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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미스테리클럽
작가 : 겨울뱀
작품등록일 : 2017.7.6

너를 만나고 싶어.

 
내 옆에서 함께 걸어가줘(7)
작성일 : 17-11-13 21:30     조회 : 284     추천 : 0     분량 : 7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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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 이게 누구야. 주단아에, 또 천은랑까지 있네?"

 

 단아와 은랑을 본 주연이 혐오스러운 것이라도 발견한 표정으로 눈썹을 치켜 올리며 말했다. 단아에서 은랑으로 넘어간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시선, 저 시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예전부터 끔찍한 벌레라도 발견한 듯한 표정으로 자신들을 보는게 아주 엿같았다.

 

 특히나 은랑과 주연은 과거에 더 좋지 않은 일로 엮여있는 관계였다. 두 사람은 중학교 3년 내내 같은 반이었다. 아주 징한 인연이었다. 시작은 주연이 공부를 잘하던 은랑에게 시험 바코드를 대신 찍어달라고 내민 걸 거절하면서 벌어졌다. 그 후, 주연의 무리는 은랑에게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고 은랑은 그걸 무시해버리곤 했다. 애초에 세게 나간다고 해서 은랑이 굽히고 들어가거나 비위를 맞춘다고 살살 거리는 성격이 아니었기에 괴롭힘은 더 심해졌다.

 

 중학교를 졸업했더니 고등학교도 같은 곳이었다. 3년 내내 반은 달랐지만 제윤이 미스테리 클럽에 합류하고 하운즈에서 제 발로 걸어나오면서 2차전이 벌어졌다. 그리고 이제는 3차전인 셈이다.

 

 단아는 흥, 하고 콧방귀를 뀌면서 팔짱을 꼈다. 약속이라도 한듯 은랑까지도 팔짱을 끼곤 시선을 비스듬히 내린다. 난데없이 벌어지는 여자들의 전투태세에 끼인 모양새가 된 제윤이 머리칼을 거칠게 쓸어넘겼다.

 

 "또 겁없이 나타나서는 제윤이를 빼돌려?"

 "아, 미친."

 

 한껏 전투테세였던 단아의 팔짱이 힘없이 풀렸다. 누가 들으면 사랑싸움인줄 알겠다. 저 쪽은 지고지순한 본처고 이쪽은 갑자기 툭하고 튀어나와서는 남자를 뒤흔드는 역할이고 말이다.

 

 "보통 그런 역할은 치명치명한데."

 "뭐?"

 "뭐. 감사하다고. 그런데 마제윤은 줘도 안가져."

 

 단아는 상큼하게 가운데 손가락을 올림으로써 동시에 두 명에게 선빵을 날리고는 과장되게 어깨를 으쓱하는 행동을 취했다. 새빨갛게 변한 얼굴로 바르르 떨던 주연은 숨을 고르더니 제법 고상한 말투로 말했다.

 

 "너네 좀 모자라구나. 이 주변이 어떤지 뻔히 보고도 여기 들어올 생각이 났어? 진짜로 한 번 밟혀보고 싶어? 예전부터 생각한건데, 너넨 한 번 밟아달라고 꿈틀거리는 벌레같이 굴어. 진짜 역겹게도 말이야."

 "웅. 자기소개 잘 들었어. 감동적이다."

 

 주연의 말을 들은 단아가 실소를 흘리더니 은랑을 향해 말했다.

 

 "우리보고 모자라대. 내 기억으론 우리 성적은 항상 상위권이었는데. 너 언제 성적 갈아버린 적이라도 있었어?"

 "글쎄, 아무리 갈아도 민주연보다는 떨어진 적이 없었던 거 같은데. 난 뇌가 청순하지 않아서."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로 주연이 성큼성큼 뺨이라도 후려칠 기세로 발을 움직이자 그녀의 곁에 늘어져있던 수 많은 렘들이 펄떡 팽창했다가 수축하길 반복하며 아우성이었다. 점점 다가올 수록 렘들이 하나 둘 펑펑 터져 버리기 시작했다. 정화마법에 대한 막강의 친화적 상성을 가진데다 용의 힘이 숨결에서도 뱉어지는 은랑과 가까워지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어휴. 언제봐도 우리 무녀님 쓸데 없이 웅장하셔."

 

 급기야 기겁한 렘들이 주연의 뒤로 몰려들어가 그녀의 옷깃을 잡아당기려고 애를 쓰기 시작했다.

