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정치에는 관심이 없었다. 로맨스 소설이나 로코 드라마에는 관심을 가질지언정, 정치 분야에 관심을 갖는 일 따위는 고려해본 일이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다름이 아니라, 빌어먹을 이놈의 현실 때문에!
장애인과 질환자들의 고통은, 아는 사람들만이 안다. 장애인과 질환자 부양가족을 둔 사람들이 오히려 더 그 고통을 무겁게 느낀다. 빚이고 뭐고 아무튼 엄청나게 돈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가족을 내팽개칠 수도 없다. 그래서 다들 미칠 지경이다. 사실 실버 세대 부류들도 여기에 해당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어느 날은 생각한다. 차라리 콱 죽어버리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다시 생각을 바꾼다. 그래서 광화문 거리로 나온다. 나라님에게 아픔과 설움을 호소하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열 번째 시위 연대기가 탄생한다.
정치라면 어느 정도 일가견이 있는 이들이 있다. 일명 노조들이다. 그 중에서도, 민주노총. 금속노조. 건설노조. 대기업노조. 희망연대 등등은 꽤나 유명하다. 이들 부류는, 소형 마트 직원부터 번듯한 대기업 계열사 하청 직원들까지 여러 갈래로 나뉜다.
이들은 어쨌든 일을 하고 있다. 몸도 비교적 건강하다. 빚도 없거나 적은 편이다. 그러나 아무튼 사회적 대우가 꽤나 열약하다. 이대로는 도저히 내 집 장만도 결혼도 ‘잘’ 못한다. 그래서 아예 정식으로, 투쟁을 시작하는 사람들일 확률이 있다. 이들 시위자들 중에서 특히 이런 타입들이 있다. 시위로라도 자신의 존재감을 인정받고, 한순간이나마 셀레브리티처럼 빛나고 싶은 사람들이다.
솔직히 시위자들 눈에는, 뭔가 현실적으로 조금 아니다 싶은 것이 많다. 예를 들어서 시위자들이 보기에, TV 속의 화려한 연예인은 진짜 셀레브리티가 아닐 확률이 높다. 그네들 시위자들이 판단하기로는 이러하다. 총탄에 맞아서 숨지거나 부상을 입을 각오를 하고서라도 시위 현장에 나서는 노동자. 그렇게 앞장서서 민중 혁명가를 부르며 진격 사기를 돋우는 노동자. 그럼으로써 다른 노동자들이 총탄에 맞지 않게 보호하는 노동자, 그리고 노조 협상 타결에 성공해서 다른 노동자들의 권익을 신장시키는 노동자. 그럼에도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공을 넘기고 은둔하며 꾸준히 공부를 계속해나가는 노동자. 그런 노동자들이, 시위자들 입장에서는 진정한 셀레브리티로 여겨지는 법이다.
그리고 진짜 아이러니한 점은, 전두환 대통령 각하를 찬양하는 쉬크한 냐옹님 같은 경우에 오히려, 그런 시위자들의 심경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는 것이다.
‘그렇군. 내가 존경하는 전두환 각하 및 역대 대통령 각하들을 수호하기 위해서라도, 오히려 내가 한 번, 시위 관련 시나리오를 손수 집필해봐야겠군.’ 쉬크한 냐옹님은 생각한다.
그런 쉬크한 냐옹님의 뜻을 아는지 모르는지, 광화문 일대에서는 오늘도 역시, 노조 관련 시위자들이 물결지어 움직이고 있다. 아마도, 앞으로 더 거센 시위를 준비하기 위한, 예비 작업들의 일환일 것이리라. 이렇게 열한 번째 시위 연대기가 탄생한다.
누구나 그렇지만, 정말로 현실은 힘들다. 특히 이렇다 할 재능이 없는 자들에게는, 현실이 더욱더 서럽게 느껴지는 법이다. 그들 재능 없는 자들은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여의치 않다. 그래도, 재능 없는 자들의 집단으로 그들을 모두 뭉뚱그려서 칭한다. 의외로 그들의 구성은 매우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들에는 얼리어답터 창업가들과 외국인 노동자들과 한국인 02세. 즉 코피노들. 기타 여러 부류들이 있다. 또는 나는 아무 쪽도 아니라면서 순수 노선을 지향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자칭 나는 사장님 계열 또는 공주님 계열도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현실은 본인 혼자만 본인의 성공 가능성을 강하게 믿고 있다는 것이다. 일종의 모험가들이다. 대체로 한국인이 아니거나 또는, 전통적 한국인의 정체성을 거부하는, 개성이 강한 유형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박사모나 대한 애국 당 등등도 여기에 해당할지도 모른다. 심지어 그동안 금기로 여겨졌던, 국가정보원 노조 위원회도 있다. 이번에 등장한 의문의 모 대기업 노조의 경우에는, 모 대기업에서는 공식 존재를 부인하는 편이다. 그러나 의외로 모 대기업 마케팅을 잘 하고 있는 특이한 친선 노조인 듯하다. 뭐 아무튼 수상한 노조들과 시위 단체들이 엄청나게 많이 포진해있다. 이렇게 열두 번째 시위 연대기가 탄생한다.
폐지 줍기와 고물상 외에는, 다른 자립의 수단이 없는 인자들이 있다. 실로 극한의 처지에 놓여있는 인자들이다. 예를 들어서, 집을 나온 사람들. 거리를 배회하는 광인들. 교도소 출소를 했지만 먹고 살 길 없는 죄인들. 한순간에 경매 등으로 집을 차압당하고 쫓겨난 자들이 있다. 그러한 이들이 주로 이들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희망을 잃지 않는다. 예를 들자면, 종묘 공원의 어느 채집꾼 아주머니가 대표적 사례이다. 그 분은 나무젓가락으로 비녀를 꽂는다. 그리고 누추한 신발을 곱게 닦는다. 비록 노숙을 하더라도 폐지를 주워서 팔면서 살아간다. 그분은 가능한 자립을 해서 살려하고, 최소한의 품위를 잃지 않으려고 한다. 고결한 자존감은 최후의 보루인 것이다. 그러나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 이들의 희망은 점점 사그라져들고 있다. 지칠 대로 지쳐서 쉼터로 향하는 이들이다. 기이한 인자들이 슬그머니 이들 중 몇 명의 뒤를 밟는다. 그림자 정부 조직원들이다.
‘가출 자들이나 집에서 쫓겨난 하우스 푸어 등등의 경우, 여러 단계로 나누어서 재활 및 사회복귀 훈련교육이 필요하겠어. 판타지적인 군인이나, 이국적인 메이드의 코스튬 플레이 차원이라도 좋으니, 아무튼 제복의 도입이 일부 필요할 수도 있겠군. 게임 속의 몬스터 사냥꾼이나 채집가 등의 직업을, 시위 전후를 통해서 점차 현실화하기 시작하는 것도 괜찮겠어. 초기 문명시대. 선사문명 시대에는, 대부분의 여자들이나 허약한 남자들이, 채집을 해서 먹고살았기 때문이지. 그나저나 조금 더 고민해보자. 이들과 관련된 시위의 진행 방향에 대해서.’ 그림자 정부 조직원 중 누군가가 생각한다.
한편 이들은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쉼터에서 쉬고 있다. 이들 중 누군가가, 뭔지는 몰라도 문득 희망을 느낀다. 왠지는 몰라도 다시 좋은 날이 올 것 같은, 미래에 대한 예감을 불현 듯 느끼며 주먹을 꽉 쥔다. 이렇게 열세 번째 시위 연대기가 탄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