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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미스테리클럽
작가 : 겨울뱀
작품등록일 : 2017.7.6

너를 만나고 싶어.

 
내 옆에서 함께 걸어가줘(9)
작성일 : 17-11-13 22:22     조회 : 261     추천 : 0     분량 : 7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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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린 곧 다시 만나게 될 거야.

 

 믿을수 없겠지만 현실이 그랬다. 고등학생때 까지만 해도 영웅놀이에 심취해 괴물을 때려잡겠다고 뛰어다니던 일상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의 악몽으로 남겨둔 그 일상이 불시에 다시 찾아왔다. 안녕, 하고. 제법 상냥하게. 과거를 틀어잡은 모든 것엔 실수의 순간이 버티고 서 있었다.

 

 그대 전쟁이 벌어지는 땅에 발을 내딛으니, 여왕이 맞이하리라.

 

 눈으로 봐도 믿을 수 없을 비현실적 장면의 끝에 아마도 미소를 지었던 것 같다.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기억이지만 분명 선명하게 떠오르는 대로 행동했다. 경험하지 못한 경험이 당연하게 신체를 지배했지만 머리는 그저 타오르던 불꽃과 정교한 얼음덩쿨의 아름다움에 취해있었다.

 

 '너희들의 세계로 초대해줘서 고마워.'

 '경계선에 서게 된 걸 축하해.'

 

 '…네가 처음이야.'

 

 그리고 그게 두 번째 실수였다.

 

 "야. 주단아."

 

 은랑의 부름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까맣게 내려앉은 어둠이 눈에 가득찼다. 거칠게 내뱉어지는 서로 다른 더운 숨결이 차가운 공기에 아무런 흔적도 없이 스며들었다. 머리를 틀어올리곤 땀을 닦아내는 은랑과 묵묵히 삽질을 하는 제윤이 천천히 인지된다. 이게 웬 막노동이람.

 

 그들을 땅을 파고 있었다. 그것도 새벽 세 시, 산에서. 시선을 내리니 제 손에도 삽이 들려있다. 손바닥을 펼치니 따끔하게 고통이 일었다.

 

 "나 못해."

 

 단아는 삽을 놓고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날이 차 비가 오지 않았는데도 엉덩이가 차갑게 축축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멍하게 고개를 젖히자 밝게 뜬 달이 시리게 빛나고 있었다. 은랑은 입술을 작게 씰룩거리며 더러운 흙바닥에 주저앉은 친구를 바라보았다가 두어번 삽질을 했다.

 

 "아."

 

 결국 은랑도 삽을 내려놓곤 그 자리에 쭈그려앉았다. 절대 엉덩이를 대지는 않겠다는 심산이었다. 뛰고 구르던 세계에 돌아왔지만 1년이나 청결하게 살아온 은랑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역시나 사람의 본성은 쉽게 고쳐지는 게 아니다.

 

 "제유니오빠 화이팅."

 "님 수고요. 여기는 HP방전입니다."

 "다른 말로 화장실타임?"

 "남자들 말로 담배타임."

 

 "아, 뭔데 시발"

 

 어딘가 데자뷰가 느껴지는 두 사람의 응원에 제윤이 짜증스러운 얼굴로 욕설을 내뱉자 단아가 금세 입을 비죽내밀며 눈을 좁혔다.

 

 "금요일 10시."

 

 지은 죄가 있는 제윤은 그 말에 다시 입을 다물고는 열심히 삽질을 하기 시작했다.

 

 "넌 손 안 아파?"

 "아파. 쓸렸어."

 

 은랑의 물음에 단아가 양 손바닥을 펼쳐보이며 울상을 지었다. 아픈 건 진짜 싫은데. 그렇게 중얼거리는 와중에 무언가 그들에게로 던져졌다. 단아는 몸을 움츠리며 눈을 감았고 은랑이 단번에 던져지는 물체를 잡았다. 무려 벨릭페스의 검이었다.

 

 "어…. 고마워."

 

 은랑이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엉덩이 밑으로 검을 두고는 깔아앉았다. 이제야 좀 살겠다.

 

 "미친. 그게 아니라고."

 "그럼 뭐."