 

 [가지 마, 가 지 마! 거기 위험! 아파! 아파!]

 

 아주 난리법석이었다.

 

 어차피 저래봐야 이쪽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없으니 헛짓거리겠지만 말이다. 주연의 손이 높게 들리고 제윤이 그녀의 어깨를 잡으려는 순간 거짓말처럼 주연의 몸이 뒤로 당겨졌다. 정체모를 힘에 당겨진 그녀는 짧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고야 말았다.

 

 세 명의 미드워커들의 얼굴에서 동시에 표정이 사라졌다.

 

 무슨 일이지? 생각이 미처 완성되기도 전에 커다란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괴물이, 렘들이 현실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은랑은 성큼성큼 걸어 주저앉은 주연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하?"

 

 기가막히다는 얼굴의 주연이 움직이기도 전에 은랑의 손이 그녀의 머리 위를 휘익 쳐버렸다. 풍선이 터져버리듯 파밧 소리를 내면서 렘들이 터져나가 연기가 되어 사라져갔다. 머리를 내려치는 줄 알고 순간적으로 손을 들어 막으려 했던 주연은 그저 머리 위를 한 번 휘젓고 사라지는 손에 은랑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뭐… 뭐한거야."

 

 물음에도 은랑은 답이 없었다. 그저 심각한 표정으로 무언갈 생각하는 듯 했다. 정적이 내려앉은 편의점 안에 무거운 분위기가 흘렀다. 단아는 길어버린 오른 손의 검지 손톱으로 엄지손톱 밑을 툭툭 건드렸다. 요 근래 붕 떠있던 기분이 매스껍게 응어리져 아래로 침잠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현실감이 머리를 뎅, 하고 세차게 내려쳤다.

 

 "가."

 

 내심 제윤이 일으켜주길 바라는 눈으로 그를 흘긋 바라보던 주연이 그의 목소리에 '어?'하고 반문했다.

 

 "가라고. 집합일에 나갈테니까."

 

 그 말에 주연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미소가 번져나가 얼굴이 꽃처럼 폈다. 흐트러진 모양새에 짙은 화장이지만 본판이 예쁘다보니 같은 여자가 봐도 예쁘긴 예뻤다. 더럽게 재수없는 계집애. 단아가 그렇게 중얼거리자 은랑이 침묵으로 긍정을 표했다.

 

 "내가 수하 오빠한테 잘 말해볼게. 응? 꼭 와."

 

 일어나서는 아련한 표정으로 제윤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손을 뻗어 스킨쉽을 시도했지만 제윤은 무서운 얼굴로 한 발짝 물러났다.

 

 "가라고."

 

 결국 주연은 몸을 돌려 편의점에서 나갔다. 그 와중에 앙칼진 눈으로 단아와 은랑을 쏘아보는 것도 물론 잊지 않고 말이다. 뒤이어 오토바이들이 멀어지는 소리가 옵션처럼 따라붙었다. 한참 후에야 은랑이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저 계집애는 저 찌끄레기들은 왜 달고 온 거람.

 

 "역시, 우리 공주님. 항상 인터넷 소설의 절정을 찍고 사는구나. 부러워 죽겠다."

 

 단아가 그렇게 말하며 음료수를 하나 꺼내 벌컥 들이켰다. 목이 탔다.

 

 "내가 그렇게 부르지 말랬지."

 "어쩔거야, 진짜 나갈거야?"

 "확실하게 해결 할거니까."

 

 "이것들아, 지금 중요한건 그게 아니거든."

 

 은랑이 그렇게 말하면서 긴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렘이 최하급 괴물이라지만 그건 미드워커들에게 해당하는 이야기고, 현실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순간 평범한 사람들에겐 모든 괴물이 심각한 위험요소다. 도대체 어떻게 영향을 미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처음엔 렘들이 주연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영향력을 가진 건 정말로 한순간이었다. 오랜 역사도 괴물들이 현실의 세계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과정을 밝혀내지 못했다. 눈으로 봐도 그랬다. 정말로, 그저 한순간이었다.

