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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라크리모사
작가 : 마리
작품등록일 : 2017.10.30

왕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왕녀 벨리타. 그녀는 명목상의 요양을 위해 변방의 성에서 여름을 보내게 된다. 그곳의 성주는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금발의 벙어리 소녀다. 그것만으로도 이상한데, 매일 밤 자정 홀의 낡은 궤종시계가 열 두번 종을 울리면, 성의 호숫가에 새카만 머리카락의 유령이 배회한다.

 
1장. 여름의 유배지(2)
작성일 : 17-11-14 17:50     조회 : 205     추천 : 0     분량 : 6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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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째 비가 왔다.

 정확히는 체칠을 위아래로 양분하는 시에라 강 이남으로 내려오자마자, 줄곧 비가 내렸다. 델칸토 제국이나 아라방드 왕국에 비하면 체칠은 국토의 크기가 작은 나라다. 그런데도 시에라 강 북쪽 땅과 남쪽 땅은 깜짝 놀랄 정도로 기후가 달랐다. 기후 뿐만이 아니다. 풍속도, 문화도, 사람들의 성격도 모두 다르다.

 마차가 시에라 강을 가로지르는 길고 거대한 교량을 건널 무렵, 벨리타는 마차 표면 위로 한 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하는 빗소리를 들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흔히들, 북쪽 사람은 오만하고 난폭하다고 한다. 남쪽 사람은 방만하고 이죽대기를 좋아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남쪽도 북쪽도 아닌, 바로 그 경계에서 태어난 사람은 어떻게 정의내려야 좋을까?

 그녀는 바로 이곳, 빗방울이 한 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하는 곳, 시에라 강가 어부의 집에서 태어났다. 세 살 때까지 어부의 집에서 숨어 살았다. 아직 아버지는 왕이 아니었다.

 커튼을 손톱만큼 걷어 강 이쪽과 저쪽을 한 번씩 곁눈질했다. 자신이 태어나 세 살때까지 살았던 집이 어디쯤 있었을까, 가늠해보았다. 하지만 이내 지루해져 그만 두었다. 앞자리에 앉은 링크 부인은 고개를 우측 대각선으로 기묘하게 꺾고 잠들어 있었다. 링크 부인의 툭 튀어나온 광대뼈와 송곳처럼 뾰족한 턱을 보고 있자니, 새삼스럽게 에밀리아가 생각났다. 에밀리아가 힘들게 싼 트렁크를 내팽개친 것도 생각났다. 에밀리아는 삼십 분 동안 트렁크를 다시 싸야만 했다. 에밀리아한테 뒤늦게 미안해졌다.

 착하고 눈물 많은 에밀리아, 네 대신이 저 링크 부인이란다. 여름 내내 나는 링크 부인의 잔소리를 들으며 살아야 하는 거야. 그러니 부디 날 용서해주렴.

 에밀리아를 떠올리며, 벨리타는 눈을 감았다. 머리 위를 규칙적으로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소리다. 금세 의식이 가물가물해졌다. 잠이 들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에는 사위가 어두컴컴했다. 사실 잠이 들기 직전에도 사위는 어두컴컴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가 없어, 벨리타는 게으른 소처럼 눈만 끔벅였다.

 링크 부인은 이미 일어나 있었다. 시선이 마주치자 그녀가 손가락으로 제 입가를 가리켰다. 벨리타는 반사적으로 흘러내린 침을 문질러 닦았다.

 

 “오늘 안에 도착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길을 잃은 게 아니라면 좋겠지만…….”

 

 링크 부인이 그렇게 말했을 때에야, 벨리타는 마차가 멈춰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철갑처럼 차갑고 단단한 링크 부인의 얼굴에 드물게도 근심이 서려 있었다.

 

 “내가 얼마나 잤나요?”

 “서른 시간쯤 주무셨습니다.”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냐는 어조였다.

 

 “지금은 열 시고요.”

 

 링크 부인은 싸늘하게 덧붙였다. “밤 열시요.”

 조금 민망해져서, 벨리타는 괜히 창문을 열었다. 신선한 공기가 그녀를 덮쳤다. 습기를 가득 머금은 흙 냄새였다. 물에 젖은 풀 냄새와 썩은 열매 냄새와, 늪지대의 바위에 낀 이끼 냄새가 뒤섞였다.

 

 “마차가 왜 멈춰 있는 거죠?”

 

 벨리타의 목소리에 그녀 자신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희미한 불안이 뒤섞였다.

 

 “뒷바퀴가 진흙탕에 빠졌습니다. 지금 조치를 취하고 있는 중이에요.”

 “조치를 취하고 있는 중이라고요?”