 "손 아프다며 병신들아."

 "앗, 감동."

 

 제윤의 말에 두 친구가 동시에 베시시 웃었다. 뒤늦게 다시 엉덩이를 깔고 있던 검을 짤짤 흔들며 치료를 하라고 외쳤지만 단단히 심기가 뒤틀렸는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나 몰라? 나 여왕이야!' 언젠가 한 번 외쳤던 대사를 재탕하며 단아가 난동을 부리고 막노동끝에 이성을 놓아버렸는지 은랑마저 '난 용의 무녀다!'를 외쳐댄 끝에 평화가 찾아왔다.

 

 "이러고 있으니까 꼭 시체라도 묻으러 온 것 같지 않아?"

 "정확히는 묻은 시체 찯으러 온 꼴이지."

 "음, 묻힌 보물이라 하긴 좀 그런가?"

 "그건 좀 그렇다. 보물은 다시 빛을 보면 좋겠지만 이건 아니잖아."

 

 나란히 앉은 두 여자가 깔깔대며 웃어대는 사이로 갑자기 깡!하는 소리가 파고들었다.

 

 드디어 찾은 모양이었다. 세 사람이 이렇게 늦은 시간에 이런 장소까지 오게 된 이유. 좀 더 근본적인 이유를 찾자면 원치도 않게 돌아와버린 아슬아슬한 경계의 세계를 열어준 사건, 마지막 방어선이었던 겔샤르의 인이 깨져버린 것에 있었다.

 

 고작 18살, 고등학교 2학년 다섯 명이 이룩해낸 짧은 평화의 종말이었다.

 

 겔샤르의 인은 괴물을 차단하는 가장 완벽한 공간 분리법이었다. 공간과 공간을 분리한다는 점에서 결계마법과 유사하지만, 차이점이라면 겔샤르는 한 번 시동된 후에는 시전자의 마력을 요구하지 않고 어떤 외부의 마법에도 끄떡없다는 것이다.

 

 처음엔 무슨 이런 말도 안되는 꿈같은 마법이 다 있나 싶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그런 꿈 같은 마법이 필요했다. 안정감이 필요했다. 불안하게 언제 다가올 지 모르는 위험속에서 우연히 찾은 안락함에 대한 길은 매력적일 수 밖에 없었다.

 

 대강적인 설명만 봤을 때 모두에게 떠오른 의문은 대체 이게 왜 '진'이 아니라 '인'인가라는 것이었다. 도저히 단순히 인의 개념으로 풀어내 작동시킬 수 있는 마법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책에 기록된 바에 의하면 겔샤르의 인을 고안한 연구자는 'J'라는 사람이었다. 다른 정보도 없이, 그저 제이라고만 적혀있는 그 사람은 혼자서 겔샤르의 인을 발동시키려다가 과도한 마나부족 현상으로 사망하고, 그의 7명의 제자들이 지인 2명과 함께 J의 사후 겔샤르의 인을 완전하게 구동시키는 것에 성공했다.

 

 처음 겔샤르의 인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된 책에는 간략한 설명만 서술되어 있었다. 그 인이 대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는 전혀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당시 미스테리 클럽은 도서관을 제 집처럼 생각하며 틀어박혀 정보 찾기에 몰두했고 그 결과 작은 정보 하나 하나를 모아 거대한 틀을 완성하는 데에 성공했다.

 

 모든 과정의 끝에 단아는 그렇게 말했다.

 

 "미친."

 

 '진'이 아니라 '인'일 수 밖에 없었다.

 

 그건 무식하게도 복잡한 '하나의 문자'였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이런 방법을 고안해 냈는지, 그걸 마법으로 묶어 형상화 시켰는지가 놀라울 정도였다. 가늠할 수도 없을 만큼의 마력과 테크닉, 그리고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다.

 

 게다가 인의 형상은 얼마나 복잡한지 쉽게 외울 수도 없었으며, 단번에 그려낼 수도 없었다. 이 인은 겔, 샤, 르라는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었다. 우선 '겔'이라는 건 시전자가 마력을 부여한 물건이며 겔샤르의 인의 가장 기초적인 뼈대로 작용했다.

