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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고마워 미안해 사랑해
작가 : 지평선
작품등록일 : 2017.10.31

30일 뒤에 지구가 운석에 충돌해 멸망한다.
지구의 멸망을 막으려는 영웅들의 이야기도 아니고,
멸망하는 지구를 분석하는 공상과학물도 아니다.

삶이 30일 남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그 사람들의 버킷리스트.

 
D-29, 뜻밖에도(2)
작성일 : 17-11-13 18:10     조회 : 266     추천 : 0     분량 : 4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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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방금 지우가 '가'를 썼잖아. 그치? 이게 '나'고. 그러면 가나초콜릿 할 때 '가나'는 어떻게 쓰는 거야?"

 

 

 내년에 초등학교 들어갈 나이의 아이들 치고는 한글을 너무 몰랐다.

 그래도 얌전하고 배우려고 하는 애들이 많아서 분위기는 좋은 편이었다.

 옆에서 연우도 열심히 도와주고, 원장선생님이 간식도 물심양면 지원해주셔서 특별히 불편한 점은 없었다.

 

 

 잠깐 보육원 앞에 있는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데, 연우가 따라나왔다.

 

 "역시, 장노을. 소질있어."

 "뭐래. 전에 과외알바 해 봐서 그런 거야."

 "힘들지는 않아?"

 "힘들 게 뭐가 있어. 오라고 해줘서 고마워. 네 덕분에 좋은 경험하는 것 같아."

 

 

 연우가 종이컵에 담긴 따뜻한 율무차를 건넸다.

 

 "이제 날씨도 춥다. 확실히 쌀쌀해졌어."

 

 "그러네."

 

 율무차를 양손바닥으로 감싸자 따뜻한 온기가 전기처럼 찌릿하게 몸을 감쌌다.

 나도 모르게 몸이 부르르 떨렸다.

 

 "겨울이 오기 전에 세상이 망해서 다행이야. 나 겨울 싫어하잖아."

 

 연우는 나를 향해 코를 찡긋거리며 말했다.

 

 

 "연우 넌 겨울이 왜 싫어? 난 끈적거리는 여름보다는 겨울이 훨씬 좋은데."

 

 "춥고 배고픈 계절이잖아. 시리고 외로운 계절이고. 나무도 혼자 살려고 나뭇잎을 바닥에 몽땅 버리는 계절이야."

 

 "그건 그래. 벌써 하나 둘 털어내기 시작하네."

 

 내가 발밑으로 채이는 낙엽을 발끝으로 걷어내며 말했다.

 

 

 "버려진 나뭇잎들은 어디론가 굴러 들어가서 땔감으로 태워지겠지."

 

 연우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앙상한 나뭇가지가 이렇게 비정하게 느껴지는 건 처음이다. 게다가 우리 지금 엄청 국문과스러운 대화야."

 

 나는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조금 장난스럽게 웃어보였다.

 

 

 "난 시인이 되고 싶었는데. 넌 몰랐지?"

 

 연우는 바닥을 보며 말했다. 나의 장난기 섞인 말투에도 전혀 연우는 동요하지 않고 가라앉아 있었다.

 내 시선을 피하는 걸까, 연우의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난 네가 방송 작가 하고 싶은 줄 알았어. 그나저나 되고 싶었다는 건, 지금은 안 되고 싶다는 거야?"

 

 "지금도 되고 싶지. 근데 될 수 없잖아."

 

 "무슨 소리야. 될 수 있어."

 

 연우가 고개를 들어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내 표정을 진지하게 살피더니 마지막 시선은 내 눈동자에 고정시켰다.

 

 "시인은 시를 쓰는 사람이잖아. 시를 쓰면 시인이지. 꼭 시집을 내고 이름있는 문학지에 등단을 해야만 시인은 아니라고 생각해."

 

 연우는 내 말에 소리없는 실소를 터뜨렸다.

 어이없는 말로 들렸을 수 있겠지만, 연우의 표정은 그런 느낌은 아니었다. 좀 더 쓸쓸함이 담긴 얼굴이었다.

 

 "그래. 맞아. 근데 내 꿈은 단순히 시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 유명한 시인이 되고 싶은 거였거든."

 

 "왜?"

 

 "원장선생님 말로는 내 친아버지가 유명한 시인이셨대. 어머니도 출판업을 하셨고."

 

 "그래서 시인이 되고 싶은 거였어?"

 

 "꼭 그런 건 아니고. 원장선생님은 내가 국문과 입학한 후에 저 사실을 알려주셨어. 원래 알려주시면 안 되는데. 나 원래도 시 좋아했고 시 쓰는 일 하고 싶었어. 현실적으로 돈 벌기가 힘드니까 차라리 드라마 작가나 방송 작가쪽으로 가야하나, 잠깐 고민했었지."

