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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집사와 남편 사이
작가 : 루야
작품등록일 : 2017.11.7

메이블 공작, 비올레타 메이블에게 7살 이전의 기억은 없다.

그녀의 나이 7살, 죽을 뻔한 비올레타의 앞에서 부모는 걱정 하나 하지 않았다는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

'죽을뻔한 너를 살린 사람은 황제 폐하이니 그 분께 평생을 바쳐라.'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소녀는 그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나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노예처럼 부려지는 것에 불만을 가졌고 스물이 넘은 후로는 반항심이 생겼다. 하지만 무려 7살 때부터 지속된 세뇌는 그녀를 당당해질 수 없게 만들었다.

26살, 19년 동안의 속박을 마침내 예정된 죽음으로서 벗어나게 된 그녀. 행복한 삶은 고사하고 그저 죽음으로 도망칠 생각 뿐이었는데...

'저는 주인님의 충직한 종복이니까요.'

그대는 왜 내게 다가오는가.
마음을 열어 내 뒤를 맡기고 했건만 그대는 왜 존재하지 않을 나의 미래를 이야기하는가.


[ 시한부여주, 공작여주, 무심여주, 흑막남주, 여주호구남주, 남주후보 아마도 셋, 조금의 힐링물(잔잔X), 피폐물ㄴㄴ 초반부에 살짝 스릴러, 새드엔딩 아니에요 :D ]

-표지는 shutterstock!
-조아라와 동시 연재중..!

 
8화. 이상한 집사님
작성일 : 17-11-14 19:09     조회 : 260     추천 : 0     분량 : 5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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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자를 눌러쓰고 자리에서 일어난 비올레타는 26살이라는 나이가 무상하게도 갓 스물이 넘은 나이로 보였다. 노엘과 호위기사 베론 경 만을 대동하고 해안가로 향하는 동안 비올레타를 본 이들은 수군대며 이 도시에 저런 아가씨가 있었냐며 의문을 표했다.

 

 상점들이 모여 있는 해안가에 도착해서도, 그녀에 대한 호기심 어린 시선을 사라지지 않았다.

 

  “수도 보다야 못하지만 꽤나 북적이는 곳이구나.”

 

 해적처럼 거친 복장의 선원들, 서커스단의 화려한 텐트, 그 사이 사이를 누비며 호객 행위를 하는 꼬마들까지. 사람들로 북적이는 상점가를 유랑하듯 걸으며 비올레타가 중얼거렸다.

 

 그녀의 옆, 노엘은 제게 달라붙는 꼬마들을 때어내려 진땀을 빼고 있었다. 어느새 이 지역의 아이들과도 친해졌는지 의문이었다. 하여간 사람을 구워 삶는데 에는 최고봉이나 마찬가지였다. 마침내 아이들에게 사탕을 하나 씩 쥐어 줘 보낸 노엘이 이마를 훔치며 그녀를 돌아보았다.

 

  “저 곳이 예언가의 텐트라 들었습니다.”

 

 그의 손이 향한 곳은 조잡하고 장식들로 넘쳐나는 서커스단의 텐트와는 달리 단조로운 검은색 텐트였다. 안부터 밖으로 쭉 이어진 줄이 셀 수 없을 정도로 길어 비올레타의 미간이 좁혀졌다. 저 줄을 기다려가면서 예언가를 만나야하는 이유가 있나.

 

 그녀는 텐트를 잠시 구경하다 그 앞을 스쳐 지나가려 했다. 하지만 텐트 안에서 커다란 울림 같은 소리가 비올레타의 발목을 낚아챘다.

 

  “밖에 있는 아가씨.”

 

 깊고 음울한 울림이었다.

 

  “먼저 들어오세요.”

 

 줄을 서 기다리고 있던 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비올레타를 쳐다보았다. 그 눈들이 결코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기에 베론 경이 흠치 놀라며 검 집에 손을 가져다댔다. 노엘은 그들이 ‘위험’하기보다는 예언가에 대해 ‘신봉적’임을 느끼고 긴장을 풀었다.

