의 바로 코앞에다 들이밀고 있었던 것이다. 유령은 고개를 옆으로 비스듬히 기울인 채 경감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유령에게 눈알은 없었다. 대신 그 자리가 텅 비어서 퀭해 보일 뿐이었다. 기겁한 경감은 허겁지겁 그 자리에서 도망치려 했다.
“으아악!”
하지만 유령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곧장 양팔을 벌려 경감을 등 뒤에서 와락 부둥켜안았다. 경감은 하얗게 질려 발버둥 쳤다.
“이, 이거 놔!”
그러나 마치 기둥에 단단히 결박된 것처럼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그 순간 홀 중앙에서 꽃님이 스르륵 모습을 드러냈다. 양측의 사람들은 기겁하며 혼비백산 사방으로 흩어졌다. 몇몇은 허둥대다 제 발에 걸려 넘어지기까지 했다. 그러나 꽃님은 주변의 소란엔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오로지 경감만을 빤히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공포심이 극에 달한 경감은 마치 최면에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발버둥마저 멈추고 얌전해졌다. 이후 한동안 홀 전체엔 숨소리마저 들리지 않는 정적이 감돌았다.
사람들은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까 꽃님이 말없이 주시했던 민철에게 결국 사단이 일어났던 것처럼, 경감에게도 곧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그때 돌연 꽃님의 두 눈에서 영문 모를 눈물 한 줄기가 주르륵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경감은 곧바로 시퍼런 면도날에 뺨을 베인 것처럼 소름이 좍 끼쳤다. 이어 질겁하는 경감의 모습 위로 500년 전에 꽃님의 혀를 자르려 쇠집게를 손에 들고 다가오던 내시무사의 모습이 꽃님의 눈에 겹쳐져 보였다. 순간 꽃님이 눈을 무섭게 치켜뜨며 경감을 노려봤다. 경감은 흠칫했다.
“히익!”
이어 눈 깜짝할 사이에 경감을 끌어안고 있던 궁녀 유령이 등 뒤에 난 다른 차원의 틈으로 빨려 들어가듯 경감을 데리고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경감은 갑작스러움에 미처 비명을 지를 겨를조차 없었다.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곧 자신이 다음 차례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자세를 바짝 낮추고 등 뒤와 주변을 필사적으로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때 그들의 머리 위에서 경감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으아악!”
사람들은 화들짝 놀라 일제히 고개를 들어 돔 천장 쪽을 쳐다봤다. 경감이 공중에서 필사적으로 몸부림을 치며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살려……!”
그러나 그 ‘살려달라’는 말마저 다 끝맺지 못한 채 곧장 대리석 바닥위로 거꾸로 내리 꽂혔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바닥에 부딪힌 충격으로 팔다리가 몸통에서 떨어져나가면서 피와 함께 사방으로 흩어졌다. 사람들은 혼비백산 헐레벌떡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꽃님만은 눈알을 이리저리 굴려가며 경감의 시체와 도망가는 사람들을 우두커니 지켜만 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