 

 다른 부분인 '샤'는 바닥에 그려내는 것으로 원래 인이란게 단번에 그려내고 사용해야 하는데, '샤'를 바닥에 그리는 데만 해도 몇 달이 걸리는 일이라 조금씩 끊어 그리는 인이 계속 유지되게 하기 위해 '겔'이 일종의 세이브 장치의 기능을 하기도 했다.

 

 인을 그리는 공동의 주체자가 하나씩 이 '겔'이 되는 물건을 놓으면서 '샤'를 그려가고 다음 사람이 '겔'을 두고 계속해서 '샤'를 전개해 가는 방식이었다. 겔샤르의 인에 문제가 생긴다면 무조건 이 부분에서 문제점을 찾아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이 현재 땅을 파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설명할 수 있다.

 

 겔을 두고, 샤를 바닥에 그린 후 마지막. 허공에 그려야 하는 게 바로 '르'라는 부분이었다. '르'는 인이 발동될 위치를 뒤덮는 일종의 장막이었다. '르'는 '샤'가 그려진 부분에서만 적용되는데, 그들이 작정한 건 전태라는 도시 전체였다.

 

 얼마나 심한 노가다 작업이었는가는 아무리 추억으로 생각하려고 해도 웃음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면 말은 다 한 셈이다. 언제 괴물이 나타날 지 모르니 돌아가면서 하루에 두 명씩만 인의 작업에 몰두했다. 장막의 개념으로 접근하다간 전부 탈진 해 죽겠다는 생각에 결국 그물 망의 형태로 얽어 점차 촘촘하게 제작했다.

 

 괴물이란게 크기와 위험도가 비례하니 렘 정도만 들어오게하면 문제는 없을 터였다.

 

 보통 마법적 기본 개념인 인을 그리는 곳이 개인적 차원, 즉 ID라면 겔샤르의 인을 그리기 위한 ID는 거대한 도시 전체가 되는 것이었다. 그것도 땅과 허공, 전체를 포함하는 거대한 공간적 개념이었다.

 

 ID는 개개인의 것으로 타인이 관여할 수 없지만 겔샤르의 인은 혼자서는 역부족인데다 사용할 ID의 영역이 같아졌기 때문에 ,결국 ID의 개념에서 확장되어 연합 및 연계마법을 위한 오픈 필드(open field=open dimemsion; 개방적 차원)가 되어야만 했다. 미드워커에게 주민등록증이자 무기나 다름없는 공간을 서로에게 내어주고 공유하는 과정이 필요했던 것이다.

 

 오픈 필드가 형성되면 공유하는 이들 중 누구의 마력도 다 끌어 쓸수 있었는데, 마법적 기술은 부족해도 마력량은 무식하게도 풍부한 제윤의 마력이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서 인을 그리기 위해 쓰였다.

 

 마법에 적용되는 가장 특수한 원칙은 바로 근원의 법칙이었다. 운용하는 주체자 보다는 그 마력의 제공자가 실질적인 마법 사용자로 인식된다는 것이다.

 

 개방적 차원인 오픈필드에서 전개되었고 실제로 겔샤르의 인을 완성하는 마지막 선을 그은 건 단아였지만 그 마력의 원천은 제윤이었다. 즉, 마법의 최종 수행자는 제윤으로 인식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윤의 경우엔 특수하게 '겔'을 하나 더 두어야 했다. 그게 인의 전개를 끝맺음 짓겠다는 의미인 동시에 실질적인 발동의 조건었다.

 

 제윤은 마지막 겔을 이 산에 묻었다. 그리고 끝. 성공이었다. 눈에 보이지는 않는 가장 완벽한 안전장치가 생긴 것이다. 전태는 그렇게 외부의 괴물이 차단된 도시가 되었다.

 

 혹시나 정신계에 영향을 미치는 괴물에 의해 영향을 받을 까봐 각자 겔을 어떤 물건으로 설정했는지, 위치는 어디인지는 자기 자신만 알고 있기로 했다. 거기다 겔샤르의 인을 해제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인을 그리기 위해 지정한 순서의 반대로 겔을 파괴시키는 것 뿐이다.