 

 느낌상으로 봐서는 ‘예언가’라는 인물은 비올레타에게 호기심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으니 위험요소는 없었다. 그래도 저절로 길을 비켜주는 사람들 사이를 헤치며 텐트 안으로 들어가는 노엘의표정이 조금은 떨떠름했다.

 

  ‘대충 유명하다고는 들었는데 거의 신도들을 만들어 놓았잖아.’

 

 앞서 가는 비올레타의 어깨가 못마땅하게 굳어 있었다. 예언가를 만나고 싶지도 않았건만 기다리던 사람들을 모두 제치고 그, 혹은 그녀를 만난다는 게 뭐하게 느껴진 것 같았다.

 

 비올레타가 흑단나무로 만들어진 의자에 앉자 고개를 숙이고 있던 예언가가 얼굴을 들어 그녀와 마주했다. 검은 망토를 꾹 눌러쓰고 있을 거라는 짐작과는 달리 예언가는 얼굴을 훤히 드러내고 있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경계가 모호한 미상의 얼굴이 비올레타를 흥미롭게 응시했다. 은발이라 부르기에는 흰 빛이 강한 단발머리, 눈을 살짝 가리는 긴 앞머리 사이로 새빨간 눈이 호기심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예언가가 아무 말 없이 카드를 테이블 위에 늘어놓기 시작했다. 검고 붉은 무늬로 장식된 흰 카드가 빈틈없이 테이블을 채워나갔다. 노엘은 비올레타의 오른쪽 뒤에서 서 예언가의 하는 것을 가만 바라보았다.

 

 삐딱이 짝다리를 하고 선 노엘과 달리 베론 경은 여전히 불안감을 떨치지 못했는지 검 집에서 손을 때지 않았다. 비올레타는 뒤에 선 두 사람이 무엇을 하던지 상관하지 않았다.

 

  “귀인, 앞으로의 인생이 어찌될지 봐드리죠. 카드 세 장을 고르십시오.”

  “어디 잘 맞춰 보게나.”

 

 비올레타는 오른손을 들어 카드 세 장을 골라냈다. 예언가가 손을 휘두르자 그녀가 고른 카드를 제외하고 다른 카드들이 모두 테이블 아래로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카드 세 장을 뒤집은 예언가가 슬쩍 웃었다.

 

  “역시 제 짐작이 맞았군요. 후에 대륙을 휘두를 귀인.”

  “해설은?”

 

 그녀는 이 예언가가 정말 미래를 예상하는 사람이 아님을 확실히 하기 직전이었다. 1년 뒤면 신의 품으로 돌아갈 사람을 보고 ‘후에 대륙을 휘두를 귀인’이라니. 아무 말이나 지껄이는 것이 아니면 다행이었다.

 

 예언가는 세 장의 카드를 자세히 살펴보며 턱을 괴었다.

 

  “고난이, 끔찍한 고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성별이 불분명했지만 비올레타는 예언가가 남자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의 오른쪽 검지가 중간의 카드를 툭툭 건드렸다.

 

  “세상에 다시없을 인연이 일 년 안에 찾아올 겁니다. 그 연인과 함께 시련을 견디고 나면 영원히 행복이 올 것이 분명하고요.”

  ‘세상에 다시없을 인연은 죽음 아닌가.’

 

 비올레타가 깔깔 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어쩜 저리도 이상한 결론을 내릴 수 있지? 그래도 예언가가 딱 하나 맞춘 것이 있었다. 세상에 다시없을 인연, ‘죽음’이 그녀에게 찾아올 것이라는 사실.

 

 자지러지면 웃는 비올레타를 보는 예언가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웃음이 떠올랐다. 아무도 모르는 사실을 혼자만 알고 있는 사람의 은밀한 웃음이었다. 예언가가 다른 말을 꺼내기도 전에 비올레타가 입을 열었다.