 

 지금이야 렘이지만 나중에 눈 깜박할 새에 말레바나 발케가 영향력을 가진다면? 어떻게든 해결의 열쇠를 쥔 건 미드워커라는 존재다. 스스로의 의지를 가지고 움직이고 생활한다고 믿지만 이럴 땐 누군가의 명령을 듣는 장기말은 아닐까 의심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괴물이 있는 곳에 미드워커가 있고, 미드워커가 있는 곳엔 괴물이 나타난다.

 

 지금까지도 수많은 괴물들이 현실세계로 제 몸을 들이밀었지만 그 때 마다 당연하다는듯 미드워커들이 그 자리에 있었다. 단 한번도 그렇지 않은 사례가 없었다.

 

 "심각해지지 말자. 우리 이렇게 우울해질 필요가 뭐있어? 응? 어차피 우리가 사는게 뭐 이런 건데."

 

 음료를 반이나 마신 단아가 그렇게 말하면서 입술을 닦았다.

 

 정작 본인이 그러지 못할거면서. 은랑은 단아를 보면서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속아줘야지, 별 수가 있나.

 

 "그런데, 너 집합일이 언제야?"

 "11월 1일."

 

 제윤의 답에 은랑의 얼굴이 매섭게 변하고 단아의 눈이 새초롬해졌다.

 

 "너, 그날이 무슨 날인지는 알지?"

 "집합시간은 언제야."

 

 제윤은 결국 맹렬한 두 사람의 시선을 피하면서 답했다.

 

 "여덟 시야."

 

 하필이면 문지기와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이었다.

 

 문지기. 단아는 눈썹을 씰룩이며 숨을 뱉어냈다. 분명 아침만해도 기분이 하늘로 치솟았다. 그와 함께했던 좋았던 추억들만 펼쳐진 머리속에 최초의 기억이 불쑥 튀어나왔다. 비틀린 입매의 남학생과 숨막히게 새까만 것들. 애써 떠올리지 않고자 했던 것들이 줄지어 따라나왔다. 이게 다 민주연, 그 년 때문이다.

 

 * * *

 

 누군가 자꾸만 아래로 잡아당겼다. 숨이 막혀와서 발버둥을 쳐도 제 다리를 휘감은 것은 떨어지지가 않았다. 마지막 숨이 팍, 하고 터져나가는 동시에 목소리가 귓가에 다가왔다.

 

 전부 네게 줄게

 그러니….

 

 번쩍 눈을 뜨니 기묘한 문양이 그려진 천장이었다. 등 뒤로 느껴지는 카펫의 감촉에 몸을 일으키니 창가 앞에 있는 붉은 소파가 보였다. 바람이 불어와 보라색 커튼이 휘날리는 장면에 눈을 깜박였다. 아직도 꿈이구나.

 

 굿모닝. 굿모닝.

 

 뒤이어 경박하게 쿵짝거리는 알람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어 다시 한 번 눈을 떴다. 이번엔 정말로 잠에서 깼다. 속이 비어서 쓰라린 기분에 기어가다시피 하면서 핸드폰을 쥐었다가 이내 비명을 지르고야 말았다.

 

 "…악!"

 

 여덟 시였다. 아침 등교시간은 여덟시 20분이지만 정문은 딱 여덟 시에 닫힌다. 때마침 걸려오는 전화를 받으면서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화장실로 달려가 대충 눈곱을 떼고 고양이 세수를 마쳤다.

 

 ["야! 너 어디야."]

 "나 방금 일어났엌 으아아아."

 ["3층 화장실 4번째 칸."]

 "감사감사 지금바로 가여."

 

 눈을 한 번 깜박이자 좁은 화장실 칸 안이다. 순간이동이란 건 정말 편리한 마법이 아닐 수 없다. 문을 벌컥 열자 마주친 은랑의 눈이 순식간에 썩어들어가더니 말을 잃은 듯 그저 손가락을 가만히 들어 단아를 가리켰다. 물끄러미 손길을 따라 자신을 내려다 보자 파자마차림에 집에서 신는 화장실 실내화다.

 

 "오. 쉣."

 

 말을 마친 단아는 은랑의 눈에서 정말 뿅, 하고 사라졌다.

 

 "아…."

 

 은랑은 잠시 입을 뻐끔 벌렸다가 이내 다물었다. 아무래도 오늘 하루는 제 친구의 신세한탄이나 들으며 보내야 할 듯 했다.

 

 하루 두 번뿐인 순간이동을 그런 식으로 쓰다니!