 

 벨리타는 크게 되물으며, 다시 창문에 얼굴을 붙였다.

 사위가 어두컴컴하다. 한치 앞도 보이질 않았다. 뒷바퀴를 손보고 있다는 마부의 모습도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오로지 어둠뿐이다. 흙 냄새도 나고, 풀 냄새도 나고, 썩은 열매 냄새와 바위에 낀 이끼 냄새도 나는데. 그 모든 것들이 냄새만 있을뿐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밤이라지만 이렇게까지 어두울 수가 있을까?

 벨리타는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찬 바람이 부는 것도 아닌데 뒷덜미가 오싹해졌다. 마부가 휘두르는 채찍이 공기를 찢는 소리가 들렸다. 말들이 씨근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의 창문 뒷편에서, 온몸으로 마차를 미느라 진이 빠진 시종의 신음이 들렸다.

 그리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창밖은 변함없이, 어둠이다.

 

 “초조해하지 말고 레이디답게 제발 얌전히 기다리세요, 벨리타님.”

 

 링크 부인이 엄하게 말했다.

 벨리타는 다시 링크 부인을 보았다. 과연 왕녀의 예의범절 교사 다웠다.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손수건으로 닦으면서도, 링크 부인은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앉아 있었다. 벨리타처럼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지도 않았다. 링크 부인이 제발 가만히 있으라는 듯이 그녀를 향해 손짓을 했다.

 

 “부인……?”

 

 벨리타가 링크 부인을 불렀다. 그녀는 창문 밖을 한 번 보고, 다시 링크 부인을 보았다.

 

 “정 불안하시면 성경이라도 읽으시겠어요?”

 

 링크 부인이 그녀에게 성경책을 내밀었다. 그녀는 그것을 받아들었다. 그녀는 창문 밖과 링크 부인을 한 번씩 번갈아보았다.

 

 “……부인, 왜 저 바깥만 컴컴하죠?”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바깥과, 불빛이 없어도 선명한 마차 안의 풍경.

 

 “대체 무슨 말씀을……?”

 

 링크 부인은 커튼을 걷어 바깥을 확인했다. 부인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맙소사! 주여!”

 

 링크 부인이 정신없이 장미 묵주를 돌리기 시작했다. “부인? 링크 부인!” 벨리타가 여러 번 소리쳐 불렀지만, 링크 부인에게는 들리지 않는 듯했다. 젠장, 초조해하지 말고 레이디답게 기다리라고 할 때는 언제고. 벨리타는 드레스 자락을 걷어올렸다. 종아리에 몰래 묶어 온 팔뚝 길이의 검을 뽑아들었다. 추기경의 축수를 받은 검이다. 여간한 어둠에는 먹히지 않을 거였다.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여간한 일에는 끄떡도 않는 저 링크 부인이 사시나무처럼 떨며 기도문을 읊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였다.

 마부 두 명, 시종 한 명, 링크 부인, 그리고 자신.

 남들은 동의하지 않을 지도 모르지만, 벨리타가 생각하기에 이 중에서 그나마 전투력이 있는 것은 자신이었다. 괜찮아. 그녀는 스스로 다독였다. 괜찮아, 벨. 마이즈너 경이 또래의 수습 근위 기사보다도 훨씬 검술에 소질이 있다고 했잖아. 만약 남자애였으면 좋은 기사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고 했어. 그러니까 괜찮아.

 벨리타는 나지막하게 주문을 외웠다.

 

 ‘동쪽 하늘을 불태우는 섬광.

 만물의 첫번째 빛. 헬리오스 포이보스.’

 

 그녀의 검에서 빛이 터졌다.

 붉고 뜨거운 불꽃이었다.

 겨울의 새벽녘, 동쪽 하늘에서 터져나오는 햇빛. 아무도 밟지 않은 지상의 첫 번째 눈 위에 내려앉아, 녹이고, 증발시키고, 모든 것을 무(無)로 만드는 빛이었다.

 링크 부인이 놀라 그녀를 바라보았다. “와, 왕녀님…… 세, 세상에, 그건…….” 아까 어둠을 마주했을 때보다도 더 창백해져서, 링크 부인이 입술을 달싹거렸다. 벨리타는 무시했다. 마차 문을 열고 뛰어내리듯 땅에 내려섰다.

 바깥의 새카만 어둠.

 검의 빛이 어둠을 걷어냈다.

 벨리타는 눈을 깜박였다. 보인다, 보이기 시작한다. 희끄무레하지만, 그래도 분명히, 세계는 암흑이 아니었다. “벨리타님?” 마부 한스였다. 마차를 뒤에서 밀던 그가 벨리타와, 벨리타가 들고 있는 검의 섬광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쉬잇.” 벨리타는 한스에게 조용히 하라는 몸짓을 했다.

