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생각시의 살인교사 (1) - ⑥

　꽃님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꽃님과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 전경들은 대번에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러다 종국에는 공포감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그때 꽃님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전경들 쪽으로 확 미끄러져 갔다. 전경들은 일제히 기겁하며 뒤로 나자빠졌다.

　“이힉!”

　“우와악!”

　꽃님은 그들을 민철에게서 멀리 떨어진 방향으로 몰아갔다. 이에 전경들은 사색이 돼서 네 발로 기다시피 하여 줄행랑을 쳤다. 그렇게 전경들이 마침내 원래 있던 자리까지 도망쳐 나오자, 꽃님은 마치 자기 할 일을 다 했다는 듯이 다시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사람들은 안 그래도 민철의 난동에 온 정신이 팔려 있던 상황에서 꽃님까지 나타나 민철을 감싸고돌자, 당혹감에 급격히 동요하기 시작했다. 반면 직전까지만 해도 궁지에 몰린 쥐처럼 어쩔 줄을 몰라 하던 민철은 대번에 득의양양해져서는 사람들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봤어요? 귀신이 전경들을 쫓아냈잖아요? 제가 뭐랬어요? 걔들은 의원들이 죽길 바라는 게 틀림없다니까요?”

　그러자 사람들 틈에서 새삼 얼굴이 하얗게 질리는 이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바로 가슴에 무궁화 배지를 단 사람들, 국회의원들이었다.

　그들은 다함께 약속이나 한 것처럼 다른 이들의 관심을 끌세라 일제히 숨을 죽였다. 그리고 슬금슬금 눈치를 살피다 슬그머니 사람들 틈을 비집으며 무리 밖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한 쪽에서 어떤 여자가 버럭 신경질을 내는 소리가 들렸다.

　“아 씨, 왜 자꾸 밀어?”

　사람들의 시선이 대번에 그 쪽으로 쏠렸다. 그곳에선 웬 젊은 여자가 있는 대로 짜증을 부리면서 옆에 있던 정장 차림의 중년 여성을 째려보고 있었다.

　그런데 중년의 그 여성은 얼핏 불안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거기다 주위의 이목이 자신에게 쏠려 있음을 깨달은 뒤부턴, 아예 사시나무 떨 듯 부들거리며 주춤주춤 뒷걸음질까지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채 두 발자국도 떼기 전에 지레 다리에서 힘이 풀려버리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사람들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이 불안감으로 어지럽게 흔들렸다.

　그때 그녀와 눈이 마주친 한 남자가 대뜸 알아보고 소리쳤다.

　“의원이다!”

　사람들은 그제야 그녀의 가슴에 달려 있는 무궁화 배지를 발견했다. 그녀는 이숙자 의원이었다. 조금 전의 소란은 이숙자가 급하게 자리를 뜨다가 얼떨결에 젊은 여자를 밀치게 되었고 그 바람에 중심을 잃고 휘청한 여자가 이숙자에게 짜증을 부린 것이었다.

　사람들은 이전보다 더 술렁이기 시작했다. 다들 입은 다물고 있었지만, 눈은 서로의 눈치를 살피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들의 눈빛은 마치 “어떡하지? 진짜 해버려?”, “니가 먼저 해.”라며 서로를 부추기고 있는 듯했다.

　반면 아직 그곳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다른 의원들의 얼굴엔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들은 그때까지만 해도 여전히 달고 있던 의원배지를 슬그머니 떼어내 감추고는, 자칫 들키기라도 할세라 이전보다 더 눈치를 살피며 살금살금 움직였다. 그러나 이미 대다수 사람들의 눈엔 그들의 그런 움직임이 죄다 포착된 상태였다. 의원들도 그걸 모르진 않았다. 다만 외면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러다 결국 초조함을 견디지 못한 의원 하나가 냅다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

　“우와악!”

　그러자 나머지 의원들도 혼비백산하여 덩달아 달아나기 시작했다.

　“으악!”

　“으아아아!”

　그러나 그들의 행동은 오히려 사태를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악화시켰다. 갑작스런 소란에 당황한 많은 이들이 엉겁결에 동시다발적으로 의원들을 쫓기 시작했던 것이다.

　“자, 잡아!”

　“달아난다!”

　“와아!”