 

 단아는 억울한 마음에 거의 울먹이면서 열심히도 뛰었다. 유신고등학교의 굳게 닫힌 정문과 호랑이처럼 위풍당당하게도 서 있는 학생주임 선생의 얼굴이 보이자 허탈한 웃음만 나왔다. 격하게 뛰느라 말려 올라간 치마를 추스르고 넥타이도 똑바로 매었는지 확인하곤 주위를 살폈다. 왜 나 말곤 없는거야. 울상을 지으면서 담을 넘을까 싶어서 슬그머니 다른 길로 가려는데 딱 걸렸다.

 

 나란년 멍청한년.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대역죄인의 얼굴로 흉흉한 얼굴의 학주에게 달려갔다. 준비를 다 하고 순간이동을 했어야 하는데…. 아니, 파자마 차림에 화장실 실내화 차림이라도 어떻게든 그대로 집으로 달려가 준비를 마치고 다시 학교로 순간이동을 했어야 했다.

 

 "가스나야. 지금이 몇시고?"

 "죄송합니다…."

 "저짝에 꿇어앉아라."

 "네에…."

 

 학생주임이 가리킨 곳에는 남학생 한 명이 무릎을 꿇고 손을 들고 있었다. 이름표가 푸른 색인 걸 보니 자신과 같은 1학년인 모양이었다. 그래도 혼자서 벌 서는 게 아니라 다행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의 옆으로 다가가 모래와 돌을 발로 슥슥 밀었다.

 

 급하게 나오느라 스타킹도 못 신어서 맨다리였다. 3월 아침 냉기에 꽁꽁언 땅에 무릎을 꿇으니 고문이 따로 없었다. 추위를 못 느끼게 하는 마법같은 건 없나.

 

 미드워커가 된 게 작년 12월이니 아직 마법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했다. 가르쳐주는 스승도 없이 고작 17살이 된 애들이 책보고 독학으로 하는 상황이니 응용이나 고급마법 쪽은 손도 대보지 못했다.

 

 학생주임이 뭐라고 잔소리를 하기 시작하는 걸 한 귀로 흘려보내고 있는데 눈 앞으로 무언가 불쑥 다가왔다. 새까만 말풍선처럼 생긴 그것이 히죽 웃었다. 눈처럼 생긴 것이 가로로 길게 찢어지고 입이 생겨 났다. 히죽. 소리없이 그것이 웃었다.

 

 렘이다.

 

 순간 놀라 비명을 지를 뻔 했다. 거의 3개월이 되었지만 아직까지도 괴물에게 완전히 적응하지는 못했다. 렘은 길게 늘어난 몸체를 가지고 있었다. 서서히 그 끝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제 옆에서 벌을 서는 남학생의 등 뒤로 어느덧 우글우글 모여든 렘들이 보였다.

 

 이렇게 까지 많은 렘들을 몰고 다니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문득 얼마전에 텔레비전에서 봤던 검거된 연쇄살인범이 떠올랐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마스크를 쓴 남자의 옆에는 형사들이 있었지만 렘들도 있었다. 화면을 꽉 채울 정도로 많이.

 

 본능적인 경계심이 치고 올라와 몸이 떨렸다. 미드워커를 알아본 렘들이 순식간에 눈과 입을 만들어내더니 자신을 향해 동시에 히죽, 웃었다.

 

 [신기해.]

 [신기해, 신기해.]

 [이게 뭘까? 이게 뭘까?]

 [내가 알지!]

 [알아? 알아? 알아?]

 

 시끄럽게 웅성대기 시작하는 소리에 머리가 찡하니 울렸다.

 

 [이런게 바로 미드워커야.]

 

 다가온 렘 하나가 까드득 손을 만들어내 뺨을 톡하고 건드리더니 도리어 제가 놀라서는 물러났다.

 

 [닿았어!]

 

 이것들을 어쩐다. 옆에 은랑이 있었으면 가까이서 숨만 내쉬어줘도 해결되었을 텐데. 친구야, 브레스를 뿜어줘! 은랑을 짤짤 흔들며 렘을 터트리는 상상을 하면서 미간을 찌푸리는데 시선을 느낀 남학생이 고개를 돌렸다. 불시에 시선이 마주치자 '아'하고 짧은 말을 뱉어내긴 했는데 할 말은 없어서 다시 고개를 돌려버렸다.