 

  “내 인생이 어떻게 결정될지 그렇게 예측할 수 있다면, 이 두 사람의 인생도 가능한가?”

  “물론입니다. 어찌, 두 분은 카드 점을 보시겠습니까?”

 

 베론 경은 경계를 풀었지만 점을 보겠다는 의지는 없었다. 노엘은 싱긋 웃으며 부탁한다고 했다. 예언가의 손짓에 따라 바닥으로 떨어졌던 카드들이 다시 테이블 위로 정리되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비올레타를 만류한 노엘이 고심하는 척 느리게 카드를 골랐다.

 

 그가 고른 것을 뒤집어 본 예언가의 얼굴이 미세하게 굳었다.

 

  “하하…… 이것 참 특이하네요.”

  “천천히 하십시오.”

  “허…… 참.”

 

 예언가가 흰 단발을 쓸어 넘기며 난감하게 웃었다. 노엘은 여유롭게 팔짱을 끼고 예언가가 해석을 마치는 것을 기다렸다. 잠시 고민하던 예언가는 카드 세 개를 한 번에 짚으며 말했다.

 

  “모두 단 하나 만을 가리킵니다.”

 

 카드 세 개가 약간 요동쳤다.

 

  “귀인께선 딱 한 가지를 쫓고 있습니다, 세상 누구도 원하지 않을 리가 없는 빛나는 보물을요. 하지만 그 보물은 절대 쉬이 잡히지 않을 겁니다.”

 

 사실 예언가가 세 개의 카드에서 읽은 것은 한 여자에 대한 도를 넘을 듯 말 듯한 집착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사실대로 말하기에는 비올레타의 곁에 버티고 선 노엘의 압박이 너무 심했다.

 

 결국 자신이 읽은 것을 돌려 말한 예언가는 숨을 몰아쉬며 비올레타와 노엘을 번갈아 보았다. 둘의 연관관계라. 예언가로서 심히 흥미로웠지만 더 이상 관심을 보이지 말라는 마음의 지시가 있었기에 그는 입을 다물었다.

 

 잠시 의자에 앉아있던 비올레타는 형식적으로 감사 인사를 건네며 바깥으로 나왔다. 죽음이 올 것이라는 생각은 아직 변함없었다. 그저 예언가의 이상한 예언에 한바탕 웃을 수 있어서 재미있을 뿐.

 

  “흰 손수건의 원단을 파는 가게가 어디쯤에 있는지 아나?”

  “음…… 천을 파는 곳에 가면 될 터이니.”

 

 노엘은 아기자기하게 장식된 가게로 걸어 들어갔다. 비올레타는 그의 뒤를 따라 가게 안으로 들어가 여기저기 널려있는 천 조각들을 둘러보았다. 그녀는 심플하고 단순한 디자인의 손수건들 중 아무 것도 수놓아지지 않은 것을 하나 집어 들었다.

 

 마침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달려 나온 주인이 한껏 웃으며 두 손을 맞잡았다.

 

  “아이고, 직접 수놓아 애인에게 선물하시려고요? 그러면 이 손수건이 최고긴 하죠.”

  “……얼마나 하지?”

 

 애인이 아니라고 부인하려던 비올레타는 그냥 값을 물었다. 굳이 변명하기도 귀찮았다. 주인은 딴 말 하고 싶지 않다는 그녀의 의지를 알아차렸는지 어색하게 웃으며 가격을 말해주었다.

 

  “4실버 50브론이에요.”

 

 5실버 동전을 찾던 비올레타는 작은 은화가 없음을 알고 그냥 10실버를 건넸다.

 

  “여기, 잔돈은 가지세요.”

  “아유, 감사합니다. 착한 아가씨, 애인과 잘 되길 빌게요.”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가게를 나서는 비올레타의 뒤를 노엘과 베론 경이 줄줄이 따라갔다. 가게 주인은 그들이 착하고 아름다운 귀족 아가씨의 호위이겠거니 하며 몸을 돌렸다. 옷을 만드는 일을 마저 끝내야 했다.