 소리가 들린다. 말들을 재촉하는 채찍 소리도, 그에 반응해 말들이 투레질 하는 소리도, 링크 부인이 기도문을 읊조리는 소리도 아니다. 살아있는 생명체가 내는 소리가 아니었다. 검의 빛이 채 밝히지 못하는, 저 깊고 먼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무언가가 있었다. 생명체는 아니지만 스스로 움직이고, 소리를 내고, 위협하고, 나아가 다른 생명을 집어삼킬 줄 아는 무언가.

 쉬익. 쉬이익.

 ‘그것’이 소리를 내었다. 점점 더 가까워진다. 어둠에서 그들 쪽으로, 서서히 다가왔다. 쉬익, 쉬이익. 벨리타는 ‘그것’이 내는 소리가 꼭 뱀이 내는 소리 같다고 생각했다. 대가리를 치켜든 뱀이 적을 위협할 때 내는 소리 말이다. 바닥에 그림자가 비쳤다.

 벨리타는 눈을 의심했다.

 꼬리다.

 뱀의 꼬리.

 “……벨리타님!” 한스가 찢어지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는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들고 벨리타의 앞을 엉거주춤 막아섰다. 이제 고작 스무살 밖에 되지 않은 어린 청년이었지만, 한스 또한 왕실의 마부였다. 여차할 때 모시는 왕족을 위해서 검을 뽑아들 수 있는.

 

 “어, 어서…… 드, 들어가세요!”

 

 애처로울 정도로 덜덜 떨면서, 한스가 그렇게 말했다. 남자치고 선이 가늘고 예쁘장한 한스의 얼굴이 공포에 젖는 것을 보면서, 벨리타는 차라리 자기가 한스를 지켜주는 게 나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괜찮다고 말하려는 찰나, 쉭쉭거리는 소리가 뚝 멎었다. 벨리타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대로 끝인가? 아니다. 아직 어둠은 물러가지 않았다. 어딘가에, 도사리고 있다. 그들의 바로 옆에.

 

 “으아아악!”

 

 한스가 비명을 질렀다. “이게 뭐야!” 그가 검을 떨어뜨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어둠을 갈랐다.

 맙소사, 세렌디앨이여. 그녀는 비명조차 지를 수가 없었다. 한스가 오른팔을 마구 휘저어댔다. “떨어져! 떨어지라고!” 한스의 오른팔에 시커먼 것이 휘감겨 있었다. 뱀의 꼬리와 비슷했다. 다만 실체가 없었다. 뱀 꼬리의 그림자라고 해야 할 것이, 한스의 손목부터 팔꿈치까지 칭칭 얽어매었다. 그 뱀 그림자는 그들의 등 뒤, 마차 반대편으로 이어졌다. 보이지 않는 쪽에서, 쉬익, 쉬이익, 또 다시 소리가 들렸다.

 벨리타는 이를 악물었다. 그녀의 검은 아직 태양의 빛을 잃지 않았다.

 

 “가만히 있어, 한스.”

 

 그녀는 한스의 왼쪽 손을 한 번 단단히 쥐었다가 놓았다. 좀 더 강한 마법을 쓸 수 있었다면, 혈관을 흐르는 마녀의 피가 조금 더 짙었더라면. 벨리타는 그렇게 자책했다. 얼굴도 보지 못한 할머니가 처음으로 원망스러웠다. 기왕 불길하다는 검은 머리카락을 물려줄 거라면, 불길한 마녀의 힘도 더 많이 물려줄 것이지.

 하지만 오래 원망하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벨리타는 그림자 뱀의 몸뚱이를 왼손으로 콱 쥐었다. 얼음을 맨 손으로 움켜쥐는 것 같은 냉기가 손으로 흘러들었다. 날카로운 바늘로 찔러대는 것 같은 통증이 찾아들었고, 이내 손바닥의 감각이 사라졌다. 그녀는 반대쪽에 든 검으로 그림자 뱀의 몸뚱이를 반토막 내기 시작했다. 질긴 고무를 칼로 썰어내듯이, 검날로 마구 문질렀다.

 

 “벨리타님…….”

 

 한스가 울먹이며 그녀를 불렀다.

 아무리 검을 든 손에 힘을 주어도 그림자 뱀의 몸뚱이에는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쉿쉿거리는 소리만이 더욱 더 커질뿐이다.

 

 “왜 안 되는 거야!”

 

 벨리타는 마침내 소리 내어 분통을 터뜨렸다.

