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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고백
작가 : 안비로움
작품등록일 : 2017.10.31

용의자들의 기억을 자신의 것으로 되살려 체험할 수 있는 어느 이름없는 형사, 사건 미결로 정직을 당한 후 옛 연인의 죽음을 계기로 복귀한다.

 
에피소드 1. 붉은 옷의 여인 (4)
작성일 : 17-11-13 17:26     조회 : 220     추천 : 0     분량 : 4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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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엄…….마.”

 

 

  “다행이다. 우리 앞으로 잘 지내보자, 아들!”

 

  새로운 가족으로 집에 거주하며 그동안 존재 여부조차 몰랐던 것들을 그들은 제공했다.

 

  주어진 물질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것들뿐이었다.

 

  폐교 고아원의 교실을 전부 이어놓은 것 같은 거대한 방과 성인 네 사람은 족히 누워 잘 수 있을 만한 침대, 100인치 정도 되어 보이는 텔레비전과 생일날 원장님의 손을 잡고 딱 한 번 가보았던 오락실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수많은 오락기들을 내게 선사했다.

 

  식사 시간엔 늘 먹던 묽은 죽이나 빵이 아닌, 이름조차 생소한 재료로 잔뜩 멋을 낸 최고급 요리를 받아먹었다.

 

  건네받은 것들 덕택에 마른 몸은 비대해지고 미숙한 정신은 성장하였으며 고아로 멈춰있던 시간은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지나갔다.

 

  하지만 부족함이 없어질수록 어쩐지 다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들은 여전히 내게 관심과 사랑을 제공하였으나 왠지 모르게 나는 그들을 피해 숨고 싶어졌다.

 

  언젠가 나와 나눴던 것들에 대한 대가를 물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따지고 보면 이러한 염려는 고아원 시절의 반복이었다.

 

  배불리 밥을 먹기 위해선 늘 누군가와 다투거나 굶어야 했으며 원장님의 동의와 예산 없인 어디에도 나갈 수 없었으니까.

 

  그래서 난 이 행복이 오래 가진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들이 내게서 얻고자 했던 것이 모두 떨어지면 나도 곧 쫓겨날 것 같았다.

 

  홀로 견뎌내는 열매와 곡식의 기분을 너무 잘 알기에 외로움은 견딜 수 있었으나, 엄습하는 불안감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10대의 초반을 갓 넘길 무렵, 마침내 어머니의 배가 불렀다.

 

  드디어 핏줄을 가진 것. 한 달 두 달, 생명을 품은 어머니의 마음만큼은 아니겠으나 시간은 나에게서 공포 이외의 것들을 앗아갔다.

 

  언뜻 보면 그것은 입양아인 나와 피가 섞인 가족이 각자 제자리를 찾는 완벽한 길일 텐데 나의 뱃속에는 알 수 없는 공허함만 가득했다.

 

  마음속에선 무의식중에 끝나지 않는 나의 즐거움을 위해 아무도 태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바람이 잘못 전해진 까닭이었을까. 아니면 악한 마음에 대한 벌이었을까.

 

  1년에 근접하는 시간이 흐른 뒤, 어머니는 여동생을 세상에 내보낸 채 가족의 곁을 떠났다.

 

  이제 내게 어떤 결말이 찾아올지는, 날 멀리서 쳐다보는 신생아의 눈만큼이나 뻔했다.

 

  하지만 난 가족이란 달콤함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들에게 받았던 초콜릿의 녹아드는 맛과 설탕이 범벅 된 사탕의 맛은 결코 쉽게 잊혀질만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

 

  그렇기에 동생에 대한 질투심은 커져만 갔다.

 

  나의 삶에 기어들어와 몇 시간째 울어대는 아스파라거스인지 덜 익은 과일인지도 모를 저 아이가 내가 원하는 달콤함에 얼마나 도움이 될는지는 굳이 묻지 않아도 뻔했으니까.