 

 다른 곳에 들리지 않고 바로 별장으로 돌아온 비올레타는 카시멜라를 불러 수놓는 실과 바늘을 가져오게 했다. 믿게 된 기사들이나 가신들에게 가끔 선물해주는 것이 그녀가 직접 수놓은 손수건이었다. 수틀을 손 안에서 굴리며 비올레타는 어떤 문양을 수놓을까 고민했다.

 

 노엘 미에타와 어울리는 것. 색색의 실들을 헤치며 어떤 것을 고를까 고심하던 비올레타의 손가락이 빛나는 금실과 은실을 집어 들었다. 금빛 늑대, 수놓기에는 조금 복잡하고 귀찮은 것이었지만 그와 어울리기에 늑대만 한 것이 없었다.

 

  ‘오랜만에 들이는 정성……. 참, 베르안에게 줄 것도 장만해야 하는데.’

 

 금실과 은실을 적당히 섞어 부드러워 보이는 인상의 늑대를 수놓던 손가락이 멈칫했다. 날카로운 바늘에 찔린 손가락 끝에서 피 방울이 하나 떨어져 흰 손수건을 물들인 것이었다. 너무 오랜만의 자수라 실수를 했다.

 

 비올레타는 꽤나 큰 동그라미를 그리며 손수건을 물들인 제 피를 가만히 응시했다. 어처구니없이 바보 같은 실수였다. 자수를 마치고 손수건을 한 번 물에 담가야겠다고 생각하며 비올레타가 수놓는 것을 계속했다.

 

 미리 도안도 그려놓지 않고 시작한 탓에 채 하루도 안 된 시간 동안 자수를 끝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창밖이 어둑해지자 노엘이 저녁식사를 하라 부를 것을 예상하고 손수건을 서랍에 감춘 그녀는 먼저 식당으로 향했다.

 

  “공작 각하, 수도에서 헤이바 자작의 서신이 도착했습니다. 편지에 급한 일이라 쓰여 있던데……”

 

 식당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마주친 혤라는 얇은 편지 하나를 들어 보이며 말을 얼버무렸다. 또 다시 일에 시달리고 싶지 않은 비올레타는 그저 손을 휘휘 저을 뿐이었다.

 

  “집무실의 테이블 위에 가져다 놓거라. 식사 후에 확인하마.”

  “예, 알겠습니다.”

 

 혤라의 손에 들린 헤이바 자작의 편지가 조금 걸리기는 했지만 그녀는 혤라를 지나쳤다. 식당에 도착해보니 노엘이 모든 준비를 마치고 비올레타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마침 내려오시라 하려던 참이었는데.”

  “이제 언제가 식사 시간인지 정도는 안다.”

  “앉으십시오. 바로 애피타이저를 내오겠습니다.”

 

 비올레타는 준비되어 있는 과일주를 홀짝이며 턱을 괴었다. 요양을 온 지 대충 한 달이 지났다. 아멜리안 영지에 있는 것이 익숙해질 만큼 길다면 긴 시간이었으나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가버린 짧은 시간이기도 했다.

 

 한 달의 요양과 노엘의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비올레타의 얼굴은 확실히 좋아졌으며 더 자주 웃게 되었다. 정작 그런 변화를 잘 느끼지 못하는 본인은 여전히 자신이 병자 같은 얼굴을 한 싸늘한 공작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주인님. 정신 차리시죠, 애피타이저 나왔습니다.”

 

 무례하다고도 볼 수 있는 거침없는 언행, 노엘은 비올레타의 앞에 접시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녀는 평소처럼 작고 예술적인 음식들을 입 속으로 집어넣었다.

 

 맨 위의 셔츠 단추를 푸르며 노엘이 조금 불안정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이틀 정도 휴가를 다녀와도 되겠습니까?”

 

 한 달에 휴가 이틀, 그것은 계약서에도 명시된 노엘의 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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