 

 그래서 겔에 구체적 정보를 본인들 마저 기억하지 못하도록 미드워커의 세계에서도 극히 제한된 기억조작마법을 사용해 완전히 삭제했다.

 

 삭제된 기억이 다시 다시 돌아오는 조건은 제윤의 두번째 겔, 즉 마지막 겔에 제윤의 마력이 적용될 때였다. 그래서 제윤의 기억만 남겼다.

 

 말 그대로 패기 넘치면 고등학생 시절이니 가능할 이야기였다. 후엔 꼼짝없이 독 안에 든 쥐가 된 내부의 괴물들만 처리하면 될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했던 안일한 제 모습이 여기까지 이어졌다. 단아는 추위에 코를 훌쩍이면서 제윤에게로 다가갔다. 금속으로 된 은빛 상자가 흙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마지막 겔. 마지막이자 첫번째의 잠금장치.

 

 삽을 던져버린 제윤이 그 자리에서 몸을 숙여 상자의 잠금장치를 해제시켰다.

 

 달칵.

 

 그 순간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나며 작게 스파크가 튀었다. 지직, 하고 영상이 깨진것처럼 하늘이 뿌옇게 흔들렸고, 그 다음은 발 밑으로 뱀이 기어가듯이 검은 잔상이 문신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정전처럼 한 번 깜박 깜박 할 때 마다 그 모습이 나왔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점차 그 주기가 짧아지고 마침내 완전한 형상이 자리를 잡았을 때 세 사람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렘 하나 정도의 크기로 촘촘하게 얽어져있던 하늘의 르는 일부는 느슨하게 풀려있었고 드문드문 찢겨있었다. '미친!' 단아는 욕설을 내뱉으며 달려 산 아래로 보이는 도시의 전경을 마주했다. 기다란 금빛의 길처럼 보일 정도로 마력이 어떠한 형상을 그리며 바닥에 수놓아져 있었다.

 

 다만 이 근방에서는 금색이 아니라 검은색으로 변해 흐름이 뚝 끊겨있었다. '겔'이 제 효능을 잃었다는 의미였다. 단아는 다시 제윤과 은랑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제윤은 열린 상자를 일그러진 표정으로 내려보고 있었다. 은랑의 딱딱하게 굳은 얼굴이 단아를 향했다. 뭐라고 입을 움직였지만 소리가 잘 전해지지 않았다. 순간 소리가 종적을 감춘것처럼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삐이이. 신경을 거스르는 이명이 점차 크게 들리며 경고했다. 속이 메스꺼웠다.

 

 제윤이 손을 뻗어 상자 안의 물건을 꺼냈다.

 

 우린

 우린….

 

 녹색의 편지봉투가 제윤의 손에 들려있었다. 어떤 감정인지 알 수가 없었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의미모를 소름이 벌레처럼 다리를 기어올라왔다. 그럴 리가 없잖아.

 

 우린 곧 만나게 될 거야.

 

 표정은 일그러졌어야만 했다. 무거운 철가면이 딱딱하게 피부에 달라붙어 꼼짝도 할 수 없는 것처럼 움직일 수가 없는 무표정이 되었다. 탁. 탁. 애꿎은 검지가 엄지 손톱 밑을 긁었다.

 

 * * *

 

 계속해서 발케가 짖어대는 통에 잠에서 깬 빈은 겨우 몸을 일으켰다. 베란다에서 왕왕! 계속해서 짖어대자 '쉬이, 조용히 해! 가족들 깬단 말이야!'라고 속삭였지만 곧 아무도 발케의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걸 자각했다.

 

 깨봤자 자신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서겠지. 빈은 입을 꾹 다물곤 자신이 이름 지어 준 흰둥이를 바라보았다. 어라. 점차 전체적으로 보이는 장면에 빈은 입을 쩍 벌릴 수 밖에 없었다.

 

 창문을 열고 고개를 쑥 빼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물처럼 엮인 금빛의 선들이 하늘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게 무엇인지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마법이었다!

 

 제 다리 옆에서 앓는 소리를 내는 하얀 발케를 안아들고 무심코 내려다 본 아래도 마찬가지로 마법이 펼쳐져 있었다.