 

  “아버지. 들어가도 될까요?”

 

  “그럼, 물론이지. 어서 들어와라. 무슨 일이니, 아들.”

 

  “저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요?”

 

  “응? 어떻게 되는 거냐니?”

 

  “절 입양 하셨잖아요. 이제 아이도 태어났으니, 저는 이 집에서 쫓겨나는 건가요?”

 

  “뭐? 그게 무슨 말이야.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거냐.”

 

  저 시계의 초침 소리와 덜 익은 과일의 혹은 아스파라거스의 울음소리 덕분에.

 

  “아, 아녜요. 이만 자러갈게요.”

 

  “잠깐 이리 와서 앉아봐라. 왜 우리가 널 쫓아낼 거라고 생각한 거니.”

 

  “늘 그랬으니까요. 고아원에서 원장님은 늘 새로운 아이가 들어오면 다 큰 형을 내보냈어요. 옆 침대 친구도, 좋아하던 여자 애도 그랬어요. 원장님이 더 이상 우리를 키울 돈이 없어지면 언젠가 우리들 모두 쫓겨나게 될 거라고. 나이가 먹을수록 돈이 많이 든대요. 그래서 아버지도 절 내보낼 줄 알았어요. 동생이 태어나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이 들 테니까요.”

 

  내 말을 듣자 그는 호탕하게 웃음 지으며 종전까지의 내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설명했다.

 

  “하하하, A야. 어쩌다 그런 뚱딴지같은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만, 내가 널 사랑하는 한 이 집에 머무르게 할 테니 걱정 마려무나. 난 너와 네 동생을 못 키워 둘 중 하나를 내보낼 정도로 매정하지도 또 가난하지도 않으니까. 엄마도……. 살아있었다면 나와 같은 말을 했을 게다. 그러니 그런 생각일랑 얼른 지워 버려라.”

 

 “……알겠어요, 아버지. 죄송해요. 다신 그런 생각 안 할게요.”

 

 “그래. 착하다 내 아들. 참, 자러 가기 전에 내 전화기 좀 가져다주지 않으련? 서재에 있겠구나.”

 

 “네. 아버지.”

 

  나는 그의 말을 믿어도 되는 것일까. 지금의 염려를 더 악화시키는 것은 아닐까.

 

  그가 충고한 대로 모든 고민을 잊어야 하는 걸까. 잠든 나의 동생을 나는 용서해야 하는 것일까.

 

  예고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쫓겨나지 않기만을 바랄 뿐.

 

  나는 아버지의 침실을 나와 한 층계를 내려간 뒤 손님들이 묵는 별채와 연결된 통로를 거쳤다.

 

  그 다음 시내의 잘 나가는 식당과 맞먹는 크기의 부엌, 스무 명은 족히 재울 수 있는 거실을 지나 나의 동생, 그 아이의 방을 넘기고 나서야 세상 모든 책이 있을 법한 서재에 들어섰다.

 

  어느 문이든 열어 복도를 통하면 누구나가 꿈꾸던 것들이 가득했다.

 

  그 중에서도 비약한 기술은 당연히 내게 우선적으로 주어지는 혜택이었다.

 

  최신 컴퓨터나 휴대전화 같은 것들. 누리지 못하는 다른 이들에게 나는 언제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손에 들린 이 조그만 전화기가 그러한 명제를 증명했다.

 

  하지만 편리한 기술은 반대로 이 집안의 누구도 접근 할 수 있을 만큼 연약한 것.

 

  그래서 나는 조심스럽게 혹은 아무렇지 않게 아버지의 지난 메시지를 살폈다.

 

  아버지와 누군가가 주고받는 형식적이고도 정형화된 문자, 그리고 어둠 속에서 비밀을 훔쳐보는, 어울리지 않는 상처를 지닌 꼬마. 거대하고 살찐 이야기는 이곳에서부터 시작되었다.

