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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달의 마리아
작가 : 해우Manatee
작품등록일 : 2017.11.3

"왜 굳이 의미를 찾으려 하는가? 인생은 욕망이지 의미가 아니다."

- 찰리 채플린

 
15화
작성일 : 17-11-14 18:28     조회 : 251     추천 : 0     분량 : 3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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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비정곡

 

 “이름이 뭔가?”

 

 “슈텐하이머 에슐트”

 

 “그래, 자네 어디에서 태어났나?”

 

 스스로를 콥스 중위라고 소개한 남자는 그를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이렇게 선명하기도 힘들 것 같은 붉은 머리칼과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난 게 확실한 구릿빛 피부 그리고 흑색의 동공. 북부의 피를 한 방울도 받지 않은 채 그들의 군복을 입고 동포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남자가 그의 북부인 전우를 살리기 위해 수치를 견디고 있었다.

 

 “고르돈 출신입니다. 젊었을 적 테움에서 온 한 귀족 아씨를 따라 월북했습니다.”

 

 “자네가 한 말을 보증할 수 있나?”

 

 “예?”

 

 “자네가 전쟁 중에 이름을 바꾸고 전향한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할 수 있는지 물었다.”

 

 중위는 애초에 이 부조화한 차림의 사내의 굳은 의지가 전향에서 나왔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고향에 남겨진 그의 가족이 누리는 안락함을 위해서는 군 내에서 그의 뒤를 봐주는 로페르트 에르망 대령에게 공을 세울 필요가 있었다.

 

 “어렸을 때에는 양치기로 살았기에 슈텐하이머라는 이름밖에 없었습니다. 이건 혹시 아직 여기에 살고 있다면, 코네나 커프제라는 친구들이 기억할지도 모릅니다. 이십 대에 아직 첫 전쟁이 일어나기 전 시절, 트레니 에슐트 공작 아가씨를 따라 북쪽으로 가 꽤 오랫동안 바하에서 지냈습니다. 그러다….”

 

 남자는 백작가에 남은 틸리아를 생각했다. 고르돈 목전에는 도르테가 있었고 영지에 홀로 남아있는 그의 딸이 드러난다면 두 나라의 전쟁 사이에 끼어 한없이 휘둘릴 것이 분명했다.

 

 “그러다 전쟁이 벌어지고, 베르체 사람이라는 이유로 정착하지 못하고 여러 곳을 맴돌다 도르테 영지에 사용인이 되어 몇 년 전 이 평원 전투의 병사로 차출되었었습니다. 이건 제 친우인 베릴 위들러에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슈텐하이머는 중요한 내용을 하나 누락했지만, 콥스 중위는 찾으려 하던 정보를 이미 손에 넣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주임원사니 광물학자니 로페르트의 후원을 받는 모든 이들이 주목하는 도르테 영지의 사용인을 그가 먼저 찾아내었다. 중위는 목소리를 한껏 낮추고는 담담하게 다음 질문을 이어갔다.

 

 “자네의 친구는 후방에서 치료받기는 힘들 걸세. 척추에 총을 맞아 하반신 불구가 됐으니 좀 더 위쪽에 있는 민간인 포로들과 함께 북부로 보내주겠네. 대신 도르테에서 자네가 우리의 길잡이가 되어준다면 말이야.”

 

 슈텐하이머는 순간 천장이 녹아 내리는 것 같다고 느꼈다. 일말이나마 그는 남부군이 군사 거점으로서는 가치가 없는 도르테를 그저 지나치길 바랬었다.

 

 “본대는 도르테 영지를 지나쳐 갈 걸세. 거기론 그저 한 개 중대만 들어갈 거야. 군의 높으신 분이 도르테에서 찾을 물건이 있다 하시니, 자네가 저택 안에서 길만 잘 안내해주면 자네의 친구는 북부에 있는 병원으로 가고 자네는 전향을 인정받고 우리 중대에 들어와 고국을 위해 싸울 수 있을 걸세. 좋은 일 아닌가?”

 

 거부할 수도 나아갈 수도 없는 선택 사이에서 고향에 딸아이를 절름발이 병사는 중위가 건넨 그의 새 군번줄을 받았다.