 

 생각많고 일찍 철든 연우였다. 과내에서도 '연우맘'으로 불릴 정도로 어른스럽고 다른 애들을 잘 챙겼다.

 연우는 다른 애들 고민도 잘 들어주고 상담도 잘해줬다. 특히 여자애들은 연우를 많이 따르고 의지했다.

 하지만 연우는 정작 자기가 힘든 일은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않았다.

 가장 친했던 나랑 현채에게조차.

 그나마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현채에게도 부모님이 안 계셔서 보육원에서 자랐다는 것,

 그 보육원에 가보지 못해 마음이 쓰인다는 것, 그 정도만 털어놓을 정도였으니까.

 

 나에게 보육원으로 오라고 한 건,

 내가 걱정되기도 했겠지만 연우 자신도 털어놓을 친구가 필요해서였겠지.

 

 

 "이젠 다 쓸모없는 고민이지만."

 

 "넌 부모님 만나고 싶구나? 난 아닌데. 버림받은 나뭇잎이 꼭 나 같아. 색깔도 노란 게, 노랗게 뜬 내 얼굴 같네."

 

 "뭐? 너네 부모님 돌아가신 거 아니었어?"

 

 "아, 그건 누가 물어보면 귀찮아서 그냥 그렇게 말했어. 사실 두 분 이혼하시고 할머니한테 버려진거야. 할머니도 많이 편찮으셔서 곧 돌아가셨고."

 

 

 나랑 연우는 애꿎은 낙엽을 툴툴거리며 차댔다. 운동장 바닥의 모래가 살짝씩 일었다.

 

 

 "넌 앞으로 남은 한 달 동안 계속 여기 있는 거야?"

 

 "응. 사실 고등학교 졸업하고 한 번도 안 왔어. 성공해서 부모님 찾아야겠다는 생각도 강했고, 대학와서 유복한 집에서 살아 온 애들 만나니까 희망원이 금기처럼 여겨졌어. 평범하게 자란 척, 멀쩡한 척. 내가 꽤 연기를 잘 하나봐. 나보다 행복한 줄만 알았던 애들이 힘든 얘기 할 때, 사실 좀 놀랐어."

 

 "여기서 이런 예쁜 동생들하고 같이 자라서 그런지, 너 되게 편한 언니 같거든. "

 

 

 연우는 내 말에 쑥스러운 듯 고개를 저었다.

 

 "버킷리스트 쓸 때, 희망원 생각이 제일 먼저 나더라고. 날 친부모님처럼 챙겨주신 원장선생님, 동생들, 친구들을 다 부정했었어. 바보같이. 내가 전에 버킷리스트 쓸 때, 죽기 직전에 후회할 일 만들지 말자고 했었잖아. 아무리 생각해봐도 난 여기오지 않았으면 정말 후회했을 거야. 갑자기 그 생각하니까 나도 모르게 막 눈물이 흐르더라고. 그래도 다행히 너네가 다 울어줘서 덜 민망했다."

 

 

 버킷리스트.

 그어버릴 수 없는 버킷리스트가 내 노트에 남아있었다.

 

 

 "노을이 넌 그 날 술 마시고 이젠 좀 괜찮아 진거야?"

 

 연우는 조금 머뭇거리다가 말을 꺼냈다.

 

 

 "그럼. 괜찮지. 괜찮으니까 여기도 왔지. 그 상태 그대로였으면 오다가 버스에서 열 두번은 더 토했을 걸."

 

 "누가 네 위장상태 걱정했냐? 네 마음 괜찮냐고 묻는 거야."

 

 

 연우의 질문의도를 파악하지 못해서 저런 대답을 한 게 아니었다.

 한 번이라도 더 피하고 싶어서 저런 말이 튀어나온 거겠지.

 

 "괜찮다니까. 괜히 너네한테 전화 걸어서 걱정만 끼쳤네."

 

 "걔, 만나니까 뭐라고 하든? 도대체 얼마나 심한 말을 했길래, 장노을 네가 술을 그렇게.."

 

 

 나는 깜짝 놀라 토끼 눈을 떴다.

 내가 너무 놀란 눈을 하고 쳐다보니, 연우도 말을 하다 말고 나를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뭐야, 그 동그란 눈은."

 

 "연우 너, 내가 누구 만난 지 알고 있어?"

 

 연우는 피식, 이번에는 진짜 비웃는 듯한 웃음이었다.

 

 

 "와, 장노을. 너 아주 나랑 성현채를 곰탱이 취급하는구나. 그걸 왜 몰라?"

 

 "내가 누구 만났는데? 알면 말 해봐."

 

 "뻔~하지."

 

 "너 모르지? 성현채랑 짜고 떠보는 거지?"