 

 "세상에. 대체 이건 누가 한 미친짓이래?"

 

 한번도 본적없는 엄청난 범위다. 아는 미드워커래봐야 선배인 단아와 은랑, 그리고 말로만 들은 제윤뿐이다. 주변에 그들과 자신 말고 미드워커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이만큼 뽑아낼 마력이란게 있단 말이야? 어쩐지 조금 질리는 기분이 들었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대화라도 하는 양 흰둥이를 들어 마주보며 묻는데 바닥을 긁는 소음이 줄지어 들려왔다. 점점 커지며 귓속의 정적을 몰아내는 이들이 거칠게 도로 한편에서 나타난 것이다.

 

 폭주족이었다. 흰둥이를 품에 끌어당긴 빈은 상체를 쭉 내밀어 도로위의 무법자들을 바라보았다. 단아와 은랑의 무용담을 떠올리자 어쩐지 웃겨서 혼자서 킬킬 웃음이 나왔다.

 

 저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이들도 있을 것이고 비슷한 또래도 있을것이다. 어쨌거나 자신과는 전혀 먼 이야기다.

 

 밤길을 저렇게 아무 생각없이 다닐수있다는건 얼마나 축복인지, 아마 그들은 모를것이다. 빈은 자신의 터전 구석구석에 숨을 죽이고있는 것들을 알았다. 여러번 단아와 은랑과 함께 그것들과 대적했지만 혼자서 감당할 자신은 여전히 없었다.

 

 어쩌다 생각이 거기까지 흘러간건지.

 

 "에휴.

 

 빈은 찬 공기에 잘게 기침을 내뱉으며 난간 위에 걸쳤던 팔꿈치를 내렸다. 지금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 단아나 은랑에게 연락이나 해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의 눈에 폭주족들의 이상한 행동이 포착되었다.

 

 달리던 이들 중 몇몇이 바이크를 세우곤 모여들어 무어라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그들은 곧 주위를 두리번 거렸는데 마치 무언갈 찾는 듯 했다. 어쩐지 그들 중 하나와 눈이 마주친 것 같았다. 괜히 심장이 쪼그라 들어서 고개를 재빨리 피하면서 뒤로 물러나려는데 제 얼굴위로 그늘이 졌다.

 

 달빛을 가린 누군가가 난간위에 발을 올린 채로 다리를 굽혀 앉아있었다. 코 앞으로 훅 다가온 존재감에 빈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리고 말았다. 단아도, 은랑도 아니다. 골격과 형채만으로도 성인 남성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시꺼먼 발끝과 턱을 괴고 있는 손. 잘 보이지 않는 얼굴이지만 서늘함이 뚝, 무겁게 떨어지는 공기가 목을 조르듯이 제 순간을 낚아챘다.

 

 무감각하게 비추는 달빛만 사뿐히 다가와 빛과 어둠을 양분했다. 빛을 등지고 선 그의 얼굴은 여전히 잘 보이지 않았지만 기이하게 번득이는 눈동자만은 정확하게 망막에 박혀들어왔다.

 

 "뭐야…."

 

 말을 뱉어낸 입술끝이 비스듬히 움직였다.

 

 왕!

 

 흰둥이가 크게 짖으며 품 속에서 바르작거렸다. 발케? 불청객은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이내 킬킬 웃음을 터트렸다. 사뭇 미친것처럼 보이는 모습에 빈은 침을 꿀꺽 삼켰다. "사실 그냥 지나가는 길 이었는데."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손을 뻗었다.

 

 "이러면 조금 심술이 나잖아."

 

 순간 눈앞이 흐려지고 정신이 몽롱해졌다. 계속해서 짖어대는 흰둥이의 소리가 왕! 왕! 점점 작아지면서 메아리쳤다. 누구? 도대체 누구지? 빈은 힘이 들어가지 않는 눈꺼풀을 들어올리려 노력하면서 마지막까지 상대를 바라보았다. 얄팍한 입술이 움직이는 모양을 똑같이 따라하며 소리를 뱉어냈다.

 

 어서.

 내가,

 기다리고 있잖아.

 

 …이렇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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