 

 양털을 넣어놓던 헛간에 임시로 만든 수용소에서 틸리아는 그녀의 작은 주인이자 친구였던 라렐리 도르테에 대해 생각했다. 어렸을 적부터 온갖 고난을 겪어오며 살았던 틸리아에게 도르테에서의 삼 년은 그녀가 가진 추억들 중에서도 가장 재미있는 부분들이었고 며칠 전에는 그녀가 태어나 처음 알게 된 목동인 한스에게 백작가의 아씨가 얼마나 멋진 사람이었는지 몇 시간 동안 설파하기도 했었다. 한스는 처음 만난 그 날부터 하루 종일을 그녀가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줬고, 갑자기 시작된 공습이 끝나고 난 뒤에도 여전히 그녀가 찾을 때마다 북쪽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고 남쪽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하지만 도르테 백작가의 비복들과 함께 이 어두컴컴한 곳에 갇힌 이후로 틸리아는 그를 만나기는커녕 햇볕도 못 봐서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도 구분하기 어려울 지경이 되었다. 하루에 두 번씩 들어오는 식사의 횟수로 나흘을 꼬박 갇혀있었다는 걸 추리했지만 틸리아의 기분은 나아지질 않았다.

 

 ‘우리 아빠 어디 있는지 알아요?’

 

 그녀가 마지막으로 목동들을 만났을 때 했었던 말이었다. 그날 틸리아를 중심으로 북부의 소식을 나누던 목동들은 슈텐하이머라는 이름을 듣고는 그녀가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한참을 자기들끼리 수군거렸다. 그 중에서도 수염을 가슴께 까지 길러 양털을 덕지덕지 붙인 채 다니던 코네라는 목동이 계속 남부어로 아버지의 이름을 중얼거리다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눈물을 터뜨리기까지 했었던 건 틸리아에게 벅찬 희망으로 다가왔던 터였다. 하지만 다음날이 되자 백작가에서 온 여자들은 모두 지금의 헛간에 갇히게 되었고, 그저 목동들이 그녀의 아버지가 어디 있는지를 아는지 추측해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건 그녀에겐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양털 뭉텅이에 파묻힌 채 푹 내쉬는 한숨 소리 뒤로 한스의 건조한 북부어가 들렸다.

 

 “전쟁 포로들 중 하나다. 너희들이 누군지 더 잘 알 거야.”

 

 몇 일 전, 역시 양털을 넣어놓던 헛간에 임시로 만든 침상에 누운 베릴은 서서히 의식이 회복되었다. 베르체군의 군의관은 콥스와 슈텐하이머의 면담이 끝나자 마자 독시를 투여하고 환부를 소독했고 정신이 돌아온 베릴은 여전히 하반신을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그의 친우는 그를 살리기 위해 기꺼이 총을 거꾸로 잡는 일을 해냈지만 베릴의 상태는 차마 그럴 가치가 있을지 의심이 될 수준이었다. 열은 몇 일이 지나도 떨어질 기세를 보이지 않았고 허리의 상처는 탄환을 빼낸 상태였지만 그을린 듯 검게 변한 상처가 붕대 아래에서 악취를 풍겼다. 의사는 그저 탄저균이라 말한 후 약을 한 뭉치 쥐여주고는 그를 민간인 수용소로 보내며 한마디 덧붙였다.

 

 “하루에 세 번씩은 약을 먹고 거기 있는 게 떨어지기 전에는 병원에 도착하게.”

 

 수용소 안에 갇혀있던 여인들은 느닷없이 나타난 베릴의 한마디한마디에 눈물로 치마자락을 적셨다. 그는 평원에서 수개월 동안 벌어진 공방에 백작가에서 차출된 노복들은 모두 죽었고 도르테 백작도 사지나 다름없는 전장에 보내졌다는 말을 담담하게 하면서 이제 며칠 후에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비복들 중에서는 같은 저택의 노복들과 짝을 이루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작은 헛간은 곧 그들이 오열하는 소리로 가득 찼고, 바퀴달린 침대에 누운 베릴은 애써 고개를 들어 틸리아를 바라보았다. 슈텐하이머는 전향을 결심했다. 그는 북쪽에 남겨놓은 딸아이의 안전을 위해 베르체군에게 그녀의 존재를 숨겼고 그건 이제 북부군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틸리아의 눈이 터져 나올 것처럼 팽팽하게 부푼다. 눈 옆을 지나가는 실핏줄들이 터지고 곧 선홍색이 섞인 눈물 방울이 양 볼을 흐르며 그녀의 얼굴을 씻었다. 그녀를 보고 슬퍼하던 코네의 눈물은 동정심이었고 한스가 그녀에게 아버지에 대해 대답해 주지 않은 이유도 동정심이었다. 그녀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이유 모를 증오가 솟구쳤다. 세상은 평생을 그녀를 쫓아다니며 괴롭혔다. 고통 속에 살아온 틸리아에게 아버지는 그녀에게 허락된 유일한 구원이었고 그녀가 세상을 미워하지 않을 수 있게 해주는 그녀의 유일한 가호였다. 틸리아는 피 섞인 울음을 뱉으며 짐승의 울부짖음을 하였고, 그녀의 마음 속에는 평생을 쌓아온 미움의 독이 쏟아져 그녀의 세상이 버티지 못하고 이내 무너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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