 

 

 

 

  A는 순간 말을 멈추고 천정으로 눈을 돌린다.

 

  이제 단 한 명도 남지 않은 가족과의 추억이, 그를 눈물짓게 하는 것일까.

 

  “……A씨가 말한 그 문자는 어떤 내용이었죠?”

 

  “……담배, 하나만 주시겠습니까.”

 

  그는 책상 위에 올려둔 내 담배를 멋대로 가져가 불을 붙였다.

 

  밀폐된 공간에서 연기는 나갈 곳을 찾지 못해 뿌옇게 차여만 간다,

 

  네 번째 특이점. 과거에 A가 보았던 K의 문자는 현재 E의 살해사건과 연관이 있다.

 

  “잠시만, 이 담배가 다 타기 전까지만 기다려 주십시오.”

 

  “……기다리겠습니다.”

 

  그는 담배를 입에 물고 열정적으로, 또는 다른 이가 보기 역겨울 정도로 빨아먹기 시작한다.

 

  그는 잿빛 사랑을 나누며 취조실 안의 무엇과도 눈을 맞추지 않는다.

 

  그러다 그가 뿜어대는 검은 연기에 콜록대는 순간, 나는 내가 피우던 담배 연기에 늘 손사래를 치며 헛기침을 하던 그녀가 떠오른다.

 

  하지만 그녀는 이 세상에 더 이상 없다며 다시 스스로에게 최면을 건다.

 

  사랑은 연기처럼 떠나고 과거만, 그 검디검은 재만 곳곳에 남아 날 흔들어 놓는다.

 

  곧 그는 들이마시던 연기를 마저 뱉어내고 비참하게 짓밟아 버린다.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하던 그녀처럼. 다시는 불 탈 수 없도록, 불씨 하나 남겨두지 않은 채.

 

  “잠깐, 문자에 대해 듣기 전에 한 가지 더 궁금한 게 있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최근까지 꾸준히 살해협박을 받았다면서 왜 경찰에는 아무 것도 알리지 않은 겁니까? 보통 협박을 받으면 바로 신고하는 것이 정상 아닙니까?”

 

  “……그 편지를 보낸 사람이 내 동생이라면 믿겠습니까?”

 

  “E가 당신에게 살해협박을 해왔단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그 사건’뒤부터 계속.”

 

  그녀의 아버지, K의 실종 사건. 나는 그를 찾는데 실패하였으며, 그녀가 변하고, 나를 떠나던 바로 그 때.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자신의 오빠, A를 무척이나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 둘의 대화에서도 그의 이름은 매번 빠지지 않았다.

 

  “‘그 사건’? 하지만 그 때까지도 당신과 E는…….”

 

  “아뇨, 동생이 변한 건 그 전부텁니다. 아버지가 죽기 전부터 그리고 당신과 헤어지기 전부터 동생은 이미 변해있었습니다.”

 

  “그 전부터라면…….”

 

  “……제 아버지를 기억하십니까?”

 

  E와 A의 아버지, K. 180cm가 넘는 장신. 당시 예순의 나이를 넘겼으나 넓은 풍채와 건장한 몸을 지녔던 그. E와 함께 집을 방문했을 때 호쾌하면서도 정중한 인사로 나를 맞아주셨던 분.

 

  또한 그는 동명의 기업, K사의 대표이사이자 3년 전 종적을 감춘 실종 사건의 피해자.

 

  “네. 언젠가 E와 함께 뵈러 간 적이 있습니다. 호탕하고도 품위 있는 분이셨죠. 누구든 존경할만한 어른이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헤어지기 전 E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나의 몸은 이미 걷고 걸어 그녀를 떠났지만, 머릿속에선 난 아직 그녀로부터 단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했다.

 

  환상 속에 그녀는 살아있다. 허나 손을 뻗어보아도 잡히는 건 바람 뿐. 헛되고, 헛되고, 헛되도다.

 

  “……아름다운 사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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