 

 때마침 다리가 저려와서 몇 번 몸을 비틀다가 고개를 숙인 채로 옆을 힐끔 바라보자 교복 마이에 달린 푸른 이름표가 눈에 들어왔다.

 

 '정 욱'

 

 외자 이름이었다.

 

 신경을 안쓰는 척 하려는데 자꾸 옆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대체 뭘 어쩌자는 거람. 한 번 쳐다 봤다고 그러나. 문득 얼굴 생김새를 기억하려는데 시꺼먼 렘들만 생각이나서 관두었다.

 

 그 때 갑자기 누군가 후다닥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냐, 또 한 놈 추가로…."

 

 학생주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누군가가 '안녕하세요!'를 발랄하게 외치면서 정문을 가뿐하게 넘더니 그대로 학교 안으로 달려들어가기 시작했다. 햇살이 비춰 눈이 시려 인상을 찡그렸다. 순간 그 남학생의 머리칼이 환한 금발로 보일 정도였다. 그대로 쌩하니 사라졌는데 어찌나 빠른지 황당할 정도였다.

 

 "야이 새끼가!"

 

 학생주임은 콧김을 내뿜으면서 그 남학생을 잡으러 달리기 시작했고 벌을 서던 두 사람만 덩그러니 남겨지고 말았다.

 

 "…아."

 

 그대로 들고 있던 양 팔을 털썩 내렸다. 애써 옆을 보지 않고 멍하니 나무만 바라보려는데 렘들이 다가와 기웃기웃거리고 옆에서는 빤히 시선을 보내고 있으니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잠깐 일어나볼래?"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눈이 마주친 남학생, 욱은 아주 자연스럽게 슬쩍 미소지었다. 답을 듣기도 전에 한 손으로 제 팔뚝을 잡으니 어쩔 수 없이 절로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뭐하자는 건가 싶어서 가만히 보는데 자신이 입고 있던 교복 마이를 벗어서 바닥에 깔아주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자신은 다시 바닥에 꿇어앉았다.

 

 "앉아. 학주 오면 뭐라고 할걸."

 "그러니까, 여기 앉으라고?"

 

 단아는 욱의 교복 마이를 보며 물었다.

 

 "맨다리잖아. 상처 나. 게다가 3월이지만 아직 추워."

 

 그러면서 또 싱긋웃는다. 이거, 그린라이트인가요? 또래의 여자애들이라면 그렇게 생각하면서 얼굴을 붉힐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단아의 눈에는 그 미소마저 가릴 정도로 우글대면서 음산한 분위기를 풍겨대는 렘들이 보이니 그런 생각은 눈곱만큼도 들지 않았다. 이미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건 뭐지. 소설 속에서나 존재할 법한 순정만화 남자 주인공이 아니고서야 이런 정신머리가 있을 리가 있나.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단아는 일단은 그 위에 꿇어 앉았다. 지가 앉으라는 데 뭐 어때. 확실히 낫기는 했다. 몸이 편하고 나니까 약간 생각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쁘진 않은 놈일 지도 모르지.

 

 꼼지락대면서 손장난을 하듯 오른손으로 칼날의 인을 그렸다. 그러곤 여전히 우글대는 렘들을 향해 휙 내젓자 썩둑 잘린것들이 파스스 사라졌다. 범위에 닿지 않은 몇 마리만이 기겁을 하며 물러나 저 멀리 도망쳐버렸다.

 

 두 사람 사이에 가득하던 렘들이 사라지자 이제야 욱의 얼굴이 제대로 보였다. 그의 등을 향해 손을 휘저은 후 멈춰있던 단아는 눈을 한 번 깜박거리곤 어깨를 한 번 털어주었다.

 

 "그냥. 뭐가 묻어서."

 "…고마워."

 

 욱은 또다시 미소지었다. 하지만 그 얼굴을 마주한 단아는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입매가 미세하게 비틀린 것 같았다. 순식간에 돌아왔지만 꺼림칙한 기분이 들어 뭔가 묘해졌다.

 

 이상했다.

 

 분명 교복마이가 방금전만해도 차가운 걸 막아줬던 거 같은데 이제는 그렇지가 않았다. 바닥의 냉기에 마이도 차가워져 버린건지 그저 기분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단아는 그 표정을 잘 알았다. 그건 역겨움이었다. 단아는 어정쩡하게 허공에 올렸던 손을 내렸다. 정말로 이상한 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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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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