 

 “당연히 그렇게 하면 안 되지.”

 

 낯선 음성이다. 변성기를 겪고 있는 소년처럼 낮고 칼칼한 목소리였다.

 새카만 어둠 쪽이었다.

 

 “거기 누가 있어?”

 

 대답은 없었다.

 

 “누가 있느냐고!”

 

 벨리타는 크게 외쳤다.

 그때였다. 어둠 속에서 주먹을 쥔 손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벨리타는 흠칫 놀라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녀를 놀리기라도 하듯, 손이 크고 둥글게 원을 몇 번 그렸다. 그러고는 주먹을 쫙 펼쳐, 쥐고 있던 것을 주변에 흩뿌렸다.

 하얗고 반짝이는 가루였다. 석영을 잘게 으깬 것 같았다. 손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가, 다시 쓱 나타나 흰 가루를 뿌렸다. 그것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한 번 가루가 휘날릴 때마다, 점차로 주위가 밝아졌다. 뱀이 쉬익거리는 소리도 작아져갔다.

 

 “벨리타님……!”

 

 한스의 부름에 벨리타는 정신을 다잡았다. 그의 팔에 엉겨붙어 있던 시커먼 그림자가 스르륵 물러가고 있었다. 마침내 팔이 놓여난 한스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느새 어둠이 사라졌다.

 여전히 밤이었지만, 빽빽한 나무와 작은 늪지, 자신이 밟고 있는 촉촉한 흙과 별이 반짝이는 하늘이 보였다. 밤이었지만 암흑은 아니었다.

 그리고 자신들을 도와준 사람의 모습 역시 보였다.

 암녹색 망토를 걸친 소년이었다. 후드를 뒤집어 쓰고 눈 아래를 같은 색 마스크로 가리고 있어서 소년인지 소녀인지 확신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벨리타는 그자가 소년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것도 자신과 비슷한 나이의 소년.

 

 “너, 누구야?”

 “글쎄, 누굴까?”

 

 그렇게 말하며 소년이 작게 웃었다. 목소리에는 약간의 쇳소리가 섞여 있었는데, 웃을 때에는 그렇지 않았다. 아주 맑고 부드러운 웃음 소리였다. 소년은 웃느라 흐트러진 후드를 매만졌다. 후드 안쪽에서 머리카락 몇 가닥이 흘러나왔다. 지금 그들의 머리 위를 비추고 있는 별빛처럼, 황금 물레를 돌려 뽑아낸 실처럼, 가늘고 매끄러운 금발이다. 소년의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본 순간, 벨리타는 반사적으로 자신의 검은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금발이라니, 몹시 기분이 나빠졌다.

 벨리타가 금발을 가진 사람을 끔찍하게 싫어한다는 것은, 왕궁 내에서도 아주 유명하다. 갑자기 험악해진 그녀의 표정을 살피다가, 한스가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유약하긴 해도, 어쨌거나 한스 역시 왕실의 마부였다.

 

 “저…… 일단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법사님……?”

 

 한스가 쭈삣거리며 말한 ‘마법사’ 호칭에, 소년이 관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스는 좀 더 용기를 내었다.

 

 “저희는 넨시움 성으로 가고 있습니다. 여기가 넨시움으로 가는 방향이 맞나요?”

 “험한 길을 골라잡기는 했지만 틀린 길은 아니야.”

 “어, 그럼, 험하지 않은 길을 알려주실 수는 없을까요?”

 

 한스의 말에 소년이 유쾌한 듯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더니 몸을 비스듬히 돌려 자신의 뒷편 숲길을 가리켰다.

 

 “한눈팔지 말고 이쪽으로 쭉 직진하다 보면 대로(大路)가 나와. 거기서부터는 길 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든지 해. 빠르면 앞으로 세 시간 안에 도착할 거야.”

 

 그리고 소년은 벨리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미간에 주름을 잡고 있는 그녀를 빤히 바라보더니, 뜬금없이 이렇게 말했다.

 

 “너, 그래도 제법 귀엽다.”

 

 뭐라고? 저게!

 벨리타는 붉으락푸르락해져서 소년에게 한바탕 욕설을 내뱉으려 했다. 하지만 한스가 조금 더 빨랐다. 한스가 재빨리 그녀를 붙잡아 마차칸에 도로 태웠다. 소년이 또 웃었다. 후드 아래에서 소년의 금빛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흔들렸다. 한스가 말들을 출발시켰다. 내내 진흙에 빠져 꼼짝도 하지 않던 마차 뒷바퀴가, 거짓말처럼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벨리타는 창문에 얼굴을 딱 붙이고, 소년이 하나의 점이 될 때까지 그쪽을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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