　그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반사적으로 제각각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의원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의원들을 넘어트려 주먹으로 내리치고, 구둣발로 차고, 짓밟고, 찍는 그들의 모습은 위에서 보면 흡사 군데군데 떨어져 있는 붉은 살점마다 새까맣게 엉겨 붙어 바글거리는 파리 떼 같았다. 거기 있는 모두가 의원 구타에 적극 가담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최소 백여 명 이상의 사람들이 죽기 살기로 의원들을 때려눕히고 있었다. 의원들은 단 몇 초 만에 수십여 차례 이상 구타를 당한 뒤 초주검 상태가 되었다가 이내 숨통이 끊어져버렸다. 하지만 한번 시작된 구타는 관성이 붙어 쉽게 멈춰지질 않았다. 결국 의원들의 시신은 으깨지고 짓이겨지고 터져서 점점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어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금 전 꽃님에게 혼쭐이 났던 전경들은 이번엔 사람들을 제지하기 위한 그 어떤 행동도 하지 못했다. 오히려 멀찍이 떨어진 채 구경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기를 수 분. 의원들은 이미 죽은 지 오래였고, 그들을 구타하던 사람들 또한 몸은 물론 마음까지도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에 지쳐 움직임이 점점 둔해져 갔다. 게다가 그들은 난리 통에 이미 얼도 진도 다 빠져버린 탓에 이제 무엇을 해야 할 지, 또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해 전혀 생각할 여력이 남아있질 않았다. 그냥 넋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서서 서로의 얼굴들만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민철의 뇌리를 번쩍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민철은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여러분, 본회의장이요! 본회의장으로 가요! 의원들은 지금 그곳에 모여 있을 거예요!”

　그러자 사람들은 마치 막혔던 곳이 뻥 뚫린 것처럼 대번에 얼굴이 환하게 피어났다. 그리고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본회의장을 향해 우르르 달려갔다.

　한편 의원 살해엔 차마 가담하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만 있었던 나머지 수백 명의 사람들도 처음엔 머뭇거렸지만, 결국 하나 둘 그들의 뒤를 따라 본청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모든 사람들이 그곳을 떠나고, 그 자리엔 동원과 승호·승희 남매, 그리고 지인과 지혜 자매 이렇게 다섯 명만이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여전히 승희를 등에 업은 채였던 동원은 신성영이 민철에게 머리가 깨져 죽던 그 순간부터 줄곧 승호를 다른 사람들에게 발각당하지 않도록 지인, 지혜와 함께 몰래 에워싸 가리고 있었다. 다만 지혜는 지인의 손에 이끌려 억지로 가림막 역할을 한 것이 못내 못마땅했던 나머지 싫은 티를 팍팍 내며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동원과 지인은 본청으로 향하고 있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제 큰 고비는 넘겼다는 생각에 속으로 조용히 안도하며 경계를 풀었다.

　그런데 별안간 민철이 본청으로 가다 말고 승호가 있는 쪽을 돌아봤다. 놀란 동원과 지인은 다시 허겁지겁 승호를 에워쌌다. 그러고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딴청을 피웠다. 하지만 그러고 있는 둘의 모습은 누가 봐도 어색했다. 승호 또한 동원과 지인이 가리고 있는 틈 사이로 몰래 주변의 상황을 살피다, 문득 민철이 자기 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라며 얼른 다시 몸을 숨겼다.

　민철은 승호가 있는 쪽을 계속 주시했다. 그런 민철의 눈초리에 주눅이 든 동원과 지인은 고개를 푹 숙인 채 간간히 민철이 있는 쪽만 힐끔거릴 뿐이었다. 동원과 지인, 승호는 불안한 마음에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그러기를 한 참, 민철이 돌연 국회의사당 쪽으로 다시 돌아섰다. 그러고는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달려가 버렸다. 동원과 지인, 승호는 그제야 가슴을 쓸어내리며 비로소 완전히 경계를 풀었다. 지인은 문득 궁금증이 일었다.

　“민철 씨가 정말 오빠를 못 본 걸까?”

　실은 동원과 승호는 물론 지인까지도 왠지 민철이 승호를 못 본 게 아니라 그냥 못 본 척 해준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 명 다 그 이상은 더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밖에 있던 사람들 대부분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난 뒤, 잠시 후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전경대 소대장들에게 안에 있는 경감으로부터 무전이 왔다. 그리고 무슨 명령을 받았는지 전경들은 무전이 끝나자마자 헐레벌떡 안으로 몰려 들어갔다. 이에 의사당 현관 앞에서 민철이 소란을 피우는 걸 구경하고 있었던 학현도 전경들을 따라 서둘러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한편 전경들에 이어 학현마저 그렇게 의사당 안으로 급하게 들어가자, 지혜는 문득 의사당 안 상황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한동안 의사당 쪽과 지인을 번갈아보며 망설이다, 결국 의사당에 가는 걸로 마음을 정하고 승호와 동원에게 으름장까지 놓아가며 단단히 일렀다.

　“이 봐, 두 사람. 잠깐 우리 언니 좀 봐줘. 만약 언니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둘 다 가만 안 둘 줄 알아. 알았어?”

　그러더니 지인을 한 번 더 쳐다보고는 곧장 의사당 쪽으로 달려갔다. 지인은 걱정되는 마음에 지혜를 말려보려 했지만, 그땐 이미 지혜가 저만치 가버린 뒤였다. 이제 건물 밖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동원과 지인, 승호, 그리고 동원의 등에 업혀 있는 승희 이렇게 네 사람이 다였다. 하지만 그들 또한 곧 여느 사람들처럼 의사당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