 

 "떠보고 자시고 할 게 뭐가 있어? 딱 한 명 밖에 안 떠오르는데. 그 사람 만난 날 학교 근처 닭발집에서 술마신 거면 대학교 사람이었을거고. 너 대학인맥이라 해봤자 우리 과 사람 말고 또 누가있겠냐? 우리 과에 네가 죽기 전에 만나고 싶을 사람이라 하면 딱 한 명, 걔지. 걔."

 

 "웃기시네. 모르면 물어보지 왜 떠보고 그래?"

 

 연우는 어깨를 으쓱하며 나를 놀리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 근데 걔 말야."

 

 "안 속는다."

 

 "아, 아니다."

 

 연우는 내 눈치를 슬쩍 보더니 일어났다. 보육원으로 들어가려는 모양이었다.

 정말 내가 누굴 만났는지 아는 걸까?

 

 

 "무슨 말을 하다 말아. 궁금하게."

 

 "그래. 어차피 알게 될텐데. 미리 말할게."

 

 "뭘?"

 

 "니가 만났다는 걔. 여기 올 지도 몰라."

 

 

 내가 잘못들은 걸까? 나는 미간까지 잔득 좁히며 연우의 양 어깨를 붙잡았다.

 

 "뭐라고? 걔가 여기 온다고? 왜?"

 

 "걔도 여기서 자랐으니까."

 

 

 아닌데. 하태양 부모님 다 계신다고 했는데.

 무슨 보육원이야.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그럴 리가 없어. "

 

 "그럴 리가 없는 건 또 뭐야. 하긴, 걔가 티를 좀 안 내긴 했지."

 

 "걘 갑자기 왜 오는데?"

 

 "양부모님하고 인사 오는 모양이야. 나도 걔가 여기 희망원 출신인 줄은 얼마 전에 알았어. 어릴 때 입양돼서 나랑 마주친 적 없었거든."

 

 "언제 온대?"

 

 "그건 몰라. 원장선생님이 스쳐지나가며 말씀하신 거라. 뭐, 빠르면 오늘 올 수도 있고~"

 

 

 연우는 짖궂게 웃으며 자신의 어깨를 잡고 있던 내 손을 밀어내고 보육원 쪽으로 빠르게 달아났다.

 

 여기서 마주치면 어떡하지. 정말 불편할 것 같은데.

 아, 어차피 하룻밤만 자고 가려고 했으니까. 괜찮아. 설마 오늘 오겠어?

 

 

 

 

 

 "원장선생님, 저 연우에요. 노을이도 같이 왔는데 들어가도 될까요?"

 

 희미하게 '네'하는 소리가 문 밖으로 새어나왔다.

 연우는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열었다.

 

 

 "이제 애들 수업 끝나서 정리했어요. 이건 아이들이 먹고 남은 간식들이에요. 나눠줘도 이만큼이나 남아서.."

 

 안에는 손님들이 앉아있었다.

 나와 연우는 방해하지 않고 인사만 드리고 나오기 위해서 문 입구에 서서 남은 간식 박스를 내밀었다.

 

 "수고했어요. 연우도, 노을 학생도. 이 간식은 두 사람이 가져가서 또 나눠 먹어요."

 

 "아, 감사합니다."

 

 

 나와 연우는 원장선생님께 꾸벅 인사하고 돌아섰다.

 

 "아, 잠깐만. 연우랑 노을학생 둘 다 신서울대 국문과 아니에요?"

 

 

 그 말에, 나도, 연우도, 그리고 반대편을 보고 앉아서 뒷모습만 보이던 젊은 남자 손님도 모두 움찔했다.

 한편 나와 연우쪽으로 앉아있던 부부는 얼굴에 화색이 돌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머, 신서울대 국문과면 너랑 같은 학교 학생이네."

 

 양장을 차려입은 올림머리 아주머니가 맞은 편에 앉은 그 뒷모습의 젊은 남자 무릎을 가볍게 톡톡치며 우리를 향해 웃어보였다.

 

 

 "뭐해, 친구들이라잖아. 인사해야지."

 

 아주머니의 부추김에 못 이겨 결국 젊은 남자는 천천히 일어섰다.

 연우는 아까 놀려댔지만 막상 '걔'가 왔다고 생각하니, 내가 걱정됐는지 나를 자기 뒤로 끌어 당겼다.

 어차피, '노을'이란 이름을 원장선생님이 얘기해서 남자는 나의 존재를 알고 있을 것이었다.

 뭐가 무서워서 뒤로 숨어. 나는 오히려 연우 옆에 당당하게 섰다.

 

 

 "안녕. 둘 다 오랜만에 보네."

 

 

 남자가 우리 쪽으로 돌아섰을 때, 연우는 보이지 않게 내 등을 다독였다.

 신나서 놀릴 때는 언제고, 오히려 연우가 더 긴장해서 내 눈치를 살폈다.

 

 나는 보란 듯이 연우 몫까지 인사를 전했다.

 

 

 "진짜 오랜만이네, 임혜성."

 
작가의 말
 

 부족한 작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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